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지 않게 새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멘 남해는 꼭 원래 세상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허리띠엔 덱 케이스가 메여있다는 큰 차이를 빼고.
등굣길도 특별할 것은 없었다. 이미 두어번 지나다녀본 길이었기에 더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새로운 시작에 대한 불안함은 그 익숙함보다 더 컸다.
잘 해낼 수 있을까? 자신은 여기에 대한 상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입학식 전까지도 바깥에 나가기보다 방에 틀어박혀 덱을 구축하고... 바깥사람과의 접촉을 가능한 한 피하려고 했다.
물론 교회라는 특성상 오고가는 사람이 많긴 했지만 대화를 나누면 느껴지는 어색함에 왠지 사람을 피하게 됐다.
“너 이름이... 남해구나, 안녕! 난 준오야. 박준오.”
교실 한구석에 앉아 말없이 주변만 살피던 남해에게 한 남자애가 다가왔다. 알이 두꺼운 안경과 뽀글뽀글 브로콜리를 닮은 곱슬머리가 강렬한 남자애였다.
“처음보는 얼굴인데, 전학생이야?”
“어? 으응...”
“아! 그럼 혹시 네가 걔야?”
남해는 갑작스레 다가와 친구처럼 말을 걸어오는 준오가 부담스러웠지만 준오는 넉살좋게 말을 이어갔다.
“덱은 뭘 써?”
“크리스트론이랑 룡성.”
“올~ 괜찮은 덱이네? 난 엑조디아야. 로망충이거든. 네가 혹시 그 특례입학자야?”
“아... 응. 그거 나 맞아.”
“캬~ 실기 성적은 졸라 잘뽑겠구만. 최금선 걔도 실기는 엄청 잘 뽑던데. 넌 뭐 좋아하는 거 있어?”
한참을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을 때 수업시작을 알리는 짧은 음악이 교실에 울렸고 준오는 씩 웃으며 학교 끝나고 보자는 말을 남기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짧게 담임선생님의 이야기나 앞으로의 수업 일정, 간단한 소개 등 입학식 절차가 끝나고서 다시 가방을 멘 남해의 뒤에서 갑작스레 준오가 엉겨붙어왔다.
“아 씨 깜짝이야...”
“같이 가자, 너 어디 가는데?”
준오가 남해의 목에 팔을 걸고 싱글벙글하고 있던 그때 남해에게로 누군가 갑작스럽게 달려왔다.
남해는 갑자기 누가 달려오자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여기서 살게되며 자신도 모르게 생긴, 익숙치 않은 사람을 경계하는 버릇이었다.
남해는 당황한 눈으로 그 아이를 보며 어떻게 해야하나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었던 그때 상대방이 먼저 남해에게 손을 내밀었다.
“난 유지민이라고 해. 네가 그 올해 특례입학자야?”
“어? 아 응...”
“그럼 나랑 듀얼하자!”
이런 식이다. 이 세계는 너무 이런 만나자마자 듀얼을 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었다.
남해가 아직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그때, 준오가 슬쩍 남해에게 귓속말을 했다.
“쟤 저번에 교대표 결정전 2위한 애야.”
그 이야기에 남해는 피가 거꾸로 흐르는 기분이었다.
이런 범용카드도 반토막이고 엑스트라도 반쯤 죽은 덱을 들고 입학 첫날부터 2위랑 듀얼을 하라구요? 나 간드도 시온도 트리슈라도 못쓰는데?
하지만 물러나기엔 너무 보는 눈이 많았다. 게다가 자신에게 붙은 저 ‘특례입학’이란 딱지는 너무나도 묵직했다.
물러나려고 해도 이미 막다른 골목이다. 모두가 자길 보고 수근대는 것만 같았다.
“듀얼 안 할거야?”
“좋아, 한번 붙어보자!”
남해는 한박자 망설이더니 결국 듀얼을 승낙했다. 길이 하나 뿐이라면 거기로 가야지, 뭐 어쩔 수 있겠나.
당장 자기 인생이 그런데.
