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과 초등학교 간 거리가 상당했다. 남색의 후줄근한 가방을 둘러매고 조막만한 발로 3천걸음 쯤 세야 도착하곤 했다.
물론 초등학생이 센거라 정확하지 않겠지만, 성인이 된 지금 걸어도 2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그때 나는 친구 준혁이가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날카로운 인상, 코는 흘리고있었지만, 똑부러져 보여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3~6학년 때 우리는 싸우기만 하고 서로 무시하고 지나다녀서 어떻게 친해졌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지경이 됬지만,
그 친구는 그날 나와 반대방향으로 10분거리에 있는 자기집에서 같이 놀길 원했다.
9살짜리 두명이 학교를 마치고, 개천다리를 건너 터벅터벅 걸어가며, 자기집은 조립식이라 튼튼하지가 않다고 한다,
우리집은 5층이라 빌라가아니라 엄밀히 아파트라고 한다. 같은 이야기를 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준혁이네 집 앞에 도착하자, 준혁이는 집에도 안들어가고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날 개천가로 데리고 갔다.
그 동네 개천은 계단으로 내려가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낮은 벽을 뛰어내려야 개천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그 곳에는 9살짜리 꼬마가 보기에도 너무작은 강아지가 한마리 있었다.
노랗고, 위태로우며, 옆으로 엎어진 종이박스 안에 나부끼는 신문지 한장을 깔고, 회색 작은 새끼강아지 한마리가 누워있었다.
녀석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움직일라 치면 바로 뛰쳐나와 왈왈 짖었다.
준혁이는 녀석을 괴롭히며 노는게 재미있다고 나를 설득했고, 양심의 가책도 없는 멍청한 나는 그 말을 듣고 기대가 부풀었을지도 모른다.
내 기억속에는.. 그 조막만한 강아지가 행여라도 날 물어, 내가 고통스러워 질까봐, 멀리서 자갈돌을 던지고,
녀석의 유일한 집이었던 상자를 빼앗아 발로차고 반응을 기다리곤 했다.
녀석은 다가가면 도망치고 짖을 뿐, 우리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날을 기점으로 3일동안 찾아가 괴롭혔다.
괴롭히던 마지막날, 그 녀석이 있던 그 작은 돌멩이들로 이뤄진, 물로 고립된 땅 옆에
폐수가 흘러나오는 그곳에 기어코 준혁이와 나는 녀석을 몰아붙여
우리도 한방울마저 묻길 꺼려하던 그 폐수에 녀석을 빠뜨려 검고 끈적거리는 물로 범벅이 되게 만드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3일내내 실컷 괴롭혔던 나는 그 검은 폐수에 흠뻑 젖어 몸부림치다 기어나오는 강아지를 보고,
드디어 성공했다는 희열밖에 느끼지 못했다. 준혁이와 나는 그 꼴을 보고 환호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찾아갔을 때, 개천 벽 위에서 내려다 봤을 때, 아래로 조심히 내려가 주변을 둘러봤을 때,
우리가 발로 차고놀던 상자, 녀석의 집만이 반쯤 개천에 빠져 젖어있을 뿐, 그곳에 강아지는 없었다.
짧은 파마머리를 한, 흰색 꽃무니 장치마를 입은 아주머니께서 벽 위에서 강아지좀 그만 괴롭혀! 하고 우리에게 소리치셨다.
나는 그 길로 도망쳐, 더이상 준혁이와 노는 일이 없었다. 가끔 싸우기만 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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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련의 기억속에 행여.. 거짓이 아무렇지도 않게 스며들어 있다면... 진정 무서운 것은 그것이다.
혹은 내가 알수없는 결과, 내가 속죄할 수 없는 죄책감이 후회와 함께 끊임없이 물밀듯 밀려올 때면.. 진정 무서운 것은 그것이다.
사실 파마머리를 하고 꽃무늬가 들어간 흰색 치마를 입은 아주머니께서 그날 우리에게 소리친 적이 없던 일이었다면..
그 아주머니에 대한 기억은 그저 내 커져가는 죄책감이 나 스스로를 질책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라면?
가끔 찬 바람이 불어오는 초새벽 침대에 누워 잠들 때 그 주먹만한, 높은 벽과 폐수, 개천물 사이에 고립된
오갈데 없는 불쌍한 녀석을 괴롭히던 피도 눈물도 없던 나를 떠올리며 눈물이 새어나올 때,
그 아주머니가 그 불쌍한 녀석을 데리고가서 키워주고 보듬어 줬을것이다 하는 머저리같은 희망이 나를 안도시키면?
내가 예뻐하는 우리집 강아지 요크셔 테리어와 놀아줄 때, 녀석도 요크셔 테리어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에 입 속 침이 쓴맛으로 바뀔 때,
그 작은놈이, 자기가 왜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했을 그 녀석이....
폐수 진창에 빠져 지친몸을 이끌고 개천에서 물을 핥으려다 이끼 끼인 돌에 미끄러져 떠내려가 영락없이 죽어버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
누군가 구조해 갔으나, 내가 놈을 압박해 떨어뜨린 폐수로 인해 금새 죽어버렸다면?
내가 그 불쌍한 녀석을 떠올리며 드는 죄책감이 사실 내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선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되고싶어 했지만, 언제든 내가 9살의 나로 돌아가 잔혹한 행위라도 저지를 수 있게되면?
진정 무서운 것은 내가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질러 놓고도, 죄책감에 휩쌓여 있으면서도, 사라진 녀석이 남은 생을 행복하게 살았었음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도, 오래살다 죽었다면 얼마전까진 살아있었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준혁이를 말리고 우리집 개에게 하듯 놀아주고 싶단
후회가 밀려와도..
이 모든 생각이 나 스스로 착한 사람으로 남고싶어서 사려깊은 사람이 되고싶어서,
어쩔줄 모르는 죄책감 앞에 나 자신을 합리화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밤늦게 잠들지 못하고 눈물 흘리며 발버둥 치게되는 것이다.
진정 무서운 것은, 녀석을 떠올리기 전까지 착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하던 오만한 나 자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