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이 차고 안으로 들어간 직후
영진 “왜, 또 무슨 일이야..., 또 그래?”
미야자와 “하아…… 매니저님이 달래봐요. 또 저러네, 저번엔 해 보고 싶다며 넣어줬더니…….”
44호차의 차고로 온 영진이 또 시작이냐는 뉘앙스로 말했다. 보니까 아키가 구석에 숨어서 나오려고 하지 않는 상황. 소라는 한숨만 쉬면서 이런 상황이라고 말했고, 영진은 일단 다른 이들을 물러나게 한 후 아키를 달래고 있었다.
영진 “테스트, 싫어??”
아키는 영진을 보고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날씨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언제 비가 올지 모르는 날씨에 영진은 한숨을 쉬고서 일단 미야자와 감독을 잠시 갈군 후 소라와 후부키에게 먼저 주행하라고 지시했지만 후부키가 말했다.
후부키 “그게, 10분 뒤에 루키 테스트라…….”
영진은 그 말에 표정이 짜게 식어 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미야자와 감독을 겁나게 두들기고 싶지만 날이 날인 만큼 기자들이 보일 건 뻔했기에 속으로 삭힐 수밖에 없었다.
영진 “저기, 노도카? 혹시 진통제 있니? 나 지금 속이 완전 쓰린데?”
영진 “그게… 찾아볼게요.”
노도카가 약을 찾으러 간 사이 후부키가 물었다.
후부키 “아키 언니, 매번 이래요?”
영진 “날씨가 거지 같으면 이래. 18년에 뭔 사고 있었는지 후부키 너도 들었지??”
영진의 질문에 후부키는 고개만 끄덕였다.
라미 “에?? 아키쨩 안 나와??”
잠시 후, 누군가가 차고 안으로 머리를 내밀고 묻자 영진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영진 “라미야. 아키 우짜냐?”
44호차의 차고로 들어온 사람은 45호차 드라이버인 유키하나 라미. 이번 시즌에 아키하고 같이 테스트를 받아야 하는 드라이버였다. 본래 독일 최대의 그랜드 투어링카 레이스인 ADAC(이 ADAC에 대응되는 일본의 단체가 일본 자동차 연맹이다.) GT 마스터스 대회와 일본 최대의 내구레이스 대회인 슈퍼다이큐에 나갔던 그녀는 올 시즌 자이젠이 커버로 함께 리뉴얼 되자 참전하게 되었는데, 거 술만 안 마시면 확실히 좋은 사람이었다.
라미 “그냥 술 한…… 아냐, 그런 무서운 눈으로 보지 마.”
영진 “야, 음주 운전이냐? 너 오늘 새벽에 마셨지?”
라미 “안 마셨거든? 알잖아. 나 술 마셨으면 지금도 얼굴이 빨간 상태라고!”
‘하긴, 그렇겠지.’
라미의 말을 금방 캐치한 영진의 태클에 반박한 라미였다.
라미 “그런데 솔직히 감독님이나 대표님이 아키 넣은 건 다 이유가 있을 거잖아?”
영진 “이유는 개뿔, 그 두 바보는 그냥 드라이버가 부족하니까 넣은 거야. 그런데 지금 아키 이런 컨디션이면 비상인데, 안 그래도 며칠 전에 카타오카씨(=카타오카 타츠야. 슈퍼 GT GT300 클래스 4호차인 굿스마일 레이싱&팀 우쿄 드라이버, 2014, 2017 슈퍼 GT GT300 챔피언)가 기사를 봤나 봐. 나보고 ‘환자 넣어도 괜찮냐?’라고 물어서 내가 그래서 죽을 맛이라고 했는데. 게다가 이번에 GT300 클래스로 돌아온 야나기다씨(=야나기다 마사타카, 슈퍼 GT GT300 34호차인 BUSOU 드라고 코르세 드라이버, 2003 전일본 GT 챔피언십 GT300 챔피언, 2010 슈퍼 GT GT300 챔피언, 2011~2012 슈퍼 GT GT500 챔피언, 2017~2019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아트라스BX 모터스포츠로 참전)도 나한테 ‘잘못하다간 사람 하나 잡겠다.’라 하니 말 다 했지.”
영진은 감독을 다시 디스했고 라미는 그 말을 듣고서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라미 “사실 아까 감독님, 개러지 오기 전에 호시노 감독님에게 잡혀서 설교 듣긴 했어...”
