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렛 라바 케이크는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서 그닥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만들 수 있으면서도 맛이 좋고 나름 퍼포먼스도 인상적이기 때문에 자주 만들게 되는 디저트입니다.
만드는 사람에 따라 과일 절임이나 쿠키, 아이스크림 등을 곁들이기는 하지만
이 케이크를 이루는 다섯가지 주요 원소는 기본적으로 초콜렛, 달걀, 밀가루, 버터, 설탕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재료가 심플하고 별다른 기교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역설적으로 대충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재료들로 만들 때와
농장 직송 유기농 달걀에 발로나 초콜렛같은 비싼 재료 써서 만들 때의 맛이 확 차이가 나는 무서운 디저트이기도 하지요.
라메킨(Ramekin)을 준비합니다.
라메킨은 원래 플랑드르 지역에서 유래된 단어로, Ram은 크림을 의미하고 kin은 작은 것을 뜻하는 형용사로 둘이 합쳐 '작은 크림'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조그만 그릇에 우유나 치즈 등을 넣고 요리하는 수프, 수플레, 푸딩 등의 요리를 의미하다가 나중에는 그런 요리를 하는 그릇을 지칭하는 단어로 자리잡았지요.
라바 케이크를 만들 때는 가장 조그만 크기의 라메킨이나 컵케이크 몰드를 사용해서 만드는 것이 일반적입니다만
집에 있는게 수프용 커다란 라메킨밖에 없는지라 미니 케이크 만든다고 생각하고 그냥 큼직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라메킨에 녹인 버터를 발라서 나중에 케이크가 잘 떨어지도록 하고, 설탕을 골고루 뿌린 다음 털어내서 바삭바삭한 캐러멜 껍질이 되도록 합니다.
예전에도 초콜렛 템퍼링이나 수비드 하면서 몇 번 언급한 바 있는 히팅 보울을 이용해서 버터와 초콜렛을 녹여줍니다.
불이나 수증기를 계속 신경써야 하는 중탕법과는 달리, 그냥 재료 넣어두고 잊어버려도 알아서 적정 온도를 계속 유지해주는 것이 장점입니다. 바닥이 타거나, 식어서 도로 굳어버리거나 하는 불상사를 막아주지요.
생각해보면 키친에이드 제품은 히팅 보울 뿐만 아니라 고기 그라인더나 파스타 기계나 소시지 메이커나 진짜 다 잘 써먹네요.
유일하게 외면받는 건 채소 슬라이서 뿐. 이건 그냥 칼로 써는 게 더 편하더라구요.
초콜렛과 버터는 히팅 보울에게 맡겨두고, 믹서기에 거품기를 붙여서 달걀 두 개에 노른자 세 개, 설탕을 넣고 휘핑을 시작합니다.
이런 류의 케이크는 달걀 크림을 얼마나 제대로 만드느냐가 성공의 관건인지라 반드시 믹서를 이용하곤 합니다.
손으로 직접 휘핑을 하면 죽어도 이런 거품이 안 나오는데, 기계로 하면 몇 분 지나지 않아 뽀얗고 걸쭉한 크림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기계 만세를 외칩니다.
초콜렛과 버터가 다 녹으면 잘 저어서 섞은 다음, 달걀 크림을 두세번에 걸쳐서 나누어 넣고 섞어줍니다.
다 섞이면 밀가루도 체쳐서 넣은 다음 멍울이 지지 않도록 잘 풀어서 섞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이렇게 만든 반죽을 그냥 라메킨에 넣고 구워주면 끝입니다.
애초에 라바 케이크가 발명된 계기가 뉴욕의 유명한 요리사인 장 조지(Jean-Georges Vongerichten)가 실수로 초콜렛 케익을 너무 일찍 꺼내면서 비롯되었다고 하니까요.
물론 프랑스 요리사 중에는 "퐁당 오 쇼콜라가 있는데 장 조지가 이 케이크의 창시자라니 말도 안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원래 요리라는 게 지역 향토 요리 수준으로 유명하지 않은 이상은 먼저 요리책이나 가게 메뉴에 올리는 사람이 원조 취급을 받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그보다는 '정말 장 조지가 실수로 케이크를 덜 익혔을까'라는 의문이 갑니다.
