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F.딘
2차 세계대전에도 연대장으로 참가한 베테랑
그의 연대는 포로가 적기로 유명한 부대였으며
그 역시 평소
"전투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일은 바로 적에게 포로로 잡히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다니며
최대한 본인의 부하들이 포로로 잡히지 않도록 지휘를 하던 장교였다.
그는 1950년 주일미육군 제24보병사단 사단장에 재임중이었으며 한국전쟁 발발후
인민군을 막기 위해 한반도로 급파되었다.
미24사단은 최초에 평택-천안 방어선에 투입되었으나, 그 후 2주간 밀리고 밀려 금강방어선-대전지구까지 밀려났다.
그래도 국군이 전 전선에서 퇴각할때 그의 24사단은 아군이 후퇴하는 것을 방어하며 적의 진격을 최대한 지연시키려 했다.
하지만 사단의 주력 대전차 화기였던 2.36인치 바주카와 75미리 무반동총, 4.2인치 박격포로는
인민군의 주력이었던 T-34-85 전차를 막을 수 없었고,
그나마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는 M24 경전차와 3.5인치 수퍼바주카는 그 수가 너무 부족해 전황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 와중에도 딘 장군은 최전방의 대전차반에서
직접 수퍼바주카를 쏘아 전차를 격파하는 등 몸을 사리지 않았으며
그의 대전차반은 12대의 인민군 전차를 격파했다
하지만 결국 미 24사단은 휘하 연대장까지 전사하는 등의 극심한 피해를 입었고,
얼마가지 않아 대부분의 병력을 잃고 사단이 와해되고 말았다
이때 한국 철도기관사 김재현을 필두로 한 한국측 철도종사자와
소수의 미군 결사대가 딘 장군 구출작전을 펼쳤으나 실패하여 대부분 사망하였다
이후 딘 장군은 소수의 병력과 후퇴했으나,
부상병에게 줄 물을 뜨러갔다가 절벽에서 부관과 함께 굴러떨어져 남은 병력과도 헤어지고 말았다
결국 그는 약 한 달 후 전북 진안에서 주민 한두규의 밀고로 숨어있던 장소를 인민군들에게 들켜
부관은 사살당하고 딘 장군 본인은 인민군에게 포로로 사로 잡혔다
평양으로 압송 후 딘 장군은 고문으로 인한 기밀 누설을 우려하여 자.살을 시도하였다가 실패하고,
포로 생활을 이어가다가 1953년 10월에 풀려났다
한두규는 50년 9.28 서울수복 후 경찰에 체포되어 1954년 9월에 '불법체포죄'로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으나 그는 무죄를 주장하였다
복역 중에 딘 소장이 그의 감형을 탄원하여 1957년 좌익수전향자로 감형되어 출소하였다
참고로 밀고한 새끼는 약 20달러 받고 장군을 팔아넘긴거라 미국 신문에 한국의 유다로 영구박제되는 영광을 누림
20달러가 아니라 5달러였구나 암튼
자기가 잡혀가게 만들은 밀고자를 용서하시다니 진짜 부처신가
듣기로는 도망다닐때 먹었던 마늘짱아찌가 맛있어서 공수해 갔다는 이야기가
감사합니다.
진짜 매국노네
추가 하면 딘소장 전사한거로 생각해서 유족한테 훈장수여까지 했는데 휴전협정에 나타냐자 미군이 경악함
좌익전향자라는거 보면 그냥 공산주의자라 적인 자기를 보면 당연히 그랬을거라 생각했나봄
밀고한 사람이있다는거하며 5달러받았다는거 한국철도종사와 미군결사대가 구출시도하다 죽은건 또 첨알았당 ㅠㅠ
감사합니다.
듣기로는 도망다닐때 먹었던 마늘짱아찌가 맛있어서 공수해 갔다는 이야기가
참고로 밀고한 새끼는 약 20달러 받고 장군을 팔아넘긴거라 미국 신문에 한국의 유다로 영구박제되는 영광을 누림
루리웹-9150429881
20달러가 아니라 5달러였구나 암튼
루리웹-9150429881
진짜 매국노네
두 놈이었어?
자기가 잡혀가게 만들은 밀고자를 용서하시다니 진짜 부처신가
시키프레슈코
좌익전향자라는거 보면 그냥 공산주의자라 적인 자기를 보면 당연히 그랬을거라 생각했나봄
전쟁 중에는 우리편에서도 저런 애들 풀어서 개 꿀빠는데 전쟁도 끝난 마당에 문제 삼을 수야 없지 않은가 하는 마음이었겠지.
아놀드 주지사님 닮으셨는데?
밀고한 사람이있다는거하며 5달러받았다는거 한국철도종사와 미군결사대가 구출시도하다 죽은건 또 첨알았당 ㅠㅠ
https://youtu.be/NcMM1hYdoag
추가 하면 딘소장 전사한거로 생각해서 유족한테 훈장수여까지 했는데 휴전협정에 나타냐자 미군이 경악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