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날건달 유방
강대했던 초패왕 항우를 무너뜨리고 중국을 통일한 한고조 유방은 눈에 뵈는게 없었다.
그래서 나라가 좀 안정되자 눈을 바깥으로돌리는데
북방의 유목민족 흉노족을 치기로 하고 기고만장하여 32만대군을 이끌고 직접 정벌에 나서기도 했다
▶흉노의 두번째 선우 묵돌
유방은 묵돌이 이끄는 흉노족에게 역관광을 당하고
백등산(白登山)에서 7일동안 포위당하면서 말 그대로 죽을뻔한 위기에 처했다가 가까스로 살아난 후
절대 흉노와 싸우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북방기마민족 흉노의 존재는 한나라에 있어 충격과공포 그 자체였다.
이러한 시대에 한 남자가 나타나니, 그 이름은 곽거병(霍去病).
어머니가 지나가던 남자랑 원나잇한 결과물인 그는 무려 한무제, 황제의 처조카라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그래도 잘난게 탯줄밖에 없는게 아니라, 어렸을때부터 활쏘기와 말타기를 엄청 잘했다고한다.
성격도 패기가 넘쳤다는데 한무제는 이런 곽거병을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했다나 뭐라나.
▶한나라 7대황제 한무제
한나라는 강대한 힘을 가진 나라였지만 우리의 건달황제 유방이 흉노에게 관광당한 이후 군사적으로는 흉노를 절대 어떻게 해보지도 못했다.
유방이 뒤지고 난 후 그 마누라인 여후가 자기네 일족들 다 끌어모아서 개짓거리한 탓에 나라안이 개판이 되니
나라 바깥의 흉노를 어떻게 할 겨를도 없었을 거다.
하지만 한무제에 이르러 나라 안이 안정되고 힘이 넘쳐흐르자 한무제는 흉노를 정벌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기원전 133년, 큰맘먹고 흉노정벌을 위해 30만 대군을 동원하지만
흉노의 4번째 선우에게 개관광을 당하고 ↗망하니 한무제는 뒷골이 땡겼으리라.
하지만 의지의 남자였던 그는 포기하지않고 다시금 흉노 원정을 준비하는데
▶낙하산 장군 위청(衛靑)
이전까지 군대와는 연관이 없는거나 마찬가지였던 위청을 거기장군에 임명하고, 거기에 곽거병을 딸려보낸다.
그것이 곽거병 전설의 시작이었다.
1.낙하산 장군에 딸려간 금수저 낙하산
기원전 123년. 곽거병은 높으신 분들이 하릴없이 노는 친인척, 꽂아준것마냥 장군이 되었다.
설령 황제가 그의 능력을 눈여겨보았다 한들, 첫 원정이 ↗망한 이후였기에
경험 자체가 없는 애송이를 장군으로 대동시키기엔 위험부담이 컸으리라.
이제 막 장군데뷔를 하게 된 곽거병은 첫 출정에서 미친짓을 하는데
800기의 기마병을 이끌고 위청의 본대에서 멀리 떨어져나와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게 본대로부터 수백리까지 뛰쳐나온 곽거병은
800의 기마병으로 흉노군 2800명을 죽이거나 포로로 잡았고
이 과정에서 흉노 선우의 할애비뻘되는 인간을 죽이고 삼촌까지 포로로 잡았다고 한다.
이것이 그의 나이 18세, 생애 첫 출정이었다;;
2.전설의 시작
자신이 꽂아준 곽거병이 이러한 대승을 거두자 한무제는 신이나서 작위를 내려주며 그를 치켜세워준다.
이러한 곽거병의 미친 임팩트에 위청은 묻혔고 공이 작다하여 상을 못받았다하며... 나중에는 흉노한테 털리기도 했다 ㅠ
그리고 2년뒤인 기원전 121년. 한무제는 대장군 다음가는 직위인 표기장군(驃騎將軍)을 신설하고 그에 곽거병을 임명한다.
이때 그의 나이 21살. 3년만에 대장군 다음가는 직위에 오른 곽거병은 1만의 기병을 이끌고 다시금 그의 길을 걷는다.
이 출정에서 그는 흉노의 번왕 둘(절란왕, 노호왕)을 죽이고 혼야왕을 항복시켰으며 8천명이 넘는 포로를 사로잡는데
훗날 이 공적을 일컬어 "흉노의 오른쪽 어깨(右肩)를 베어잘랐다."라고 표현할 정도였다한다.
▶비운의 명장 이광(李廣)
함께 흉노정벌을 나선 이광(李廣)은 흉노와 밀당을 하던 중 함께하였던 장건이 삽질을 하는 바람에
흉노에 포위되어 전멸당할뻔했으나 사투를 벌인 끝에 가까스로 2천의 병사를 살린다.
이로인해 이광은 한무제에게 사형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곽거병 역시 동료의 삽질에 맞닥뜨린다.
여느때처럼 흉노의 땅 깊숙히 나아가던 중
뒤따라오던 장군 공손오가 길을 잃어 자신의 군대와 합류를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에 곽거병은 공손오 부대를 찾거나 기다리는게아니라, 앞만보고 마이웨이를 나아간다.
그리고 소월지국(小月氏國) 기련산(祁連山)에서 흉노의 대군과 맞닥뜨리는데
곽거병 휘하 1만 기병대는 3만 여의 흉노를 죽이고 번왕 추도왕과 2500의 흉노를 포로로 잡는다.
