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요리계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것이 건강과 환경입니다.
예전에는 무조건 맛있는 것만 추구했다면, 지금은 몸에 좋을 뿐만 아니라 자연 환경에도 무리가 가지 않는 방식으로 먹거리를 만드는 것이 새로운 과제로 여겨지고 있지요.
그 중에서도 고기, 특히 소고기는 에너지 소모량에 있어서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사료를 먹였을 때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의 비율을 FCR (Feed Conversion Ratio: 먹이변환비율)이라고 하는데, 1의 물고기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먹이는 2.3인 반면 1의 소고기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먹이는 31.7에 달합니다.
게다가 이윤을 극대화 하기 위해서 좁은 공간에 가둬놓고 유전자 조작 옥수수를 퍼먹여서 키우기가 일수.
그래서 인근 농장을 방문해서 유기농 목장은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조사하는 수업 과제도 나오곤 합니다.
유기농, 방목형 동물농장을 견학하고 구입한 소고기와 달걀, 우유.
넓은 풀밭에서 마음대로 뛰놀며 자라는 소와 닭들이 만들어 낸 식품은 확실히 다릅니다.
달걀은 샐러드로 만들어서 수업시간에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려고 했는데, 이미 색깔부터가 확연히 다른지라 그냥 시음회를 해야 했을 정도. 노른자 색깔이 노란색이 아니라 주황색에 가깝게 짙은 색을 띕니다.
우유는 난생 처음 마셔 본 생우유. 우리가 흔히 먹는 우유는 살균 및 균일화 과정을 거치는데, 이건 그런 과정 없이 소에서 짜낸 우유를 그대로 담았습니다. 마시는 순간 넓은 초원의 이미지가 훅 하고 들어옵니다. 우유에서 풀맛이 나는게 아니라 자연의 풍미가 느껴지는데,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네요. 일반 우유에 비해 뒷맛이 굉장히 오래 가는 것도 특징. 아직 들판에 풀이 많이 남아있는 시기여서 다행이었네요. 겨울에 건초와 사료를 먹일 때는 우유 맛이 또 달라진다고 하니까요.
그리고 고기! 꽤 큼직한 고깃덩이가 대략 만 오천원 정도.
훨씬 더 저렴한 부위도 많지만 오래간만에 굽는 스테이크인 만큼 좀 비싼 포터하우스를 구입했습니다.
소 등심과 안심 사이로 뼈가 지나가는데, 보통은 자연스럽게 등심과 안심으로 분리해서 파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반면 두 부위를 동시에 맛볼 수 있게 뼈채로 잘라낸 것이 바로 티본 스테이크입니다. 잘라낸 뼈의 단면이 T 모양으로 생겼거든요.
그리고 티본 스테이크 중에서도 안심의 크기가 일정비율 이상 되는 스테이크를 포터하우스라고 합니다.
냉장고에서 꺼낸 후, 한 시간 정도 실온에 둬서 냉기가 빠지도록 합니다. 겉부분에 붙은 지방과 근막도 제거하구요.
후추와 로즈마리, 타임, 갈릭 파우더를 뿌려서 골고루 문질러 줍니다.
로즈마리는 향이 강하기 때문에 한 쪽 면에만 뿌렸다가 굽기 전에 대충 털어내는 것이 포인트.
소금은 미리 뿌려두면 삼투압 현상 때문에 육즙이 다 빠져나오니 굽기 직전에, 혹은 구우면서 뿌리는 것이 좋습니다.
스테이크 굽는 방법도 수없이 많고, 때에 따라서는 올리브유나 마리네이드 재료를 바르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좀 와일드하게 소고기 본연의 맛을 즐겨 볼 생각입니다.
무쇠 그릴팬을 충분히 달군 후 고기를 굽습니다.
고기를 구울 때 가장 어려운 점을 하나만 꼽는다면 바로 환기 잘되는 장소를 찾는 겁니다.
