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나는 지금 처한 이 상황을 빠져나갈 기회를 몰래몰래 엿보고 있다.
버스 안에 탑승해 있는 사람들은 지금 자신들이 얼마나 큰 위험에 처해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음이 확실 했다.
창 밖을 쳐다보니 창문에 서리가 짙게 끼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서리가 끼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겨울 밤 2시경에 산길도로에 뭔가 있길 기대하긴 어렵지만서도..
M은 안절부절 못하다가 힐끔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런 젠장!'
M이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눈을 아래로 내리 깔았다.
그 여자는 M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잠시나마였지만 눈을 마주쳤다. 혹시 그녀가 알아차렸을까...
M이 팔에 털이 곧추 서며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곤 티나지 않게 노력하며 진저리를 쳤다.
M은 방금 전에 있었던 모종의 일을 회상했다.
그녀의 직업 소설가였다. 소재를 떠올리려 해도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 구하러 직접 떠나온 무전여행은 눈이 펑펑 오는 전라도 산길에서 더 이상 무전여행이 불가능 할 정도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계속해서 걸어보아도 민가는 없었고, 그 때 때마침 터덜터덜 지나가는 관광버스는 그녀에게 구세주로 보일 수 밖에 없었겠지.
버스 기사가 조금은 친절하길 빌며 손을 흔들자 버스는 그녀 앞에서 천천히 멈추어 섰고, M은 차 안으로 계단을 올라 들어갔다.
"저기.. 이렇게 세워서 죄송한데 제가 너무 추워서요.."
"크흠..."
기사는 쌀쌀맞은 눈초리로 M을 훑어 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M은 약간 화가 났다.
저런 태도를 보일거라면 자기가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그냥 갈 것이지 왜 차를 멈춰서 자신을 태워주었을까.
태워주는 것에 감사해하던 M이 순간 기분이 나빠질 정도로 버스 기사의 눈초리는 불쾌했다.
"어... 제가 가까운 마을에만 도착하면 바로 내릴게요.."
기사는 쭈뼛거리며 말을 걸어오는 M의 말에는 일말의 반응도 없이 문을 닫고 차를 출발시켰다.
삐걱-! 하는 소리와 함께 기름칠이 덜 된 듯한 문이 닫기며 뒤에서 들어오던 찬바람이 뚝 끊겼다.
살았다 하는 감정과 함께 그녀는 넉넉한 기내 좌석들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차 안은 밖과 비교해보면 너무도 따뜻했다. 모두 병든 닭마냥 꾸벅 꾸벅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졸고 있었다.
커다란 관광버스인데, 탑승객은 많아봤자 열명을 조금 넘어 보였다.
이렇게 운영해도 마진이 남을까? 모종의 여행을 끊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인가보다 쓸모 없는 걱정을 하며
M은 졸고 있는 승객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발소리를 죽여 사냥에 나선 고양이처럼 맨 끝 좌석에 앉았다.
바퀴가 있어 높아진 뒷 좌석에 앉으니 버스의 모든 풍경이 한 눈에 가득 들어왔다.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운전하는 쌀쌀맞은 기사의 뒤통수를 시작으로,
가지각색으로 흩어져 앉아있는 각 승객들의 앞뒤로 계속해서 움찔 거리고 있는 뒤통수까지.
따뜻함을 즐기며 천천히 승객을 한 명 한 명 훑어보고 있는 와중에, M의 시선은 한 여자의 뒤통수에 머물렀다.
그 여자의 머리는 긴 생머리였는데, 마치 싸구려 가발을 걸친 것과 같았다.
윤기없이 뻗뻗해보이고 억세보였다. 그래도 사람의 머리라면 조금의 기름끼 정도는 있어야 할텐데..?
다시 생각해보자면 살아있는 사람의 머리칼 같지 않달까. 조금은 의아해졌다.
그 여자는 M의 좌석에서 정면으로 두 칸 앞에 앉아있었다.
M의 눈이 그 때 세상에 존재해선 안될 놀라운 것을 보고 말았다.
