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스 샤워.
그녀를 수식하는 말은 많다.
칠흑의 스테이어, 검은 자객 등
어둡고 살벌한 느낌의 칭호가 대부분.
그렇기에 세간에서는 칭호와 더불어
승부복이 보라색과 검은색인 탓에
라이스 샤워를 무서운 우마무스메로
인식하는 경우도 꽤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담당 트레이너인 내 눈으로
보았을 때는 완전한 헛다리 짚기였다.
어둡다거나 무섭기는커녕
오히려 소심하고 연약한 느낌이 강하다.
게다가 남들의 불행을 자신 때문이라고 여기거나
방 안으로 들어온 벌레를 죽이지 못해
조심스레 창 밖으로 보내주는 등
심성이 매우 고운 아이다.
그렇게 라이스와 하루하루를 보내던 도중,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라이스는 분명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싫어한다.
벌레 한 마리마저 죽이지 못해 창문 밖으로 조심스레 보내주는 아이다.
그러나 라이스의 승부복에는 칼이 달려있다.
그것도 평범한 길이의 칼이 아니다.
아주 짧아서 몰래 찔러버리고 도망친다면
아무도 모를 것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물론 승부복에 달린 것이기에
날이 서있지 않은 가검이겠지만.
하지만 칼을 골랐다는 행동에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나는 곧장 트레이너실로 달려가
의자에 앉아 있던 라이스에게 승부복의 칼은
어떤 이유로 달게 되었는지 질문했다.
"...오라버니도 궁금해진거구나."
"라이스, 오라버니'도' 라니 무슨 말이야?"
"에헤헤..그게 맥퀸 양도 이 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거든."
아무래도 라이스의 말로 보아 나 말고도
라이스의 칼에 대해 궁금했던 아이들도 많았던 모양이다.
하기사 트레센 학원의 아이들은 라이스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궁금증이 생길 만도 하지.
"오라버니에게도 알려줄게!"
"라이스의 승부복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술자 한 분이 무언가에 홀린 듯이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짧은 칼 하나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대."
"그리고 승부복의 옷보다 더 공들여서
이 칼을 만들었다고...라이스한테 알려주셨어!"
"라이스..그 공 들였다는게 설마...
날이 서있다던가 그런 건 아니지?."
"후에엣!? 오라버니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그냥 잘 달리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편자를 녹여서 만들었을 뿐이고
날은 서있지 않다고 하셨는걸.."
아차.
하긴 '홀린듯이' 라는 말은 좀 걸리지만
아무래도 레이스 승부복을 만드는데
그런 범죄적인 물건을 만들리가 없지.
"라이스도 칼을 받고 난 직후에는 당황했지만..
만들어 주신 분의 이야기를 듣고 그 열정을 무시할 수 없어서
그대로 승부복에 달고 달리게 된거야!"
음음.
그런거였나.
생각처럼 라이스에게 악의를 가지고
그런 일을 한게 아니라서 참 다행이야.
오히려 라이스를 생각해 주었을 줄은 몰랐는데..
"그나저나 라이스, 그 칼 말인데 한 번 만져봐도 될까?"
"...그건 상관없지만 오래 만지면
위험하니까 조심해야 해. 오라버니.."
응?
방금 뭐라고?
어쨌거나 라이스의 칼을 받아 들고 자세히 살펴보니
정말 라이스의 말대로 완성도가 높다는 것이 눈에 확 들어왔다.
밸런스 좋게 설계되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날.
튼튼한 가죽으로 만들어진 칼집.
땀이 묻어도 확실히 고정해 줄듯한 손잡이 부분의 끈.
뭐야, 정말 말 그대로 라이스에 대한 기대를 담아 만든거구나.
라는 생각으로 라이스에게 다시 돌려줄려던 찰나,
무언가 꾸물꾸물한 느낌과 함께
무언가를 '따라가야 한다' 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본능이 자극 당한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따라간다..따라간다..따라간다..따라간다..."
어느새 내 입에서는 '따라간다' 말이 저절로 나오고 있었고
마치 호러영화에 나오는 좀비마냥 무언가를 쫒아가려 했다.