영진 "팀 임펄의 어르신?? 그분께서 뭐라고 하셨는데? 감독 양반, 한 소리 들었지?”
미야자와 “예, 완벽하게 준비 안된사람을 엔트리 시키는거 아니라고……”
영진 “내 그럴 줄 알았다. 너 혼 좀 나야 했어.”
라미 “아니, 치프 매니저 오빠. 그렇게 감독님을 욕해도 돼?”
영진 “라미야. 내가 처음에 이 팀 들어올 당시, 그러니까 플레이메이커즈 시절이지? 지금 감독이 선수였어. 내가 미야자와 감독 케어하고 다녔다는 이야기 들었지?”
라미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나중에 영진에게 술을 먹이면 정말 어떤 이야기가 나올 지 모르는 일이었지만, 애석하게도 영진은 술을 안 했다. 아니, 오히려 술을 싫어했다.
영진은 일단 아키를 잘 달래는 것이 급선무였고 감독과 대표는 나중에 조져먹을 생각이라, 아키에게 '컵(=야리스 컵) 예선처럼 달리면 돼.'라고 말했고 그 말을 들은 아키가 물었다.
아키 “얼마나?”
영진 “12바퀴. 트랙만 나가지 않는다면 돼.”
아키 “길어. 그리고 날씨도 싫어.”
영진은 그 말에 속으로 ‘네 맘 이해해.’하고선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로 걸어가서 가방을 하나 가져 왔다.
영진 “이번 루키 테스트 통과하면 아키 너가 갖고 싶다던 거 줄게.”
아키는 영진이 손에 든 걸 보고 눈을 반짝인 후 그대로 영진에게 통과하면 주냐고 물었고 영진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서 바로 차로 향했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던 소라가 영진에게 물었다.
소라 “저, 치프”
영진 “응?”
소라 “아키를 뭐로 설득하신 거예요??”
영진 “예전에 구매한 팀 쿠니미츠 2018년도 슈퍼 GT GT500 클래스 챔피언십 위닝카 다이캐스트 모델. 아키가 그거 갖고 싶어 했거든. 지금 중고가가 세서 말이야.”
영진의 말에 소라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2018년의 슈퍼 GT, 코구레 타카시와 로익 듀발 듀오의 웨이더 혼다 레이싱, 돔이 2010년에 혼다 HSV-010 GT로 챔피언에 오른 이후 8년 만에 혼다계열의 팀이 챔피언에 오른 대 파란의 시즌이자, 팀 쿠니미츠 창단 최초의 챔피언 등극이었다. 1992년 창단, 1994년 슈퍼 GT의 전신인 전일본 GT 챔피언십에 뛰어든 이래, 처음으로 정상에 오른 일이었다.
(참고 : 슈퍼 GT GT500에서 혼다 계열의 팀이 챔피언을 차지한 경우는 2007년 ARTA, 2010년의 웨이더 혼다 레이싱, 2018년과 2020년의 팀 쿠니미츠 뿐이다. GT300까지 내려가도, 2013년 팀 무겐이 우승한 것과 2019년의 ARTA 뿐이다.)
소라와 미야자와도 그 당시 보면서 누구보다 좋아했던 최종전이었고 장영진 매니저 역시 박수를 쳤던 그 시즌, 근데 그 시즌 챔피언십 위닝카의 다이캐스트라니! 혼다와 연관이 있는 소라와 아키의 처지에서는 눈이 돌아가는 수준을 넘어서서 미쳐 날뛰고도 남을 수준이다.
소라 “그, 그거를요?? 혼다 팬들에게 있어서 지고의 보배인 그 다이캐스트 카를 아키에게요??”
영진 “근데 그냥은 아니고, 당시 탄 두 드라이버의 사인이 있어.”
소라 “제, 젠슨 버튼 선수와 야마모토 나오키 선수의??”
영진 “응.”
영진이 준다고 했을 때 아키의 표정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가진 기쁜 표정이지만, 내막을 들은 소라는 그 말에 충격을 받은 듯 얼빠진 사람처럼 울면서 갖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영진은 그걸 보고서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영진 “소라는, 2018 시즌 SF 챔피언십 위닝카로 대체하면 안 될까? 그것도 야마모토 선수에게서 직접 사인받은 건데…….”
소라는 그 말에 영진의 손을 잡고 당연한 일이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다만 그 표정이 정말 후부키의 말을 빌리자면, 오타쿠 수준이라는 것이 함정이지. 오타쿠 안 좋아한다는 애가 그런 표정을 지었다니, 정신 차리자. 토키노!
