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성가대의 노랫말이 울려퍼졌다.
그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나는 내 자신을 타박했다.
'나같은 녀석은, 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성가대의 노래가 끝나자, 신부님의 설교가 이어졌다.
"주님의 뜻은, 너무나도 복잡하기에 우리와 같은 어린양이 이해하지 힘들지요. 특히 요즘같은 증오의 시대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만약 주님이 그렇게나 자애로웠다면, 뭐... 세상, 아니-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도를 보냈겠지요...'
나는 일본 제일의 명 우마무스메 학교인 트레센 학원에 재직중인 트레이너다.
지방에서부터 대도시에 이르기까지, 수없는 가능성이 있는 우마무스메들 중 최고중의 최고만 있는 우리 학교는
담당하는 트레이너들도 경력이나 아니면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기에, 나같은 녀석과는 절대로 비교도 안될 인재들이 소속되어 있었다.
"주님의 이름으로... 아멘."
신부님의 설교가 끝나자, 수녀 자매분들과 성가대분들이 마이크를 치우기 시작했고 나도 끝내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성당을 나가서 집에 돌아가려던 찰나,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성당에 계신 수녀 자매분들중 한분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그분은 나를 부르고서 친절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네....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학기가 시작되는데, 선생님도 이번에 새로운 담당을 맡게 되시려나요?"
'.......'
나는 잠시 숨을 죽였다. 내가 담당한 우마무스메들은,
단 한명도 빠짐없이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고향으로 낙방해야만 했다.
그 아이들은 나를 원망하지 않지만, 나는 내 스스로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꿈을 가지고 상경한 그 아이들을, 되돌려보내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네..... 뭐어.... 그렇...겠죠? 해고당하지 않는다면, 네, 그렇겠죠."
"선생님의 열정은 학교 밖으로도 소문이 퍼질 정도로 다들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부디 스스로를..."
"네에... 뭐, 감사합니다."
나는 냉소적인 말투로 그 수녀 자매님의 말을 끊었다.
"아무튼,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자매님."
나는 그분에게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트레센 학원.
"이클립스만이 선두였으매, 다른 이들은 흔적조차 없더라."
사정없이 걷다보니 우리 학교의 명패가 내 눈앞에 들어왔다.
"이대로 가다간 나도 흔적조차 없게 되겠지."
나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흡연구역으로 가서 담배나 피울까 하다가, 그냥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아서
임직원 기숙사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트는 순간, 나는 한 우마무스메와 부딫쳤다.
"죄, 죄송해요...!"
그 아이는 미안한 말투로 내게 사과했다.
나는 괜찮다고 말을 했고, 그 아이는 나를 훑어보더니 말을 이었다.
"저기...!"
"응?"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그 팔에 있는 패치.... 혹시, 이 학교의 트레이너 선생님이신가요?"
"아아, 뭐. 그렇다 마다. 그런데?"
'달림으로써 너희는 자유로워지리라.
트레센 학원 소속 트레이너'
이 우마무스메는 내 팔에 박혀있는 패치를 보고 나의 직업에 대해 알아본 것이였다.
"다름이 아니라 저.... 서울 국제 학교에서 얼마동안 교류 학생으로 트레센 학원에 처음 왔거든요...!"
"그랬구나."
"그래서 말인데.... 혹시 지금 시간이 되시면, 학교에 대해 저에게 소개해 주실 수 없으신가요?!"
나는 생각에 잠겼다. 내가 담당한 우마무스메들은 전부 실패를 면치 못했기 때문에
나는 내 불운이 다른 아이들에게도 옮을까봐 우마무스메들이랑 엮이는건 최대한 피하는 편이였다.
이 아이도 마찬가지일것이다. 교환학생으로 왔으면 미래가 창창할 아이일텐데
내가 이 아이랑 엮이면, 괜히 이 아이에게 불운이 옮는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시골에서 상경한 소녀처럼 나에게 반짝이는 눈빛으로 동경심을 발하고 있는 이 아이에게 실망감을 주기는 싫었다.
"음................"
뭐, 견학 정도야 시켜줄 수 있겠지.
결정적으로, 나의 전적에 대해서는 우리 학교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있기 때문에 나는 이 아이를 맡을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이다.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빛나겠지.
나같은 놈이랑 안엮이면... 그걸로 족하다.
"그래. 그러지 뭐."
"정말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물어보자. 너의 이름은 뭐니?"
