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로마 게시판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처음으로 대체역사 게시판에 와서 글을 남깁니다.
제가 원래는 한국현대사 쪽에 관심이 많아서 석박사 전공도 그쪽으로 하려고 했는데, 모종의 사유로 대학원을 못 가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역사 자체에 대한 관심은 아직 건재하고,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는 해도 대체역사 떡밥으로 생각할 만한 거리들이 좀 되는 것 같아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한국현대사 관련 대체역사 떡밥을 몇 가지 정리해봤습니다.
1. 한국전쟁은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편지를 수십 통 보낼 정도로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스탈린이 마지못해 김일성의 남침 요청을 수락하며 벌어진 전쟁이다. 그런데 스탈린이 여기서 김일성의 집착에 질리지 않고, 단호하게 남침은 안 된다며 불호령을 내려 한국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남북이 분단된 상황이 현재까지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남북한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적어도 박헌영 등 남로당 인사가 숙청되었을 확률이 조금 내려갔을 것이다.
2. 한국전쟁 이후, 8월 종파 사건이 발생하며 김일성과 갑산파는 연안파, 소련파 등을 숙청해버렸다. 그런데 이때 역으로 김일성과 갑산파가 숙청당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적어도 현재 주체사상으로 대표되는 사이비 신정정치 체제는 자리잡지 않았을 것은 분명해보인다. 어떤 사람은 소련식 통치 체제가 북한에 자리잡혀, 북한이 지금처럼 실패한 국가로 추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제1세계에 문호를 어느 정도는 열면서 개혁개방도 했을 수 있다고 추정한다. 8.18 사건이나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터이고, 남북관계 간 긴장도 현재까지의 그것과는 다소 결이 달랐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3. 1979년 부마항쟁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은 항쟁에 대하여 강경한 대처(차지철의 "캄보디아 운운" 건을 떠올려보자)를 선호하였다. 그리고 부마항쟁을 진압하는 데 투입된 군인은 전두환이었다. 그러한 박정희 및 차지철의 계획은 김재규가 10.26 사건을 일으키며 좌절되었는데, 10.26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 부마항쟁이 군부에 의해 잔인하게 진압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1980년 5.18 민주항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도 높고, 부산 및 마산 시민들이 잔혹하게 학살당하였다면 그 악영향이 어마어마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광주항쟁 당시의 시민들보다 더 많은 사람이 희생당했을 수도 있고, 현 부산광역시와 현 창원시가 지금 수준의 위상을 차지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꽤 있다. 그리고 현 한국의 정치 지형과는 사뭇 다른 정치 구도가 형성되었을 수도 있다.
4. 외환위기 사태가 터지지 않았다면, 현재 한국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물론 외환위기 사태는 이전부터 행해지던 부실한 기업 운영, 분식 회계 등등이 겹쳐 한꺼번에 터진 것이기에 YS에게 온전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하지만 한보사태가 트리거가 되어 본격적인 외환위기 사태가 터진 점은 사실이다. 상상하기 정말 까다롭긴 하지만, 만약 1997년에 외환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현재 한국은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하다. 외환 위기 직전까지 유지되던 평생 직장 개념이 현재까지 존속했다면? 그렇다면 공무원이나 교사는 지금도 비인기 직종으로 취급받았을 것이다. 평생 직장이 보장되는데, 구태여 봉급이 적은 공무원이나 교사를 지원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 그리고 저출산 기조가 지금처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조금은 있을 듯하다.
대충 떠오르는 게 이 정도네요. 워낙 한국현대사는 if로 생각해볼 만한 요소가 많다 보니, 굵직한 사건들 위주로 대체역사 떡밥을 만들어봐도 꽤 많이 나올 것 같습니다. 물론 한국현대사 자체가 현실의 정치와 이해관계와 심각할 정도로 얽매여 있으니, 이런 떡밥들을 소설 등에 사용했다가 잘못하면 엄청난 비난을 들을 가능성이 거의 100%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상상 정도는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해요.
