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프로듀서."
숨을 약간 들이쉬고. 프로듀서의 얼굴을 전 바라봅니다. 레슨을 하루종일 해서 발바닥은 쿵쿵 울리고, 팔은 찌릿거립니다. 그렇게 온 몸에 퍼진 긴장을 전부 숨을 들이쉬면서 전부 모은 다음 입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전 그 모든 긴장을 내뱉습니다. 오직 당신 앞에서만.
"응? 아. 안녕. 츠무기."
"일은 다 끝났어요?"
"아니."
"그럼 끝날 때까지 기다릴게요. 끝나고 나면 시간 있나요?"
"끝나려면 아직 멀어서. 그 때까지 기다리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참. 모처럼 시간이 있냐고 물어보는데 돌아가라니. 당신은 원래부터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었나요?"
"미안해. 요즘 바빠서."
당신과 저는 연인이라고 저는 생각해왔습니다. 네.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진 못했어요. 심지어 당신에게조차도.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당신과 저는 연인 관계라고 당신은 생각하고 있을까요. 전 그 말에 대답을 못 하겠어요. 당신과 제가 연인 관계라고 확답짓는 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도 모두 무섭거든요. 연인이라기엔 저도 당신도 서로에게 참 서먹서먹하지만, 당신의 숨결은 제 자취방의 콘크리트 벽 너머로도 느껴지는걸요. 당신도 집에서 제 숨결을 느끼나요.
때로는 상상을 하곤 했어요. 제 숨결이 당신에게 닿는 상상 말이에요. 제가 당신을 생각하는 만큼이나, 당신이 절 생각하는 상상. 당신의 안에 제가 깃들어 있길 원하며. 당신과 제가 가까워진다는 생각이 들었던 땐 하루가 멀다 하고 그 상상을 떠올리곤 했었어요.
그런 상상은 다 빛바래졌지만요. 오늘도 당신에게선 바쁘다는 대답이 돌아왔거든요. 그 말에, 전 아무런 대답도 인사도 없이 그대로 고개를 돌리고 사무실을 나갔습니다.
무슨 일이 있길래, 얼마나 중요한 일이 그렇게도 많이 있길래. 그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 그렇게나 중요한 건가요? 아니면 제가 중요하지 않아서인가요? 우리가 곧 헤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사이라면 후자가 더 기쁠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적어도 상처받는 사람은 저 하나로 끝나니까요.
또다시 비몽사몽하게 일어나 다음 날 사무소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카오리씨였습니다.
"안녕. 츠무기!"
"아, 안녕하세요."
"으으음."
카오리씨는 잠깐 표정을 찡그리더니 제 앞으로 왔습니다. 카오리씨가 저런 표정을 지을땐 무엇인가 문제점을 발건했을 때였습니다. 레슨 중 다른 누군가의 음정에 실수가 좀 있거나, 아니면 프로듀서의 옷매무새가 흐트러져서 그걸 두 손으로 직접 매만져주거나 할 때. 그리고 카오리씨는 저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듯이 그런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 무슨 고민 있니?"
"네? 아, 그, 고, 고민이요?"
"그런 얼굴을 하면 누구라도 심한 고민이 있단 걸 알아챌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카오리씨는 이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 마음을. 그리고 프로듀서씨와 저와의 관계도요. 카오리씨는 꽤나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니까요.
카오리씨도 프로듀서를 꽤나 신뢰하고 믿고 있죠. 그런 만큼 프로듀서가 무슨 변화를 보인다면 그만큼 잘 알아챌 수 있기도 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전 요새 있던 일을 거의 다 털어놨습니다. 제가 프로듀서랑 사귄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들 알지 않았으면 했어요.
"...그래서에요."
"그렇구나. 프로듀서씨가 바쁘다라."
"뭔가 짚이는 이유 같은 게 있나요?"
"있잖아. 아마도 프로듀서씨는 진짜로 바빠서 그런 거라 생각해. 츠무기가 생각하는 그런 이유는 아니고, 아마 곧 있을 해외 출장 준비 때문에 바빠서 그런 걸 거야."
"네?"
해외 출장? 나한테 말도 안하고? 국내도 아니고 해외로? 나한테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해외로 출장을 간다고요?
