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김인희
출판사 - 푸른역사
쪽수 - 368쪽
가격 - 20,000원 (정가)
치우, 왜 역사병인가?
역사의 과잉은
인류를 파멸로 이끌 것이다
왜 지금 치우인가
10월 1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夢을 강조했다. 패권주의를 경계하긴 했지만 이후 정치,경제,군사면에서 중국의 입김이 강화될 것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다. 기억도 생생한 ‘동북공정’에서 보듯 문화면에서도 중화주의의 공세는 드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동북아에서 주목되는 ‘인물’이 치우蚩尤다. 중국은 염제, 황제와 더불어 치우를 민족의 조상으로 숭배하는 삼조三祖문화론을 내세우며, 중국 내 먀오족 역시 치우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1990년대 들어 한국에서도 유사역사학계를 중심으로 치우 열풍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화제를 모았던 대표팀 응원단 ‘붉은악마’의 마스코트가 치우를 형상화한 것이라거나 지난 5월 조폐공사에서 ‘치우천왕 은메달’을 제작, 판매한 것이 좋은 예다.
중국 서주西周시대에나 문헌상에 등장하는 치우는, 한족을 대표하며 정의를 상징하는 황제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패하는 악의 상징이었다. 한데 20세기 후반에 갑작스레 역사적 기원을 달리하는 중화민족과 먀오족, 한국의 영웅적 조상으로 모셔지게 되었다. 치우는 신화전설상의 인물이지만 이는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치우는 과연 누구의 조상일까 하는 의문은 당연히 역사적 논구論究의 대상이 된다. 그 경로와 배경은 물론 파급 효과와 의미, 정치적 속내까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자국 내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동원하려 해서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해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원 지역이 고대 한국인의 영토였다는 등 ‘화려한 부활’을 꾀하는 논거로 치우가 동이족으로 한국인의 조상이었다는 주장을 펴는 국내 유사역사학계의 주장이 자칫 중국 측 논리에 휘말릴 우려가 있기도 하다.
니체는 역사를 지나치게 진지하게 생각하는 질병을 ‘역사병’이라 이름 짓고 이것이 지나치면 인간이든 민족이든 문화든 마침내 파멸한다고 경고했다. 이제 치우라는 이름의 ‘역사병’에 대해 그 원인과 경과, 치유책을 살펴봐야 할 때다. 늦기 전에.
이 책의 특징
1) 치우에 관한 제대로 된 사서
춘추시대부터 청나라까지 중국 측 문헌상 등장하는 치우의 모습을 시대별로 고찰했다. 춘추시대 문헌에서는 황제黃帝가 아닌 황제皇帝와 전쟁을 치르며, 전국시대 문헌에서는 황제黃帝와 기주에서 전쟁을 하고 한나라에 이르면 탁록에서 황제와 전쟁을 벌인다. 당송시대에는 소금호수에서 관우와 전쟁을 벌이는 이야기 등 다양한 모습의 치우를 보여준다.
2) 전문서의 깊이에 백과사전의 방대함
다양한 관련 사료를 꼼꼼하게 살폈다. 갑골문의 해석을 통해 치우나 황제의 원뜻 등 일러주는가 하면 주나라 소왕이 왜 치우의 근거지인 남방 정벌에 나섰는지 등 지은이의 전공인 언어인류학은 물론 고고학 성과까지 동원해 전문적으로 파헤쳤다. 여기에 이하동서설이나 1940년대 쉬쉬셩徐旭生의 치우동이족설의 영향 등 20세기 중국 학계의 연구 흐름까지 섭렵했다.
3) 사료 연구에 더해진 생생한 현장답사
접하기 힘든 고문헌의 번역, 소개에 그친 게 아니다. 역사서로는 드물게 현상답사를 통해 생동감을 더했다. 2013년 타이완에서 열린 유심성교의 ‘중화민족연합제조대전’ 참관이나 2012년 산시성 윈청시에 있는, ‘치우의 피’로 만들어졌다는 소금호수 답사기를 보면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를 보듯 생생하다. 2013년 치우와 황제가 탁록대전을 치렀다고 알려진 허베이성 줘루현 답사기도 마찬가지다.
4) 한국 중국 먀오족 포괄
국내 저자의 연구서로는 드물게 먀오족의 역사를 뒤져내, 이들이 왜, 어떻게 치우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삼았는지 서술했다. 먀오족 역사서술 과정을 살피는 것은 물론 현지인들과의 면담을 통해 먀오족의 속내와 배경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먀오족이 치우를 조상으로 내세워 당당히 중국의 중심민족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된 과정을 다뤘다.