근데 3번은 생각을 다른 의미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10.26 사건이 일어나고 서울의 봄이 성공했다면 즈음 말이죠. 그리고 5.16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고 제2공화국 체제가 계속되면 어떨까 생각해볼만도 한데... 자세히 파고 들어가면 현실정치하고 엮여있는 소재라서 더 이야기를 꺼내기가 뭐하네요...
그래서 한국현대사 관련 대체역사 떡밥은 쉽게 이야기하기 껄끄러운 소재입니다. 사실 다른 대체역사 떡밥은 우리가 그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기에 언급하기 그리 어려운 점이 없지만, 한국현대사에 대해선 제3자가 아니니 무어라 이야기하기가 힘들죠. 그래서 한국현대사에 관심 있는 저로서는 한국현대사에 대해 이야기를 깊이 나누어본 적이 별로 없다는 게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현실 정치와 복잡하게 얽매여 있으니까요. 우리의 먼 후손은 현재의 일을 대체역사 떡밥으로 쉽게 굴릴 가능성이 있겠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가까운 과거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뭣하죠... 그래서 위 게시물은 그냥 제가 생각한 바를 그냥 주절거린 것으로 이해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4번은 정말 터지지 않았다면 한국 경제계가 6.25 이후 굉장히 도덕적(법으로든 뭐로든)으로 성장했다는거니 나라의 근본이 달라졌을겁니다. - 남 유럽이 여전히 고대그리스신화를 종교로 삼았고, 북유럽과 종교로 대치중이라면? - 조선이 유교에만 골몰하지 않고 직업의 귀천을 두지 않으며 왕 아래 남녀노소구분없이 모두 평등하다 믿는 사회였다면? 수준으로 말이지요.... 한보는... 그저 하필 먼저 터지는 바람에 트리거취급받는거에 불과합니다. 당시 한국은 동방4룡전설(...)에 힘입은 거품이미지를 팔아 국가역량 이상의 고평가를 받으며 투자를 받았는데, 이걸로 했던 짓이.... 마침 군부의 제한도 오래전 풀렸겠다, 순이익 신경쓰지 않고 분야를 가리지 않고 무분별하게 확장하기, 어차피 투자는 계속 들어오니 그룹을 오너가문의 사유재산 증식 수단으로 삼기. 금융사들은 1세계 돈을 단기 저리로 빌려 3세계에 장기고리대 놓기(특히 이게 진짜 치명적이었습니다) 등... 지금보면 망하려고 작정했구나 싶은 짓거리를 한국 경제계 전체가 하고 있었습니다. 설령 일본이 위험을 무릅쓰고 외화를 빌려줬어도 반년 더 버텼으면 장했다 싶겠네요. 그러니까... 빚을 져서 나라 경제를 발전시키면 모르겠는데, 어차피 잘 빌려주고 남의 돈이라고 이걸로 태반은 딴짓거리를 했어요. 금모으기 운동을 통해 모인 금으로 뭔 짓거리를 했는지 보면, 보호 속에 한국 경제계가 순진무구했던게 아니라 그저 그런 놈들이었을 뿐입니다.
외환위기는 사실 YS가 어느 정도 억울해할 만은 합니다. 군사정권 당시 부패해왔던 한국 경제가 동남아시아발 경제 여파로 인해 누적되었던 문제점이 터져버린 셈이니까요. 그리고 외환위기 당시 일을 보면 정말 기가 차죠. 중산층이 붕괴되고 자1살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판에, 상류층은 술자리에서 건배하며 "이대로!"를 외쳤다고 하니까요. 대공황 시기에 최상류층이 이득을 봤다는 일화나, 2008년 세계금융위기 당시 월스트리트 금융업계가 돈 잔치를 벌였다는 일화를 보면 이건 기업가/상류층 특징인 것 같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