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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모의 자리는 비워둘 수 없다 2. 중전으로 과부나 결격사유가 있는 사람은 들일 수 없다 3. 과부도 아니고 결격사유가 없는 적당한 집안 자제는 혼기가 차면 결혼한다 4. 결국 적절한 상대중에 누굴 골라도 손녀뻘이다
노친내가 미1친거지 지들 선조가 어떤꼴 났는지 잘 알텐데 유교라서 항렬에서 윤리적인 문제도 있을텐데 그걸 그대로 와이프로 삼았으니
여중생은 확실히 혈색이 다르지
후사는 없었다함
여보세요 경찰서죠
실록 뒤져보면 새 중전이 세자보다 연하라던가 그런 케이스도 있긴 한데 손자랑 차이 안 나는 건 신기하네
저 시기 영조는 딱히 눈치볼게 없는 시점임.
그 완벽주의자 영조가 금주령 내리고 지는 몰래 술 쳐먹고, 지는 아들 사도세자가 어머니를 섬기는 궁녀와 연분이 있는 것 같다고 꾸짖고(궐 내에서 부모를 섬기는 궁녀도 쉽게 말하면 준부모급으로 여겨야 함) 지는 사도세자를 섬기는 궁녀와 썸씽을 가진 적이 있음 (궐내의 법도로 따지면 며느리를 탐한 것과 비슷). 그때그때 다른데다 말년엔 노망도 심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중전을 뽑았을런지는...... 그저 명분은 구색이었을 수도.
경주김씬데요
정조랑 정순왕후가 정적이었다는건 후대의 노론만악론같은 왜곡
실록 뒤져보면 새 중전이 세자보다 연하라던가 그런 케이스도 있긴 한데 손자랑 차이 안 나는 건 신기하네
광해군의 케이스지 서인이 광해군 폐위하는데 주요 명분이었던 인목대비 폐비사건, 그 인목대비는 광해군보다 9살 어렸다지. 근데 영조가 더 극단적이긴 하네
삭제된 댓글입니다.
마에카와미쿠
후사는 없었다함
마에카와미쿠
후사는 없엇지만 본인이 정조보다 오래살아서 정조죽고 수렴청정 하는동안 정조가 한거 다말아드시고 세도정치 시대를 여심
SkyHeart25
죠셈 죠스타가 누구임?
정순왕후가 정조한거 말아먹은거 없음. 오히려 정순왕후는 정조 정책의 계승임
음 검색해보니깐 글케나오네요 국사시간에는 다르게 배웠는데 10년도 더 전이라 다시 재평가됫나봄 ㅈㅅ
검색좀 해보고 다시죠. 욕할사람들은 다 욕한듯.
그래서 미안하다 햇잖음 왤케 공격적임
김씨라고 다 같은 안동김씨가 아니고 세도정치의 핵심인 안동김씨는 정조가 직접 사돈 삼은 김조순의 집안이지 정순왕후 집안이 아니다 이 말이야 재평가가 아니라 가문이 다른데 뭔 세도정치여?
이야
선조와 영조의 공통점 말년에 장가가서 후대왕이 고생함
발업도안된조그만저글링
정조랑 정순왕후가 정적이었다는건 후대의 노론만악론같은 왜곡
루리웹-1384095030
정순왕후는 순조대가서 문제였지. 안동김씨가 설치는데 괜히 엮여서 세트로 욕먹는게 억울한 면이 많지만...
정작 본인은 안동김씨도 아닌데.
안동김씨가 아니여. 그리고 문정왕후나 후대의 민가년마냥 패악질 같은것도 안했고
오히려 정조 순조때의 실록 내용을 보다보면 정치의 정자도 모르고 신경 안쓰고 조용히 살다가 갑자기 날벼락 맞으면서 수렴첨정하게 되다 보니 어버버하다가 안동 김씨일가에 권력을 넘기게 된 케이스 같던데 (순조실록 초기에는 정조의 정책을 유지하려고 애쓴부분도 있는거 보면 정조랑 사이는 상당히 좋았던 걸로 추정)
이게 다 이산 때문이다!!
여중생은 확실히 혈색이 다르지
루리웹-6969597988
여보세요 경찰서죠
노친내가 미1친거지 지들 선조가 어떤꼴 났는지 잘 알텐데 유교라서 항렬에서 윤리적인 문제도 있을텐데 그걸 그대로 와이프로 삼았으니
미키 P
1. 국모의 자리는 비워둘 수 없다 2. 중전으로 과부나 결격사유가 있는 사람은 들일 수 없다 3. 과부도 아니고 결격사유가 없는 적당한 집안 자제는 혼기가 차면 결혼한다 4. 결국 적절한 상대중에 누굴 골라도 손녀뻘이다
[삭제된 댓글의 댓글입니다.]
qqaz#45
그 완벽주의자 영조가 금주령 내리고 지는 몰래 술 쳐먹고, 지는 아들 사도세자가 어머니를 섬기는 궁녀와 연분이 있는 것 같다고 꾸짖고(궐 내에서 부모를 섬기는 궁녀도 쉽게 말하면 준부모급으로 여겨야 함) 지는 사도세자를 섬기는 궁녀와 썸씽을 가진 적이 있음 (궐내의 법도로 따지면 며느리를 탐한 것과 비슷). 그때그때 다른데다 말년엔 노망도 심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중전을 뽑았을런지는...... 그저 명분은 구색이었을 수도.
