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지막이 중턱에 걸려 있었다. 그 말미를 기념하기라도 하듯 일견 허전해 보이던 거리를 사람들이 수놓았다.
그렇게 하늘에 비춰진 인파는 온전히 아래로 내리쬐어 별빛이 되었다. 야경이었다.
별빛조차 전둥 불길에 흐려질 즈음 추레한 포켓몬 트레이너 하나가 자리를 잡더니 이내 목청을 높였다.
“닌텐도 스위치 사세요! 알아주는 기업 닌텐도에서 나온 최신형 게임기입니다!”
아는지 모르는지, 새해를 코앞에 맞아 내리기 시작한 흰 눈은 트레이너의 말을 꽁꽁 막고 있었다. 허나 행인들의 목소리는 그렇지 않은 듯 했다.
“어제 랭크를 돌렸는데 서폿 야스오 좀 했다고 팀원들이 생 난리를 피우더라고. 그래서 기분 전환도 할 겸 무라마나를 가봤는데 멋있더라.”
“항상 같은 편이 문제라니까. 난 내가 1힐 픽해도 비벼지지도 않길래 둠피 갔더니 지켜주지도 않았어.”
“아직도 그런 고인 물 겜 하냐? 난 배그에서 몰래 숨어서 구상 놓고 뒤에서 뚝배기 깨니까 개꿀잼이던데.”
그 이후로도 연거푸 스위치를 들어 장사놀음을 해보았지만 그뿐이었다. 오가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트레이너의 다섯 손가락만이 곱아갈 뿐이었다.
“어차피 팔리지도 않는 거, 하나 쯤 켜보기나 할까. 휴대 모드라 배터리도 얼마 가지 않을테지만.”
얼어붙은 손가락 만큼이나 무겁게 내려간 눈망울이 스위치의 전원을 응시했다.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자 이읔고 경쾌한 시작음이 들려왔다.
그러고선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다.
검은색 직사각형이던 화면은 온데 간데 없고 그 안에선 청록색 옷을 걸친 청년이 일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뿐인가?
온갖 동굴에 암벽 탐험도 모자라 허공에서 화살을 쏘아되기도 했다. 밤이 깊자 휴식을 취하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야생을 향유하고 있었다.
“이건 분명 젤다라는 이름의 용사가 모험을 떠나는 게임... 이런 갓겜이 있었다니.”
용사의 모험에 빠져들기도 잠시,
휴대 모드의 한계때문이었을까. 휘황찬란한 화면은 금새 꺼져버렸다.
“안...돼, 안 돼! 모처럼 만난 갓겜을 놓칠 수는 없어!”
급하게 전원을 올린 까만 액정에선 이전과 다른 장면이 펼처져 있었다. 중년의 콧수염이 난 남성, 자아가 있는 모자, 세계 각지의 이국적인 풍경, 슈퍼마리오 오디세이였다.
방금 전, 젤다의 여행과 같이 다채로운 탐험을 선사하는 듯 보였지만 사뭇 달랐다. 현재와 과거, 현실과 환상 속에서, 온갖 숨겨진 요소를 모자의 힘을 빌어 탐색하는
일련의 과정은 이는 이대로 색다른 흥미거리를 던져주었다 . 개중에는 묘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알록달록하고 신비한 성이 보이기도 했다.
“갓겜이 연달아서 있어?! 스위치 당신은 도대체...”
감동을 되새길 새도 없이 네모난 상자의 온기는 금새 꺼져버렸다. 당연하다는 듯 화면의 불을 켜자 여태껏 보지 못했던 형체가 떠올랐다. 트레이너의 눈동자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게 커졌다.
이로치가이 지가르데였다.
“와! 이로치가이! 지가르데!” 말하기가 무섭게 하얀 가운을 입은 정체불명의 사람이 나타나 말을 거들었다.
“아~ 지가르데 아시는구나!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지가르데 이로치가이는 진.짜.겁.나.희.귀.합.니.다. 그뿐이게요?
요번 포켓몬스터 신작은 정말 리얼루다가 당신이 알던 포켓몬스터랑은 완전히 다르죠. 포덕이라면 첫번째로 보게되는 색다른 지가르데는 넘길지라도
그 후에 바로 듣게되는 이 소식엔 껌뻑 죽습니다.”
사실이였다. 스위치에서 펼쳐지는 포켓몬스터는 북적거리는 배틀 환경에서도 비교적 높은 프레임을 보여줌과 동시에 매끄러운 3D 모델링을 보여주었다.
흥미로운 스토리, 하나씩 풀어내는 떡밥과 회수되는 떡밥, 거기에 이로치가이 지가르데까지, 꿈과 같은 모습이었다. 정말 꿈과 같았다.
”””
하루가 지나 밤이 씻겨진 하늘은 한 트레이너 위로 하얀 이불 한곂을 덮어주었다.
허나 그 이불마저도 차갑디 차갑게 굳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