미야자와 “매니저님, 소라랑 아키 왜 갑자기 화색이에요? 뭐 했어?”
아까까지 겁에 질렸던 아키가 자의로 차량으로 향하는 모습, 게다가 얼굴에 미소를 띤 것을 보고 의아한 미야자와가 말했다.
영진 “내 수집품 하나 걸었어. 이 양반아.”
미야자와 “아니 뭘 건거야……? 둘이 저 정도 반응이면 꽤 좋은 걸 같은데…… 혹시 센 거 하나 걸었어요? 저 정도의 반응이 나오게 하려면 진짜 큰거 하나 걸려야 하는데?”
영진은 대충 비슷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미야자와는 그 말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미야자와 “대체 뭘 걸었길래……? 아무튼! 슬슬 우리 테스트 해야죠!”
영진 “두고 봐. 오늘 루키 테스트부터 느낌 좋을 걸?”
영진의 말대로 44호차의 아키 로젠탈은 12랩 동안 한 번의 트랙 이탈 없이 뛰어난 평균 랩타임을 기록 하면서 루키 테스트를 통과했고 소라와 후부키도 이에 자극 받은 건지 상당한 랩타임을 냈다. 솔직히 다른 팀의 눈치가 보일 정도의 베스트 랩타임이라, 후지 테스트가 걱정될 정도였다. 물론 뭐 코구레 타카시 선수나 타카기 신이치 선수, 카타오카 아재가 달리는 것에 비하면 44호차는 완전 재롱잔치지. 뭐.
45호차는 어땠냐고?? 45호차 역시 만만치 않았다. 미야자와 감독이나 팀 엔지니어들이 걱정할 정도로 베스트 랩타임을 뽑아냈으니 말 다 했지만. 그런데 여기도 솔직히 대선배 드라이버들이 보면 재롱잔치다. 확실히 그렇지. 그리고 영진은 생각하다 미야자와 감독의 '무리하게 푸시 할 필요 없다' 라는 말 을 듣고 설치된 화면을 보고 경악했다.
44호차와 45호차의 베스트 는 1분 25초대, 정확히는 1분 25.6초대와 1분 25.7초대 의 랩타임을 기록했다.
‘다 미친 거 아냐? 나 나가다 걸려 죽으라는 거지? 너희들?’
영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에이쨩과 노도카 역시 보고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몇 분 후, 피트 앞이 갑자기 시끌시끌 했다. 에이쨩과 노도카가 급히 영진을 찾았고, 영진이 나와 보니, 카메라와 피트 리포터 타케우치 시마가 그곳에 서 있었다. 아무래도 팀원들을 인터뷰 하려는 모양이다. 영진이 급히 누구를 찾느냐고 묻자 타케우치 시마, 통칭 시마시마가 아키를 찾는다고 하는바람에 영진은 즉각 고양이처럼 낮잠을 자던 아키를 깨우러 가야 했다.
??? “자, 지금 피트레인에서 시마시마의 인터뷰가 준비된 거 같거든요. 아, 아직인가요??”
‘하여튼 GTA 이 양반들아. 인터뷰 있으면 미리 이야기를 하라고요! 우리 애들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단 말이다!!’
영진은 재빨리 버스 안으로 들어가 푹 퍼진 고양이가 된 아키를 깨워서 데리고 나왔다. 물론 아키 처지에서는 갑작스러운 날벼락같은 느낌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모자도 못 쓰고 나오는 건 아키에게 좋은 일이 아니었던지라 영진은 즉각 방송팀과 협의하에 아키에게 모자를 씌우기로 했다.
피에르 키타가와 “자, 지금 피트레인, 시마시마의 인터뷰가 준비되어 있거든요, 불러보도록 하죠, 시마시마!”
실황 중계를 맡은 피에르 키타가와씨의 목소리가 서킷 장내에 울리자 곧이어 팀 차고 앞에 서 있던 한 여성이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타케우치 시마 “네, 안녕하세요. 시마시마라고 불리는 타케우치 시마입니다. 오전 테스트가 끝난 참인데요. 낮 12시를 조금 넘긴 현재, 저희는 이번 루키 테스트에서 최대 이변을 보여 준, GT300 클래스 44호차의 주인공을 만나러 왔습니다. 무려, 6년 만에! 프로무대로 돌아온, 독일발 여신, 아키 로젠탈 선수입니다! 안녕하세요.”
