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만 되면 핑계삼아 이런저런 요리를 하곤 했는데, 그러다보면 가끔 '이런 건 미리 좀 알려줘라'라는 피드백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화이트데이 특집으로 이탈리아의 전통 캔디인 콘페티를 만들어 보도록 합니다.
예전에는 화이트데이는 물론이고 발렌타인 데이도 상술의 결과물이라며 탐탁치 않았던 적도 있습니다.
커플들을 몰래 결혼시켜주다 순교했던 성 발렌타인 축일이 영국의 초콜릿 회사인 캐드버리사의 상술에 의해 연인끼리 초콜릿 주고받는 날로 변해버렸고,
일본의 여성운동과 결합하며 "여자도 원하는 남자에게 주도적으로 고백할 수 있다"는 슬로건 하에 여자가 남자에게 고백하는 날로 바뀌었지요.
여기에 남자들 또한 선물을 받았으니 보답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이 일본의 사탕과자 협회에서 시작되며 화이트데이 또한 대대적인 기념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화이트데이는 상술이 세 번이나 겹친 셈입니다.
하지만 나이 좀 들고 나니 '세상에 상술 아닌게 얼마나 되겠나' 싶어 좀 관대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회사들이 제품 팔아먹으려 만든 기념일이면 어떤가요. 공산품 안 사고 직접 만들면 되지요.
우선 아몬드를 뜨거운 물에 30초 정도 불려 껍질을 까서 준비합니다.
재료는 단순합니다. 껍질 벗긴 아몬드와 설탕, 물엿이 전부니까요.
옛날 유럽에서 부자들의 결혼식이나 축제 때에나 사용했다는 설명이 의아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사탕수수 농장에서 대량으로 설탕이 쏟아져 나오기 전에는 설탕 과자는 그야말로 엄청난 고급품이었지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찌나 귀한 물건이었는지, 기호품이 아니라 약재로 취급할 정도였으니까요.
우리나라에서도 소헌왕후가 설탕을 먹고 싶어하다가 세상을 떠나자 나중에 아들인 문종이 설탕을 구해서 울면서 영전에 바쳤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며 옛날엔 귀한 물건이 흔해지고, 예전엔 흔했던 물건이 귀해지며 설탕도 더 이상 만병통치약이 아닌 만병의 근원이 되어버렸지요.
설탕 200g, 물 100g, 물엿 35~40g을 113도에서 118도 사이로 끓여줍니다.
오래간만에 설탕작업용 구리 냄비를 꺼내들었네요.
워낙 쉽게 녹이슬기 때문에 보통은 안쪽에 스테인리스를 붙이거나 주석칠을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설탕이 많이 들어간 시럽이나 잼 등을 만들때는 구리가 반응하지 않는데다가 열전도율을 최고로 높이기 위해 이렇게 통짜 구리 냄비를 사용하곤 합니다.
일반 냄비를 사용해서 설탕을 끓일 때는 물에 적신 붓으로 옆면을 계속 닦아주어야 하는데 구리팬은 굳이 그런 작업을 하지 않아도 타지 않는다는 점 하나만 봐도 차이가 크지요.
설탕이 목표 온도에 도달하면 불을 줄입니다.
스테인리스 믹싱볼에 아몬드를 넣고, 시럽을 반 국자 정도 부어 골고루 묻도록 주걱이나 스페츌러로 저어줍니다.
아몬드 외에도 각종 견과류나 말린 과일 등을 넣어 만들 수도 있습니다.
값이 저렴한 굵은 설탕을 넣어 만들면 우리가 건빵을 먹을 때 흔히 보는 별사탕이 됩니다.
그래서 일본어로는 별사탕을 콘페이토라고 하는데, 콘페티의 단수형이기도 합니다. 서양 선교사들이 가져온 흔적이 그 이름에 남아있는 셈이지요.
설탕이나 견과류 외에도 허브 씨앗 역시 콘페티를 만들 때 자주 사용되는 재료입니다.
옛날에는 화려한 만찬을 먹고 나서 후식으로 이런 사탕과자를 먹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캐러웨이나 아니스, 딜과 같은 향기로운 허브 씨앗에 설탕을 입힌 과자는 식사 후의 만족감을 줄 뿐 아니라 입냄새 제거까지 도와주는 고마운 음식이었지요. 콘페티의 또 다른 이름이 키스용 사탕Kissing-comfits일 정도니까요.