그래서였나요? 그래서 그렇게 바빠가지고 나랑 만날 시간조차 없던 건가요? 아니지. 당신은 나랑 있어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면 없는 시간이라도 내서 저와 함께 있어줄 사람이에요. 즉, 나랑 함께하지 않은 것은 나랑 있어야할 시간이 필요가 없거나, 오히려 없는게 낫다고 생각해서겠죠. 계속 평소처럼 지내다가 갑자기 헤어진다고 통보를 해버린다면 내가 너무 힘들어할 게 뻔하니까, 그러니까 일부러 거리를 두기 시작한 건가요?
어처구니가 없네요. 함께 있을때마다 날 그렇게나 행복하게 해줬으면서. 날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렇게나 잘 알고 있으면서. 어째서, 어째서 절 불행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는 건가요?
당신은 늘 그랬어요. 제가 안미츠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서 안미츠를 사다 주고서는, 당신을 내버려두고 혼자서 먹어야 한다는 것이 싫다는 것은 모르는 건지 다시 컴퓨터 앞으로 들어가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어요. 제가 그럴 때마다 당신의 몫을 남겨주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서 일부러 남긴 것들을 줄 때마다 당신은 그 몫을 먹어줬지만, 그럼에도 키보드 앞에서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았어요.
내가 원하는 것은 당신이 사준 안미츠가 아니에요. 안미츠가 달달한 것이 의미가 있는 게 아니고, 안미츠를 사준 사람이 당신이라는 것에도 의미가 있는 게 아니에요. 나에게 의미가 있는 건 나와 함께 안미츠를 먹어줄 당신의 얼굴이었어요. 하지만, 전 당신의 얼굴을 마주볼 수 없었어요.
당신이 피한 걸까요. 아니면 제가 피한 걸까요. 모르겠네요. 나에게 그걸 알기 위해 한 발자국을 내딛을 용기만 있었다면. 하지만 미동도 없는 제 발엔 한 발자국을 잘못 내딛는 바람에 또다른 의혹의 숲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만이 가득했습니다. 만약 그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가는 그대로 조난될 것만 같았습니다.
"저, 츠무기?"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전 카오리씨를 바라보며 최대한 얼굴에 웃는 표정을 심어놓고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다행히도 화장실엔 그 누구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화장실 변기칸 안에 숨어서 휴지를 돌돌 말아서 한쪽 손에 꽉 쥐고는 다른 손으로는 입을 틀어막았어요. 아무도 저의 흐느낌을 듣지 않았으면 했고, 아무도 제 눈물을 보지 않았으면 했어요. 사무소 분들은 착하고, 친절하고, 따스합니다. 제가 견디지 못할 만큼. 제가 우는 걸 안다면 다들 절 위로해주겠지요.
그 위로가 질타보다, 무관심보다, 더 고통스러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셋 중에서 가장 마주하기 겁나는 것은 위로입니다. 위로라는 것은 응당 받아 마땅한 사람만이 받아야 해요. 그 만큼의 무언가를 이뤄낸 사람들이. 제가 당신에게 좋은 일을 했던가요. 아니면 당신이 저에게 좋은 일을 하도록 만들었던가요. 둘 다 아니에요. 전 가만히 있었죠.
아니, 애초에 제가 더 나은 애인이었다면 이렇게 울 상황도, 위로를 받을 상황 자체도 만들지 않았을 거에요.
저는 제가 다시 홀로 남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혼자가 되는 것. 나를 땅에 발도 붙이게 해주고 걸을 수도 있게 해주는 인력에서 멀어져, 나를 가까이 해줄 존재도 나를 가로막을 존재도 없는 세계에서 산다는 것. 그리고 그런 삶에 익숙해지고, 익숙함에 지배되는 것. 그리고 그 이후엔. 전 당신을 어디 한 구석에 묻어둔뒤 다시 비몽사몽하게 일어나겠죠.
내일이 이렇게나 싫었던 적이 없었는데. 두려움에 울고, 외로움에 울고, 서글픔에 울고. 그렇게 좀 울고, 한쪽 손에 꼬옥 쥐고 있던 휴지로 눈물을 닦았습니다. 얼굴이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눈화장을 별로 안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한번 세수를 했지만, 그래도 제 얼굴은 여전히 엉망이었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프로듀서는 한창 일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인사를 하면 프로듀서가 제 얼굴을 보고 말겠죠.
아니, 아니에요. 제가 프로듀서의 얼굴을 보기 싫은 거에요.