예전에 장 조지의 레스토랑 (https://blog.naver.com/40075km/220906060829)에서 식사를 한 경험에 미루어 보면, 그 정도 수준의 초일류 요리사가 케이크를 구으면서 의도치 않게 설익힐 확률이 얼마나 될까 싶거든요.
더 나은 맛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연구하다가 개발한 메뉴에 매력적인 에피소드를 덧붙이기 위한 밑작업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실수에서 비롯된 요리라고 하면 왠지 매력적이면서 정감이 가니까요.
하지만 라바 케이크하면 떠오르는 건 장 조지보다도 오히려 이 영화의 한 장면입니다.
요리 영화 중에서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군침을 절로 삼키게 만드는 악마의 영화, '아메리칸 셰프 (Chef, 2014)'에 등장하는 요리 중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 라바 케이크이기 때문입니다.
음식 비평가가 주인공의 라바 케이크를 먹고 비평하기를, "요리사가 겁이 많아서 설익혀야 하는(Under-cooked) 라바 케이크를 너무 익혀버리는 바람에 흘러내리는 듯한 그 특징을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여기에 열받은 주인공은 면전에 대고 라바 케이크를 손으로 움켜쥐며 "이건 녹은 거야! 녹은(molten)거라고!"라며 소리칩니다.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요리가 아니라 예전의 잘나가던 시절 레시피만 답습해야 하는 현실에서 벗어나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되지요.
영화에서는 워낙 빨리 지나가는 바람에 음식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저게 무슨 소리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원래 라바 케이크는 장 조지가 설익은 케이크를 서빙한데서 비롯되었듯이, 잘랐을 때 덜 익어서 액체 상태인 뜨거운 초콜렛 케이크 반죽이 용암처럼 흘러내리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서는 덜 익은 케이크 특유의 밀가루 맛을 싫어하는 경우도 있고, 설익은 달걀 반죽으로 인한 살모넬라 걱정을 하는 경우도 있지요.
그래서 몇몇 레시피에서는 굳힌 가나슈를 케이크 반죽 가운데 넣어서 굽는 방법을 이용합니다.
이렇게 하면 케이크를 완전히 익혀도 중심부의 가나슈가 녹으면서 똑같은 효과를 볼 수 있으니까요.
물론 초콜렛과 버터, 생크림을 섞은 가나슈를 만들고 이걸 냉장고에서 적절한 수준으로 식힌 다음 반죽에 넣어주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애써서 이렇게 '녹은' 라바 케이크를 만들어 놨더니 '너무 익었다'며 불평을 하니 셰프 입장에서는 열받을 수밖에 없는 거지요.
라메킨에 케이크 반죽을 절반쯤 붓고, 영화의 주인공 칼 캐스퍼를 떠올리며 굳힌 가나슈를 가운데 박은 다음, 반죽을 더 부어서 라메킨의 80% 정도를 채워줍니다.
라메킨을 테이블에 몇 번 탕탕 내리쳐서 거품을 빼 줍니다.
섭씨 220도 (화씨 425도)로 예열된 오븐에 반죽을 넣고 구워줍니다.
'설익은' 라바 케이크의 경우에는 13~15분 정도 굽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에 굽는 것은 '녹은' 라바 케이크인데다가 크기도 머핀 사이즈가 아니라 미니 케이크 사이즈로 두 배쯤 크기 때문에 25분을 구웠습니다.
너무 설익으면 틀에서 뺄 때 반죽이 완전히 무너져 버리고, 너무 익으면 라바 케이크가 아니라 그냥 초콜렛 케이크가 되기 때문에 상태를 유심히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케이크가 부풀면서 윗부분이 갈라지면 거의 완성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꺼내서 잠시 식혔다가 접시를 덮고 180도로 뒤집어서 조심스럽게 케이크를 빼내면 완성입니다.
케이크 빼는 게 번거로우면 아예 오븐 요리가 가능한 유리 용기에 만들어서 스푼으로 떠 먹는 방법도 있지요.