아키 “아, 안녕하세요.”
마스크에 모자까지, 이 웬 중무장이냐 하겠지만, 아키는 아직도 완벽하게 다 나은 상태가 아님을 감안하자. 뜻밖에 두건을 쓸 때 엄청 힘들다.
타케우치 “로젠탈 선수라 불러야 하나요? 아키가 성은 아니잖아요?”
아키 “네.”
너무 긴장한 탓인지 조금 얼어 버린 아키에게 타케우치 아나운서는 친절하게 대했다.
타케우치 “자, 로젠탈 선수. 지금 많이 긴장했어요. 일단 그동안의 이야기부터 들어볼게요. 6년 만에 프로로 돌아왔다고 들었어요. 듣기로는 2018년 르망에서의 충격적 사고 이후, 2020년부터 다시 서킷에 갔다고 하는데, 오카야마는 6년만, 인가요?”
아키 “아뇨, 17년 혼다의 개발 드라이버로, 온 이후…… 5년?? (잠시 생각하다가) 네, 5년 만에 달리는 거 같아요..”
타케우치 “그렇군요. 그럼 2020년부터는 어떻게 된 거예요?”
아키 “매니저님…… 하고 같이, 비츠 레이스하고 야리스컵 참가했어요. 매니저님이…… 제 감독이 되어서.”
타케우치 “아, 매니저님이면…… 한국 출신의 장영진 매니저님이요?”
아키 “네.”
아키는 그렇게 말하고서 웃는 표정을 지었다.
타케우치 “장영진 매니저님. 재작년과 작년에 몇 번 뵙긴 했지만, 정말 말재주나 식견이 대단한 분이죠. 그러고 보니 이번에 그 분이 총괄 매니저로 승진했다고 하는데, 그럼 그 분이 로젠탈 선수의 재활을 담당한 건가요?”
아키는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고 타케우치 아나운서는 아키의 끄덕임을 보고 ‘그렇군요.’라 답했다. 곧이어 피에르 키타가와의 목소리가 들렸다.
피에르 “시마씨, 혹시 로젠탈 선수가 이번 루키 테스트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비결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정말 한 번에 그런 성적을 내기 힘들 거든요.”
타케우치 “네, 알겠습니다. 자, 로젠탈 선수. 방금 전의 테스트에서 정말 대단한 성적을 냈어요. 45호차의 호쇼 선수도 유키하나 선수도 그치만 정말 뛰어날 수밖에 없거든요. 혹시 특별하게 연습한 적 있나요?”
아키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놀란 듯 고개를 돌려서 영진을 찾았다.
영진 “왜??”
영진이 나온 걸 본 타케우치 아나운서도 깜짝 놀랐다.
타케우치 “자, 잠깐만요! 지금 로젠탈 선수의 재활을 담당해 온, 플레이메이커즈 레이싱의 큰 형님, 아니 이제는 커버 모터스포츠의 큰 형님. 장영진 매니저께서 나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영진 “안녕하세요. 커버 모터스포츠 치프 매니저 장영진입니다.”
타케우치 “네, 장영진 매니저님. 혹시 로젠탈 선수에게 특별히 지시하신 적 있나요? 로젠탈 선수의 재활을 담당해 오시다 보니, 특별히 지시를 한 거 있을 거 같은데요.”
영진 “아뇨. 특별하게 없습니다만, (아키를 보고서) 말해도 될까요?”
아키의 표정을 읽은 영진은 입을 열었다.
영진 “사실 테스트 시작 전에는 나오기 싫어했어요. 설득해서 겨우 나온 거니까요. 그런데도 잘해서 다행이죠.”
타케우치 “그렇군요. 로젠탈 선수는 혹시 전략적으로 받은 지시가 있었나요?”
영진 “아뇨. 그냥 잘 달리라는 말만 있었어요.”
타케우치 “알겠습니다. 오후 테스트에서도 좋은 모습 부탁드립니다.”
영진 “감사합니다.”
피에르 “네, 아키 로젠탈 선수와 장영진 치프 매니저의 인터뷰였습니다. 사실 이번 시즌에 들어와서 플레이메이커즈 레이싱과 자이젠 레이싱이 커버 모터스포츠로 통합되면서 리브랜딩했다는 소식이 처음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걱정을 했을 겁니다만, 오전 테스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 지금 지로씨가 전달할 정보가 있는데요. 지로씨, 무슨 일인가요?”