지민은 능숙하게 가방 옆에 달린 교내 범용 D-패드를 꺼내 손목의 팔찌에 끼워넣었고 남해는 지민과 비교되게 서투른 솜씨로 패드를 꺼내 약간 늦게 패드를 장착했다.
금새 준비를 마친 두명은 거리를 벌리고 듀얼을 준비했다. D-패드의 가동음이 들리자 지나가던 몇몇 학생들의 시선이 둘에게로 집중됐다.
“공격은 누가 먼저 할까?”
“아, 네가 먼저 해.”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는 남해와 다르게 지민은 주변의 시선을 즐기며 패드를 세팅해나갔다.
“그럼 룰은 스탠다드, 선제공격권은 나! 그렇다면, 듀얼 개시!!”
남해는 같이 듀얼 개시라고 소리치려다 박자를 놓치자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대신 다른 것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상대의 덱은 무엇일까, 템포를 맞춰서 진행하는 덱일까? 아니면 번? 그것도 아니면...
일단은 초동을 보는게 우선이다. 남해는 고민하는 대신 지민의 플레이에 집중하기로 했다.
"패에서 [그린 가제트]를 일반 소환!“
[그린 가제트/Lv4/1400/]
지민의 필드에 딱딱딱 거리는 소리를 내며 녹색 기계병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계병사의 몸통에 박힌 커다란 톱니바퀴가 굴러가자 지민의 덱에서 카드가 한 장 뽑혀나왔다.
저 카드는 알고 있다. 가제트 시리즈. 그렇다면 머시가제려나?
“그린 가제트의 효과로, 덱에서 [레드 가제트]를 패에 넣겠어. 그리고 패에서 [음향전사 기타스]를 우측 펜듈럼 존에 세팅하고 기타스의 효과 발동! 패 한 장을 버리고 덱에서 [음향전사 마이크스]를 특수소환!”
[음향전사 기타스/7-7]
지민의 오른쪽에 노란 일렉기타가 두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지민이 패 한 장을 뽑아서 묘지에 집어넣자 기타가 자기 혼자 요란한 전자음악을 내며 연주됐고, 짧은 음악이 끝났을 때는 지민의 필드에 거대한 마이크를 닮은 로봇이 등장해있었다.
[음향전사 마이크스/Lv5/2300/1100]
"마이크스가 특수소환에 성공한 턴, 나는 일반소환을 다시 할 수 있어. 패의 [레드 가제트]를 일반소환하고 덱의 [옐로 가제트]를 패에 넣은 다음, 덱 맨 위 카드 한 장을 묘지로 보내고 묘지의 [그로우업 벌브]의 효과를 발동!“
기타스로 버린 카드구나. 대충 감을 잡은 남해는 지민의 플레이를 보며 고갤 끄덕였다.
가제트와 음향전사로 이어지는 템포형 덱. 현실에서도 어느정도의 덱 파워는 확실하게 갖췄을만한 덱이다.
소모되는 아드는 가제트와 펜듈럼이 보충하고 약간의 시너지 있는 범용카드까지.
그 사이 남해가 무슨 생각을 하든 지민은 알바 아니라는 듯 자신의 플레이를 이어갔다.
“부활한 레벨 1 벌브를 레벨 5 마이크스에 튜닝! 찬란하게 빛나라, 강철의 날개! 레벨 6 [스타더스트 차지 워리어] 싱크로 소환!”
[스타더스트 차지 워리어/Lv6/2000/1300]
빛나는 고리가 된 벌브가 마이크스를 둘러싸자 마이크스가 입자가 되어 분해됐고 이윽고 빛의 고리 안에서 흰 갑옷을 입은 전사가 나타났다.
남해는 또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특수소환 된 몬스터 전부에게 연속공격이 가능한 차지 워리어는 룡성 입장에선 귀찮은 몬스터다. 앤틱기어 때도 그렇고 이 덱은 왜 이렇게 카운터만 만나고 다니지?
“차지 워리어가 소환에 성공했을 때, 덱에서 카드를 한 장 드로우하고 이어서 그린과 레드를 오버레이! 랭크 4! 강철의 철권! [기아기간토 X]를 엑시즈 소환!”