갑자기 여자의 뒤통수가 가로로 쭉 벌어지더니, 그 벌어진 머리 속에는 마치 큰 상어의 이빨같은 날카로운 이들이 가득했다.
그 각각의 이빨에는 피와 머리칼 같은 것이 엉켜있었다.
순간 너무나 놀라버린 M은 눈썹만 파르르 떨릴 뿐,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마치 하품을 하는 것처럼 쭉 벌어져있던 뒤통수는 마치 착각이었다는 것처럼 순식간에 텁- 소리를 내며 닫혔다.
벌어진 뒤통수 안에서 사람의 손가락으로 추정되는 어떤 것도 보인 것 같았다.
놀라서 M이 얼어있던 그때 버스가 과속 방지턱을 뛰어넘었다.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든 승객들이 잠시나며 흠칫거리며 잠에서 깨었다.
잠시 부끄러운 새색시의 모습처럼 두리번 거리던 사람들은 창문 밖이 여전히 어둡고 아직 갈 길이 먼 것을 확인한 이후, 버스 앞쪽의 전자시계를 바라보고 시간을 가늠해보는 듯 하더니 다시 고개를 파묻었다.
- 새벽 2시44분
그리고 그 때에 괴이한(?) 뒤통수 여자도 천천히, 다른 사람들이 도로 잠을 청할 때 쯤에야 밍기적 거리며 허리를 의자에서 떼었다.
그리고 저 정도면 목에 무리가 가진 않을까 의심 될 수준으로 순식간에 고개를 팍 돌려 M을 바라보았다.
M은 자신도 모르게 융털 구석구석 까지 소름이 쫙 돋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앞모습을 그냥 지나치다 보면 평범한 사람의 얼굴인 것 같았지만, 분명히 무언가 결여되어 있었다.
쾡한 눈에 다크 서클 그리고 부르튼 입술.. 전형적인 구걸을 하는 듯한 여자였다. 하지만 M의 마음을 두렵게 한 것은..
초점이 전혀 없는 동태같은 눈으로도, 분명히 M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게 인식 되는 시선이었다.
'아무래도 당장 내려야겠어!'
M은 그렇게 마음 먹었다.
뒤통수에 얼굴이 달린 여자는 아주 천천히, M을 돌아보았던 속도에 비하면 거의 세배는 걸릴 시간에 걸쳐 고개를 느릿하게 앞으로 돌렸다.
M은 한번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하자 이제 그 여자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소름 끼치기 시작했다.
대체 뭐란 말인가? 분명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도 도저히 사람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귀신? 저런 구체적인 형상을 지닌 귀신이라니.. 보통은 흐릿하게, 혹은 찰나에 보이는 것 아니였나?
그것보다 뒤통수에 입이 달려있어 그 입으로 사람을 잡아먹는 귀신이라니, M이 알던 흔한 귀신과는 번짓수가 틀렸다.
저건 분명히 살아있는, 자기 의지로 움직이는 생명체였다.
아마도 M의 생각엔, 먹이사슬에서 인간의 위에 당당히 있는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어떤 생물체임에 틀림없으리라.
저 뒤통수 달린 상어와 같은 이로, 사람을 아그작아그작 씹어 먹었으리라.
M은 떨리는 발을 간신히 추스리고, 어려운 발걸음을 떼어 운전석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여자의 옆을 막 지나치려하자, 가만히 있던 여자가 고개를 부러질 것처럼 확 돌려 M을 초점 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M은 그 눈동자의 시선이 느껴지자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질 뻔한 것을 억지로 추스리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버스기사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버스 기사님?"
"...."
버스기사가 불러도 대답이 없자 M은 한층 더 다급해졌다.
"저, 저기 이봐요!"
민경이 울음섞인 목소리로 절규하듯 쥐어 짜내 소리쳤다.
버스기사는 그제서야 무심한 눈초리로 민경을 힐끗 돌아보았다.