5) 유사역사학에 대한 엄밀한 비판
국내 유사학계에서 일고 있는 치우 열풍, 즉 "치우는 동이족이고 한국인도 동이족"이라는 주장의 허구성을 엄밀하게, 실증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치우 이미지의 원형이라는 신라 귀면와가 중국과 일본에도 존재한다든가 황제와 치우의 전쟁을 다룬 [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치우가 실존인물이라 주장하면서 치우가 패했다는 사실은 외면하는 등 고문헌 자료 중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취했다는 사실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치우 열풍 비판과 아울러 그것이 갖는 정치,문화적 함의를 경계하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주요 내용
전통적인 인식에 의하면 치우는 묘민 집단에 속하며 황제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패했다고 한다. 중국에서 황제는 한족의 제왕으로 선과 정의를 대표하며, 치우는 이민족 군주로 악과 부정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은 치우를 중화민족의 3대 조상 중의 한 명이라며 대규모 사당을 짓고 황제, 염제와 함께 성대한 제전을 거행하기 시작했다. 먀오족 또한 치우가 자신들의 조상이라며 곳곳에 대규모의 사당을 짓고 제전을 거행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1990년대 말부터 재야사학자를 중심으로 치우가 한국인의 조상이라는 설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신민족주의가 등장한 정치적 배경
이 같은 사태는 1990년대 초부터 등장한 중국의 신민족주의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 중국 공산당은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이탈하려는 민심을 결집하기 위하여 1994년 ‘애국주의교육’을 본격적으로 실시했다.
1990년대 초반 이후 중국 사회에 등장한 민족주의는 근대 민족주의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신민족주의라 부르기로 한다. 근대 민족주의는 청나라가 멸망하게 된 것이 무능과 부정부패라고 보았기 때문에 전통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었으나, 신민족주의는 중국의 위대한 전통문화를 계승하여 과거의 중화질서를 회복하자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민족주의는 어떠한 사상과 결합하느냐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근대 민족주의가 민족의 해방이라는 염원과 결합하여 저항적 성격을 띠었다면, 신민족주의는 중화주의와 결합하여 천하주의적 민족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애국주의교육은 바로 신민족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었으며, 그 핵심 내용은 염제와 황제를 중심으로 중화민족을 결집시키는 것이었다.
각자 맘 내키는 대로 쓰는 역사, 심사心史
민족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위대한 조상을 창조하여 국민을 어떻게 단합시키는가가 중요하다. 공산당의 주도 아래 관변학자들은 "중화민족은 모두 염제와 황제의 후손이다"라고 주장하며, 곳곳에 대형 사당을 짓고 성대한 제전을 거행했다.
그러나 먀오족은 "우리는 중화민족이기는 하지만 염제와 황제의 후손은 아니다"라며 저항했다. 중국 정부는 "마음이 떠나려 한다"는 먀오족의 마음을 잡기 위하여 치우 또한 중화민족의 조상임을 인정하고 허베이성 줘루현에 중화삼조당을 지었다.
한국의 경우 위서로 알려진 [규원사화]나 [환단고기]에서 환웅천왕 이전에 치우천왕이 존재한 것으로 나와 있으나 치우를 본격적으로 한국인의 조상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말이다. 한국 학자들은 치우는 동이족으로 한국인의 조상이라며 중화삼조당을 지은 것이 동북공정의 일환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같이 치우가 세 민족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각자 마음 내키는 대로 심사를 썼기 때문이다. 심사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쓰는 역사를 말한다. 심사는 과거의 기억 중에 유리한 기억은 강화하고, 불리한 기억은 망각함으로써 가능했다.
그러나 각자 맘 내키는 대로 쓴 심사가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세계인들로부터 공인된 역사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찻잔 안의 태풍이오, 혼자 읽는 역사일 뿐이다.
동아시아는 현재 역사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중국의 신민족주의는 중화질서를 재건하겠다는 원대한 목표 아래 신화시대를 역사시대화하는 중화문명탐원공정, 하상주단대공정을 실시했으며, 한국 고대사와 긴밀한 관련이 있는 동북공정도 실시한 바 있다. 한국에서도 재야학자들을 중심으로 위대한 고대사는 미래의 원동력이라며 고대 중국의 중원과 동북지역의 주역이 한국인임을 주장하고 나섰다.
