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개발자 위한 ESTi 박진배의 게임 음악 이야기
LEE SANGWON / SENIOR REPORTER / RULIWEB
(petlabor@ruliweb.com)
2017 넥슨개발자컨퍼런스(NDC) 마지막 날인 27일, 판교에 위치한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작곡가 겸 유한회사 에스티메이트의 대표를
맡고 있는 박진배 대표의 강연이 진행되었다.
NDC
마지막 날 진행된 박진배 대표의 강연.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들에게는 'ESTi'라는 닉네임으로 더욱 잘 알려진 박진배 대표는 'ESTi의 게임 음악 이야기 - 테일즈위버, 마비노기 듀얼을 거쳐 데스티니 차일드까지'라는 주제로 약 한 시간 가량 재치있는 PPT 자료와 농담을 곁들여가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본인
스스로 이런 자기 소개를 만들기란 참 힘들 텐데, 이 어려운 걸 진배팍이 해냅니다.
먼저, 잊을만 하면 선언하는 습관적 은퇴 및
가업인 꽃집 겸업으로 인해 작곡가 이미지가 옅어지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서 실제로 이제는 시간이 없어서 음악을 취미로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트위터에서 김형태 시프트업 대표와의 대화가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왕관앵무 '앵벌이'를 돌보면서 꽃집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숨
쉬듯 은퇴와 번복을 반복해왔던 박진배 대표의 지난 나날.
"취미로
작곡을 하는 사람이다."
작곡 하나에 시간을 쏟기 힘들어진 이유라면 역시 다른 직업이
생겼기 때문이다. 박진배 대표는 이제는 작곡가라는 직책뿐만 아니라 'IP를 흥하게 할 수 있다면 뭐든지 만드는' 유한회사 에스티메이트의 대표이사가 된지 3년을 맞이했다. 게임 업계에 들어올 때는 작곡가로 시작했지만 이제 그의 작업 자체는 음악만으로 한정된 것만은 아니다.
시프트업
사무실 한편에 마련된 유한회사 에스티메이트.
에스티메이트의 대표이사가 되면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박진배 대표는 하나의 IP에서 사실 음악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은 아니며, 음악을 포함한 많은 요소를 신경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물론, 자신의 음악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이 본인의 원래 업무였고,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음악은 계속 취미로 할 것이기에 앞으로도 ESTi의 음악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계속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음악을 듣게 하는 것이 그동안 내가 해온 일이니까 꽃집을 하면서도 음악은
만들겠다."
지금까지 만들어온 음악에 대해 설명하던 박진배 대표는
많은 곡을 작곡해왔지만 아무 생각 없이 만든 빠삐놈이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아직까지도 박진배 하면 빠삐놈만 기억해주는 사람이 많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어차피 뜰 곡은 뜨고, 질 곡은 지기 때문에 앞으로도 즐거운 마음으로 부담감 없이 취미로 음악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고.
많은
곡을 만들었지만 어째서인지 사람들은 빠삐놈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농담이 많이 섞인 초반 강연을 지나 넥슨에서 진행하는 행사인 만큼 테일즈위버와 마비노기 듀얼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박진배 대표는 테일즈위버의 노래를 만들던 20대 초반에는 좋은 멜로디를 만들거나 편곡을 잘한 것이 아니라, 고민이 많았던 20대 초반의 기억과 체험을 테일즈위버의 음악으로 풀어냈다고 회고했다.
미래에
대해 걱정하던 박진배 대표(22세/휴학생).
당시에는 20대 초반의 고민 중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진로 문제와 병역 문제와 더불어 세상은 왜 내 뜻대로 풀리지 않을까, 집안에서는 왜 음악을 하는 것을 반대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인해 도망치듯 음악을 만들던 시기였고, 그 기록이 테일즈위버라는 게임에 남게 되면서 유저들이 공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풀이하기도 했다.
수많은
작품 중 굳이 테일즈위버와 마비노기 듀얼을 선택한 이유는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라서.
그러면서 얼마 전 일본에 충장을 갔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자신이 작업한 테일즈위버의 OST CD가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음에도 중고 매장에서 3배 가량의 프리미엄이 붙은 것을 보고 신기해 했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며 오래 서비스되는 게임 덕분에 음악의 생명력도 길어질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일본
출장 중에 우연히 발견한 테일즈위버의 OST. 상태 안 좋은 중고임에도 프리미엄이
3배나 붙어 있었던 상태.
게임 음악은 단순히 음악 자체만 듣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듣는 음악이기에
플레이하던 기억과 더불어 더욱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으며, 테일즈위버가 10년 넘게 서비스가
유지되었기에 이렇게 10년 넘게 음악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며 그동안 테일즈위버를 사랑해준 유저들과 서비스를 유지시켜준 넥슨에 감사를 전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테일즈위버의 음악.
테일즈위버에 이어 마비노기 듀얼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박진배 대표는 마비노기 듀얼을 역대급으로 까다로웠던 작업이었다고 회고했다. 까다로운 요구와 반복되는 리테이크 등 지금까지 수많은 게임 음악을 만들어 온 경험 중에서 마비노기
듀얼을 가장 작업하기 까다로웠던 경험으로 꼽았다.
