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BEST
유머 BEST
힛갤
오른쪽 BEST
- 유머 BEST 더보기
- 배우들 삥뜯는걸로 유명한 감독
- 감성짤 모음
- 논산 40대 여성 성폭행한 중딩 근황
- 퇴사 후 자신만의 낙원을 만들어낸 직장인
- 원신으로 알아보는 가슴 유형
- 붕괴,스타레일) 기차 시점의 웰트의 힘은 아리...
- 하루 14시간 십자수하는 여인.jpg
- 고양이랑 코 부비부비 이상과 현실.mp4
- 아들을 위한 낙원을 만들려 했던 아버지
- 갑질에는 나이가 없다
- 예전 두 무명배우가 인생에서 잊지 못하는 순간...
- 딱 적당한 가슴 크기
- 5명 살리고 세상을 떠난 34살 의대 조교수....
- 정확한 이유를 아무도 모르는 한국 지명 미스터...
- [혐/공포] 해변가에 떠내려온 물체의 정체
- 똑똑히 봐라! 그리고, 어디가서 말하지 마라!
- 아들 사진이 도용당해서 인터넷 밈으로 퍼졌어요...
- 진짜 광기와 가짜 광기.jpg
- 블라) 한전 다니는 거 숨겨도 나를 좋아해주는...
- 니케)뭣들 하느냐 어서 고개를 조아리거라
- 코요태 해체를 막은 빽가
인기 검색어
유저게시판 최신글
조선은 철저한 신용사회라 가능했음 거주지 이전의 자유도 보장하는 대신에, 호적-호패를 무조건 가지고다냐야 해서, 가게가 야반도주하거나 그런 걸 하면 진짜 사회적으로 사라지겠단 것이었지
주막 프랜차이즈
주막을 한 핏줄이 하는건가 어케 믿고 저렇게 하지
조선말기에는 까까오 페이가 발전했군뇨
관리 하는 곳에서 저 문서 내면, 최초 주막에서 돈 받아서 분배 해서 보내주는거 아닐까...
생각보다 과거는 현재스럽다
푸줏칼이란 좋은말이 있습니다
조선후기쯤 되면 상인들끼리 조직이 형성이 됨. 길드같은 느낌으로
품질좋는 조선낫을 놔두고 어찌..
포켓몬... 간호순...
주막 프랜차이즈
순조가 오늘밤은 냉면이 땡기니 야밤에 야식 시켜먹자고 시장에다 냉면 배달시켜 먹는거 같네..
???
주막을 한 핏줄이 하는건가 어케 믿고 저렇게 하지
달요일
포켓몬... 간호순...
보부상 같은 주기적으로 왕래하는 사람들에게 화폐운반을 부탁하는 건가?
간호순/여경 시스템은 조선에서 유래되었다
전 유럽 규모로 은행업 한 메디치도 있었는데
바람의나라 왈숙언니네 왈숙이네 왈숙이모네를 생각해보면...
달요일
조선후기쯤 되면 상인들끼리 조직이 형성이 됨. 길드같은 느낌으로
달요일
조선은 철저한 신용사회라 가능했음 거주지 이전의 자유도 보장하는 대신에, 호적-호패를 무조건 가지고다냐야 해서, 가게가 야반도주하거나 그런 걸 하면 진짜 사회적으로 사라지겠단 것이었지
안그러면 사시미들고 찾아갈듯
딥♂다크♂판타지
푸줏칼이란 좋은말이 있습니다
딥♂다크♂판타지
품질좋는 조선낫을 놔두고 어찌..
로스차일드도 금융업 신용 하나로 유럽 각지에서 비슷하게 시작했지
신용사회인지는 둘째치고 임 두번째 문단 말은 전혀 아님. 호적은 전체 인구의 절반도 등록되어 있지 않고 호패도 마찬가지였어. 목민심서에도 나오는 말이지만 호적에 사람들을 모두 등록시키면 부역 부담이 너무 심해지니까 다 등록시키면 안된다-라는 것이 정부의 기본 방침이었음. 호패법도 마찬가지인데 호패법은 일정 숫자를 각 지역에 할당해 그 사람들이 호패를 들고 다니게 한 것이지 모두가 호패를 지금 신분증마냥 들고 다니던 것이 아니야.
애시당초 야반도주도 굉장히 많이 이루어졌는데 그들이 다들 사회적으로 사라졌을거 같음? 그냥 다른 동네 가서 그대로 사는거임. 호적, 호패를 무조건 가지고 다녀야 한다- 라는 이야기는 단성호적에 대한 분석 논문 몇개만 읽어봐도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을 거야. 호패를 가지고 다니지 않으면 처벌한다는 법 조항은 가지고 다니도록 한 이가 안 가지고 다닐 때의 문제지 모든 인민을 대상으로 한게 아님. 애초에 17세기 호패법 시행 관련해 실록을 읽어봐. 호패를 들고 다니게 한 사람이 딱 10만이야. 그때 인구가 최소 500만은 되는데.
