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에서 처음으로 반구형 포탑을 적용해서 양산한 것으로 유명한 IS-3전차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기 직전에 등장했지만 서방권에 큰 충격을 줬는데
이 전차가 서방권에 큰 충격을 준 이유는 전장에서 압도적인 활약을 해서가 아니라 독일의 항복을 받은 뒤 베를린에서 승전 기념 퍼레이드에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퍼레이드에 참석한 미국과 영국 장성들은 기존 전차와 뭔가 다르게 생긴 신형 소련 중전차를 보고 꽤나 위협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때 주코프와 패튼 간의 오묘한 심리전은 나름 유명하다.)
결과적으로 미국과 영국이 더 큰 포를 전차에 장착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히는데 큰 역할을 줬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영국은 센추리온의 주포를 17파운더에서 20파운더로 교체하게 된 것이 있다.
하지만 소련에서는 IS-3를 생산하는 과정에 큰 문제가 있었는데 다름아닌 용접을 하기 힘들다는 것.
소련이 전차 생산에 용접을 도입한 것은 T-26을 생산할 때 부터 시도했기 때문에 소련이 용접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였다. 문제의 발단은 IS-3가 쐐기형 정면 장갑을 비롯한 각지고 곡면이 많은 장갑형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련의 공업기술은 대조국전쟁을 겪으면서 대량생산에 익숙해져있었는데 이런 세밀가공을 잘 안하다 보니 용접부위가 벌어지거나 틀어지는 등 꽤나 골치아픈 문제들이 속출한 것.
물론 IS-3의 장갑이 1945년 기준으로 서방권이 두려워할 정도였다는 것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때 105mm L7의 포탄도 튕겨내면서 증명했다.
곡면이 많다 = 도탄이 일어나기 쉽다 잖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