"그레이스, 그레이스(Grace, 은총)이에요...!"
'그레이스라.
뭐, 재미있는 이름이네. 하지만, 주님은 내게 코빼기도 관심이 없으시기에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그레이스, 잘 부탁할게. 짧은 시간이겠지만."
"네...!"
"자, 가자. 이러다가 시간 뺏기겠어."
그리하여 나와 그레이스는 트레센 학원 교내로 들어갔다.
한걸음, 한걸음. 그리고 이 아이가 정말로 내게 맡겨진 주님의 은총일줄은 그떄는 결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의 이름은 뭐니?"
"그레이스, 그레이스에요...!"
"그레이스, 잘 부탁할게. 짧은 시간이겠지만."
"네...!"
"자, 가자. 이러다가 시간 뺏기겠어."
우리는 트레센 학원 교정으로 들어갔다.
성큼성큼 꺼리낄 것이 없는 나의 발걸음을 따라, 그레이스가 내 뒤를 조심스레 뒤따랐다.
우리의 눈 앞에 펼쳐진 트레센 학원의 교정에는 벛꽃이 길을 따라 가득 피어있었다.
이제 곧 4월이니 뭐, 당연하겠지만.
나에겐 그런 당연스러운 풍경이, 그레이스에게는 색다른 풍경으로 다가온 모양인지
그레이스는 교정에 피어있는 벛꽃들을 두리번거리면서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벛꽃은 흔하지 않니?”
나는 그레이스에게 물었다.
“맞아요. 한국에서도 벛꽃은 많이 피어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개학을 3월에 하기 때문에
개나리가 학교 주변에 주로 피어있어요. 벛꽃은 좀 더 나중에 피구요.
그래서... 개학 전날에 비교적 한산한 분위기 속에 벛꽃이 피어있는 광경은 너무 신기해서... 그래서...”
“그랬구나.”
나는 그레이스의 말에 수긍하고는 벛꽃이 핀 교정을 둘러봤다.
내가 이 학교에 처음으로 부임한 그날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내가 이 학교에 처음 왔을때만 해도 나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그런 푸르른 청춘의 영혼이였다.
‘....’
아직도 신입 트레이너 전당 대회날에 내가 한 말이 기억난다.
[저는 이 자리를 빌어서, 제가 뛰어난 트레이너가 될 것을.... 굳게 선언합니다!!!!!]
수없는 박수 갈채가 내게 쏟아졌고, 마침 트레이너 육성 코스에서 학업 성적은 뛰어나지 않더라도
심사 교수분들에게 좋은 추천사를 받으면서 졸업하고 우리 학교로 발령을 받은 나였기에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내게 집중되었다.
나는 내 제자들을 정말 최선을 다해 가르쳤다. 잠도 줄여가며,
때로는 아이들의 고민이 담긴 연락을 받고 고민들을 해결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그리고 주님에게 맹세코 나는 정말 내 모든 것을 담아 아이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녹록치 않았다.
내가 담당하는 우마무스메들은 각자 가지각색의 이유로 현실의 벽에 부딫쳐 낙방했다.
트레이닝 중에 지나치게 의욕이 앞선 나머지 몸을 망가트린 아이, 부모님과의 갈등 끝에 꿈을 포기해만 했던 아이, 그리고... 나는...
점차 타성에 젖어갔다.
씁쓸함과 함께 졸업했던 아이들에게
[그 수없는 일들이 너에게 닥치더라도, 절대로 너 자신을 미워해서는 안돼, 알았지?]
하고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말하던 나는 그저 점차 비즈니즈적인 관계로 변해가기 시작했고
솔직히 말하자면 트레센 학원의 임원들이 좋은 성격이 아니라 냉정했다면
지금 당장 바로 나를 해고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나는 낙담하면서 변해갔다.
그래도 최후의 선을 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나쁜 일에는 손을 대지 않고 주위 아이들과 임원 분들에게 모질게 굴지 않았다는 점일까.
앞으로의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서 이 아이에게
우리 학교를 견학시켜줄 수 있는 자격이나 있긴 할걸까, 나보다 더 훌륭한....
“....생님...?”
“선생님?”
“어? 어어, 응! 미안하구나, 그레이스. 잠시 생각에 잠겨있었어.”
“혹시나... 어디가 불편하시거나, 어제 잠을 못 주무셔서 그런건지 걱정했었어요.”