무엇을?
무엇을 따라가면 좋지?
키류..키류..
키류인?
아.
그래.
키류인이다.
난 키류인 씨를 따라가려고 했지.
"키..류인...키류인.."
목적을 찾은 나의 몸은 입으로
키류인 씨의 이름을 되뇌이며
트레이너 실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탁!
하고 무언가 쳐지는 소리와 함께
나와 칼은 분리되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괜찮아?"
울상이 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라이스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내 음습한 상상이 적중했던 모양이다.
저건,
요도(妖刀)다.
저런 걸 사람 잡는 칼이라고 하던가.
설화나 전설 속에서만 보던 그 칼이 현대에도 있을 줄이야.
"오라버니..미안..미안해요..
라이스 때문에 또..."
금방 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 된 라이스.
"괜찮아, 괜찮아. 나 안 다쳤어, 완전 멀쩡하다구."
정신적인 면이 살짝 다친 것 같지만 몸은 안 다쳤으니 괜찮아.
그런 생각과 함께 불안해 하는 라이스를 쓰다듬어주었다.
"우으으..."
역시 조금 진정될 시간이 필요한가.
시간을 들여 천천히 라이스의 머리를 더 쓰다듬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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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됐어?"
"..으, 응. 라이스 이제 괜찮아.."
다행히 라이스는 금방 회복될 수 있었다.
내가 안 다쳤다는 사실을 알자 금방 마음이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 가지 궁금증이 더 생겨났다.
저런 불길한 요도를 라이스는 어떻게
아무런 문제 없이 들고다니는걸까?
"라이스, 저 칼을 잡으면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니?"
"...칼을 들고 맥퀸 씨나 부르봉 씨를 떠올리니까
'따라간다' 는 생각이 들어서 더 잘 달릴 수 있었어."
"하지만 칼을 너무 오래 들고 있으면
어느샌가 쭈욱 '따라가' 버릴 것 같아서
레이스 할 때 말고는 보관함에 가져다 뒀어."
아하.
무언가를 '따라간다' 는 마음을 증폭시켜 주는건가.
라이스의 경우는 그 대상이 맥퀸이나 부르봉 같은 라이벌들이었고,
그게 호승심으로 작용해서 더 잘 달릴 수 있었다..
부작용만 뺀다면 확실히 루틴 같은 것으로 착각할 만도 하네.
하지만 맥퀸도 잡아봤다고 하는데
사고 같은 건 없었던 건가?
아니, 만약 있었더라면
애초에 칼을 만지게 해주지 않았겠지.
"그렇구나. 라이스, 그럼 맥퀸은 어떻게 반응했어?"
"..맥퀸 양은 별일 없었어..
그래서 라이스만 그런 줄 알고..
오라버니도 괜찮을거라 착각해서..."
"응? 별일 없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칼을 잡고나서 '스위츠..스위츠..스위츠...'라고
평소처럼 말하다가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더니
칼을 두고 급하게 뛰쳐나가셨어.."
"오라버니도 그렇고, 또 라이스가..잘못한걸까...?"
"아..그건 아마도 괜찮을거야.
라이스, 일단 그 칼 잠시 동안 쓰지 않고
보관해 둘 수 있을까?"
"으, 응! 오라버니를 다치게 할 뻔한거니
당분간 보관함에 보관해둘게!"
"옳지 옳지"
칼을 넣은 라이스를
다시 쓰다듬어주며 머리를 굴렸다.
맥퀸.
설마 '따라간다' 는 대상이 스위츠였을 줄이야.
너도 여러모로 쌓인게 많구나..
그나저나 저건 어쩐다.
라이스에겐 다행히 좋은 작용을 한 모양이지만
그래도 요도는 요도.
아예 처분을 하던가 씌인 걸 제거해야 할텐데.
역시 이건 구 이과 준비실 밖에 없나..
머리를 짚으며 마셔야 할 시험 약의 개수와
커피의 잔 수를 계산했다.
후일,
커피 광인이 된 카페와 한계의 끝으로를 중얼거리는 타키온을
보았다는 목격 정보가 있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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