지금 프로듀서를 보면 잔뜩 성이나 내고 말겠죠. 지금의 제 얼굴은 무대 위의 아이돌 츠무기의 얼굴이 아닙니다. 프로듀서가 카나자와에서 도쿄까지 데려온 시라이시씨의 얼굴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제 속을 알아줬으면 해도 그걸 스스로 말하기는 싫어하는 겁쟁이의 얼굴입니다.
"아, 안녕. 츠무기."
"안녕하세요."
"마침 기다리고 있었어. 전해줄 소식이 있었거든."
그래요. 알고 있어요. 무슨 말이 나올지 알고는 있어요. 하지만, 프로듀서에게서 직접 듣는다면 더 확실해지겠죠. 지금 제가 겪는 모든 불안은 단순한 불안이 아닌 현실이란 것이.
"츠무기. 다음 무대에 니가 센터로 서기로 했어. 이건 신곡이고. 한번 들어볼래?"
"네?"
신곡? 신곡이요? 전 아무런 반응도 못 하고 굳어 있었습니다.
전 프로듀서가 틀어준 노래를 들었습니다.
'다시 눈물이 흘러나와. 그 상냥함이 내 가슴을 관통하는 거야.'
제 이야기. 제 이야기였어요.
역시 프로듀서는 누구보다도 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저보다도 더 잘 알고 있어요. 그래요. 잘 알고만 있다고요. 미안하지만 전 도저히 당신의 선물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가 없겠네요.
그래요. 나라는 사람이 당신이란 사람을 몰랐다면 기쁘게 받아들였을지도 몰라요. 그래요. 당신이 마음대로 내 마음속을 엿본 느낌이 들어 좀 성을 냈을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기뻤겠죠. 당신의 얼굴을 보면 무심코 성을 낼 줄 알았어요. 거스르는 말씨라는 제목처럼, 그리고 그 노래의 가사처럼.
참 가증스럽게도 나는 그 거스르는 말씨마저 거스르고 있네요. 당신을 만나면 이번엔 정말 길길이 날뛰며 뭐라도 할 줄 알았건만. 다 알고 있다고. 가지 말라고. 왜 가는 거냐고. 왜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했냐고.
하지만 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네요. 가만히 있는 절 향해 당신은 손을 내밀었습니다.
당신의 손은 예전의 손과 다를 바 없는 따뜻하고 포근한 손이었습니다.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는 지나치게 따뜻하고 포근했습니다. 당신은 스스로를 그렇게나 차갑게 몰아붙이고 있는데.
"있잖아 츠무기. 이제 와서 새삼스렇게 그렇긴 해도, 늘 고마워."
거짓말쟁이.
"프로듀서."
"응?"
"왜 이 노래를 저에게 준 건가요?"
"이 노랫말도 그렇고, 전체적인 곡조도 그렇고, 이 곡을 맡은 사람은 너밖에 없었거든."
"제가 만약 실패한다면요?"
"실패 안 해. 난 츠무기를 믿으니까."
날 믿는다. 날 믿는다?
날 믿지 마요. 제발 날 믿지 말라고요.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믿음을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요. 전 분명히 라이브 도중에 무대에서 당신을 찾으며 엉엉 울어버릴 거에요. 저의 센터 무대는 보기 좋게 실패할 거라고요.
아주 미쳐버리겠네요. 왜 저를 이렇게나 고통스럽게 하는 건가요? 당신을 보고 거짓말쟁이라고 욕하고 싶어요. 당신이 무슨 거짓말을 했는진 모르겠고, 어떤 부분에서 내가 속았다는 생각이 드는지도 알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당신을 마구 헐뜯고 힐난하고 싶고, 당신의 뺨에 따귀를 때리고 손톱으로 당신의 어깨를 마구 할퀴고 싶고, 당신이 제게 처음 줬던 명함을 아주 짖밟아버리고 싶어요. 하지만. 전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저도 이렇게나 힘든데. 당신이 느끼는 고통은 제가 느끼는 고통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게 아니에요.
당신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온 거잖아요. 출장 전에 제게 새로운 곡을 주기 위해서 열심히했을 거 아니에요. 제 컨셉에 맞을 곡이 어떨지 고민하고, 작곡가분과 연락하고, 곡에 맞을 새로운 무대 연출도 고안하고, 그 모든 것을 동시에 하면서 바쁘게 출장 준비를 하고, 그러느라 정작 저와는 아무런 이야기도 못 하고.