"하늘이여, 감자(당시에는 최음효과가 있다고 믿어졌음)를 비처럼 뿌려다오! 천둥이여, 푸른 옷소매의 노래 (푸른 소매 옷을 입은 바람둥이 여인에 대한 영국 민요)를 불러라! 입맞춤용 사탕의 폭풍과 에링고(최음효과가 있는 미나리과의 식물)의 폭설을 뿌려라!"
- 셰익스피어 희극,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 중에서
하지만 즐겁게 먹기만 하면 되는 귀족들과는 다르게, 전통적인 방식으로 콘페티를 만드는 것은 꽤나 중노동입니다.
설탕 시럽을 조금 뿌리고, 골고루 코팅이 되도록 계속 휘젓고, 또 조금 뿌리고, 또 휘젓고를 계속 반복해야 하니까요.
게다가 설탕 시럽을 계속 부글부글 끓여야 하니 덥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설탕 코팅 기계들이 워낙 많이 나와서 콘페티의 명산지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술모나 지역에서조차 전기 모터로 돌아가는 대형 기계를 사용하지만, 정성을 보이려면 역시 손으로 계속 저어주는 것이 최고입니다.
시럽을 뿌리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아몬드가 점점 하얗고 두껍게 변해갑니다.
간혹 가다가 설탕 코팅이 깨지는 아몬드는 골라내면서 계속 작업합니다.
워낙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데다 설탕값도 비싸다보니 옛날엔 어지간한 부자가 아니면 결혼식 정도는 되어야 구경할 수 있는 과자였다고도 합니다.
그러던 것이 18세기에서 19세기로 들어서면서 점차 가격이 낮아지고, 축제에서 흩뿌리는 용도로 사용되기까지 하지요.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비양심적인 업자들은 있기 마련. 비싼 설탕을 절약하기 위해 아몬드에 밀가루를 먼저 입혀서 과자를 만들다가 나중에는 아예 석회에 색을 칠해서 겉보기에만 그럴듯한 콘페티를 만드는 지경에 이릅니다. 결국 모두가 석회반죽 던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지요.
그래서 축제 때에 맞춰 이탈리아를 여행한 사람들의 여행기에는 알록달록한 석회조각 전쟁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옛날에 한 미인이 우연히 지나가는 친구를 보고 자신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사탕과자를 던진 것이 그 시초일 것이다. 사탕에 맞은 남자는 뒤를 돌아보고 가면을 쓴 여자친구를 알아보았을 것이다. (중략) 꼭 알사탕처럼 보이는, 석고를 깔때기에 흘려 만든 것을 커다란 바구니에 담아서 인파를 헤집고 다니며 파는 장사꾼도 있다. 이 콘페티 공격에 안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숙녀들은 금박과 은박을 입힌 바구니에 이 알맹이를 가득 채우고 있고, 남성 동반자들은 이 미인들을 기세좋게 방어한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이탈리아 기행 중에서 (민음사, 2004)
하지만 단단한 석고 알맹이는 꽤나 위험한 무기였고, 특히 한 주먹 가득 쥐어 던질 때는 더욱 그랬습니다. 여자친구의 얼굴에 상처라도 나면 패싸움으로 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고, 축제가 과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곳곳에는 경고삼아 체벌용 밧줄을 전시해 놓았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영국의 한 문구회사가 똑똑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어차피 먹지도 못할 거, 석고반죽 대신 색종이 조각을 던져도 되는 거 아닌가?'라고 말이죠.
그 후로 축제 때가 되면 사람들은 값도 싸고 치우기도 쉬운 색종이 조각을 뿌리기 시작했고, 오늘날 콘페티는 사탕과자라는 의미보다는 풍선이나 고깔 속에 채워넣은 형형색색의 색종이 조각을 의미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콘페티 역시 여러 색깔로 화려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어지간히 완성된 콘페티를 나눠서 한 쪽에는 식용색소를 넣은 시럽으로 코팅해서 염색하면 되지요.
