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에 대한 잡설
'암살자'에 대한 잡설
어제 JTBC뉴스룸에 허진호 감독 인터뷰가 나가는 것을 봤습니다.
문제의 '중정윗선'은 박정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더군요.
저도 그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문세광이 그렇게 물 흐르듯 기념식장에, 그것도 저격에 최적화된 자리에 앉을수있었던 것이 과연 '사라예보의 권총 든 학생'처럼 단순한 우연일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그 당시부터 있었을 것이고 실제로 구체적인 증언과 주장도 많았습니다.
89년 실제 방영된 광고입니다.
박정희 평전만화들에도 이 부분이 나옵니다. 워 이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사건 당시의 중정부장은 신직수였습니다. 군 법무관 출신이지만 일찌감치 군복벗고 검사로 캐리어 쌓은 사람으로 군부 정계 모두 세력기반이 없는 기술관료입니다. 정치적으로 야심을 가질만한 위인은 못되죠. 게다가 철저한 박정희 충성파였습니다.
문제는 그 전임자가 무려 '이후락'이었다는 것인데...
아시는 분도 많으실텐데 이후락은 원래 2공 장면내각의 정보기관장 출신입니다. 그 이후락이 정보기관장으로서 박정희가 쿠데타를 준비중이라는 보고를 장면총리에게 올렸지만 군의 속성을 모르는 장총리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다죠. 그바람에 5.16직후 이후락은 악질 반혁명분자로 잡혀갑니다. 다만 그 정보기관을 개조해서 중앙정보부를 만들려는 JP가 이후락을 설득해서 같은 편으로 전향시켰고 박정희와의 오월동주도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못 믿겠다는 분들은 다큐멘터리 드라마 제3공화국을 검색하셔서 초반부를 정주행 해보세요.
5.16이 실패했다면 우리나라 정보기관은 아마 일본 내각조사실처럼 조용한 기관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왜 박정희와 이후락의 관계가 오월동주냐면요, 박정희의 남로당 경력과 미국식 자유주의에 대한 거부감을 익히 알고 있던 미국은 끝까지 박정희와 JP를 믿지 않았고, 군사영어학교 출신 친미성형의 이후락을 일종의 감시자로서 정권핵심부로 들여보냈고, 박정희도 그것을 잘 말면서도 미국의 의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이후락을 중용하는, 전형적인 '적은 더 가까이'라는 관계였다고 합니다. 평양에 밀사로 다녀올 수 있었던 것도 미국이 신임할만한 인물이기 때문인 것이죠.
7.4남북공동성명의 수훈갑이되면서 이후락은 삼선개헌과 유신선포에 앞장선 빌런에서 민족통일의 문을 연 히어로로 바뀝니다. 이후락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죠. 하지만 운명의 롤러코스터는 급전직하했으니...
윤필용사건이 터지면서 박정희의 의심이 그에게 꽃히기 시작합니다. 원조 "형님 먼저 아우 먼저"는 JP가 아니라 HR이라는 소문이 장안에 퍼져있기도 했고요. 결국 이후락은 DJ납치라는 무리수를 두게되고 박정희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후락을 날렸지만 '김형욱 학습효과'로 이후락은 미리 기밀서류들을 복사해서 007가방에 싸들고 괌으로 탈출해 버립니다. 제2의 김형욱이 되는 것이 부담스러워진 박정희는 신변보장 각서를 써주고 귀국시킵니다. 그리고 국회의원도 시켜주고요.
아마 신직수부장의 중정에서도 이후락 라인이 일부 살아있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이후락이 '중정윗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이후락은 박정희의 적수가 될수있는 상황은 아니었으니까요...
DJ납치의 원래 계획은 그를 동해바다 한가운데에 던져넣어 상어밥으로 만들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소속 미상의 헬리콥터들이 중정 공작선 바로위를 따라오면서 라이트로 비추면서 당장이라도 헬리본들이 덥칠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바람에 바닷가 모래사장에 던져놓고 도망가는 것으로 끝났다고 하죠. 이 방해작전을 총 지휘한 것이 당시 CIA 한국지국장인 윌리엄 그래그였다고 합니다. 훗날 주한미국대사로서 DJ포위망인 3당합당을 후원함으로써 DJ에게 약주고 병주고 하는 기연을 이어갑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워싱턴과 서울 사이에 오랫동안 쌓여온 피로감과 상호불신이 임계점을 향해 급격하게 끓어오르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저의 추측이 도출됩니다.
과연 '중정윗선'은 자연인이었을까요?
훗날 10.26 직후에 보였던 김재규의 행적에 대한 야사 중에 백미는 이거였죠. 자기가 소집한 심야 비상국무회의에서의 폭탄선언.
"내 뒤에는 미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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