그렇게 당신은 숨기고 있어요. 숨기고. 또 숨기고 있다고요. 당신이 괴로워하면 제가 상처받을까봐 숨기고 있다고요. 저를 위한 신곡을 열심히 준비했다고 저에게 말하고, 그동안 바빴던게 이 서프라이즈를 위한 준비 과정인 것처럼 숨겨오면, 제가 겉모습만 보고 그대로 당신이 생각했던 행동을 똑같이 할 줄 알았나요? 당신의 마음 속이 싸그리 잿더미가 되어가는 것조차도 모르는 채로? 당신은 바보에요.
당신이 절 아는 만큼, 저도 당신을 알고 있다고요.
"츠무기."
"네?"
"미안. 지금까지 못한 말이 너무 많네. 하지만, 말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한 마디만 들어줄래?"
"......"
"츠무기. 너랑 만난건 어쩌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일지도 몰라."
"프로듀서..."
"진심이야. 너랑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저도, 저도 당신과 똑같은 말을 돌려주고 싶었습니다. 당신을 좋아하고,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만나서 다행이라는 말을, 당신을 진실로 그리워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저라는 말을, 당신을 만나기 전의 저와 당신을 만난 후의 저는 절대로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그 말을 돌려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하지 않았습니다. 둘 다에요. 난 그럴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았고, 그러고 싶었음에도 그럴 수 없었습니다.
"정말. 평소에 안 하던 말을 다 하시네요."
애정도 성화도 담겨있지 않은 차가운 말. 제가 당신에게 남긴 말은 그 차가운 말 한마디 뿐이었습니다. 그 한마디 말을 남기고 전 그 자리에서 도망쳤습니다.
그럼에도 지금 저에게 가득한 것은 사랑뿐이에요. 제가 할 수 있는 것도 사랑뿐이고요. 설령 그것이 나를 말려죽이는 것이라고 해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랑뿐이에요.
사랑에도 승패가 있다면 결국 마지막에 이기는 사람은 당신 뿐일 거에요. 전 당신 같은 사람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 사실은 제가 제일 잘 알아요. 당신이 그렇게 묵묵부답이던 시간 동안 제가 아무리 달달한 안미츠를 먹을 때도 당신의 얼굴이 떠올라서, 팥앙금을 입에 넣을 때 당신의 눈물을 씹어먹는 느낌이었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을 거에요.
당신이란 사람이 내삶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계속 불안으로만 그쳤을 동안엔 몰랐지만, 당신의 부재 현실로 다가오고 나서야 전 하나를 깨닫고 말았어요. 결국 저는 당신을 의지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어요.
엄밀히 말하자면 당신이 없어도 잘 살 수는 있겠죠. 당신이 없어도 제 삶은 쭉 이어질 거에요. 당신이 없는 것과 다름없이 느껴지는 그 순간에도 전 숨을 쉬는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밥을 먹는 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그래요. 그것 뿐이었어요. 정말로 그것 뿐. 마음 속에 있는 것이라곤 커다란 공허감뿐이어도 사람이 사는 것 자체는 가능했어요. 저는 제가 정말 당신 없이는 못살줄 알았는데. 그 사실 때문에 가슴 한켠이 정말 쓸쓸했는데. 그런데, 당신이 없어도 저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진다는 사실이. 그 사실이 몇 갑절이나 저를 아프게 하네요.
전 저의 결점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스스로의 잘못을 고칠 수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이 없다면, 저는 제 잘못을 고치지 못할 거에요. 만약 당신과의 관계가 끝이 난다면 전 저의 모든 잘못을 끌어안은 채로 계속 살게 될 거에요. 그런 모든 잘못이 있더라도 저는 사는 데 아무 문제도 없겠죠.
그 사실이 무엇보다도 가장 싫어요.
그렇게 전 당신을 떠나보내고, 아무 말도 없이 레슨만 했습니다. 몸이 움직이는 대로. 당신이 제 몸에 새겨넣은 그 움직임대로.
다음날 아침도, 다다음날 아침도, 다음 주의 아침도 전 비몽사몽하게 일어났습니다. 전엔 아침이라는 시간대가 본디 이렇게까지 상쾌함과 거리가 먼 시간이었던 건지 의문을 가졌던 것도 같지만, 답을 낼 수 없는 의문에 제 심신을 쏟아붓기엔 전 어느샌가 너무나도 몰려 있었습니다.