역사과잉을 극복하려면
치우는 신화전설상의 인물일 뿐이다. 치우가 생존했다고 하는 기원전 3,000년경은 신석기시대 말기로 국가가 성립되지 않았다. 따라서 치우를 실존했던 인물로 상정하고 서로 자신의 조상이라 주장하는 것은 역사 과잉의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치우에게 지나치게 역사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중국 정부와 먀오족이 대립했다. 타이완의 유심성교는 치우를 이용하여 한국인을 중화민족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
역사과잉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치가 역사를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민족주의를 이용하여 정부에 비판적인 견해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 중국의 신민족주의는 정치적 목적에서 출발했고 이것이 먀오족과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쳐 민족주의의 강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양국의 학자들은 자기비판적 시각에서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 타국의 문제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지만 자국의 역사 연구 태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오히려 민족주의적 서술을 하고 있다. 자국 역사학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동일한 방식으로 타국 역사학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지적해야 한다.
목 차
머리말
1장 중국은 왜 한국인이 치우의 후손이기를 바라는가
타이완에서 날아온 이메일 한 통
타이완의 유심성교
체육관에서 거행된 중화민족연합제조대전
귀곡자 계시로 한국의 역대 제왕도 제사
그들은 왜 한국인이 치우의 후손이기를 바라는가
치우는 누구의 조상인가
2장 청동 원료 확보를 위한 황제皇帝와 치우의 전쟁
-상나라에서 서주시대(기원전 1600~기원전 771)
갑골문에서 ‘치蚩’자와 ‘우尤’자의 의미
치우에 관한 최초의 기록
서주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여형呂刑]
치우를 정벌한 황제皇帝는 주나라 소왕
창강 이남에 거주한 묘민과 치우
청동무기를 제작하여 스스로 천자가 된 치우
청동 원료의 확보를 위해 치우를 정벌한 황제皇帝
3장 황제黃帝와 치우의 기주대전-춘추시대(기원전 770~기원전 476)
전국시대 고문헌자료에 나타난 황제黃帝와 치우
황제皇帝를 대신하게 된 황제黃帝
어정비 명문을 통해 본 춘추시대 황제와 치우
황제와 치우의 전쟁
치우와 황제가 전쟁을 한 기주는 어디인가
패권을 둘러싼 중원 국가와 초나라의 대결, 기주대전
4장 화이변경華夷邊境의 확대와 탁록대전-한나라시대(기원전 202~220)
한나라시대 치우 관련 자료
한나라의 성립과 대일통 사상의 확립
중국 제왕의 시조가 된 황제
화이변경의 확대와 탁록대전
정의가 사악함을 이긴 전쟁
전쟁신으로 다시 부활한 치우
5장 소금호수에서 벌어진 치우와 관우의 전쟁-당나라에서 송나라시대(618~1279)
치우의 피를 찾아서
인류의 생존과 소금
염지의 소금 개발과 번성 그리고 쇠락
염지에서 벌어진 치우와 관우의 전쟁
황제를 넘어, 모든 악의 근원이 된 치우
6장 혁명파의 황제 숭배와 치우의 재소환-청나라 말에서 민국 초기(1800~1930)
자만이 불러온 화
청나라의 몰락
몰락하는 제국을 ‘한족’의 발명으로 구원하리라
한족의 구심점 ‘황제’의 발명
‘황제’의 타자로 다시 소환되는 치우
7장 이하동서설과 치우 동이족설의 등장-(1940년대~현재)
치우는 과연 동이족인가
역사상 존재한 두 개의 동이족
치우 동이족설은 고고학적으로 근거가 있는가
문헌자료의 자의적 선택과 해석에 의한 왜곡
중국 각지에 분포하는 치우 유적
산둥성 화상석의 괴수는 치우인가
이하동서설과 치우 동이족설의 등장
8장 치우를 이용한 먀오족의 고대사 만들기-(1980년대~현재)
[먀오족간사]의 발행과 치우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
먀오족 지식인의 치우 조상 만들기
먀오족은 동이족인가
일반 먀오족은 치우가 조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황제 후손들의 선공, 염황열炎黃熱
염황열에 맞불을 놓은 치우열蚩尤熱
먀오족을 단합시킬 영웅이 필요하다
9장 중화민족 만들기와 중화삼조당 건립-(1990년대~현재)
탁록대전의 전장 줘루현을 찾아서
삼조문화론의 등장과정
학자들에 의한 삼조문화론 이론화
과정
삼조문화론의 허구성
삼조문화론이 등장한 정치적 배경
전설이 역사가 되다
10장 한국의 치우 연구와 조상 만들기-(1990년대 말~현재)
한국 학자들의 치우에 관한 연구 성과
애꾸눈 왕의 역사 읽기
황제가 없다면 치우도 없다
귀면와는 한국에만 있는가
귀면와는 치우가 아니다
중국의 논리에 갇힌 한국의 치우 연구
중화삼조당의 건립은 동북공정과 관련이 있는가
한국인은 중화민족인가
11장 중국, 먀오족, 한국의 신민족주의와 치우 역사병
각자 마음 내키는 대로 쓰는 심사心史
집단기억의 강화와 구조적 망각을 통한 역사 만들기
역사의 과잉은 인류를 파멸로 이끌 것이다
치우 역사병의 발병 원인
역사병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
부록: 중국 고문헌자료 원문과 번역
주석
역사과잉이라는 표현이 맘에 드네요 이런 지정학적 위치에서 독립국가를 이루고 있는 것만 해도 충분히 자랑스러워할만한 것을 제대로 읽으면 중학생이라도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있는 상고사 위서들을 빨면서까지 역사를 부풀리려는 사람들은 참...
