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고난 현재 진행형
프롤로그
눈을 떴다.
멍한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흔들고 정신을 차린다.
뭐지? 난 분명 내 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주변을 둘러보려던 중에 생전 맡아본 적 없는 기이한 냄세가 내 코 끝을 스친다.
"윽!?"
이건...? 피 냄세?
아니다 그것만이 아니다
이 비릿하면서도 기이한 냄세는 분명 피냄세 만은 아니었다.
코를 막으면서 주변을 둘러보고서 나는 겨우 이 냄세의 정체를 깨달았다.
"...이게 뭐야?"
지금 내가 있는 장소는 전장이었다.
정확히는 방금 교전이 끝난 전장이었다.
지면에 널부러진 분홍색괴 회백색의 무언가들을 흩뿌린 '인간이었던' 고깃덩어리들을 보고서야 난 이 기이한 냄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내장냄세..."
아니 내장만이 아니라...죽음의 냄세다.
인간의 몸안에 담겨있는 것 들이 공기중에 노출되서 나는 악취였다.
"웁~...우웩!!"
구역질이 몰려오고 참지못해 속에 있는 것을 모두 게워냈다, 자기전에 먹었던 인스턴트 라면의 건더기가 이 모든 일들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건 꿈이 아니다.
이건 현실이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나도 바닥에 굴러다니는 시체가 된다는 것을 되세기며 침착을 되찾는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 2번째 절망이 나를 덮쳐왔다.
".....젠장......"
2번 째의 절망의 이유, 별거 아니었다.
죽어있는 사람들이 모두 서양인이었다.
...그리고 난 동양인이다.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여기는 막 교전이 끝난 전장, 양측 진영의 구성원 전원 백인 그리고 여기는 평야, 양끝쪽에는 여전히 퇴각을 진행중인 양측 진영의 군인들이 작게 보인다,
그리고 그 보다 너머에는 그들의 숙영지로 보이는 곳이 희끄무레하게 보인다.
그리고
"맙소사..."
하늘을 보았다.
배가 떠 있다,
아니 배보다는 전함이나 잠수정과 가까운 모습일까?
지구에서는 단 한 번도 본 적없는 거대한, 비행물체가 하늘에 부유한 체로 서로 대치한 상태로 서서히 각진영으로 후퇴하고 있었다.
"저건 뭐야..."
그것만이 아니다 인간과 닮아 보이지만 명백히 다른 형태, 사람보다 팔의 비율이 2배이상 기다랏고 다리부분이 역관절 형태로 된 거대한 거인들도 각 진영의 군인들과 함꼐 퇴각 중이었다.
"...난 도데체 어디로 오게 된 거야?"
'이세계'
그런 허무맹랑한 단어가 머릿속에 떠 오른다.
쾅-----------!
그렇게 현실도피하던나를 폭음이 현실로 되돌린다.
"흐익!?"
아마 바닥에 묻혀 있던 불발탄이라도 터진 모양이다
다행히 멀리 떨어져 있어서 나에게 피해는 없었지만 폭발로 뜨겁게 달궈진 쇳조각 섞인 흙들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백인만의 전장에서 동양인인 자신은 너무 눈에 튄다, 각 진영의 숙영지를 피해 도망친데도 근처에 깔려있을 정찰병을 피할수 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어느 진영이든 잡힌다면 좋은 꼴을 못본다, 아니 좋은 꼴은 커녕 아마 적국의 스파이라 의심받아 고문받겠지,
하지만 여기가 정말 이세계라면 당연히 말이 통할 리가 없다,
결국 무의미하게 고문당하다 감염증으로 뒈져 나자빠지겠지......
하지만...하지만 만약 부상병으로 위장할 수 있다면?
말을 못 한다는 건 ptsd에 걸린 흉내라도 내면 된다, 운이 좋다면 후방의 군병원으로 빠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대로 잘 될지는 모르지만 만약 된다면 어떻게든 살아남을 활로를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하기 전에 선결 과제가 하나있었다.
피부색이다.
군복을 훔쳐입고 군번줄을 훔친 뒤에 충격으로 정신이 나가버린 척을 한데도 피부색을 숨길 수는 없다, 얼굴은 가릴수가 없다 그러니까...
나는 굳은 얼굴로 아직도 불이 붙어 타고 있는 흙무더기쪽으로 걸어갔다.
손발이 떨리고 얼굴이 일그러진다.
하지만 살려면 이 방법밖에는...이 방법 이상의 상책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러니까...
치이이이이익!
"으!? 으으으으으으윽!!!"
고기가 구워지는 냄세와 눈알이 뒤집어지는 통증을 뒤로 하고 나는 생각했다.
가능하면 군복이 예쁘지 않은 진영쪽으로 도망가자고.
원래 전쟁이란 군복이 멋진 쪽이 지는 법이니까.
이것이...
이것이 나의 슬프고도 괴로운 이세계 고난의 첫 페이지의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