타카하시 지로 “네, 오전 테스트 결과 GT3 경주차들이 강세를 보이지 않았습니까? 커버의 44호차 720S와 45호차 488 GT3 Evo가 이에 편승했는지 상당히 좋은 성적을 보였습니다. 오히려 감독이 걱정할 정도의 성적을 냈는데요. 44호차는 1분 25.6초대, 45호차는 1분 25.7초대의 기록을 냈습니다. JLOC의 88호 차와 K-Tunes 바로 다음의 성적입니다. 오죽하면 미야자와 감독과 장영진 치프 매니저가 걱정할 정도였다는데요. 오후 테스트도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피에르 “알겠습니다.”
실황 중계를 맡은 피에르 키타가와와 피트 리포터인 타카하시 지로의 말대로 미야자와 감독과 장영진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루키 테스트를 달린 셋이 합격한 건 다행이지만, 막말로 랩타임이 미쳐 날뛰어 버린 것이다. 44호차 기준으로 1분 25.6초대라니. 장영진하고 미야자와 감독은 아무래도 오늘 오후하고 내일은 차고 밖으로 나갔다간 다른 팀에게 걸려서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미야자와 “이거 확실히 빠르죠? 걱정되는데? 초반에 26초 0 찍고 내가 어이없어서 라디오에서 애들보고 ‘이거 어디까지나 테스트야’라고 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으니!”
영진 “저기 메르세데스 사용하는 팀들보다 빠른 데, 나하고 그쪽이 지금 나가면 업개러지나 굿스마, 레온, 콘도 레이싱에 끌려갈걸? 심지어는 미치가미 아재가 거기 팀원들하고 같이 나 삶아먹겠다. 아니, 사이타마 토요펫 애들까지 들고 일어나겠지. 그쪽이나 나 목 좀 씻어야 할걸?”
미야자와 감독은 그 말에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만 나왔다.
소라 “빨라요?”
에너지드링크를 마시던 소라가 물었고 영진이 화면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한마디 했다.
영진 “지금 나하고 우리 감독하고 나가면 겁나 욕먹게 생겼어. 소라야. 나 좀 살려 줘. 아키는 그렇다 치더라도 너하고 후부키는 진짜 미친 듯이 밟았더라.”
소라는 말없이 피식 웃었다. 영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영진 “야, 44호차는 그렇다 치고, 45호차는 뭐냐! 쟤네도 미쳤어! 마린하고 라미 겁나 밟은 거 같은데, 여기 독일 아냐!! 내가 다 조마조마하다.”
다이도 시노부 “이거 스즈키 감독님이 잡으러 오는 거 아닙니까??”
차량을 점검하던 다이도 시노부의 말에 영진이 그대로 받아치면서 말했다.
영진 “ARTA 55호차? 거기까지 오면 나하고 감독하고 둘 다 죽어. 아마 GT300의 모든 팀이 우리 팀 잡으려고 할걸? 애들 오후에는 무조건 페이스 죽여야 해요. (잠시 생각 후) 아니다. 44호차는 어렵겠다. 분명 아키가 겁나게 밟을 것 같아.”
영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어디론가 걸어갔다.
소라 “어디 가세요 치프?”
영진 “독일산 냥이 한 마리 보러 간다. 아까 전에 흐린 날씨속에서 완전히 푹 퍼졌던데 말이지.”
영진의 말에 소라와 미야자와 감독은 킥킥 거렸다. 소라를 데리러 온 후부키는 영진이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를 못 했지만.
오후 테스트에서는 미야자와 감독의 말대로 페이스를 죽였다지만, 역시 오전 테스트에서 낸 랩타임의 임팩트는 강렬했다. 덕분에 다른 팀에서는 44호차와 45호차가 뭐 저렇게 랩타임을 뽑았냐고 하면서 고민에 빠졌고 애들에게 굿즈 주겠다고 입을 털어 버린 영진은 모자를 푹 쓰고 다녀야 했다.
물론 감독하고 같이 돌아다니다가 친한 다른 팀 드라이버들에게 잡혀서 한 소리 듣긴했지만 말이다. 오죽하면 미야자와 감독이 방패로 써버릴 생각을 다 했는지 모르지만. 결국 미야자와 감독은 호시노 감독님이나 ARTA의 스즈키 아구리 감독님, 심지어는 톰즈의 타치 노부히데 총감독님에게 혼났다. 500에서도 이야기 들렸으니 불쌍한 미야자와 감독에게 애도를…….
