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내 동료가 이렇게 개판일 리 없어!
“기적과 마법의 땅, 큐에르. 그야말로 꿈과 희망이 가득한 하나의 거대한 대륙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은 현재, 위험으로 가득차 있다. 몇 년 전부터 갑작스럽게 시작된 마왕군의 침략으로 땅은 황폐화 되었고,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여 더 이상 희망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찰나, 세상은 영웅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이는 그야 말로……!”
“야, 됐고.”
챙이 넓은 검은 모자를 쓴 검은 머리에 에메랄드색 눈을 가진 소녀의 말을 가로막은 것은, 유독 혼자서만 다른 풍의 옷을 입은 소년이었다. 그 표정은 그야말로 떫은 감이라도 씹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왜 날 부른 건데.”
아니, 정확히 말하면 뭐라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화가 난 표정이었다. 그 표정에 말을 하던 소녀는 입을 다물고 식은땀을 흘렸다. 어째 자신이 생각했던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다. 혹시 자신은 엉뚱한 사람을 소환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스쳐지나갔지만 곧 그럴 리가 없다고 고쳐먹었다.
“그, 그러니까 마왕군의 침략으로 마왕군의 침략으로 땅은 황폐화 되었고,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여 더 이상 희망은 찾아볼 수가 없었…….”
“그건 아까도 들었거든?”
소년은 금방이라도 사람이라도 죽여 버릴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한 번 더 소녀의 입을 막았다. 예상도 못 한 흉흉한 분위기에 소녀는 마른 침을 삼켰다.
“마, 마왕의 침략을 막기 위해 용사가 되어 주세요!”
소녀는 심호흡을 한 뒤 강하게 내뱉었다. 그 말에 소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망할.”
소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어? 저 반응은 혹시, 이전 세계에서도 마왕을 잡아본 적이 있는 건가?’
소녀는 소년의 반응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자신이 제대로 소환한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소녀의 희망이 10 상승했다!
“호, 혹시 원래 계시던 차원에서도 마왕을 잡아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 거의 잡을 뻔 했지. 내 19년 인생의 약 3분의 2 정도를 바치고서 보스몹을 거의 잡을 뻔 했지.”
소년의 말에 그곳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이 술렁였다. 고작 19년 인생의 3분의 2를 바쳐서 마왕을 잡을 뻔 했다는 소리에 그들에게 희망이 비치는 듯 했다.
“그, 그렇다면 저희를 도와서…….”
“근데 너희들이 망쳤네.”
“네?”
“너희 때문에 내 인생은 헛된 인생이 되었단 말이다, 이것들아!”
소년은 크게 소리치며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내일이면, 내일이면 그 빌어먹을 보스몹을 잡고 내 12년을 보상받을 수 있었을 텐데! 교육과정에 바친 내 12년을 보상받을 수 있었는데, 이 쓰레기 같은 것들아아!”
소년의 분노에 소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가, 어? 내가 망할! 12년을 어?! 거의 평생을, 어?! 근데 너희가! 내 인생 계획이! 야 이, 씨……!”
“어, 저, 저기?”
“사과 안 하냐!?”
“죄, 죄송합니다?!”
소년의 박력에 순간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사과를 했다.
“내가, 그거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왔는데! 그런데 너희가 그걸 망쳐!?”
“하, 하지만 저희 세계가 너무 위험한 나머지……!”
“알 게 뭐야, 그딴 거! 내 인생이 지금 더 위험해!”
소년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이면 다 끝나는데! 다 끝나……는데…….”
그리고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잠잠해졌다.
“내, 내 인생……. 평범하게 살겠다는 인생이……. 나락으로, 나락으로 떨어져버렸어. 신발, 신발 끈. 이게 다 신발 끈 때문인가. 이게 다 엿 같은 신발 끈 때문인 거야? 이건 아니잖아. 이건, 이런 건…….”
잠잠해진 게 아니라 뭔가 알 수 없는 걸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저, 티유 님?”
“네?”
“혹시, 잘못 소환하신 건…….”
“그, 그럴 리가 없잖아요! 초심자도 아니고! 소환 마법을 실패할 리가 없어요!”
“그, 그건 그렇죠!”
소녀, 티유는 남성의 말을 부정하며 다시 소년을 바라봤다. 이제는 아예 무릎을 끌어안고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이런 인생이, 이런 인생이 있을 수 있냐고.”
여전히 절망적인 분위기였다.
“일단 여러분은 나가 계세요. 이 분과는 소환자인 제가 얘기해보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두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방에서 나갔다. 그들이 나가고 인기척이 멀어지는 것을 느낀 뒤, 티유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소년에게 다가갔다.
“저기, 용사님?”
“…….”
“실례지만, 혹시 에디아르에서 오신 거, 맞죠?”