이번에는 두 가제트의 발 아래에 균열이 생기며 우주가 보였다.
두 몬스터가 빛으로 변해 그 안으로 빨려들어갔고 잠시 조용하던 균열은 거세게 소용돌이치며 안에서 거대한 하나의 톱니바퀴를 꺼냈다.
그리고 그 톱니는 거세게 회전하며 변신하고는 녹색의 로봇으로 모습을 바꿨다.
[기아기간토 X/Rk4/2300/1500]
“기아기간토의 효과 발동! 자신의 엑시즈 소재를 하나 제거해 덱에서 레벨 4 기계족 몬스터 [양철금붕어]를 패에 넣겠어! 그리고 패의 카드 한 장을 세트하고 차례를 마친다!”
-유지민/LP 8000/패 4장
징그러운 어드벌이다. 결과적으로 패 5장으로 시작해서 패 4장과 필드 카드 3장. +2의 어드가 벌어진 셈이다.
아무리 이 세계의 듀얼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차이가 있대도 교내 2위는 다르긴 한가보다. 그렇다고 해서 기권할 생각은 없다.
듀얼을 시작했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목사님이 말했다.
“드로. 그렇다면...”
남해가 드로우한 카드는 [암룡성-죠쿠토]. 마침 패에는 [광룡성-리훈]과 [수룡성-비시키]까지 있다. 저 폭발적인 어드벌이를 룡성은 따라가기 힘들다. 어떻게든 여기서 가속을 붙여서 쫓아가야 한다.
남해는 바로 방금 드로우한 죠쿠토를 패에서 뽑아들고 필드에 냈다.
“나는 [암룡성-죠쿠토]를 일반소환한 다음, 패 두장을 버리고 효과를 발동!”
남해의 필드에 쪽빛 구슬이 하나 생겨났다.
그러나 쪽빛 구슬은 먹물이라도 푼 듯 시커멓게 변색되더니 검은 물살을 일으켰고, 물살이 걷히자 그 안에서 새카만 비늘로 뒤덮인 거북을 닮은 흑룡의 모습이 되어있었다.
그 흑룡이 발을 한번 구르자 양 옆으로 정수가 두 개가 더 생겨났다. 투명한 정수 두 개의 안에 차오르듯 색이 입혀지던 그때, 지민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덱에서 공격력 0의...”
“세트카드 발동! [금지된 성배]!!”
빠찌직!!갑자기 죠쿠토의 몸에서 파란 전류가 방전되더니 양옆의 정수는 그대로 힘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해 쨍그랑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죠쿠토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고 남해의 두 눈은 갈곳을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죠쿠토의 공격력을 400 올리고, 효과를 무효로 하겠어.”
남해는 목구멍까지 탄식이 올라왔지만 간신히 그걸 도로 삼키고 패를 살폈다. 망했다. 망했지만 어떻게든 해야한다. 어떻게든...
“패에서... 카드 두장을 세트하고 턴 종료야...”
-강남해/LP 8000/패 1장
망했다. 필드에 몬스터라곤 이제 성배의 효과가 걷혀 공격력이 0으로 돌아온 죠쿠토 혼자뿐이다.
죠쿠토는 턴이 끝나 성배의 효과가 사라지자 그제야 힘들게 겨누던 몸을 제대로 일으키고 지민의 필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내 차례야, 드로우. 기아기간토의 효과 발동! 소재를 하나 더 제거하고 덱에서 레벨 4 기계족 [톱 러너]를 패에 넣겠어. 그 다음 패 한 장을 버리고 덱에서 두 번째 마이크스를 특수소환!”
아까와는 다른 음악이 짧게 연주되고, 다시 지민의 필드에 마이크스가 등장했다. 그리고 지민은 다시 패 한 장을 뽑아들었다.
“패의 [양철금붕어]를 일반 소환하고, 붕어의 효과로 패의 [톱 러너]를 특수소환 하겠어! 그리고 레벨 4 양철금붕어와 레벨 4 톱 러너를 튜닝!!
