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조에게 징징대는 박문수
황해 수사(黃海水使) 박문수(朴文秀 - 우리가 아는 어사 박문수 맞음)가 아뢰기를,
"먼저 비선 20척을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만 본영(本營)의 재력으로는 실로 착수하기가 어렵습니다.
감영의 유고전(留庫錢)과 병영의 별비전(別備錢) 각 2백 민(緡), 상정미(詳定米) 50곡(斛)을 특별히
획급해 주도록 허락하면 제때에 배를 만들어 쓸 수 있겠습니다."
하였다. 좌의정 송인명이 그 말을 따를 것을 청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은 간과(干戈)가 극렬한 가운데에서도 능히 전선(戰般)을 만들었었는데
옹진(瓮津)이 아무리 피폐되었다고 해도 돈 4백 냥을 마련하지 못하여 이런 청을 한단 말인가?
수신(帥臣)은 추고하고 스스로 마련하여 배를 만들게 하라."
요약 : 박문수가 "저 배 만드려 하는데 돈좀.." 하자
영조가 "이순신은 전쟁 중에도 배 직접 만들어 썼는데 닌 그거 하나 못 하냐?" 라 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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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촉빠 정조는 삼국지연의를 본 적이 없다
임금이 이르기를
"나는 본래 잡된 책을 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삼국지연의》 등과 같은 책도 한 번도 들여다 본 적이 없다.
평소에 내가 읽는 책은 성인과 현인들이 남기신 경전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몇년 전부터 점점 눈이 어두워지더니
올봄 이후로는 더욱 심하여 글자의 모양을 분명하게 볼 수가 없다. 정사의 의망에 대해 낙점을 하는 것도 눈을 매우 피로하게 하는 일인데,
안경을 끼고 조정에 나가면 보는 사람들이 놀랄 것이니, 6월에 있을 몸소 하는 정사도 시행하기가 어렵겠다.
그러나 경전에 대한 공부는 오히려 감히 게을리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조는 유선을 옹호할 정도의 촉빠이다.
임금이 이르기를
"
후주(後主)가 촉(蜀)을 생각한다고 대답한 것은 천고의 비웃음거리가 될 만하다.
그러나 그 말의 뜻을 자세히 음미하면 혹 자신을 보전하려는 계책에서 일부러 이러한 말을 하여 속마음을
감추려고 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대저 그 사람은 참으로 말할 것이 없고 평소 그의 사적(事蹟)을 살펴보더라도
진 혜제(晉惠帝)에 비할 수 없으니, 그렇다면 비록 극정(郤正)이 말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어찌 촉을 그리워하는 한 생각이 없겠는가.
이는 참으로 말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고 단지 저들의 의심만 야기시킬 뿐이기 때문에 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극정이 말한 것에 대해서도 가부를 살피지 못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어떻게 극정을 너무 늦게 알았다고 한스러워할 수가 있겠는가.
유학 이지연(李志淵)이 대답하였다.
후주는 제 환공(齊桓公)과 같은 자품을 지녔음은 물론 그보다 더 뛰어난 점이 있습니다.
온 나라를 들어 공명(孔明)에게 맡긴 것은 제 환공이 관중(管仲)에게 위임한 것에 부끄러울 것이 없고,
장완(蔣琬), 비위(費褘), 동윤(董允) 등 제현(諸賢)을 들어 쓰는 것을 잊지 않은 것은 제 환공이 역아(易牙)를 써서
국난을 야기한 것보다 한 단계 높으니, 참으로 용렬하고 아둔한 자가 이와 같이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촉을 생각한다고
대답한 것은 그가 진심으로 한 말이 아님을 참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이 전연 없다는 것을 보여 저들로
하여금 의심하지 않도록 하고 다시 자신의 진심을 토로하는 듯이 ‘삼가 분부대로 하겠다’고 하여 매우 어리석은 행동으로 자신의
진심을 숨겼으니, 이것은 자못 선주(先主)가 젓가락을 떨어뜨린 것과 같은 것입니다.
"
정조는 "야 진나라에서 '전 촉이 그립습니다 엉엉' 하면 목 떨어지기밖에 더 하겠냐?" 라는 주장을 펼치고,
이지연이라는 신하가 "그렇습니다. 조조 앞에서 유비가 벼락에 놀랐듯이 유선도 그렇게 행동한 것입니다.
유선도 짱짱입니다" 라고 열심히 아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지연은 왜 열심히 아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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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조는 술고래였다.
정조 앞에서 까불면 술을 원샷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시 정조실록을 보자.
성균관 제술(製述) 시험에서 합격한 유생을 희정당(熙政堂)에서 불러 보고
술과 음식을 내려주고는 연구(聯句)로 기쁨을 기록하라고 명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옛사람의 말에 술로 취하게 하고 그의 덕을 살펴본다고 하였으니, 너희들은 모름지기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을 생각하고 각자 양껏 마셔라. 우부승지 신기(申耆)는 술좌석에 익숙하니, 잔 돌리는 일을 맡길 만하다.