기름을 살짝 두른 팬에서 연기가 솟아오를 정도로 달궈야 하고, 그 뒤로 고기를 굽는 과정에서도 엄청난 양의 연기가 나오거든요.
예전 집에서는 스테이크 굽다가 화재 경보기를 두 번이나 울린 전적이 있기 때문에 포기해야만 했는데, 이번 집은 그래도 발코니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갑자기 눈이 오는 관계로 발코니에 나가서 굽지는 못하고, 대신 문 열어놓고 선풍기를 바깥쪽으로 튼 채로 구웠네요.
고기의 검게 그을린 자국을 그릴마크라고 하는데, 고기를 11시 방향으로 기울여서 굽다가 1시 방향으로 기울여서 구운 다음 뒤집으면 이렇게 예쁜 다이아몬드 자국이 납니다.
고기 옆면이 다 익을 정도까지 구운 다음, 원하는 익힘 정도에 맞춰서 예열된 오븐에 넣고 추가로 좀 더 가열합니다.
두꺼운 고기를 그릴만 갖고 구웠을 때는 표면이 좀 너무 타는 것 같더라구요.
다 구워진 고기는 잠시 레스팅을 합니다. 가열되면서 한쪽으로 몰렸던 육즙이 고기 전체에 골고루 퍼질 시간을 주는 거지요.
레스팅을 하는 동안 곁들이로 먹을 채소를 그릴에 마저 굽습니다. 양파와 가지, 애호박이 오늘의 곁들이 메뉴입니다.
고기를 양껏 먹으면서도 '난 건강한 메뉴를 먹었어'라고 자기 최면을 걸 수 있게 도와주는 중요한 음식이지요.
애호박이나 가지는 너무 오래 구워버리면 가운데 씨가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면서 빠질 수도 있으니 어지간히 익으면 먼저 빼주고,
양파는 푹 익혀야 단 맛이 나니 좀 더 오랬동안 구워줍니다.
완성된 포터하우스 스테이크.
왜 이 먹음직스러운 스테이크에 선술집(Porterhouse)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짐꾼(Porter)들이 즐겨 마시던 맥주를 팔던 술집이 포터하우스라고 불리기 시작하고, 이런 선술집에서 등심과 안심을 동시에 먹을 수 있는 스테이크를 팔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주장도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포터하우스는 꽤나 가격이 쎈 편이라 일용직 노동자들이 그렇게 쉽게 사먹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 외에는 포터라는 사람이 자기 이름을 딴 호텔을 운영하면서 그 호텔 레스토랑에서 이 스테이크를 팔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구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설은 유명한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이름을 붙였다는 주장입니다. 찰스 디킨스는 오하이오의 샌더스키 (Sandusky, Ohio)라는 조그만 도시에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그 지역의 선술집에서 처음으로 이 스테이크를 먹어보게 됩니다. 그 맛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던 나머지 뉴욕의 호텔에서도 이와 같은 스테이크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면서 "샌더스키의 포터하우스에서 맛볼 수 있는 바로 그 스테이크"라는 말을 하지요. 그리고 뉴욕의 호텔 주인은 약삭빠르게도 "찰스 디킨스가 좋아하는 스테이크, 포터하우스 스테이크!"라고 대대적으로 광고를 하며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고기를 뼈에서 분리한 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줍니다.
등심은 원하던 대로 미디엄 레어가 나왔는데, 안심은 훨씬 부드럽기 때문에 예상했던 미디엄 수준을 지나 거의 미디엄 웰던으로 구워졌네요. 이사와서 처음으로 스테이크 굽는거라 오븐 화력을 잘못 계산한 듯.
뭐 맛있으니 상관은 없지만 가게에서 파는 거였다면 까탈스러운 손님은 음식 돌려보내고도 남습니다. 통계적으로 봤을 때 제일 까다로운 손님이 미디엄 주문하는 손님이라나요. 미디엄 레어는 좀 덜 익어도 먹고, 미디엄 웰던은 좀 더 익어도 먹지만, 미디엄은 딱 그 수준에 맞춰서 익히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고기는 진짜 맛있습니다. 그런데 이 맛있는게 일반적으로 '맛있는 소고기'의 느낌과는 다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고기의 맛은 고기 사이에 박혀있는 기름, 즉 마블링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고기의 풍미와 더불어 부드러운 기름 맛을 보며 '맛있다'고 느끼게 되지요.