3월 15일 도쿄 사무실
영진은 보면서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도대체 이건 또 뭐란 말인가??
스바루 “야리스컵 서일본시리즈 개막전 연기요??”
영진 “그래, 스바루.”
스바루 “그럼 아키 언니는 어떻게 해요??”
“일단 소라 말로는 올해는 야리스컵 말고 GR86/BRZ 원메이크 레이스에 나가자고 하는데, 이게 7월에 열리거든. 카타오카 선수는 세키야 회장님이 만든 인터프로토 시리즈에 나오라고 하는데, 문제는 젠틀맨 드라이버가 1명 있어야 해. 근데 우리 주변에 그걸 할 사람이 없어. 그게 또 고민이야.”
노도카 “총괄 매니저님이 나서시면…… 안 되겠죠?”
듣고 있던 노도카의 말에 영진이 어이가 없다는 투로 말했다.
영진 “대한자동차경주협회와 문의하세요.”
스바루 “그럼 감독님은요? 풀타임 은퇴이긴 한데…….”
노도카 “감독님, 서드 경험 있어서 어렵지 않을까요??”
스바루와 노도카의 대화를 듣던 영진이 고민하다 말했다.
영진 “차라리 보스가 나가는 게 나을 걸? 우리 망할 감독님은 내가 볼 때에는 프로페셔널 쪽에 들어가야 해. 풀타임은 은퇴했다고 해도 작년에 리저브였잖아? 냈다간 분명 거기 주최측에서 프로페셔널 부분에 넣는다고.”
노도카 “사장님이 하실까요?”
영진 “근데 우리 망할 보스, 작년까지 감독이었잖아. 충분히 가능할걸?”
영진의 말에 모두 할 말을 잃었고 영진은 한숨을 쉬면서 소라나 미야자와 감독과 협의해야겠다라는 생각했다. 물론 또 하나의 폭탄이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질거란 예상은 하지 못한 채.
3월 16일, 오후에 사무실과 팩토리가 발칵 뒤집혔다.
영진 “이게 뭔 개소리고??”
영진이 본 건 전 일본 F3 협회 회장인 미즈노 마사오씨의 트윗이었다. 경악스러운 소식이고 또 미즈노 마사오씨의 트윗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아키에게 전화를 걸어서 잠시 물어 봤지만 아키도 모르는 눈치였다.
‘아무리 따져도 쿠니미츠 어른께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가 안 믿겨지는데, 설마…….’
그리고 그날 저녁, 영진과 미야자와는 아키와 소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발신자는 팀 쿠니미츠의 드라이버인 야마모토 나오키와 마키노 타다스케, 내용은 타카하시 쿠니미츠 감독께서 낮에 돌아가셨다는 부고 문자였고, 저녁 7시를 기해 기사들이 올라온 것이다.
‘미친! 진짜네?? 올 초에 찾아뵐걸. 매번 볼 때마다 좋아하시던 분인데.’
영진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졌다. 곧이어 또 하나의 문자가 도착했는데, 타니고 대표로부터 온 문자였다. 문자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일본 모터스포츠계의 거목이신 타카하시 쿠니미츠 감독님께서 금일 별세하셨다는 소식이 확인된 만큼, 우리 처지에서도 조문을 가거나 아님 명복을 비는 글을 발표하는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장영진 총괄 매니저께 위임을 하도록……(후략)’
영진은 문자를 보고 뒷목이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건 대표가 직접 나서야지, 자기에게 맡기는 것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책임회피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영진 “미치겠네. 빌어먹을.”
영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노트에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 용어집 ----
루키 테스트 : 슈퍼 GT, 그중 GT300 클래스에 존재하는 테스트로, 대회 규정상 특정 조건에 대응되는 드라이버가 참가하는 테스트. 드라이버마다 여러 차례 서킷을 주행하면서 평균 랩타임이나 주행매너를 주 조건으로 운영조직인 GT 어소시에이션이 슈퍼 GT의 드라이버로서 적합한 기술을 보유하는지를 판단하는데, 참가 대상은 아래와 같다.