프로듀서가 말한 라이브 날짜는 좀 더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전 계속해서 레슨을 했고요.
"하아... 하아..."
"저, 츠무기? 힘들지 않아?"
"괜찮아요."
"너무 조급하면 좋지 않..."
"아뇨."
전 계속해서 쉬지 않고 레슨을 해야만 해요.
"카오리씨도 알고 있잖아요. 이번 무대는 좀 더 완성도를 높여야 해요. 제가 센터로 서는 무대고, 부르는 노래는 제가 부르는 제 노래에요. 프로듀서는 절 믿어줬으니까,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더 갈고닦아야만..."
핑계에요. 무대의 완성도같은 것은 핑계. 그리고 제가 센터라느니 하는 것도 다 핑계일 뿐. 그런 것들은 지금은 희미해졌습니다. 여기서 사실은 단 하나에요. 프로듀서가 절 믿어줬다는 것.
제가 그렇게나 춤을 추는 건 지금 이 순간만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어서에요. 맞춰진 틀 안에는, 그리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순간에는 프로듀서가 끼어들 틈이 없어요. 오직 나만이 춤을 출 뿐.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건 알아요. 이대로 무리하면 페이스는 흐트러져서 정말로 무대를 망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면 도망칠 수 있어요. 그게 다에요.
"흐음."
제가 그렇게까지 말을 하니까 카오리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또다시 살짝 그 찡그린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에게 혹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하고 물어봤을 때의 그 표정이었어요. 레슨 내내 카오리씨가 계속 그런 표정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레슨 시간이 끝날 때의 카오리씨는 그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그리고 레슨 시간이 끝난 뒤. 또다른 부정과 또다른 두려움이 절 감싸려 들었습니다.
"저, 츠무기?"
그 순간, 프로듀서는 절 불러냈습니다.
"프로듀서. 무슨 일인가요?"
"일단 가고 싶은 곳이 좀 있어서."
프로듀서는 제 손을 잡고 같이 걸어갔습니다. 따뜻한 손바닥. 전 아직도 따뜻한 그 손바닥에 이끌려갔습니다.
프로듀서가 절 데리고 간 곳은 익숙한 안미츠 가게였습니다. 프로듀서는 전에 절 안미츠 가게에 데리고 갔던 적이 있었어요. 제가 상경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불안에 떨고 있을 적, 프로듀서는 절 안미츠 가게에 데리고 가서 같이 안미츠를 먹었어요. 그래요. 얼굴을 마주보면서요. 거기로 다시 돌아왔어요.
"카오리씨한테 들었어. 요즘 레슨을 무리해서 하고 있다며. 그래서 걱정이 들어서. 같이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그 이유를 모른다고요? 당신이?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이 그 이유를 모른다고요? 아니지. 모를 리가 없죠. 당신은 다 알고 있어요. 다 알고 있지만 일부러 이야기 안하는 거죠.
"무리라뇨. 당신이 준 곡이잖아요. 당신이 정한 센터 자리잖아요. 전 거기에 맞추려는 거에요."
당신은 정말 지독하기 짝이 없는 거짓말쟁이네요. 얼마 안 있으면 곧 떠나서 나를 못 볼 사람이 어떻게, 어떻게 저렇게 태평하게 수가 있죠? 설마 지금까지도,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이 순간에도 제가 슬퍼할지 모르니까 일부러 속상한 티를 내지 않는 건가요? 어째서 그렇게나 인내심이 좋은 사람이 그게 몇 배나 절 고통스럽게 하고 괴롭게 할 것이라는 사실은 모르는 건가요?
당신은 어째서 제가 그런 것 하나 견디지 못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저 혼자라면 절대로 못 견딜 것도 당신을 위해서라면 견딜 수 있어요. 전 당신을 누구보다도 믿어요. 어쩌면 저보다도 당신을 더 믿는다고요. 전 당신이 곁에 없다고 해서 제가 당신과 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고요. 그리고 당신은 저에게 이러고 있고요.
"난, 난 널 믿어."
프로듀서가 절 믿는다고 말한 그 순간, 안미츠가 도착했어요. 그래요. 당신은, 당신은 절 믿고 있어요. 절 믿고 있다고요. 누구보다도 절.
"당신이라면 그런 식으로 말할 줄 알았어요."
