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극이나 만화에서 주막은 주로 인적드문 산길이나 후미진 곳에 있는 것으로 나오는대
그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의 양반가문들이 숙박업을 대체했기 떄문임
물론 개나소나 받아주는건 아니고 같은 양반이나 이름꺠나 있는 사람들 위주로 받아주긴 했지만
사공농상의 조선시대에 고향 떠나서 돌아다니는건 장돌뱅이가 아니면 양반뿐이였으니
길손대접의 절반은 양반들이 해결했다고 봐도 됨
거기다가 평민들도 앵간해서는 하루만 재워달라는 나그네를 쫒아내지 않았는대
사실 나그네를 쫒아내는건 매우 몰상식한 짓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보통 나그네들이 도시에서 잠잘 곳을 못 찾는 일은 없었다고함
그리고 꽤나 재미있는 야사가 있는대
인조 때 유씨 양반이 수원 부사를 지내고 있었다함
하루는 이 유씨의 백부되는 영감이 볼일보러 여행을 떠나다가
수원을 들렀는대. 양반집이고 평민집이고 죄다 안재워주니 꺼지라고 축객령을 내림
그래서 열받은 백부가 유씨를 불러내서 니가 얼마나 치민을 개판으로 했으면 수원놈들은 나그네를 쫒아내냐고 지랄함
그러자 유씨는 쩔쩔 매면서 당장 관아로 모신다고 굽신거렸는대. 빡친 백부는 차라리 얼어죽겠다며 야밤에 길을 떠나버림
조선시대 때 야밤에 호랭이가 대놓고 돌아다니던 걸 생각해보면
니 대접받느니 차라리 뒈지겠다면서 가버린 셈이니 유씨는 진짜 강아지가 된 셈
그 다음날. 완전히 빡친 유씨는 수원 백성들을 대대적으로 잡아들여서 맛깔나게 곤장을 후려갈겼고
그 이후 수원땅에서 나그네를 쫒아내는 일은 없어졌다고함
이게 또 그냥 선의로 방을 내준게 아니라 각종 정보 획득에 매우 유용했다고 하더라
나그네 재우는건 성경에도 있었던거같은데 나름 전세계적인 문화였나보지?
저 접객의 예절이라는 암묵의 룰을 어긴 가장 유명한게 징기즈칸의 아버지를 적 부족이 접대의 예절 따위 생까고 불러다가 잡아서 죽이고 징기즈칸의 부족을 날려버린 일 징기즈칸은 수레바퀴보다 큰 사람은 싹 다 죽이는 화끈한 대접으로 갚아줬지....
모험가를 안 받아주는 마을은 마물에게 망하는게 상식
근데 뭐 개인단위로 지역간 이동이 많았던 시절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숙박업 발달이 더딜 수 밖에 없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