자신이 잘못 소환했을 리가 없다는 확신을 담아 티유는 소년의 출신지를 물었다. 그 질문에 절망감과 함께 바닥을 뒹굴고 있던 소년은 티유를 노려보았다.
“거긴 또 어디야.”
“네?”
돌아온 대답에 그녀는 잠시 당황했다.
“아까 소환 마법을 실패할 리가 없다고 했냐?”
“어…….”
“한 가지만 알려주마.”
소년은 몸을 일으키며 티유의 앞에 섰다. 그의 키가 티유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행동에 그녀의 몸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알 수 없는 박력에 그녀는 침을 삼켰다.
“너 완전 실패했거든, 이 망할 인간아!”
“네?!”
“난 에르디아인지 에디아르인지 그딴 곳 모르고! 지구 출신인데다가! 싸우는 것도 할 줄 모르고! 그냥 평생을 공부만 하면서 살아오다가! 내일 수능 앞두고! 지금! 여기에! 너한테! 끌려왔거든!? 실패할 리가 없어? 초심자도 아닌데 실패할 리가 없다고?! 그럼 단단히 알아둬라. 단단히 알아둬. 넌 완전 실패했고, 초심자보다 못 한 녀석이다아!!”
소년의 울부짖음에 티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우, 우으으…….”
그리고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흐아아아앙! 너무 하잖아요오! 저, 저라고, 저라고 해서 실패할 거라고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에! 으아아아아아앙!”
티유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서 울기 시작했다. 그것도 상당히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어? 야, 네가 울면 안 되잖아.”
그 반응에 한껏 폭발하던 소년이 당황했다.
“히끅, 히, 힉. 히끅, 히끅.”
“음.”
티유의 옆에 앉은 소년은 어쩌다 이런 상황에 이르렀는지 잘 생각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에게 잘못은 없는 것 같았지만, 일단 여자애를 울리고 나니 찝찝할 수밖에 없었다.
“어, 저기.”
“히끄.”
“내 말이 좀 심했던 것 같다. 미안.”
소년은 티유에게 사과를 한 뒤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한참을 훌쩍이던 티유가 소년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 저야 말로, 딸꾹, 죄송해, 딸꾹, 요.”
이제야 받는 사과에 소년은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벽에 등을 기댔다.
“그래서, 날 소환한 이유가 마왕을 잡기 위해서라고?”
“네. 근데, 글러먹었어요.”
소년은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에디아르에 있는 전사를 소환했어야 되는데, 이상한 차원에서 이상한 사람을 소환해버렸어요.”
“그렇다고 해서 남의 면전에 대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하지는 마라, 너.”
소년은 표정을 찌푸리며 티유를 바라봤다.
“심지어 돌려보내고 새로 소환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어요.”
“뭐?!”
그 말에 소년은 놀란 듯이 소리쳤다. 그리고는 티유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돌려보낼 수 없다니! 그 말은 나 보고 여기서 평생 살라는 거냐? 어?!”
“히이익! 표정! 표정이 무서워요!”
“닥쳐! 내 표정이 어떻고 간에 뭔 상관이야! 왜 못 돌아가는 건데?! 난 그게 더 급해!”
“하,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걸요! 마왕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돌아갈 수가 없도록 설정된 마법인데!”
그 말에 소년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머리가 돌바닥에 부딪히면서 몹시 둔탁한 소리가 들렸지만 소년은 그런 것에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젠장. 신발 끈이 내 인생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거라더니, 진짜 그렇게 됐잖아.”
소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큰 대자로 뻗었다.
“인생 엿 같네, 진짜.”
소년의 말에 티유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이 안절부절 못 했다.
“젠장.”
작게 중얼거리고 소년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더니 몸을 일으켰다.
“어쨌든 난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겠다.”
“그, 그 말씀은?”
“마왕인지 뭔지 쓰러뜨리던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던가 해야겠지.”
의외로 포기가 빠른 소년이었다.
“수능 시험 전 날에 여기로 날 소환한 건 여전히 엿 같지만.”
그리고 뒤끝이 있었다.
“덕분에 내 인생 계획은 산산히 박살나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모래 수준이 되어 버렸지만.”
뒤끝이 너무 심했다.
“죄, 죄송합니다아.”
소년의 뒤끝에 티유는 시선을 회피하며 사과했다.
“너 나중에 이건 확실히 빚으로 받아둘 거다. 알겠냐?”
“네…….”
티유는 살짝 몸을 떨며 소년의 말에 대답했다.
“그, 그러면 우선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안태훈. 넌?”
“아, 전 티유라고 해요. 잘 부탁드려요, 안태훈 씨.”
티유는 그렇게 말하며 태훈에게 손을 내밀었고, 태훈은 그 손을 맞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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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건 이번 시드노벨 공모전에 제출한 작품입니다.
그대로 놔두기도 뭐하고 해서 한 번 올려봅니다. 읽어보시고 댓글로 아쉬운 점 같은 거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