모여든 빛이 하늘을 수놓는 별이 되어라, 싱크로 소환! [섬광룡 스타더스트]!!“
[섬광룡 스타더스트/Lv8/2500/2000]
양철금붕어가 빛의 고리 안으로 날아들자, 주변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고 찬란한 빛과 맑게 울리는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그 빛의 안에서 순백의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남해는 넋을 잃고 섬광룡의 모습을 올려다봤다.
애니메이션에서 보던 그 모습과는 차원이 다르다. 뭔가... 신성한 것과 마주한 기분이었다.
“자자! 배틀 페이즈 돌입이야! 스타더스트 차지 워리어로 공격이야, 차지 스트라이크!”
남해는 그 말을 듣고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차지 워리어가 잽싸게 남해의 필드로 날아와 죠쿠토를 걷어찼고, 죠쿠토는 일격에 산산조각이 났다.
-강남해/LP 8000 → 6000
“세트 카드 발동! [룡성의 구상화]! 죠쿠토의 효과와 구상화의 효과를 발동하고, 묘지에서 [광룡성-리훈]의 효과까지 체인!”
“호오...”
“리훈을 소생시키고, 덱에서 슌게이와 비시키를 불러내겠어!”
“그렇다면 이번엔 차지 워리어로 리훈을 공격...”
“거기서 다시 비시키의 효과야! 필드의 룡성 몬스터들을 사용해, 상대의 턴에도 싱크로 소환을 할 수 있어!”
남해의 선언과 함께 비시키의 형체가 무너지며 쪽빛 물살의 소용돌이로 변했다.
그리고 슌게이 역시 불꽃의 회오리로 변해 물살과 함께 리훈을 감싸는 형태로 몰아치기 시작했고 두 룡성에게서 뽑혀나온 푸른 정수와 붉은 정수가 리훈에게 흡수되자 리훈의 몸에서 나온 밝은 빛이 필드를 뒤덮었다.
“레벨 1 리훈에 레벨 2 비시키와 레벨 4 슌게이를 튜닝!
별빛의 인도 아래, 휘몰아치는 파도처럼, 불꽃처럼 타오르며 빛의 날개를 펼쳐라!!
싱크로 소환, [클리어윙 싱크로 드래곤]!!“
[클리어윙 싱크로 드래곤/Lv7/2500→3000/2000]
빛이 걷히자 시뻘건 불티를 사방으로 흩날리며 빛나는 날개의 하얀 용이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한번 기운차게 용이 날개를 펼치자 사방으로 파란 물보라가 튀었다.
자체적인 퍼미션 능력은 물론이고, 비시키를 소재로 했기에 함정에 걸려도 흘러내리면 그만. 슌게이를 소재로 했기에 공격력은 500 올라 3000. 궁지에 몰린 남해가 꺼낸 비장의 한 장이었다.
“그게 네 에이스야? 할아버지가 이야기 해주시던 그 카드 같네.”
하지만 지민의 표정에는 전혀 당황한 기색도, 위기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물러나, 차지 워리어. 그리고 지금 네 차례니까 나서야지? 스타더스트.”
위기감은 남해가 느끼고 있었다.
공격력 3000. 들이받아서 처리할 몬스터도 없고 섬광룡으로 뭔가를 보호하려 한다면 그대로 체인을 걸어 박살내주면 그만이다.
그런데... 왜 쟤는 아무렇지도 않은 거지...?
“그렇다면 섬광룡으로 클리어윙을 공격! 슈팅 블래스트!!”
“이상하다. 지금 클리어윙의 공격력은-”
“그리고 패에서 속공마법 [허영거영]을 발동! 섬광룡의 공격력을 1000 올리겠어!”
[섬광룡 스타더스트/A 2500 → 3500]
준오의 의문은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해결되었다. 섬광룡의 뒤에서 거대한 분신이 생겨나더니 섬광룡이 입에서 빛줄기를 발사하자 그 행동을 흉내내듯 자신도 굵직한 빛줄기를 클리어윙을 향해 쏴냈다.