"저, 저 여기에다 내려주세요"
"... 갑자기 왜 그러는감? 눈 오는 길판에서 걸어가는 게 측은해 돈도 안받구 태워줬더니"
"아.. 이젠 괜찮아요. 생각해보니까 그냥 밖에서 걷는게 더 낫겠어요. 그러니까.. 이만"
"어이구, 이 날씨에 밖에서 아까처럼 걸었다간 얼어 뒤져뿌리지. 조금만 더 가면 마을이니께 그냥 쉬고 있으라고"
M은 다급한 마음으로 백미러로 힐끗 버스 뒤를 살펴보았다.
그 뒤통수 여자는 아직도 여전히 민경을 그 기묘한 눈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아마 내가 그녀의 정체를 눈치챘다는 것을 아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자 한시도 이 곳에 남아 있으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 말씀 드렸잖아요. 그냥 내려달라구요."
"..? 뜬금없이 내려달란 이유가 대체 뭔감"
"그냥 내려줘요, 아저씨. 제발요.. 부탁드릴게요."
계속해서 느껴지는 이상한 시선에, M이 자기도 모르게 눈믈을 흘리고 있었다.
"허, 거참 이상한 아가씨구만.. 뭘 안내려준다 울기까지 하고 그려? 누가 보면 내가 처잘 납치라도 하는 줄 알겄네 참!"
버스 기사는 투덜투덜 거리면서 버스를 정지 시켰다.
분명 나름의 적선으로 태워준 것인데 이런 식으로 나오니, 그도 썩 기분이 좋진 않았을 것이였다.
버스는 미끄러운 눈길이라 조금씩 속도를 줄이며 더 미끄러져 가다가 낡은 엔진 소리와 함께 정차했다.
삐그덕 거리는 소리와 함께 버스문이 덜커덕 열렸다.
M은 허겁지겁 문밖으로 뛰어내리다시피 하차를 하고, 뒤를 보자 버스는 문이 닫히고 있었다.
이내, 버스는 다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시골 눈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M은 점차 멀어지고 있는 버스를 보곤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저 따뜻한 불빛이 아쉽게 느껴졌지만, 그 정체모를 괴물과 함께 버스안에 있는 것보단 백 배 나으니까.
이젠 스스로 안전하다고 생각되자 M은 서서히 궁금증이 일어나는 걸 멈출 수 없었다.
대체 그건 뭐였을까? 무슨 생명체일까? 혹시나 외계인은 아닐까? 아니면.. 내가 헛것을 본 걸까?
오늘 버스에서 본 것에 대한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해도 좋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결국엔 모두 정신병자로 취급하겠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국 이 얘기는 나만의 비밀로 무덤까지 가져가야 옳을 것이다.
나만해도 나 말고 다른 이가 이런 말을 하면, 그가 정신병을 앓고있나 진지하게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그런 어떻게 보면 잡다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백미터 정도를 미끄러지듯 가던 버스가 갑자기 정차했다. 그리고 양 옆으로 덜커덕 덜커덕 흔들리기 시작했다.
꺄악 소리와 으악 소리. 비명 소리와 무언가 찢기는 소리가 다발적으로 조그맣게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는 짐작컨데, 10여초 뒤에 산발적으로 멈춰졌다.
삐그덕- 하고 버스 문 열리는 소리가 민경이 있는 곳까지 희미하게 들려왔다.
딸칵, 딸칵.. 높은 굽을 가질 힐을 신고 여자가 계단 내려오는 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리듯 크게 들렸다.
열린 문으로 그 뒤통수 여자가 내렸다. 버스 내의 전조등 불빛이 여자를 희미하게 비추었다.
그 여자는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피범벅이 된 버스 안이 차창 안으로 보였다.
여자는 천천히 민경이 있는 쪽으로 돌아섰다.
아니, 그 뒤통수가 있던 방향으로 반대로 돌아섰다.
그리고 그녀는 뒤통수를 앞 세우고 민경이 있는 쪽을 향해 사람으로써 있을 수 없는 속도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가로로 벌어진 입에, 아직도 무언갈 씹고 있는 듯한 무언가가 가까워져왔다.
신이치, 동족이다.
신이치, 동족이다.
저도 기생수가 생각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