마비노기
듀얼 당시 작업을 회상하는 박진배 대표.
하지만 리테이크나 결국 사용되지 못한 곡에 대해서 박진배 대표는 '까인 곡은 나쁜 곡이 아니다' 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단지
해당 음악이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았을 뿐이라 설명하면서 마비노기 듀얼에서 쓰이지 못한 곡이 지금은 데스티니 차일드에서 비슷한 상황에서 사용된다고 언급하며 음악이 있어야 할 곳을 잘 찾아내는 것 또한 작곡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자신의 음악론에 대해 밝혔다.
처음에는
마비노기 듀얼을 위해 만든 곡이 옷을 갈아입고 데스티니 차일드의 곡으로 사용되었다.
릿지 레이서와 아이돌 마스터 관련 음악을 만들기도 했던 박진배 대표는 이제 애니와 게임 등 미디어의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가 되었다고 현재 게임
및 애니메이션 업계에 대해 소개했다.
자신이 작곡한 작업물이 일본에서 오리콘 차트 2위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도 단순히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하나로 끝났다면 불가능했겠지만 게임이 애니메이션화되고 애니메이션이 게임화되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기에 큰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이돌
마스터의 노래도 만들었던 박진배 대표.
또한 과거에는 애니메이션 노래를 만든다는 것은 일본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애니메이션 업계는 포기하고 대신 게임 업계에 들어왔는데, 이제는 국산 모바일 게임과 관련된 애니메이션 PV 등을 통해 국내에서도
애니메이션을 위한 작곡이 활발해질 수 있었다고 달라진 시대에 대한 감상을 밝히기도
했다.
국내에서
애니메이션 관련 작업은 힘들 거 같아 게임 음악을 만들다 보니 어느새 애니메이션
음악이 되어 있더라.
평소 자신이 작곡한 음악이 거기서 거기라는 평가와 늘 비슷한 음악만 만든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자평하면서도 오랜 시간 한결 같은 음악을 만들면서 한결 같이 작업하다 보니 어느새 20년 지기 김형태 시프트업 대표와 함께 데스티니 차일드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일관성을 가진 것이 게임 업계에서 오래 일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밝혔다.
김형태
대표의 영문 표기의 상태가...??
데스티니 차일드 주제로 넘어가면서 박진배 대표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사운드
관련 작업을 외주로 맡기는 것보다는 사내 사운드 팀을 꾸려서 작업하는 것이 더
좋다는 이야기였다.
오랜 세월 외주 작업을 누구보다도 많이 해왔기에 외주 작업의 한계를
잘 파악하고 있으며, 데스티니 차일드 작업을 통해 알게 된, 사내 개발팀만이 가지는 장점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외주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리소스만 주고받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한
회사에서 다양한 포지션의 개발자와 함께 일해오면서 개발자로서 다양한 경험을 거친 사내 사운드 팀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
외주
작업을 많이 해봤기에 사내 사운드 팀의 중요성을 더욱 크게 느낄 수 있었다고.
또한 가능한 큰 업체에서 큰 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자신이 담당하지
않는 분야의 개발자를 다양하게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NC소프트라는 개발 업체에 들어갔기에 느낄 수 있었다면서 게임은 혼자 만드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자신과 같은 크리에이터를 되도록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에서 경험을 쌓을 것을 추천했다.
현재
박진배 대표가 데스티니 차일드 관련으로 하고 있는 업무.
강연이 끝나갈 무렵 박진배 대표는 에스티메이트에 대한 포부를 밝히기도했다. 릿지 레이서와 아이돌 마스터 시리즈의 음악 작업을 하면서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BNE) 직원들과 알게 되었는데, 그렇게
직원들과 인연이 생기면서 알게 된 BNE에 대해 흥미가 생기고 유한회사 에스티메이트 역시 백화점 옥상에 설치했던 목마 2개로 시작했던 남코와 같은 회사처럼
시작은 작지만 10년, 20년 뒤에는 더욱 큰 회사로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BNE
본사에 가면 당시의 목마를 이렇게 모형으로 재현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박진배 대표는 NDC 강연장에 있는 장래의 게임 개발자들이 다양한 경험을 겪은 후 10년, 20년 뒤에 에스티메이트에서
함께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현재 에스티메이트에 있는 직원 중 한 명도 과거 자신이 만들었던 디제이맥스의 곡 하나를 편곡한 계기로 알게 되었다고.
비록 자기만족에 가까운 작업이라 하더라도 혼자서만 하지 말고 자신과 김형태 대표처럼
누군가와 함께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연한
계기를 통해 알게 된 사람이 현재 같이 일하는 직원이 되었다고.
언젠가는
큰 회사가 되리란 포부를 밝히는 박진배 대표.
박진배
대표가 키우고 있는 왕관앵무. 이름은 앵벌이.
강연
전후로 꽃집 사장님의 사인을 받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지기도.
미래의
개발자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해보기를 권하며 강연을 마친 박진배 대표.
이상원 기자 petlabor@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