레벨 5 이상의 몬스터가 발동한 효과도, 레벨 5 이상 몬스터가 대상인 몬스터 효과도 아니다. 게다가 공격력 상승치도 1000.
콰아아아아아아-!!섬광룡의 브레스에 집어삼켜진 클리어윙은 버텨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그것도 잠시. 곧 흔적도 없이 박살나고 말았다.
-강남해/LP 6000 → 5500
"이어서, 마이크스와 기이가간토로도 직접 공격이야!“
남해가 클리어윙의 상태를 확인할 틈도 없이 폭음파와 철권의 비가 쏟아졌다. 남해는 양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팔 너머로 보이는 섬광룡을 노려봤다.
-강남해/LP 5500 → 900
“턴 종료야!”
-유지민/LP 8000/패 2장
순식간에 라이프는 풍전등화였다. 8000이나 되던 라이프는 순식간에 세자릿수까지 떨어졌고... 상대 필드 위엔 공격력 2000 이상의 몬스터가 넷이나 되는 반면 자신의 필드는 텅텅 비어있었다. 패도 넉넉지 않았고...
‘큰일... 났다...’
남해는 그때 그 기분들이 다시 들기 시작했다. 네 마리의 덩치 큰 몬스터들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선에서 느껴지는 이 위압감,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고 느껴지는 그 순간의 공포.
트리슈라도 그리온간드도 소환할 수 없다. 라이프 900이면... 언제라도 필드는 청소당할 수 있다.
아무리 리쿠르트의 룡성이라도 연속 공격이 가능한 스타더스트 차지 워리어의 존재 앞에서는 철벽방어는 장담할 수 없다.
“정신차려! 안 뽑고 뭐해!”
그때 남해에게 누군가 소리쳤다. 남해를 지켜보던 준오가 답답하다는 듯 남해를 보고 소리쳤다.
처음으로 듀얼 디스크를 썼을 때도 이런 공포는 느낀 적 있긴 했다. ...그래, 어차피 자신은 이제 궁지다. 차라리 마음을 비우자.
“드로우.”
남해는 패에서 카드 한 장을 뽑아서 필드에 냈다. 바닥에서 황수정 덩어리가 올라왔다.
“[크리스트론-스모거]를 일반소환하고 스모거의 효과 발동, 자신을 파괴하고 덱에서 [크리스트론] 튜너인 [크리스트론-시토리]를 특수 소환하겠어. 여기서 구상화의 효과도 발동, 덱에서 [지룡성-헤이칸]을 수비표시로 특수소환하고... 턴 종료야.”
-강남해/LP 900/패 1장
“내 차례지? 드로우.”
승부는 지민에게 기울어져있다. 남해의 필드에 세트 카드가 있긴 하지만 이전 턴에도 발동된 적 없는 카드다.
시토리가 불러낼 몬스터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한 입질부터 던져볼까. 유지는 패에서 아무것도 뽑아들지 않고 손을 앞으로 뻗었다.
한편 남해는 뭔가 불안감에 가득한 표정이었다. 시토리로 인잭트론 파워드를 뽑을 수도 있겠지만... 파워드는 섬광룡보다 공격력이 높지 않다. 섬광룡이 자신에게 효과를 두르고 들이받으면 확실하게 죽은 목숨.
하지만 그 카드만은... 뽑고 싶지 않았다. 구원투수가 그 카드뿐인 건 자신도 알지만...
“다른 수가 있을 거야... 다른 수가... 너 말고 다른 수가 있을 거야...”
“배틀! 스타더스트 차지 워리어로 시토리를 공격!”
스타더스트 차지 워리어가 등에서 불꽃을 뿜으며 높이 뛰쳐올랐다. 그 순간 시토리가 바닥에서 황수정 조각상을 하나 뽑아들고 그 안으로 녹아들 듯 사라졌다.
그리고 황수정 조각상은 빛을 발하며 수정이 박힌 로봇의 모습으로 변형을 마쳤다.