야 후궁 없었음? 후궁중에 하나 걍 적당히 올리지 어차피 나이들어서 자리도 물려줘야 하는데 말이야 그놈의 권력 으휴; 지 자식도 되주에 가둬서 굶겨 죽이고; 걍 사약이나 내려서 죽여도 죽일 것이지 ㄷㄷ;
숙종만 아니었어도 영빈이 와이프 됬을수도. 어차피 손자가 세손직을 유지하니까
사도세자 엄마 영빈 있었는데 숙종이 장희빈 처리하고 후궁 왕비책봉 못하게 함. 장점이라면 애 못낳는다고 폐비하거나 총애하는 후궁에게 권력을 쥐어주는게 불가능해졌지
근데 공식적인 사형은 힘든 것이 사도세자가 역적 취급을 받아 죽었는데, 역적은 3대손을 멸하기로 되어있음. 그렇게 되면 영조 자신에게, 사도세자의 자식인 정조까지 역적으로 취급되는 바람에 공식적인 사약이나 형벌은 내릴 수가 없었다고 함. 그래도 뒤주는 너무 심했지.
저땐 조선시대임 멍청아 오늘날의 기준으로 따질수없지 나라의 국모 자리를 비워둘순 없잖아
왕비는 나라에서 선발하는건데, 후궁은 왕 개인의 욕망으로 고른 것도 있으니 공정성 문제가 있긴함
영조가 82세까지 살아서 정순왕후 들이고도 16년 살았음.
사도가 삐뚤어질만하네
[삭제된 댓글의 댓글입니다.]
요정햄찌
저 시기 영조는 딱히 눈치볼게 없는 시점임.
요정햄찌
조선왕조는 그렇게 양반 눈치보고 강제혼인 맺는 호구 소리듣는 권력은 아니였음
요정햄찌
자기 아버지인 숙종이 죽으면서 자기가 첩을 본처로 옮겨서 피봤다고 첩은 본처로 올리지 말라고함 그래서 영조는 첩이 있었지만 본처인 왕후가 필요해서 결혼안한 여자한테 새장가든거임.
요정햄찌
조선 왕은 권력이 강한 편 아닌가. 유교가 기반인 나라라서.
그게 왕마다 다름. 숙종 때 피바람 불어 왕권이 강해진 시기였음.
보통 반정으로 왕이 된 경우엔 좀 약한 편인데, 이 경우도 호구잡힐 수준은 아니라서 빡쳐서 나서면 강함.
그게 3파전 같은 양상이라서 왕 - 대신들 - 사림들 견제 구조였는데 왕이 너무 막나가면 대신들과 사림들이 연합해서 기울기가 기울어지고 반정이 일어나고 대신들이 너무 막강하면 왕과 사림이 결탁해서 몰아내고 사림들이 너무 막강하면 왕과 대신이 결탁해서 사화가 일어나고 이런 패턴
그리고 그 견제가 흔들거리는 계기가 왜란호란이고 붕괴된 것은 세도정치 시절
요정햄찌
ㅋㅋㅋ 빠른 태세 전환
그런데 왕비자리를 공석으로 두는 것도 당시로선 문제있는 것은 맞았음.
저 김씨가 그 안동김씨지
루리웹-2650969827
경주김씬데요
삭제된 댓글입니다.
와사비시럽
그렇다기는 기껏 3년에 벽파좀 밀어준거빼곤 딱히 정조정책 반동으로 튼거없음.
와사비시럽
정순왕후는 그래도 최대한 정조가 계획대로 따라갔음 그다음이야 능력밖이었고
와사비시럽
정순왕후가 장용영 없앤 것도 나름 타당한 이유에서 없앴던 거라 딱히 개혁 박살냈다고 보기는 어려움
와사비시럽
무슨 개혁을 박살내? 되려 따지면 정순왕후가 벽파계열이고 순조 장인인 김조순이 시파인데 정쟁은 없었음. 김조순은 심지어 정조가 골라서 인척관계 맺은 사람인데
노망난 늙은이같으니...
조선시대에 그나이면 물건도 제구실 못하고 오늘내일하고 있었을텐데 정략결혼임?