너무 시간을 오래 지체하면 안쪽의 녹은 초콜렛이 케이크에 다 흡수되어 버리므로 재빨리 슈가파우더를 뿌리고 과일 절임을 얹어서 따뜻할 때 먹으면 됩니다.
한 조각 자르면 안쪽에서 녹은 초콜렛 가나슈가 용암처럼 천천히 흘러나옵니다.
스푼으로 떠서 먹어보면 아주 진한 핫 초콜렛을 마시는 기분입니다.
케이크는 겉부분은 설탕 코팅 덕에 과자처럼 바삭하고, 조금 안쪽은 스펀지 케이크 특유의 부드러움이 느껴지고, 그보다 더 안쪽은 초콜렛 용암에 젖어 촉촉한 느낌입니다.
맛만 따지고 보면 그냥 진한 맛의 초콜렛 케이크이지만, 녹아내리는 식감을 추가하면서 훨씬 더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는 고급스러운 요리로 진화했습니다.
겉보기에는 덜 익은 거나 녹은 거나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라바 케이크.
하지만 그 미세한 맛의 향상을 위해 굳이 번거로움을 감수하며 개선점을 궁리하는 요리사들이 있고,
또 그 전에는 실수에서 비롯된 산물을 무시하지 않고 맛보며 새로운 요리를 창조한 요리사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조그만 초콜렛 케이크 한 조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재능이 들어간 건지 새삼 실감하게 되네요.
말하자마자 위에 올라오다니;
웨인: (힘만 무식하게 쎈 흑수저 색히가...)
라바케이크하니 배트맨이랑 슈퍼맨이 식사를 하는데, 슈퍼맨이 라바케이크를 보더니 덜익은거같다며 히트빔을 쏴주던게 생각나네요 ㅋㅋㅋ
그게 좀 애매한게, 장 조지가 라바케이크를 선보인 게 1987년입니다. 그런데 퐁당 오 쇼콜라가 그 이전에 개발되어 공식적으로 판매되었는지가 불분명하거든요. 몇몇 프렌치 요리사들이 퐁당 오 쇼콜라가 1987년 이전에도 있었다고는 하는데 증거가 불분명해서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있고, 무엇보다 라바 케이크를 널리 알린 게 장 조지라서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글 항상 잘보고있어요. 요리도 요리지만 플레이팅이 진짜 멋져요 항상...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놓을 게 없어서 휑해보일때 이렇게 말하면 뭔가 있어보인다더라구요.
해외셰프 관련 다큐 보다가 굳힌 가나슈 레시피 개발(했다고 주장)한 레스토랑 이야기를 봤는데 가나슈 가운데 딱 맞춰서 넣는 것도 일이더군요. 디저트 파트 다 들러 붙어서 반죽 붓고 가운데 딱 맞춰서 넣고 마저 다 채우다 비뚤어지면 셰프 표정 굳고..ㅋ 오늘도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그게 왜 그러냐면 가나슈가 정중앙에 들어가지 않으면 나중에 굽다가 옆구리로 터져 나와서 그렇습니다. ㅎㅎ 옆구리는 김밥만 터지는게 아니더라구요. 저도 터뜨려 먹은 적 있지요.
퐁당쇼콜라랑 뭔차인지 알수가없네요 ㅋㅋ 달걀이 걱정이면 차라리 시럽이나 중탕으로 달걀을 살균하는 방법이 더나아보이기도하고,,, 초콜릿베이킹은 어떻게 해도 맛있다는게 참 좋아요
퐁당 오 쇼콜라랑 똑같습니다. 그래서 본문에도 써놨지만 프렌치 요리사들 중에 장조지보다 퐁당 오 쇼콜라가 먼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지요.
그냥 저기서 퐁당오쇼콜라만들어놓고 라바케익이라고 이름붙여놓고 우리가개발했음! 하는거란건데.... 좀 이해안가는행동이긴하네요.