내각과 정원과 호조로 하여금 술을 많이 가져오게 하고, 노인은 작은 잔을, 젊은이는 큰 잔을 사용하되,
잔은 내각(內閣)의 팔환은배(八環銀盃)를 사용토록 하라.
신규 7급 공무원 합격자들을 모아놓고 술을 강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서 한 명의 유생이 말술이라 취하지 않았는데, 결국 5잔을 더 마시게 하여 취하게 하였다 한다.
저 때의 소주는 증류식 소주로써 40도 즈음 되는 술이라 하니, 정조는 위스키 원샷를 강권하는 나쁜 왕이라 할 수 있겠다.
정조는 정약용(다산) 괴롭히기를 좋아했는데, 술을 잘 못 마시는 정약용에게 필통에 소주를 가득 채워 원샷 시키기를 즐겨했다고 한다.
참고로 그 필통 크기는 이만하다.
위에서 개기던 유생도 혹시 저 잔으로 5잔을 마시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1. 박문수는 저때의 일을 잊지 않았다. 10년뒤 사표를 제출하면서 그때의 일을 언급하는 뒤끝을 보여줌 2. 모름 3. 정약용은 훗날 아들들한테 편지를 보내면서 위의 일화를 말하고 아빠의 주량이 이정도다 라고 자랑했다.
영조가 잘못하긴 했음... 이순신의 경우는 충청이하의 모든 국가역량이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에게 모여있었음.. 그래서 이순신이 의주로 도망간 임금대신해서 세금을 거두어서 보내준것도 있고.. 그러니 전쟁중에 그만큼 배를 만들수도 있었던 것이지.. 박문수도 그걸 몰랐을리 없었을건데 말못했던건... 대답하려면 이렇게 해야했음.. 전하... 그럼 황해도 이북의 모든 국세를 저에게 주실수있사옵니까 그럼 하겠습니다.. 하고해야하는데.. 이러면 반역이라.. 잡혀가니까 못한거.. 영조도 뻔히알면서 돈없으니까 저드립 친거고,,
하긴 ㅋㅋㅋㅋㅋ 배라는게 절대로 만들기 쉬운게 아닌데 지원없이는ㅋㅋㅋㅋ
이건 영조가 잘못 했네 해군 역사상 최고의 빠요엔과 비교하면서 갈구면 되나 ㅋㅋㅋㅋ
....정조가 신하들에게 숙제를 내주고 갈구는걸 좋아했는데...그걸 쉽게 다해내는 사람이 정약용이라서 술로 괴롭혔나...;;;
1. 박문수는 저때의 일을 잊지 않았다. 10년뒤 사표를 제출하면서 그때의 일을 언급하는 뒤끝을 보여줌 2. 모름 3. 정약용은 훗날 아들들한테 편지를 보내면서 위의 일화를 말하고 아빠의 주량이 이정도다 라고 자랑했다.
봉완미
하긴 ㅋㅋㅋㅋㅋ 배라는게 절대로 만들기 쉬운게 아닌데 지원없이는ㅋㅋㅋㅋ
봉완미
이건 영조가 잘못 했네 해군 역사상 최고의 빠요엔과 비교하면서 갈구면 되나 ㅋㅋㅋㅋ
황달이 뭔데에에에에
영조가 잘못하긴 했음... 이순신의 경우는 충청이하의 모든 국가역량이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에게 모여있었음.. 그래서 이순신이 의주로 도망간 임금대신해서 세금을 거두어서 보내준것도 있고.. 그러니 전쟁중에 그만큼 배를 만들수도 있었던 것이지.. 박문수도 그걸 몰랐을리 없었을건데 말못했던건... 대답하려면 이렇게 해야했음.. 전하... 그럼 황해도 이북의 모든 국세를 저에게 주실수있사옵니까 그럼 하겠습니다.. 하고해야하는데.. 이러면 반역이라.. 잡혀가니까 못한거.. 영조도 뻔히알면서 돈없으니까 저드립 친거고,,
꼬우면 왕 하던가 ㅅㅂ ㅋㅋㅋ
....정조가 신하들에게 숙제를 내주고 갈구는걸 좋아했는데...그걸 쉽게 다해내는 사람이 정약용이라서 술로 괴롭혔나...;;;
정조는 정약용선생에게 술 겁나 마시게하고 취한상태로 시써라고 놀았다던데ㅋㅋㅋㅋㅋ
저만한 필통에 왕이 하사하는 40도짜리 증류를 담아 원샷을 하라? 이거 완전...
ㅋㅋㅋㅋㅋㅋ영정조때 빠요엔이 많기는했지만 이순신장군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