한국에서 치우로 ㅈㄹ 터진건 환단고기라는 정신병 짭역사서가 문제였던걸로 기억하는데. 이런 책까지 나올정도면 파급력이 크긴 컸나보네요. +무책임하게 환단고기 내용 떄려박은 광개토태왕같은 국뽕 드라마도 한몫있겠고 말이죠
조사를 많이 했더라도 2차 창작을 위한 조사인거죠ㅋㅋ 이우혁도 환단고기, 조선상고사식의 견강부회를 상당히 좋아하는 사람이라 퇴마록 때부터 끼가 보였고, 치우천왕기 밑밥을 깔았죠
이 책에서 자국 역사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묘사하는 부부닝 있나요?
무엇보다 우리가 '민족주의'나 '애국심'이란 이름 하에..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애국심'이란 단어를 이용한 정치적 의도 아래서 역사를 과장하고 왜곡하고 미화하는 과정을 긍정하고 지지한다면.. 역으로 일본이나 중국이 같은 목적과 이유로 진행하고 있는 각종 역사 왜곡에 비판을 가할 수도 없고, 제재를 가할 명분조차도 얻을 수 없을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애국심'과 '민족'이란 명분으로 자신들의 논리를 펼치고 있는 유사 역사학계의 행태는 정작 타국의 동일한 역사왜곡에 대해서는 비판할 자격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고, 그들의 행동에 간접적으로 동조하거나 방기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반역적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치우로 ㅈㄹ 터진건 환단고기라는 정신병 짭역사서가 문제였던걸로 기억하는데. 이런 책까지 나올정도면 파급력이 크긴 컸나보네요. +무책임하게 환단고기 내용 떄려박은 광개토태왕같은 국뽕 드라마도 한몫있겠고 말이죠
역사과잉이라는 표현이 맘에 드네요 이런 지정학적 위치에서 독립국가를 이루고 있는 것만 해도 충분히 자랑스러워할만한 것을 제대로 읽으면 중학생이라도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있는 상고사 위서들을 빨면서까지 역사를 부풀리려는 사람들은 참...
역사학자가 자국역자 유리하게 쓰는건 어느나라나 비슷하지 않나요? 삼국지나 일본전국시대에는 열광하면서 자국 역사에 대해서는 국뽕이니 정신병이니 좀 불편하네요 물론 한단고기는 역사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김진명소설급정도 보면 맞지 않을까요?
CapKo
이 책에서 자국 역사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묘사하는 부부닝 있나요?