“시토리의 효과 발동! 묘지의 레벨 2 [수룡성-비시키]와 시토리를 튜닝! 레벨 4 [크리스트론-쿠온담]을 싱크로 소환!”
“상관 없어, 그렇다면 헤이칸을 공격이야!”
차지 워리어는 그대로 주먹을 앞세워 돌진해왔다.
그 순간 헤이칸과 쿠온담이 어느새 펼쳐진 바닥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고 대신 그 안에서 무언가의 형체가 솟아나며 솥뚜껑 같은 손으로 차지 워리어의 주먹을 붙들었다.
-“그 손 떼라, 얼간아.”
낮게 울리는 목소리가 그림자로부터 흘러나왔다. 길다란 목 끝에 걸린 늑대를 닮은 두상에서는 핏빛의 붉은 안광이 빛나고 있었다.
[사룡성-가이저/Lv7/2600/2100]
“저 카드는...”
“가이저잖아...?”
남해는 놀란 눈으로 자신 앞에 생겨난 그림자를 올려다보았다. 레벨 4 튜너에 상대턴 싱크로가 가능한 쿠온담, 레벨 3에 비튜너인 헤이칸의 조합이었으니 룰 상으로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절대 이 카드만은 피하고 싶던 그 카드였다.
“응, 맞아. 섬광룡, 저거... ‘진짜’맞지?”
지민은 남해와는 또다른 반응을 보이며 가이저를 보고 놀란 얼굴이 되었다. 섬광룡도 지금까지와 다르게 가이저만은 유독 경계하는 태세를 갖추고 노려보고 있었다.
오도가도 못하던 스타더스트 차지 워리어는 가이저가 점점 더 주먹을 세게 조여오자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쳤고 그제야 지민은 다시 플레이를 이어갔다.
“리플레이 룰에 따라 차지 워리어의 공격권을 포기하겠어! 메인 2에 기아기간토와 마이크스를 수비로 돌리고 차례를 마치겠어!”
그제야 가이저는 이를 갈며 손을 놨고 급하게 차지 워리어는 지민의 필드로 돌아왔다.
-유지민/LP 8000/패 3장
“아, 아... 응... 내 차례야, 드로우.”
가이저는 남해를 한번 슥 돌아보더니 거칠게 콧김을 몰아쉬며 상대의 몬스터들을 노려보았다.
어차피 최악의 경우에는 뽑아야할 카드긴 했지만 마지막 수로 생각한 몬스터가 등장한 카드였다. ...그렇지만...
‘전투 내성, 대상 내성, 그리고 파괴 효과...’
동시에 지금 상황에선 가장 알짜배기인 효과들만을 갖추고 있는 카드기도 했다. 남해는 한분 숨을 고르고 다시 한번 가이저를 올려다봤다.
“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왔으면 네 몫은 다 하고 돌아가야 해.”
어차피 솔리드 비전일 뿐이지만 남해는 각오를 다지기 위해 괜히 가이저에게 말을 걸 듯 혼잣말을 했다.
그때, 가이저의 솔리드 비전은 남해의 목소리에 반응하듯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자 간다! 패의 [염룡성-슌게이]를 일반소환 하고, 가이저의 몬스터 효과를 발동! 슌게이와 펜듈럼 존의 기타스를 대상으로 하고 파괴하겠어! 흑랑아!!”
가이저가 한번 발을 구르자 바닥에서 검은 소용돌이가 솟구치며 슌게이와 기타스를 집어삼켰다.
소용돌이에 집어삼켜진 기타스는 흰 빛을 발하며 조금의 잔상처도 나지 않고 있었다.
“섬광룡의 효과로 파괴를 한번 무효로 하겠어, 소닉 배리어!”
결국 소용돌이가 걷혔을 땐 모습을 보인 것은 기타스 뿐이었다. 그렇지만 슌게이가 사라진 자리엔 정수 하나가 남아있었고 그 옆에 시커먼 정수가 하나 더 생겨났다.