반면에 이 소고기는 예전에 수비드 스테이크(https://blog.naver.com/40075km/220910475047) 만들면서도 언급한 적 있는, 풀을 중점적으로 먹은 그래스페드 소고기입니다. 마블링이 훨씬 적고 운동량이 많아 고기가 더 질기지만, 그 대신 소 본연의 고기맛이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섬세한 조리법보다는 호쾌하게 직화로 굽거나, 뜨거운 팬에 확 지져가며 구운 다음 별다른 소스 없이 소금과 후추만으로 우걱우걱 씹는 것이 더 잘 어울리는 듯 합니다. 한 조각 입에 넣고 씹으면 육즙이 터져나오는데, 이게 마블링에서 나온 기름이 아니라 고기에 베어있던 맛이라 생우유와 마찬가지로 초원의 풍미가 듬뿍 배어있습니다.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얇게 썬 고깃조각만 구워먹다가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스테이크를 먹으니 '아, 고기 잘 먹었다'라는 감탄이 저절로 나오네요.
장난아니네요..저도 무거운 소스보다는 스테이크 본연의 맛을 즐길수 있게, 소금, 후추, 그리고 레몬을 곁들여 먹는 걸 좋아합니다 ㅎㅎㅎ
주 정부에서 빡세게 검사한다더군요. 이게 대량으로 젖소 키우는 곳에서는 불가능하겠다 싶은게, 소를 깨끗하게 관리하는게 엄청 노가다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방문한 농장에는 아예 착유 전에 소를 샤워시키는 부스가 따로 있음 ㅎㅎ
슈퍼 팔다가 배탈나면 미국인들이 환장하는 고소쇼... 가 일어나니...
작성자분 글 찾다가 키친에이드로 하시는거 찾아봤습니다 두께는 2.5센치정도 중량은 500~600정도되네요 미디움이나 미디움웰던 생각하고있어요 귀한자료인거같은데 혹시 공유가능하시면 부탁드릴께요^^
그래서 뉴욕에서도 생우유 판매 허가 받은 농장이 그닥 많지 않지요. 그나마도 슈퍼마켓에 내다 파는 건 안되고 농장에서 직접 구입하는 것만 가능합니다.
장난아니네요..저도 무거운 소스보다는 스테이크 본연의 맛을 즐길수 있게, 소금, 후추, 그리고 레몬을 곁들여 먹는 걸 좋아합니다 ㅎㅎㅎ
익히고 나서 썰어진 모습이 참 맛있어 보이네요.
언제나 이런 맛있는글 감사합니다!
최고... 님 게시물 중에서도 역대급으로 군침 흐르네요
요즘 lidl 이라는 저렴이 마켓에서도 유기농 그래스페드 스테이크를 사 먹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단 8온스라는 적은 양이라서 인당 두개는 구워야 해요. 항상 좋은 글과 사진, 잘 보고 있습니다!