알려줘서 고마워
오 이것도 알려줘서 고마워
그거보다는 그만큼 화폐경제 또는 물류가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인간의 신용거래가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것 뿐.
좋은 지식 알았네요, 근데 저 주막시스템이 현대의 카드라면, 호패있는 사람만 카드 발급되는 식으로 생각하면 해결되지 않을까요?
주막이 프랜차이즈였나벼
그럼 저 금전의 분배는 어떻게 되었을까가 궁금한부분이지
펨토
관리 하는 곳에서 저 문서 내면, 최초 주막에서 돈 받아서 분배 해서 보내주는거 아닐까...
월말이든 연말이든 ㄹ주막이 문서 다 모아서 ㄱ주막에 보내면 ㄱ주막은 그 돈 계산해서 나머지 주막에게 나눠주면 되지
항상 ㄱ~ㄹ가는게아니라 ㄹ~ㄱ으로 가는경우도 상당할테니 ㄱ, ㄹ은 그걸로 처리하고 ㄱ이 ㄴ에게, ㄹ이 ㄷ에게 정산해서 주면 그리 먼거리들 이동아니니깐 ㄱ하고 ㄹ이 비용안맞으면(ㄱ~ㄹ코스로 가는경우가 많다던지) 반년이나 일년에 한번정도 만나서 정산하고....
첫 주모가 다 들고 튄다면?!
포도청에서 쫓아갈듯
걍 정기적으로 인접 주막끼리 정산하면 알아서 정리됨.
다른 주막이 첫번째가 된다는걸 생각못하는군....
그거슨 카드결제
엄청효율적이네;;;
옆전이 존나 무거워서 그런가
무거운데다가 들고다니기 위험하기도 했으니까?
무거움..조선말이면 인플레가...아후..
산적같은 애들 때문에 위험해서
조선말에 인플레라고 외국인이 동전위에 올라간 사진은 참고로 주작임
무리한 궁전 건축으로 당오전, 당백전 나오면서 인플레 심해졌다고 배웠는데 바뀜?
인플레는 심한건 맞는데 우리나라 5만원권마냥 큰돈이 나오는 그런 개념이라서 동전을 한움큼 들고가야한다 이런건 아닌걸로 알고 있음
종이 화폐는 왜 안 만듬
에초에 인플레의 원인이 액수가 큰돈인걸
이게 크지. 구한말까지 고액 화폐가 제대로 유통이 되지 않았으니까. 당오전/당백전 같은건 고액화폐지만 신용도는 낮은 마당에 상품으로서의 가치는 이전 동전과 똑같으니 실질적인 고액 화폐로 기능하기 어려웠지. 전체적으로 말기까지 조선은 화폐거래가 그다지 활성화되지 못했어. 동전 자체의 가치가 애매했기 때문에 여차하면 사람들이 동전을 녹여서 그냥 구리로 팔아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오히려 저런 주막에서의 거래는 조선 말까지도 거의 쌀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보는게 맞아.
종이가 존나비싼데...
그래서 어음이 있잖아
위조 불가능한 지폐를 만드는건 당시 기술로 불가능 했어 대신 당시에도 어음이 있었어
종이화폐는 철저히 누가 신용보증을 해줘야 거래 가능함. 따라서 근대 까지만 해도 제한적으로 사용됨. 유럽도 동전은 실제 액면가 가치가 그대로 통화인 은화, 금화(1만원짜리 은화면 말 그대로 만원어치 은이 들어있는 은화)가 유통되다가 종이화폐는 현대 들어와서 널리 유통됨. 현대에 가능한건 국가가 보증을 해주기 때문. 중국은 원나라 때 어음 비슷한거 쓰긴 했는데, 명나라 들어선 이후 어음 가치를 그대로 인정 안해줘서 어음 폭망한 사례가 있음
덤으로 위조문제도 쩔었고. 은화, 금화, 동전을 위조한다? 액면가 가치만큼 재료 들어감. 그래서 상대적으로 적었음. 물론, 이 당시에도 은이나 금이 덜 들어간 불량 동전 만들어서 장난치는 사람들이 많긴 했는데, 지폐에 비하면 사기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적음. 지폐는 화폐가치도 크면서 재료값은 매우 적게 들어감...
조선말기에는 까까오 페이가 발전했군뇨
가가호패이 假家戶貝利 ?
생각보다 과거는 현재스럽다
이거 멋진말이네 그 역도 성립함
흑사병 채찍고행단이랑 신촌■랑 하는짓이 비슷함ㅋㅋㅋㅋ
개쩌네
위조는 어케막었대
걸리면 보부상 조직이 이놈 하고 찾아오지 않을까
조합이 있었겠지 그래서 위조하다 걸리면 본보기로 철저하게 밞바버려ㅛ겠지
막 거기만 찍을수 있는 도장 같은게 있지 않았을까 주기적으로 바꾸고
지금은 잘못 걸리면 솜방망이 처벌인데 저당시에 잘못하다 걸려서 진짜로 죽도록 맞다가 죽을지도 모르니 잘 안할듯 ㅋㅋㅋㅋ
조선시대 어음같은거 보면 특정 지점을 찢어서 맞춰보는 식으로 위조를 방지했는데 문서에도 그런걸 한게 아닐까
위조가 솜방망이라고..?