중전 자리는 비워둘수 없는 노릇이라 새로 들인거
내가 알기로는 숙종이 장씨를 후궁에서 왕후로 올리면서 고생해서 아들들한테 너희는 이런거 하지 마라라고 해서 영조는 왕후 죽고 후궁을 왕비로 못올림 그래서 새장가들어서 왕후를 고른건데 조선시대 법으로는 왕은 처녀한테 장가들어야됨 그래서 저 나이에 새장가든거임
근데 영조 건강 생각하면 정력은 문제될 거 같지 않음;;
그래서...정조 사후에 수렴청정을 하려다 보니 가장 높은분이 영조의 부인 즉 대왕대비 가 살아있었음 사도세자가 이 대왕대비의 오빠를 역적으로 몰아 죽여버려서 그 일파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맺혀 있었고 이에 따라 복수극이 벌어짐
사도세자가 아니라 정조가 죽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 하고 사도세자 아들에게 사약 내린 건 맞음
정조 죽음에 연관되었다거나 정조 사후 개혁파들 몰살시킨 악녀라는 창작물이 많지만 정작 정약용 형제들 안죽게 한거라 후손들이 왜곡 하지 말아달라고 한다더라.
그런데, 꼭 영조 뿐 아니라. 서양사에서도 마찬기지로, 절대왕권 시절 왕이 노쇠하면, 몸의 생기를 보전하고자, 젊은 여자가 옆에서 모시게 했던게, 궁중 법도 인경우도 많았던 걸로 비추어... 관습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영조가 속으로 좋아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놈들은최소한 권력은 안줬어요
뭔... 중전을 뽑는자리니까 유력가문들이 개입한 정략결혼이고. 그 사대부 가문에서 결혼 적령기 여성이 20대가 되도록 혼자라면 그건 과부거나 어딘가 큰 하자가 있어서 시집을 못갔다는건데. 그럼 남은건 당시 결혼적령기인 15~18세 사이의 여자뿐임. 영조는 평생을 철저하게 정치적인 행동을 취한 사람이라 저 결혼조차도 정치적인 목적이 들어간 결혼임. 딱히 로리콘이라 저런게 아녀.
어차피 어린 여자는 얼마든지 후궁으로 가능할텐데 왜 왕비로??
있는 후궁들을 왕비로 올리지 못해서 새장가 든 거
조선시대에 중전자리가 비면 안 되거든, 근데 위에서 여럿이 말했듯 숙종이 후궁을 중전으로 올리지 말라고 해둔게 있어서 새로 뽑을 수밖에 없었던 것.
구롷구나...여자들끼리 권력 다툼해서 그거 못하게 법으로 한 듯?
그것도 있지만, 후궁은 왕이 맘대로 뽑는 경우가 많아서, 유력 집안들은 대놓고 반대하는 경우가 많았음. 왕비가 보통자리는 아니잖어. 권력의 최측근으로 가는 수단 중 하나인데. 흔히 나오는 정치권력 싸움이 외척 vs 기타 거든
삭제된 댓글입니다.
주인공
얘는 궁녀 출신 후궁
주인공
소담이 머리 풀면 개이쁜데
주인공
곧 대비마마께 회초리맞을 상황입니다
저 왕비가 세도정치로 나라 말아먹은 왕비 맞지? 국내 발전을 다 가로막아서 결국 쪽■■들한테 문화 경제 기술 다 추월당해서 나라 뺏기게 된.......
솔찍히 조선망한 지분에 6할은 순조탓이라..... 막말로 3년 꼴당 수렴한 정순왕후는 그닥....
삭제된 댓글입니다.
qqaz#45
영조는 정신병 수준이 아니라 정신병자야 권력에 미쳐서 지 형은 독살시키고 자식은 미치게 해서 뒤주행
아들 건은 모르겠는데 형 건은 사실 여부는 둘째치고 자기 보위하던 4대신 다 죽였는데 일단 살고 봐야 하는 거지 가만히 있었으면 저승행이지
이유가 뭐던 51살 차이에 어린애를..
족보보소
노인네가 주책이여
ㅈ침반이 섰나보지
솔직히 후사도 없이 저렇게 과부왕비 오래하는 거 못할 짓이지 ㅇㅇ
현재의 기준으로 과거를 판단하는 것 만큼 의미 없는것도 없지.
세도정치가 숙종대의 환국정치가 그 시발점으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들함?
단종이 세조한테 당한게 대비가 없어서 눈치줄 사람이 없었다는 얘기도 있었으니.. 이름뿐이라도 왕비로 세워놓을 사람이 필요했던걸지도. (광해군도 죄목은 폐모살제였는데 동생죽이는거야 왕조에서 심심하면 했지만 엄마는 유교국가라 경우가 달랐나봄)
내이름이 성뺴고 영조인데 인생살면서 사도세자드립 영조드립 아무도 안쳐줌,,,시무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