1. 슈퍼 GT에 처음 참전하는 GT300 클래스 드라이버
2. 2시즌 이상 슈퍼 GT에 참여하지 않은 GT300 클래스 드라이버
3. GTA가 지명한 드라이버
보통 주행 회수는 12바퀴이며, 스핀이나 코스 아웃없이 연속해서 이 12바퀴를 레이싱 스피드 로 안정적으로 주행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ADAC : Allgemeiner Deutscher Automobil-Club의 약어로, 독일의 자동차 드라이버 지원 단체, 2019년 현재 회원수는 2120만명에 이르는 유럽 최대의 자동차 관련 단체로 국제 자동차연맹 가입 단체이다. 1903년 슈투트가르트에서 설립되었으며 현 본부는 뮌헨. 상징 컬러가 노란색이다보니, ADAC 로고를 붙인 노란색 차량 통칭 옐로우 엔젤로도 유명하다. 드라이버 지원 뿐 아니라 여행, 상해보험 등을 운영하며 모터스포츠쪽에서도 관여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모터스포츠는 보통 이 ADAC 뿐 아니라 DMSB라 해서 독일 모터스포츠 협회가 같이 있다.(참고로 DMSB는 ADAC가 설립에 참여했다.)
호시노 감독님 : 슈퍼 GT의 칼소닉 팀 임펄과 슈퍼 포뮬러의 케어넥스 팀 임펄을 관리하는 일본 모터스포츠계의 전설적 드라이버 호시노 카즈요시(星野一義, 1947~)를 의미, 일본 시즈오카현 시즈오카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후 2륜 모터스포츠에 뛰어들었다. 1969년 닛산 워크스 팀 드라이버가 된 후 2002년까지 닛산군단을 대표하는 드라이버로 현역 활동을 했다. 1976~1977년 포뮬러 1 참전, 1992 데이토나 24시 종합 1위를 차지했다. 1980년 호시노 임펄을 창업, 3년 뒤인 1983년에 호시노 레이싱을 창단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역 시절 별명은 "일본에서 가장 빠른 남자." 현역 시절에 닛산의 광고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 큰아들인 호시노 카즈키도 2021년 은퇴할 때까지 선수 활동을 했었으며 자녀에게도 상당히 엄했던 것으로 유명했다.
팀 쿠니미츠 : 일본의 전설적 카레이서이자 모터사이클 레이서인 故 타카하시 쿠니미츠(高橋国光, 1940~2022)가 1992년에 세운 법인이자, 1994년부터 참가하기 시작한 팀의 이름. 1994년부터 전일본 GT 챔피언십에 포르쉐 911로 참전, 1996년에 혼다 NSX 경주차로 차량을 바꿨다. 1995, 1996년 르망 24시에 혼다 NSX GT2 차량으로 참전, 1995년 대회에서 클래스 1위, 1996년에는 클래스 3위를 기록했다. 2018년, 2020년 슈퍼 GT GT500 클래스 우승 팀으로, 거쳐간 드라이버는 츠치야 케이이치, 이다 아키라, 핫토리 나오키, 이토 다이스케, 카토 나오키, 미츠사다 히데토시, 이데 유지, 호소카와 신야, 세바스티앙 필립, 이자와 타쿠야, 코구레 타카시, 무토 히데키, 젠슨 버튼이 있었으며 2022년 현 라인업은 팬들에게 부장이라 불리는 야마모토 나오키와 마키노 타다스케 듀오로 구성되었다. 2022년 3월 16일 팀 창업자이자 총 감독인 타카하시 쿠니미츠가 세상을 떠나면서 모든 팬들을 슬프게 만들었다.
혼다 HSV-010 : 2006년에 단종된 혼다 NSX(1세대)의 후속 모델로 개발하려 했던 컨셉트 모델. 2003년 도쿄 모터쇼에서 공개되었던 혼다 HSC 컨셉과는 별개로 만들어졌다. 당초 2010년에 출시될 예정으로, 2007년 1월 북미 국제 오토쇼에서 어큐라 어드밴스드 스포츠카 컨셉으로 공개, 2008년 6월에는 뉘르부르크링에서 주행 테스트가 이뤄졌다. 그러나 그해 불어닥친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인하여 개발을 백지화, 이듬해부터 2013년까지 슈퍼 GT의 경주차로 사용되었다. 경주차에는 V8 엔진 3.4리터 엔진을 썼다.
젠슨 버튼(Jenson Button) : 1980년 1월 19일 영국 프롬 출신, 2009년 포뮬러 1 챔피언십의 월드 드라이버 챔피언으로 2000년 포뮬러 1에 데뷔, 2016년까지 풀타임으로 활동했다. 2017년 의 스즈카 1000KM 의 팀 무겐 소속으로 스팟 참전 하며 슈퍼 GT 데뷔, 이듬해인 2018년에 팀 쿠니미츠로 이적, 팀 쿠니미츠에게 창단 첫 우승을 안긴 장본인이 되었다. 2022년 현재 포뮬러 1 윌리엄즈 팀의 고문으로 있으며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그래서 윌리엄즈 팀의 피트에 못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올해는?) 버튼(Button) 이란 성 때문인지 한국 팬들은 단추라는 별명으로도 부른다.