이젠, 이젠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전에는 앞으로 발걸음을 내디디는게 두려웠는데, 프로듀서의 얼굴을 마주보니 이젠 어디가 앞인지도 모르게 되는 것이 더 두려웠어요. 가만히 있다가는 내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어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될 것만 같아서. 그대로 그 자리에서 절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길을 헤메는 것 보다도 더 무서워서, 전 결국 뛰쳐나갔어요.
"당신은 괴롭지도 않나요?"
"괴롭지도 않냐니?"
"부탁이에요. 이제 그만 좀 해주세요."
"뭐, 뭘 그만..."
" 알고 있어요. 흑, 알고 있다고요! 다 알고 있단 말이에요!"
안미츠는 눈 앞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 눈 앞에 있는 것은 당신의 얼굴 뿐이었습니다. 일그러진 당신의 얼굴. 눈물방울에 일그러진건지 아니면 당신이 일그러트린건지 모를 당신의 얼굴. 일그러졌던 펴졌던 상관 없어요. 내가 바라보는 것은 당신의 얼굴이에요.
"프로듀서. 카오리씨한테 들었어요. 외국에 출장을 간다고 했잖아요."
"......"
"왜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미안해."
"그래요. 다 괜찮아요."
당신은 날 믿고 있다고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면서 내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하는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당신이 내 눈앞에서 사라진단 사실은받아들일 수 있어요. 난 당신을 믿으니까. 당신을 진심으로 믿으니까. 당신도 날 그만큼 진심으로 믿으니까.
"다 괜찮다고요. 어쩌면 지금 이 시간이 지나고 난다면 당신과 긴 시간동안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괜찮고,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알고 있음에도 지금의 당신이 절 책망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괜찮고, 다 괜찮아요! 하지만..."
하지만, 당신은 당신을 못 믿고 있어요. 나도 날 못 믿고 있어요. 스스로를 믿는 방법? 전 모르겠어요. 지금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뭘 해야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아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건 존재한다는 것.
그렇지만, 아는 것 만으론 소용도 없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만으론 소용이 없어요. 그러니까 말을 해야만 해요. 말을 해서 직접 귀에 들려줘야만 해요.
"하지만 당신이 해외 출장이라는 큰 일이 있었고, 그걸 저한테 말해주지 않았다는 것은 괜찮지 않아요. 그것만큼은, 그것만큼은 견딜 수 없어요."
"...알고 있었구나."
"훌쩍. 왜 안 알려준 거에요?"
"말하고 싶지 않았어."
"왜죠?"
"말하면 슬퍼할 거 아니야."
"말하지 않으면 더 슬퍼할 거란 건 몰랐나요?"
"알았어."
"알았으면 왜 그랬어요?"
"난 겁쟁이라서."
프로듀서는 저와 이야기를 할 때 웬만하면 제 두 눈을 계속 마주쳤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어서 계속 고개를 떨구려고 했습니다. 그게 너무나도 싫고 진저리나서, 프로듀서는 적어도 나의 앞에서는 늘 고개를 들고 있었으면 해서, 전 프로듀서의 턱을 잡고 고개를 치켜세웠습니다. 그러자 프로듀서는 알겠다는 듯 숨을 들이쉬고 내쉰 뒤 이야기를 이어나갔습니다.
"내가 널 상처입힌다는 건 알고 있었어."
"그렇겠죠."
"그래서, 널 위한단 명목으로 일만 했어. 계속 일을 했어. 널 위한 무대를 만들었고, 널 위한 곡을 달라고 했어."
"그러면, 그렇게 해오면 제가 기뻐할 줄 알았어요?"
"아니. 하지만 널 위헤 일한다는 생각에 빠져있으면 니가 속상해하는 게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흑, 그렇게까지 제가 우는 게 싫었던 거에요?"
"응."
"그래서 절 계속 피했던 거에요?"
"응. 그런데, 이젠 한계였어. 그래서..."
"여기로 절 부른 거고요."
프로듀서는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랑하면 닮는다더니. 프로듀서는 저의 가장 마음에 안 드는 부분까지 닮고 있었어요. 네. 아무리 프로듀서라고 해도 끌어안을 수 없는 부분 말이에요.
"있잖아. 츠무기."
"네?"
"내가 다음 센터 이야기 한 날. 화장실에서 울고 왔지?"
"......"
"말 안하고 얼버무리려 하지 마. 우는 소리 남자화장실까지 다 들렸어."