“여기서 슌게이와 구상화의 효과로 덱의 [마룡성-토우테츠]와 [보룡성-세피라후우시]를 특수소환한다! 후우시가 덱에서 특수소환에 성공했을 때, 필드의 룡성이나 세피라 몬스터 하나를 튜너로 만들 수 있어, 토우테츠를 튜너로 만들겠어!”
빛으로 변한 토우테츠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세탁되듯 뽑혀나왔고 그 안으로 빛이 된 후우시가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그 빛은 또다시 새로운 룡성의 모습으로 변했다.
[휘룡성-쇼후쿠/Lv8/2300/2600]
“레벨 5 토우테츠를 레벨 3 후우시에 튜닝! 늑대의 송곳니처럼 예리하게, 하나된 화음으로 하늘을 가르고 빛을 잇는 용이 되어라, 레벨 8 [휘룡성-쇼후쿠]를 싱크로 소환하겠어. 그리고 쇼후쿠가 싱크로 소환에 성공했을 때! 소재로 쓴 환룡족 몬스터들의 원래 속성의 수만큼 필드 카드를 주인의 덱으로 되돌린다!”
쇼후쿠가 한번 우렁차게 포효하자, 저 위에서부터 빛의 기둥이 섬광룡과 기타스를 내리찍었다.
두 몬스터는 빛으로 변해 필드에서 사라졌고, 남해의 두 환룡이 기세등등하게 지민의 필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저녀석, 기세 탔구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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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하느라 넘모 바빠 이제야 올라오는 4화입니다.
저번에 짤로 슬쩍 보여드렸던 그 캐릭터! 유지민의 첫 등장!
이름에 유 자 들어가고 에이스는 공격력 2500! 약한 몬스터를 연계하는 플레이! 기상천외한 머리모양까지!
누가 봐도 주인공 포지션입니다만 주인공이냐고 물으면 그건 앞으로에 대한 기대에!
뭐... 소설 자체는 이미 1학년을 넘어서 2학년과 3학년까지도 스토리가 쭉 짜여진 상태입니다만, 제가 시간이 없어서 비축분은 커녕 한편 써 올리기도 힘드네요.
좀 더 노오오력해서 더 써드려야 하는데... 한편에 삽화 한장 플랜조차 힘이 빠져 간당간당합니다...
저 삽화는 미래일기 12권에 나온 장면의 패러디입니다만 알아보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네요.
남해의 카드나 본인에 대한 것은 점차 떡밥을 던져나가서 회수할 계획입니다.
이거도 1학년은 마쳐야할텐데... 벌써 다른 소설이 쓰고 싶습니다...
유딱지 몹들로 벌이는 유성배전쟁... 세이버 레이와 랜서 닌기루스에 버서커 크리스타가 나오는 유성배전쟁이 쓰고 싶어요...
남해를 지켜보던 남해가 답답하다는 듯 남해를 보고 소리쳤다 ....?
그것보다 가이저 멋지다...!!
지적 감사합니다. 허영거영의 상승치 오류도 수정했습니다. 난폭하고 제멋대로지만 필요한 순간에 나타나주는 전우! 그게 지금의 가이저입니다! 뭐, 클리어윙에 비해 본인의 선호도는 낮지만요.
가이저:지금이야! 소환해!! 지금 날 소환해서 상황을 돌파하라고!!! 주인공:터, 턴 엔드... 가이저:아오씨...!!!(발암) 내가 직접 나간다! 진짜!!
소설을 쓸 때 각본이 확실히 중요한 것 같네요. 그런 거 안 쓰고 써보려니까 잘 안 써집니다
사실 2기랑 3기보다 1기 각본이 더 부실하긴 합니다만...
각본은 10분에서 1시간 정도 적당히 끄적이고 쓰는 걸 하는 중인데 묘사라던가 그런 게 생각대로 안 나오니......
2기랑 3기는 전에 다른곳에서 쓰던걸 바탕으로 재검토 할 예정이라 바탕이 있는데... 1기가 지금 뿌리가 없으요... 떡밥 조절도 그렇고 가장 난해한 상태입니다 ㅠㅠ
가이저 눈빛 캬
저거 때문에 소설 업로드가 늦어졌었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