하지만 만족을 모르는 남자 곽거병은 계속해서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러면서 흉노의 다섯 왕과 그 어머니들, 왕자, 장군을 비롯한 수백명을 붙잡았으며
도중에 만나는 흉노들을 모두 개박살을 내놓는 미친 활약으로 엄청난 봉지를 하사받는다.
위의 것은 불과 1년 동안의 정벌동안 이루어낸 일이었다.
한편 곽거병을 따라가다 길을 잃은 공손오는 사형당할뻔했다가 벌금내고 가까스로 살아났다고한다...
3.한해(翰海)에 이르다
또 세월이 흘러 2년뒤, 기원전 119년.
한무제는 위청과 곽거병 둘에게 각각 정예기병 5만을 주어 다시금 정벌길에 오르게 한다.
도합 10만의 기병이 떠나는 원정길을 보조하기위해 수십만의 보병들, 이광 및 공손오를 비롯한 잔뼈가 굵은 장군들이 동원됬다.
그리고 이 원정에서 위청은 고비사막을 건너 이치사 선우가 이끄는 흉노와 전투를 벌였고 19000명을 죽이거나 포로로 잡는다.
전투 막바지에 몰아친 사막폭풍 탓에 흉노 선우를 비롯한 잔당을 놓쳤다지만 큰 승리였다.
하지만 그의 문제는 동시에 원정길에 오른 것이 곽거병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ㅆㅂ새끼...
▶위청이 사막에서 흉노와 사투를 벌일때 곽거병이 나아간 길
파죽지세.
원정길에 나선 곽거병은 고비사막을 넘어 흉노족의 땅 한복판을 가로지른다.
오로지 전진만을 해 적진 한복판에 뛰어든 것이다.
그 길에 만난 모든 흉노족들을 잡아족치면서 곽거병의 군대는 전진에 전진을 거듭한다.
보급따윈 아랑곳하지 않은채 적진 한복판으로 뛰어든 셈이었다.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흉노는 유목민족이기 때문에 논밭과 같은 경작지에서 물자를 취하기 힘들다. 현지에서 자체 보급을 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물자가 떨어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5만의 기마부대가 모두 굶어죽을 것인가?
그에 대해 곽거병이 내놓은 해답은 간단했다.
곽거병은 계속해서 전진하며 잡아족친 흉노들의 물자를 노획하여 보급문제를 해결했다...;;
더욱 놀라운점은,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곽거병 부대는 약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흉노 선우의 측근인 장거(章渠)를 포로로 잡았다.
흉노 좌대장의 군대를 박살내놨으며 흉노의 번왕을 셋이나 죽였다.
그렇게 앞만보고 나아간 곽거병의 5만 기마부대가 흉노의 땅 한복판에서 죽이거나 사로잡은 흉노는 8만이 넘었으며
그렇게 앞만보고 나아가는 정벌길은 한해(翰海)까지 이르렀다고 하는데
한해는 바이칼 호수로 추정되는 지명이라고 한다...
4.상승장군(常勝將軍)
14만필의 말이 동원되었으나 3만필의 말이 돌아올 정도로 힘들었던 원정길.
거기다 흉노의 터전 한복판에 뛰어들어 말도 안되는 전과를 올린 곽거병은 말 그대로 영웅이 되어 고국에 돌아온다.
한무제가 그의 부하장교들 중 6명에게 작위를 내리고 2명을 장군으로 승진시킬 정도였으니
곽거병과 그 부대가 어느정도의 대접을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한무제는 곽거병을 일컬어, 나아가는 곳마다 항상 승리한다고 하여 그를 상승장군(常勝將軍)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편 같은 시기에 원정길에 떠났다가 돌아온 위청의 신세는 너무나 비참했다.
그 역시 힘든 원정길을 떠났고, 흉노 선우까지 패퇴시키는 공적을 올렸건만 곽거병이 이룩한 것은 너무나도 컸다.
그렇기에 위청의 공은 작게만 보였고 무시당했다.
상황이 이렇게되니 그 주변사람들까지 위청을 떠나기 시작했으며
위청이 죽는 순간, 단 한명의 측근만이 그의 곁을 지켰다고 한다 ㅠㅠ
▶한무제 무덤에 함께 배장된 곽거병의 무덤
하지만 불멸로 남을 상승장군의 전설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이민족의 터전, 드넓은 흉노의 평원을 마음껏 달리던 곽거병은 스물 셋의 나이로 요절하고 만다.
그 죽음에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풍토병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할 뿐이라 한다.
하지만 짧은 생을 살다 간 상승장군의 이름은 아직까지 불멸로 남아
수십년동안 전장을 겪어온 다른 명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있다.
위청 낙하산이라더니 공을 세우기는 했네. 불쌍해라.
위청 낙하산이라더니 공을 세우기는 했네. 불쌍해라.
난 저 기록을 아무리 봐도 곽거병이 패튼같은 일을 했고...(기병으로 닥돌해서 적후방을 후려치며 무조건 전진...) 위청이 곽거병이 남긴 적의 부대들을 상대하느라 고전한거로 밖에 안보이더라...위청이 생고생해서 적은 물리쳤지만 온갖 스포트라이트는 곽거병이 다 받은 안타까운 사례로 보이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