대충 문명인은 예의가 없는 짤
배달왔어요
크 감사합니다 따꺼
근데 저 바바리안은 왜 칼날을 잡고 있나요.
사실은 손잡이 인거임 그런거임
삭제된 댓글입니다.
모즈구스
아 합격목걸이 마렵다
국밥천국 쯤 되는 갑다. ㅎ
위에 합격목걸이가 마려웠는데 또 마렵다
근데 저게 조선 전시대에 걸쳐서 일어난게 아니고 조선후기 19세기 중반 넘어야 저랬다고 함.
그 전까진 화폐 경제 자체가 성립이 안되었으니..
첫번째 주막에 돈맡기고 길따라서 가다가 중간에 길 잘못들어서 비회원 주막으로 들어가면 어떻함 ㅎㅎ
비회원 주막이 없었다고함 주막은 허가 낼려면 저 시스템 가입해야 허가가 나온다더라
어찌보면 상인협회에 가입해야 했다는 거네 그러는게 전체적으로 더 좋기도 하고
더 길드..!!
어쨌든 독자적으로 지폐를 활성화시킨 거네
저걸로 역학조사 할 수 있겠다
조선은 어디까지 오버테크놀로지냐? 미친 ㅋㅋㅋㅋㅋㅋ
저 시대에 세계적으로 볼때 오버테크놀로지인건 아님. 오히려 좀 더 초기적 단계였다고 봐야 해.
주막 페이
주모 3개월 할부로
거진 조선제국때나 저 수준이라던데...
(주) 주막그룹
짤의 옷 보니까 진짜 극말기인듯? 그때쯤이면 서양쪽은 진짜로 프랜차이즈가 생길 무렵이었고...
이런거보면 조선은 진짜 과학국가였는데 과소평가되는거랑 여러가지 상황상 돋보이지 않아서 달리 평가받는거 같음.
김정호가 대동여지도 만들때 유럽에선 지하철 뚫림
아니. 진짜 세계기준으로 과학은 동시대 유럽은 커녕 오스만 제국의 중동에도 비비지 못함
조선초만 해도 과학기술이 세계적으로 봐도 좋았죠. 시스템도 좋았구요. 근데 조선은 500년국가에요. 대부분 나라가 그러하듯 초반이 지나면 망해가기 시작하는데 워낙 기초가 튼튼하게 시작한 역대급 국가라 너무 나라가 오래갔어요. 초기보다 계속 퇴보해가는데 500년을 갔으니.
조선이 나름 1700년도까지는 괜찮았는데 후기 100년이 너무 안좋았지 ;; 게다가 개죶같은게 일본 식민지 되서 평가가 안좋을수 밖에
저당시 어떻게 저런 주막네트워크가..
참고로 저때 상인조직은 검객들도 있었음... 조정에서 창은 규제 해도 칼이랑 활을 냅뒀거든 보부상도 어지간한 깡과 무력이 없으면 못했고
그거 표사 아니야?
창도 규제 안했어. 애초에 조선에서는 무기 소지에 대한 금지 자체가 없음. 그나마 후기 가면 화약의 유통은 통제하려고 했는데 제대로 되지 않았고.
총도 그다지 규제안해서 너도나도 총구하고 그러기도했음 일본상인에게 화약사서 그걸로 너구리잡았다는 기록도있더라
조선후기 시장에서도 화승총 팔았음 ㄷㄷㄷ
신기하다
아 차용증 안 받아요 현금만 받아요
옛 조선의 시스템 같은거 궁금해지네. 그런거 정리된거 없나. 논문 뒤적거려봐야 하나?
보다시피 19세기때 이야기임 조석 후기에 나온 시스템 이였음 조선 초기에는 친가 일족 사돈 팔촌 집을 찾아 자는게 대부분이였고 중기쯤 가야 주막이라기는 힘들고 문두들겨서 쌀주면서 밥좀 주시고 비 피할곳좀 주시오 수준이였다. 그러다 보니 주막으로 부업을 하는곳이 생기다 조선 후기에 엄청나게 생겨나게 됨
님 말도 완전히 틀린건 아닌데 중기까지는 국가의 공식적 숙소인 역/원이 기능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해. 장거리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어느 정도 신분이 있는 품관들인데 이들은 역/원을 이용할 수가 있으니까. 손님 대접이 워낙 잘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고. 경상도-함경도까지 가능 여정에서 역에 머물거나 길가에서 적당히 괜찮은 집 들어가는데도 죄다 대접이 융숭했다는 식이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