"흑, 그랬어요."
"나도, 그 날엔 집에 들어가서 혼자 막 울었어. 엄청 울었어."
"왜요? 제가 울었으니까?"
"아니. 내가 널 울렸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프로듀서의 눈엔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프로듀서의 고개를 들어올리지 않았으면 그 눈물이 떨어졌을까요, 아니. 그 이전에 프로듀서가 울음을 참고 있었을까요.
"그래서 막 울다가 자버렸어. 울다가 자버리는 바람에 얼굴은 붓고. 샤워도 안하고 자서 냄새나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그래서, 기분이 어때요?"
"최악이야."
"최악 중에서도 얼마나 최악인데요?"
"차라리 여기서 결별 선언을 듣는게 더 낫겠다 싶을 만큼 최악이야."
"당신은, 당신은 제가 이런 걸로 헤어지자는 말이나 할 여자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럴 리가 없잖아."
"당신은 바보인가요?"
"맞아. 난 바보야."
난 바보야. 바보. 프로듀서는 고개를 살짝 떨며 혼자서 말했습니다. 전, 전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프로듀서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프로듀서의 손은 그 따뜻했던 손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아니면, 제 손이 갑작스레 따스해진 걸까요.
"미안해. 진작 말했어야 했는데. 미안해."
미안하다는 한 마디. 제가 당신 때문에 얼마나 긴 시간을 눈물과 식은땀의 경계 속에서 지냈던 걸까요? 기억도 채 안 나는게 제가 날짜 세는 법을 모르게 된 것만 같아요. 그런데, 당신이 돌려준 건 미안하다는 한 마디. 그것 뿐이에요.
그런데도, 어째서 그 한마디만으로 갑작스럽게 그 모든게 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요. 왜, 왜 갑자기 모든 것이 원래 있어야 하는 자리로 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요. 왜 그 한마디에 내가 머릿속으로 그리워만 하던 모든 것이 갑자기 현실로 나타난 것만 같은 걸까요.
저도, 저도 당신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야 해요. 당신도 저 때문에 셀 수 없는 시간을 힘들어했잖아요. 내가 무서워한다고 당신에게 다가가지 않느라 그만큼 당신도 외롭고 힘들었겠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모든것이 풀어질까요.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전 미안하다고 해야만 해요.
"내도..."
"츠무기?"
"내도, 훌쩍, 내도 미안하니까."
"왜? 아무 말도 안 한건 나잖아."
"내가. 내가 왜 미안하다고 하는지. 흑, 당신은 알고 있어예. 그런데도, 굳이 말하라니. 당신은 정말..."
"그렇지만 너한테서 직접 듣고 싶은걸."
"그, 그러니까! 내도! 내도 걱정시켜서 미안하고! 속으로만 계속 끙끙대서 미안하고! 아무 말도 안 해서 미안하니까... 그러니까...! 흑, 이제 됐어야!?"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절 지긋이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눈물이 가득 고인 눈동자로 절 바라만 보다가, 더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절 꼬옥 껴안았습니다.
"고마워."
"내도, 내도...!"
"가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들어줘."
들어줘. '들어줄 거야?'가 아니에요. 들어줘. 프로듀서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 말을 들으라면서 절 잡아둘때 이만큼이나 기쁠 수가 있을까요.
"좋... 아니. 아니야."
"프로듀서."
"사랑해."
"흑, 훌쩍!"
사랑해. 내가 그렇게나 듣고 싶었던 말. 나는 절대로 입 밖으로 내지 않았지만 듣고는 싶어했던 말. 사랑한다는 바로 그 말...
"당신은. 당신은 쪼매맨치도 몰라예."
"......"
"내가, 내가 그 말을 을매나 듣고싶었는지, 내가 을매나 그동안 서글퍼하면서 살았는지. 정말 쪼매도 몰라예! 쪼매맨치도!"
"맞아. 난 몰라. 난 아무것도 몰라."
어깨 너머로, 프로듀서의 눈물이 느껴집니다. 프로듀서의 눈물이 어꺠부터 제 발끝까지 타고 내려가는게 느껴집니다. 제 얼굴을 마주볼동안 흐르지 못한 눈물이 이제서야 제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어요.
"그렇지만, 지금부터 알아가도 늦는 건 아니잖아."
"흑, 훌쩍, 흐끅. 으흑..."
