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마지막 개기일식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어두워질수록 나는 자꾸만 보이는 것이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만 인화되는 사랑
―어둠을 기다리며,
38년 만에 한번 온다는 개기일식을 몽고쯤에서 볼 수
있을 거라네, 우리나라에선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개
기일식을 볼 수 있을 거라네, 나는 사라지는 태양을 보려
고 아침 일찍 일어나 하늘만 보고 있네, 일요일이라 늦잠
을 자고 있을 그 시간에 나는 태양이 없는 그 순간의, 영
원의 암흑을 보기 위하여 잠을 설친 채 아침부터 창밖을
보네, 꿈꾸는 것들의 눈동잠저 가려버릴, 조그만 달의
반란에 동참하기 위하여 나는 시린 눈을 들어 자꾸만 하
늘을 바라보고 있네
―그런데 왜 아무리 기다려도 어두워지지 않는 걸까
―꿈,
이상한 것이다, 나는 살아 있는 것이다, 꿈꾸지 않는데
도 나는 살아 있는 것이다, 더 이상 꿈꿀 수 없는데도 나
는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어두운 대낮의 벌판을 가로질러 말을 탄
몽고의 유목민들은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어디를
꿈꾸고 있는 것일까, 지금은 꿈도 어두워질 폐허 무렵
―어두워질 무렵,
바람이 불 때마다 몇 사람이 죽어갔네, 꽃들은 피었다
지고 다시 피어나기도 했지만, 푸른 하늘 아래 몇몇은 여
전히 빈혈에 시달렸고 빈혈이 끝나기도 전에 자동차들은
해안 도로를 벗어나 벼랑 아래로 추락해도, 현기증 나는 윤회
의 삶은 끝나지 않았네, 가끔씩, 정말로 가끔씩 사랑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사랑은 산수유 나뭇가지 위에 열
리는 초록 물고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자꾸만 어
지럽고 현기증이 났네, 노란 꽃망울을 터뜨린 산수유나무
아래 서면 보이지 않아도 산수유 몸속의 붉은 열매는 아
름다웠지만, 문장 속의 생애는 끝나지 않고 생애 속의 문
장은 여전히 읽혀지지 않았네―ㅆㅂ, 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단 말이야, 나무들, 바람이 불 때마다 온몸을 흔
들어 고독으로 가고자 하였으나 나무들, 바람이 불지 않
을 떄도 선 채로 그 자리에서 딱딱한 울음이 되고자 하였
으나, 내 고통의 시선은 나무들의 혈관을 타고 자꾸만 나
무들도 모르는 먼 곳으로 흘러만 갔네, 태양도 없는 사막
의 고독을 지나서, 물방울도 없는 바다의 울음을 지나서
―네 고통의 시선이 다하는 날,
나는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외눈의 태양이여,
그대의 눈이 온전히 감길 때
헛된 꿈도 사라지고
단 한번,
내 짧았던 사랑도 완성되리
그대 드디어 눈을 감는구나
환한 봄날,
햇살은 가루약처럼 쏟아져
風景의 한쪽을 더욱 환하게 하는데
나는 저기 저,
오랜 두통의 마루를 지나
태양의 눈을 감기러 가는 달
만삼천팔백칠십 개의 내가
그대에게로 가면, 가서
그대 깊은 품속에 안기게 되면
그대 드디어,
두 눈동자에 등불을 끄고
고요히 침묵하겠구나
내 생애 마지막 일식에 대하여
그 짧은 사랑에 대하여
박정대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민음의 시 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