색깔마다 의미가 다른데, 녹색은 약혼, 파란색은 베이비샤워, 금색과 은색은 결혼기념일, 그리고 빨간색은 졸업이나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을 때 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완성된 콘페티를 먹어보면 살짝 캐러멜화된 설탕 특유의 맛이 견과류의 고소함과 잘 어우러집니다.
어찌 보면 "커피맛 땅콩"이나 "초코 아몬드볼"과 비슷한 느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직접 만들었다는 측면에서 보면 들인 정성의 깊이는 천지차이지요.
그리고 맛을 느끼는 가장 중요한 신체 부위는 혀가 아니라 뇌라는 점에서, 이 차이는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집니다.
사람의 뇌를 촬영해보면 똑같은 것을 먹더라도 "비싼 음식"이라고 알려준 음식을 먹을 때 훨씬 더 활발하게 활성화된다고 하니까요.
예전부터 왕이나 부자들이 결혼식에나 먹을 수 있었던 콘페티.
이탈리아 축제 때 사랑하는 연인이나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상대에게 던져 마음을 표현하던 콘페티.
뜨거움과 팔의 고통을 감수하며 직접 만든 콘페티.
이런 이야기들이 달콤하게 코팅되었기에 좋은 선물이 될 수 있는 거겠지요.
그리고 이번에 빨간색 콘페티를 만든 이유.
드디어 책이 나왔습니다! 냐하하~
그동안 인터넷에 올렸던 글들을 손보고, 덧붙이고, 수정하고, 편집하고, 단행본 전용으로 새로운 글을 몇 개 더 써서 책을 내는데 일 년 넘게 걸렸네요. ㅎㅎ
CIA 입학서류 쓸 때 추천서를 써 주신 1500명의 인터넷 후원자 분들이 아니었다면 이 책도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당연히! 나눔 이벤트 들어갑니다.
블로그(https://blog.naver.com/40075km/222262219323)에 비밀댓글로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시면 추첨을 통해 열 분께 새로 나온 따끈따끈한 제 책을 선물로 보내드립니다 (정가 15000원)
배송비용도 제가 냅니다. 도서 산간지역도 상관없습니다! 외국이라도 보냅니다!
마음같아서는 1500분께 다 드리고 싶지만, 자비출판이 아니라서 무리입니다. 2쇄 발행하면 그때 또 이벤트를 해야겠지요.
이 기회를 빌어 그간의 성원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ps. 요리 전문사서의 추천도서 칼럼도 여전히 연재중입니다ㅎㅎ
https://www.nslib.or.kr/info/dataroom2.asp?mode=view&number=49&gubun=
커피땅콩같이 생겼네 했는데 언급이 되네요ㅋㅋ 책은 이후에 돈 주고 구매하겠습니다
닉네임어려워요
감사합니다! 만들기는 쉬운데 제대로 만들기가 어려운 사탕이지요 ㅎㅎ
와 진짜 대단하십니다
그럴듯해보이는데 의외로 쉽습니다.
커피땅콩같이 생겼네 했는데 언급이 되네요ㅋㅋ 책은 이후에 돈 주고 구매하겠습니다
저는 왠지 옛날에 과학시간에 소금결정 만들기가 떠오르더군요 ㅎㅎ 감사합니다!
선물하기 딱 좋겠네요 ㅋㅋㅋ잘봤어요 너무 재밌어요
특히 화이트데이 선물로 여러모로 의미있는 선물이지요 ㅎㅎ
제발사드세요.....중노동
근데 이런건 누구나 만들수는 있지만 힘이 많이 들기에 더 가치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종이학 1만마리 이런 것처럼요 ㅎㅎ
여기에 초콜렛을 녹여서 코팅해줘도 맛있죠!
요즘 자주 사먹는 무슨무슨 아몬드랑 똑같이 생겼다 했더니ㅋㅋㅋ 수제 콘페티도 먹어보고 싶네요! 뽑기 운이 안 좋은 저는 그냥 주문했어욥...
유튭에서 본건 누에고치같더라구요 뭔맛인지 궁금함ㅋㅋ 별사탕맛이라던데
이런 장대한 역사가 있을줄이야 역사기행 한편한것 같네요 ㅎㅎ
엄청 고급스러운 커피맛 땅콩 보는 느낌? 처음 봤을 때부터 이건 맛있겠다 싶더라고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