8온스면 딱 레스토랑 1인분이네요 ㅎㅎ 한 접시에 올라가는게 고기나 생선 8온스, 채소 4온스, 탄수화물 4온스 비율로 구성하는게 기본이더라구요. 여기에 수프나 샐러드, 디저트 포함하면 기본 3코스 ㅎㅎ
소고기 소비도 온실가스 증가에 영향이 있다고 하던데..맛을 떠나 효율성 면에서는 진짜 꽤 별로네요. 이러다가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되는게 아닐까 걱정입니다 ㅎㅎ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저런 고기를 저 가격에 먹는다면 맨날 먹을거 같은데
좋은 고기로 구운 스떼끼는 소금 후추 약간의허브만 있으면 충분하죠. 가끔 변화주고 싶으면 발사믹 식초 살짝 찍어먹기도 하고요
이번주말에 티본이나 토마호크 먹으려고하는데 국내산은 아무래도 마블링과 가격때문에 많이 먹는게 힘들더라구요 글에 수비드로도 해보셨다고 하셨는데 시간이랑 온도알수있을까요??작성글 찾아보려는데 너무 찾기가 힘드네요 ㅎㅎ
지난번에 했던 수비드는 그래스페드라서 그레인페드 고기와는 좀 다릅니다. 스테이크 종류, 두께 및 굽기 정도별로 수비드 온도와 시간 적어놓은 자료를 갖고있는데 컴퓨터 어디에 박아놨는지 모르겠네요...-_-;;;
자 발굴 하시면 공유 요청드립니다... 수비드 머신 사놓고 박스를 못까고 있네요..ㅎㅎ
40075km
작성자분 글 찾다가 키친에이드로 하시는거 찾아봤습니다 두께는 2.5센치정도 중량은 500~600정도되네요 미디움이나 미디움웰던 생각하고있어요 귀한자료인거같은데 혹시 공유가능하시면 부탁드릴께요^^
흠.. 미디엄이 까탈스러운건가요? 제 경우에는 월던이나 레어를 발음하면 거의 못알아 듣거나 반대로 알아먹어서 미디엄으로만 시키는데 말이지요.. (먼산)
스테이크 굽기 정도에 민감한 사람들이 미디엄에 제일 많이 몰려있다더라구요. 근데 진짜 맛있게 만들기 제일 힘든 건 웰던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삭제된 댓글입니다.
무알콜알콜
엄밀히 따지자면 짝퉁 그릴입죠. 진정한 그릴은 역시 숯불 피워놓고 굽는 건데...ㅠ_ㅠ
무알콜알콜
사실 스테이크는 그릴에 굽는건 별로 좋지 않습니다. 크러스트가 제대로 형성이 안되서. 저런 그릴마크 무쇠팬은 멋을 위해 맛을 희생하는 굽기 방식이죠. 멋이냐 맛 이냐에서 맛을 선택해 구우려면 집에 있는 일반 후라이팬이 더 낫습니다.
츄르릅 츄릅 질질.....(이 이상의 표현이 필요없네요)
살균안한 우유 마실수 있는곳이 있군요 그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뉴욕에서도 생우유 판매 허가 받은 농장이 그닥 많지 않지요. 그나마도 슈퍼마켓에 내다 파는 건 안되고 농장에서 직접 구입하는 것만 가능합니다.
40075km
슈퍼 팔다가 배탈나면 미국인들이 환장하는 고소쇼... 가 일어나니...
우유 살균 안하고 마시면 위험하지 않나요?
주 정부에서 빡세게 검사한다더군요. 이게 대량으로 젖소 키우는 곳에서는 불가능하겠다 싶은게, 소를 깨끗하게 관리하는게 엄청 노가다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방문한 농장에는 아예 착유 전에 소를 샤워시키는 부스가 따로 있음 ㅎㅎ
대부분 현장에서 짜자 마자 즉시 마시는 걸로 자기책임화... 가 되있죠. 문제는 저 갓 짠 우유가 레알.... 강철의 연금술사 작가인 소여사가 아들에게 갓 짠 우유 먹이고 의기양양해 하는 만화도 있죠.
돈 내고 사먹고 싶을 정도네요...ㅎㄷㄷㄷ
고기는 어디서 구매하셨나요 ^^?
맨 처음 사진의 유기농 목장에서 구입했습니다 ㅎㅎ
군대에서 처음 먹어 본 티본에 꽂혀서 아직도 스테이크는 저게 제일 좋아요... 너무나 맛있어 보여요...
인터넷, 유튜브들 보니 고기에 소금 뿌리고 45분정도 놔두던 데 그 방법도 맞는건가요?
네, 결국 고기 굽는 방법이니까요. 사람마다 다 다른 입맛을 맞추려고 굽는 법도 다 다르지요 ㅎㅎ
답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