저 책이 언급하는건 역사를 조작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거지 소설처럼 재창작하는것과는 상관 없습니다. 환단고기도 걍 소설책처럼 본다면 1도 상관없겠죠
실제로서의 역사와 가상의 역사'소설'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고 접근법도 다르지요. 역사소설은 '창작'을 독자에게 전제하고 스토리를 전개하기 때문에 역사 인물의 미화, 작가의 편애, 소소한 고증 오류, 일정 정도의 역사왜곡이 용인되는 특성이 강합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역사가 소설에서 허용되는 부분을 인정한다면 더 이상 그것은 역사라고 볼 수 없겠지요. 그것은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창작물에 불과합니다. 문제는 '유사 역사학'은 이러한 부분들을 실질적인 역사로 정착시키려고 시도를 한다는 데 있는 거죠. '유사 과학'이나 '유사 역사학'과 같은 부류들의 특징은 특정한 목적을 정해두고 그 정해둔 목적에 맞게 근거 자료를 취사선택하고 논리를 전개하는 겁니다. 이는 단순히 역사학자가 사료에 있어 해석의 차이를 두는 것과는 크게 다릅니다. 역사학자의 시선에 따라 역사의 접근법이 달라질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확정되지 않은 가설의 검증과정이나 불분명한 사료의 해석 과정에서 나타나는 겁니다. 하지만 '유사 역사학'은 이미 목적, 그러니까 확답을 정해놓은 상태로 거기에 맞게 자료를 짜깁기하고 앞 뒤 논리를 끼워맞추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지요. 따라서 전혀 다른 가능성이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물론, 유사 역사학이나 유사 과학계에서는 역으로 주류 과학이나 역사학이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정작 내실을 따져보면 누구보다도 폐쇄적이고 다른 논의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이들입니다. 유사 과학이나 유사 역사학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다분히 정치사회적인 목적, 심하게는 권력 추구의 결과로 역사나 과학일 이용하는 부분입니다. 물론, 어떤 분야나 정치와 사회와 별개의 영역에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만, 어디까지나 본질은 자신의 분야에 철저히 둬야 합니다. 그러나 유사 역사학이나 유사 과학은 본질이 역사나 과학에 있지 않고, 자신들의 특수한 목적성. 다분히 정치적인 목적성에 근본을 두고 논의를 전개하는 본말전도의 성격을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 권력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논의의 양상이 다분히 달라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지금은 식민 사학의 잔재를 청산한다고 떠드는 유사 역사학계가 과거 독재 군부 시절에는 반공주의의 첨병으로서 상대 진영을 비판했던 시절이 있었음을 상기한다면 이들이 얼마나 권력 지향적이고 정치적인지 알 수 있지요.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논의를 전개하기 때문에 이들은 항상 논리나 근거 자료에 허점을 보입니다. 취사선택에 따라서 앞뒤 흐름이 맞지 않거나 모순되는 점이 늘어나기 때문이고. 목적이 분명한 만큼, 스펙트럼이 협소하며 근거 자료 역시 한정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이들은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찔렸을 경우, 보다 정확한 근거 자료와 논리를 펼치기 보다는 정치적 슬로건, 선동적 언사를 이용하기 십상입니다. (ex> 애국심이 없다. 공산주의자다 등) 더욱 어처구니 없는 것은 자료 근거의 부족성을 상대 진영이 수집해온 방대한 자료에서 끌어오거나 말꼬리 잡는 형식을 접근하기 때문에, 유사 역사학계는 우습게도 주류 역사학계에 굉장히 의존적이기도 합니다. 상대 진영이 기껏 만든 자료에 숟가락을 올려놓는다... 수준을 넘어서 상대방이 차린 밥에 똥칠하는 수준이니까요. 여튼 이 책이 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역사가 확고한 정치적인 목적과 의도에 따라 이현령비현령 식으로 끌려다니면, 단순한 왜곡을 넘어 국제적 비극을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CapKo
무엇보다 우리가 '민족주의'나 '애국심'이란 이름 하에..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애국심'이란 단어를 이용한 정치적 의도 아래서 역사를 과장하고 왜곡하고 미화하는 과정을 긍정하고 지지한다면.. 역으로 일본이나 중국이 같은 목적과 이유로 진행하고 있는 각종 역사 왜곡에 비판을 가할 수도 없고, 제재를 가할 명분조차도 얻을 수 없을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애국심'과 '민족'이란 명분으로 자신들의 논리를 펼치고 있는 유사 역사학계의 행태는 정작 타국의 동일한 역사왜곡에 대해서는 비판할 자격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고, 그들의 행동에 간접적으로 동조하거나 방기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반역적이기도 합니다.
이우혁이 쓴 치우천왕기는 생구라인거에요? 나름 조사 많이 했다고 그러던데
USSR만세
조사를 많이 했더라도 2차 창작을 위한 조사인거죠ㅋㅋ 이우혁도 환단고기, 조선상고사식의 견강부회를 상당히 좋아하는 사람이라 퇴마록 때부터 끼가 보였고, 치우천왕기 밑밥을 깔았죠
그리고 욕좀 먹더니 퇴마록 개정판부터는 싸그리 들어내는중
자기 보고 싶은 것만
아니 그전에 지금 중국 한족이라는 애들도 송때의 그 한족이 아녀.. 그 한족은 사라졌고 지금 중국애들은 선비족이 대부분.. 그리고 그 한족도 요순의 그 한족이 아녀.. 주나라 애들은 저기 중앙 아시아에서 넘어온 애들..
결론적으로 지금 한족은 황제의 자손이 아님. 그 자손을 밀어내고 하나라가 생겼고 그 자손을 또 밀어내고 상나라가 생겼고.. 서쪽에서 중앙아시아계가 밀고와서 주나라가 됨. 그리고 북쪽의 선비족이 강성해져서 지금의 한족을 흡수했고. 남쪽은 다른 민족과 합쳐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