그게 좀 애매한게, 장 조지가 라바케이크를 선보인 게 1987년입니다. 그런데 퐁당 오 쇼콜라가 그 이전에 개발되어 공식적으로 판매되었는지가 불분명하거든요. 몇몇 프렌치 요리사들이 퐁당 오 쇼콜라가 1987년 이전에도 있었다고는 하는데 증거가 불분명해서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있고, 무엇보다 라바 케이크를 널리 알린 게 장 조지라서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아... 논란의 여지가있군요
요리의 유래를 찾는게 힘든 이유지요. 메뉴판이나 레시피북이 가장 확실한 증거물인데 그런 게 없으면 지방 향토요리 수준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상은 먼저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이깁니다.그래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유명 요리들이 꽤 많지요.
라바케이크라고해서 애니메이션 라바인줄...ㅋ 저 위에 빨간 데코가 캐릭터 레드같네요 ㅎ 오늘도 잘보앗습니다^^
저도 라바 케이크 레시피 검색하는데 굼벵이 라바 케이크가 막 튀어낭오더군요 ㅎㅎ
달걀 두개에 노른자 세개면 총 흰자 2개분 노른자 5개분...이라는건가요? 노른자가 흰자의 두배 넘개 들어가는 비율이라는 뜻이에요? 매번 잘 보고 몇몇 요리는 실제로 따라하는 중에 또 비교적 재료가 쉬운 요리길래 따라하려고 합니다 ㅎㅎ
흰자 두개+노른자 5개입니다. 오븐에서 빼는 타이밍만 잘 맞추면 아주 간단한 요리입니다.
마스터셰프 us 시즌3에서 탈락미션으로 만들길래 저는 브라우니 계열인 줄 알았는데 다른 음식이었군요.
과일이 오렌지나 귤모양인데 빨강색이네여 디저트가 너무 이쁘게됬어요 저녁먹었는데도 먼가 막 땡기네요
자몽인듯 한데... 정확한건 지구한바퀴님이 알듯
블러드오렌지 아닐까 싶네요. 자몽보다는 색깔이 더 빨간게...
이쁘네요....이것말고는 할 말을 못찾겠네요
아일톤 세나
웨인: (힘만 무식하게 쎈 흑수저 색히가...)
촌구석 스몰빌 촌놈 새-기 ㅉㅉ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라바케이크하니 배트맨이랑 슈퍼맨이 식사를 하는데, 슈퍼맨이 라바케이크를 보더니 덜익은거같다며 히트빔을 쏴주던게 생각나네요 ㅋㅋㅋ
피곤한 느와르
말하자마자 위에 올라오다니;
아메리칸쉐프 진짜 재밌게 봤는데 케이크를 손으로 움켜쥐면서 소리치는 장면이 완전 인상적... 저 주연배우가 감독이고 또 아이언맨의 감독이자 배우로 출연했던 사람이더군요
존 파브로지요 아이언맨 1,2를 만든 지금의 마블을 있게 만든 배우겸 감독인데 아메리칸쉐프 오늘 봐야겠네요 ㅎ
철인이랑 거미 홈커밍의 해피 아님? 감독도 했었음????
진짜네 ㅋ
녹은 덜익은 보고 딱 쉐프 생각하면서 들어왔더니 뙇
라바케이크....ㅠㅠ오븐만 있다면 도전해보고싶네요 진짜.
식견이란 이런거겠지..항상 감탄하고 갑니다
수고하십니다. 예전에 글 올린 것 중에 안심 수비드 스테이크 글이 있던데, 혹시 거기에 첫번째 사진에 나온 향신료 트레이 세트 구매 링크 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이제 막 이사했는데 여러가지 구비하려면 이곳저곳 다니며 신경써야 하는데 글쓴이분이 가지고 계신 트레이 세트가 굉장히 편리하고 유용할 것 같아서 가장 최신 글에 댓글 달아봅니다. 쪽지든 답글이든 편하신데로 알려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그거 갖고싶어하는 분들이 참 많은데요... 아마존에서 구입했던 건데 이제는 단종되어버렸습니다. 저도 내용물만 리필해가며 쓰고 있지요 ㅎㅎ
아마존 너무해 ㅠㅠㅠ 그래도 감사합니다. 모델명이라도 알고 싶은데 걍 spice shelf이렇게 검색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