몇달전 요한 크루이프의 사망 소식으로 전세계 축구인들과 축구팬들이 슬퍼했고
축구사에 두번다시 나올수 없는 별중의 별을 잃었기에 그 슬픔은 너무나도 컸습니다
요한 크루이프 는 등장부터 센세이션 이었습니다
운동선수 같지않은 호리호리 한 체격에
동화책속 왕자님 같은 얼굴에
요한크루이프 의 등장은 조지베스트 이후 다시한번 축구계에 오빠부대
열풍을 일으켰습니다
크루이프는 외모뿐만 아니라 실력에서도 기존의 선수들을 앞도하는 천재 였습니다
그의 선수시절 경기모습
요한 크루이프의 창의력과 천재성을 제일 잘 보여주었던 그의 패널트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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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크루이프는 한마디로 축구사에 두번다시 나올수 없는
천재스타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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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크루이프는 초등학생때 아버지를 잃습니다
그래서 학교 가기전에 새벽마다 신문을 돌렸고
중학생 시절에는 학교 마치면 공장일을 했습니다
요한크루이프 가 스티브잡스 처럼 지는걸 싫어하고 불같이 화내고 고집강한 성격은
아마 그시절 소년가장 생활을 일찍 시작하면서 만들어 졌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한 크루이프의 어머니는 아약스 유소년 팀의 유니폼 세탁 업무를 담당 했는데
당시 유소년 팀 감독 이었던 미첼스 에게 자기 아들이 운동에 재능이 있는거 같은데 선수로 뛰게 해 달라 부탁합니다
당시 미첼스 감독은 독립적인 축구전술을 연구하느라 여러 방식으로 작전들을 시도하였고 선수들에게 최대한
자율성을 많이 보장한 탓에 너무 부진한 성적에 허덕였고
때문에 해고직전의 위기에 있었습니다
그런 미첼스 감독과 크루이프의 만남은 훗날 전원공격 전원수비의 토탈사커를 완성하는 시작이 됩니다
또래얘들 보다 압도적으로 빠른 스피드와 유연한 몸은 물론 기술이나 전술에 대한 창의력 까지 가졌던
요한 크루이프의 활약으로 아약스 유소년 팀은 날마다 승전보를 올리다 시피 합니다
요한 크루이프가 성인이 되던시절 기분이 업 될대로 업 된 아약스 구단주는 아예 미첼스와 그 코치진을
성인팀 감독까지 승격 시키는데 10년 넘게 손발을 맞추어온 코치진과 선수들이라 아약스는 유럽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됩니다
1974년 서독 월드컵
네델란드 대표는 11명 이상을 아약스 선수로 선발하는데 10년 넘게 손발을 맞추어온 선수들 이라
세계 최고의 조직력을 뽐내며 네덜란드 최초로 월드컵 결승까지 가게 됩니다
그리고 결승전은 당시 세계 최고의 공격수 크루이프 와 세계 최고의 수비수 베켄바워 가 벌이는
세기의 대결로 기대를 모았지만
독일의 전원수비 작전으로 네덜란드는 패배하게 됩니다
월드컵 이후 크루이프의 동료들은 비싼 거액의 몸값에 여러 구단에 속전 속결로 영입 되었지만
정작 크루이프 를 데려가려는 구단은 없었습니다
몸값 때문이 아니라 크루이프의 까다로운 요구 사항이 많아서 였습니다
크루이프는
선수들에게 최대한 자유와 자율성을 보장할것
내가 요구한 방식대로 훈련할것
네스켄스를 반듯이 영입할것
이 요구사항 들은 당시 클럽팀들 에게 너무 받아들이기 힘든 요소들이라 크루이프의 영입을 망설였는데
바르셀로나 구단에서 과감하게 크루이프를 영입 합기로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레알 마드리드 만큼은 이기고 싶다는 바르셀로나의 바램 때문 이었습니다
크루이프는 실력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은 연봉으로 바르셀로나에 입단하는데
바르셀로나 관계자들 모두를 놀라게 합니다
수비수는 물론 골키퍼에게도 슛 연습을 시키는가 하면
공격수에게도 수비 훈련을 시키고
공을 다루는 훈련보다 공 없는 상황에서 반사적으로 공격에 가담하고
수비에 가담하는 훈련을 더 많이 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포지션에 상관없이 체력 스피드 반응속도 좋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출전 시켜라고
감독에게 강하게 요구 합니다
크루이프의 이런 노력은 바르셀로나 팀을 완전 색다른 팀으로 만들었고
바르셀로나는 창단 최초로 우승을 차지 합니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요한크루이프 는 스포츠는 정치적 목적의 쇼가 되어선 안된다며
아르헨티나 군사 정권을 강하게 비판하고 월드컵 참가를 불참 합니다
이후 네덜란드 국민들은 그가 다시 대표팀 유니폼을 입을거라 기대 했지만
더이상 대표팀 생활은 하기 싫다며 대표팀 은퇴를 선언 하였고
네덜란드 국왕까지 그를 설득 하였고
심지어 크루이프의 대표팀 합류를 선거 공약으로 내거는 국회의원 후보까지
나올 정도 였지만 크루이프는 끝내 대표팀 합류를 거부 합니다
그리고 30살 즈음 갑자기 축구에 흥미가 없다며 축구를 그만두고 사업가로
변신 하는데 얼마 못가서 사기 당하며 전재산을 탕진하고
다시 축구선수 로 돌아 옵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 1년 넘게 쉬었는데 제대로 뛰겠어 하는 우려가 많았지만
보란듯이 전성기 못지않은 맹활약을 하며 다시한번 바르셀로나를 강팀의 위치에 올려 놓습니다
이후 자신의 고향팀인 아약스에서 선수생활을 하다가 은퇴합니다
요한 크루이프는 그라운드의 발레라나 로 불릴 정도로 화려한 플레이를 보였고
기술은 물론 팀플레이 까지 새로운걸 생각해 낼줄 알았고
축구 규칙을 100퍼센트 사용할줄 아는 천재 였습니다
베켄바워는 축구사에 훌륭한 선수는 많이 나왔지만 크루이프 만큼의 창의성을 가진
선수는 없었다 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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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엄청 길어졌는데 2부는 감독시절 이야기로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