나도, 내 눈물도 프로듀서의 옷을 적시고 있겠죠. 내 눈물이 프로듀서의 가슴을 지나가며 흘러가고 있겠죠. 입을 열면, 입을 열면 그대로 엉엉 울어버릴 것만 같아서 전 최대한 이를 악물고 프로듀서의 품에 파묻혔습니다.
그렇게 울고 난뒤 눈을 뜨니까, 모든것이 거짓말처럼 해결되어 있었습니다.
센터에 대한 중압감이란건 떨쳐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떨쳐내지 말아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하지만 당신에게 나를 보여주는 공간에선 말하지 못하는 것도 당신이 나를 봐주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말할 수 있었어요. 같은 말이지만, 완전히 달랐어요.
이번 무대가 당신이 나를 봐주는 공간이라면 아무리 중압감이 커도 몸은 가볍게 움직였어요. 예전엔 중간중간 쉬어야 할 때조차 그 중압감에 견디지 못하고 억지로 몸을 움직이곤 했는데, 그 중압감과 함께 쉬는 것도 할만해졌고요.
그리고 시간은 참 빨리도 지나갔습니다. 무대는 당신이 호언장담했듯이 성공적이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믿었다고 말해준 덕에 성공한 건 아니고요, 내가 당신을 믿은 덕에 성공한 것도 아니에요. 두개가 모두 함께 있었기에 성공한 거였어요.
당신과 같이 있을 시간이 더욱 짧아져가도 전 꿋꿋이 서 있었어요. 공항 앞에서조차도. 공항 안에 들어가서조차도, 게이트와 마주했을때조차도.
"......"
"너무 그러진 마. 우리 헤어지는 거 아니잖아."
아무리 심리적 거리와 물리적 거리가 다른 거라곤 해도... 정말, 당신도 무서워서 그런 말을 하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왠지 그 말은 싫네요.
"함께 있진 못해도 영상 통화도 있고, 메일도 있잖아?"
"네. 그렇겠네요. 당신 손도 못잡고 얼굴만 보면 외로움이 정말 잘도 사라지겠네요."
"나도, 나도 엄청 보고 싶을 거야."
"하아. 당신이 없으면 난 어떻게 하라는 건지."
"혹시 모르잖아? 츠무기. 너라면 내가 없어도 잘 할거야."
"그 말은 이제 저한텐 당신이 필요없다는 말인가요? 정말로 제가 당신이 필요없는 사람이 되면 어떡하려고요?"
"그럼 프로듀서 그만두고 너한테 장가가지 뭐."
"정말! 당신은 바보에요!?"
그 말에 당신은 웃어보였습니다. 내가 앞이라고 해서 저렇게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는 듯이 웃고 있다니. 하아. 당신은 바보인가요. 정말로.
"츠무기. 이제 진짜 가야 해."
"프로듀서...!"
"츠무기! 혹시 몰라서 말하는 거야! 페이스 조절 잘 하고! 너무 무리하면 안 돼! 쉬어야겠다 싶으면 쉬고! 겨울철엔 감기 안걸리게 조심하고!"
"알았어요! 정말! 당신은 제가 제 몸 하나 건사 못할 사람으로 보이는 건가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당신은 출국 게이트 너머로 사라져갔습니다. 당신이 사라지고 나서도, 당신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도 전 아무란 말도 없이 거기 서 있었습니다. 제 입은 공항 밖으로 나가서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야 다시 열렸습니다.
"아.. 훌쩍... 아, 아아아아아아아!!!!!!"
그래요. 당신과 함께가 아니라도 난 잘 할 수 있어요. 당신이 없어도 버틸 수 있다고요. 견딜 수 있어요. 맞설 수 있어요. 하지만, 이제 전 변했어요. 당신이 없어도 어떻게든 서 있을수 있단 사실이 이젠 더이상 절 아프게 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그 사실이 이제는 나의 힘이 되니까.
"이 바보 자슥아!!! 너 거기 가서 굶고 살면 절대 가만 안 둔데이!!! 어디 다쳐가꼬 오면 내가 지기삘거다!!!"
그러니까 당신도 쓰러지면 안 돼요. 절대로.
벌써 한달전이네요.
맨날 츠무기를 울리는 것만 같지만... 우는 모습이 제일 예뻐보이는걸 어떡해요.
담당울리기는 국룰이죠
8ㅅ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