야마모토 나오키(山本尚貴) : 1988년 7월 11일 일본 도치기현 우츠노미야시 출신, 공식 프로필 상 취미는 산악자전거, 낚시, 요리. 6살 때인 1994년에 카트 레이싱을 시작, 2002년 전일본 카트 선수권에서 클래스 우승을 차지, 2006년 스즈카 서킷의 레이싱 스쿨인 스즈카 레이싱 스쿨 포뮬러 클래스(SRS-F)에 들어가 우수한 성적으로 스칼라십을 획득, 이듬해에 혼다의 지원을 받아 포뮬러 챌린지 재팬(슈퍼 포뮬러를 주최하는 일본 레이스 프로모션이 발족시켰던 시리즈로 2013년까지 존재)에 참여, 2008년에 F3로 승급, 2010년부터 슈퍼 GT와 슈퍼 포뮬러(당시 포뮬러 닛폰)에 참전했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돔 레이싱 시절이었던 걸 제외하면 쭉 슈퍼 GT에서 팀 쿠니미츠 소속으로 참전, 타카하시 쿠니미츠 감독을 스승으로 모셨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2013, 2018, 2020 슈퍼 포뮬러 드라이버 챔피언, 2018, 2020 슈퍼 GT GT500 드라이버 챔피언이며 2016년에 TV 도쿄의 아나운서인 카노 에리와 결혼해 현재 쌍둥이 딸의 아버지. 홈 서킷은 도치키현의 모빌리티 리조트 모테기.
스즈키 감독님 : 슈퍼 GT 에서 ARTA (Autobacs Racing Team Aguri) 팀을 운영중인 스즈키 아구리 (鈴木 亜久里, 1960~) 를 의미, 일본인 최초로 F1 그랑프리에서 포디움을 기록한 드라이버 였으며 2006년 부터 2008년 초반까지 슈퍼 아구리 F1 (Super Aguri F1) 이라는 F1 팀을 운영했다.
SF : 일본의 탑 포뮬러 경기인 슈퍼 포뮬러 챔피언십의 약어. 대회 명칭이 영어로 Super Formula Championship이다.
세키야 회장님 : 토요타 계열의 전설적인 드라이버인 세키야 마사노리(関谷正徳, 1949~)를 부르는 호칭. 일본인 최초로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했으며 1994년과 1998년 전일본 투어링카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본래 시즈오카 마쓰다의 사원으로 입사했고 마쓰다의 차량으로 레이스에 참전했으나 영국의 포뮬러 대회에 참전하고 귀국한 1983년부터 토요타의 계열사인 톰스의 드라이버로 활동했다. 1985년부터 1997년까지 르망에 참전, 1995년 국제 개발 레이싱 소속으로 LMGT1 클래스에 나가 우승을 차지했다. 2000년 은퇴 후 2020년까지 톰스의 감독으로 재직했고, 토요타 모터스포츠 클럽(TMSC)의 회장으로 있으며, 2013년부터 인터 프로토 시리즈라는 원메이크 레이스를 주최, 전용경주차의 설계감수를 맡았으며, 2017년에는 여성들만의 모터스포츠인 경녀컵(競女カップ)의 개최도 추진해 진행하고 있다.
인터프로토 시리즈 : 일본인 최초로 르망 24시간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 한 세키야 마사노리 전 톰즈 팀 총감독이 2013년에 창설한 단일 경주차로 열리는 경주대회. 후지 스피드웨이에서 열리는 후지 챔피언 레이스와 함께 열리는 대회로, 프로페셔널 드라이버와 젠틀맨 드라이버가 한 조를 이뤄서 1대의 머신을 공유해서 레이스를 하는 구조로 이뤄진다. 동시에 렉서스 IS-F의 원메이크용 사양인 IS-F CCS-R과 GR 수프라 GT4 원메이크, 여성 드라이버들을 위한 쿄조 컵도 같이 열린다.
젠틀맨 드라이버 : 본업이 있는 상태로 모터스포츠 활동을 하는 아마추어 드라이버. 어느 정도 나이도 있는 드라이버들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