“아냐아냐, 잠시 좀 옛날 생각이 났었어. 여기에 부임한지 좀 오래되었는데
이렇게 개학 바로 전날에 다른 우마무스메와 교내를 걷는 것은 정말로 오래간만이라 감회가 새로워서 그렇단다.”
“그랬군요.... 제가 첫 인상으로 뵌것보다 더욱 굉장하신 분이셨네요! 정말 영광이에요!”
“아, 아니... 그정도는... 아니란다. 아무쪼록, 어디부터 보고 싶니?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렴. 학교들은 대부분 구조가 비슷하니까.”
일단.... 이렇게 자학하고 있으면 이 애에게 실례겠지. 그래도 이역만리에서 우리 학교를 찾아온 아이인데.
옛날 생각은... 일단 나중으로 미루자.
“음...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한국 밖의 다른 나라의 우마무스메 학교에 가본 것은 처음이라서...
선생님은 어디를 먼저 가시는 것을 추천하시나요?”
“음....”
나는 발걸음을 옮겨서 그레이스를 트레센 학원 교내 식당으로 안내했다.
본격적인 학기는 내일부터 시작되니 평소에 붐비던 교내 식당의 얼마 안되는 아이들과 직원들만 식사를 하고 있었다.
“보렴, 그레이스. 여기가 우리 학교의 식당이란다. 우마무스메들과 임직원들이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하는 곳이야.”
“어, 엄청 넓어요! 우리 학교 식당보다 몇배는... 아, 아니... 몇십배는 더 커보여요!”
“그정도로 크니?”
“네...!!!”
“그랬구나.”
“그런데, 선생님. 어째서 식당에 제일 먼저 데려온 거세요?”
“있지, 그레이스. 우마무스메건 사람이건, 식사를 제대로 하는게 가장 중요하단다.
학생인 친구들은 청춘 특유의 무한정한 체력이 어느정도 해결을 해주니 이 말을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지금 당장은 에너지 드링크와 단기간의 고당분 식사를 섭취하면 모든게 해결되지 않느냐? 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 모두가 생활하는데 기초가 되는 것은 식사야. 식사를 든든히 하지 못하면, 그 어떤 일도 제대로 해낼 수 없단다.”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들도 밥을 먹는 것에 대해서 크게 신경을 쓰니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그 때, 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미사를 보기 전에 아무것도 안먹고 대충 들어갔고지금까지 아무것도 안먹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는 부끄러움에 헛기침을 했고, 그레이스는 웃음을 터트렸다.
“선생님, 실례가 안된다면 여기서 식사하고 가도 될까요? 아직 교환학생 수속 절차가 끝나지 않았을테니까 외부인 식비는 제가 낼게요.”
“응? 아니, 아니란다. 학생인 아이에게 식비를 내라고 할 수는 없지- 이 선생님이 사줄게.
어차피 얼마 하지 않을테고, 아니면 급식 조리사분들에게 내가 사정을 설명드리면 이해해주실거란다.”
꼭 그레이스나 아니면 담당하는 우마무스메가 아니더라도 나는 기꺼이 그리했을 것이다.
나는 옛날에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서 학교 밖에서는 항상 굶는 것이 일상이였으니까.
아무쪼록, 나는 그레이스를 배식하는 곳으로 데려가서 급식 조리사분들에게 사정을 설명했고
그분들은 통쾌히 그레이스에게 우리 학교에 머물게 될 학생이니 추가적인 비용을 받지 않고 식사를 대접해주겠다고 하셨다.
나와 그레이스는 그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고, 식사를 식판에 받아서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트레센 학원의 명물인 당근을 올린 스테이크가 나왔고, 그레이스는 이 음식을 처음 보고는 눈빛을 반짝였다.
“신기하지?”
내가 운을 띄웠다.
“맛은 어떨지 기대되네요...!”
“외부에서 귀빈들이 오시면, 우리 학교의 명물인 이 당근 스테이크를 보시고는 놀라시곤 한단다.
아, 걱정 마. 우리 학교 조리사분들의 실력은 미식가 우마무스메들도 한수 접을 만큼 뛰어나니까.”
“그렇군요...! 그나저나...”
“응?”
“저분들은... 엄청.... 많이 드시네요...!”
그레이스가 자리로 오는 와중에 오구리 캡과 스페셜 위크가 식사하는 모습을 감명깊게 봤던 건지
그 둘이 마주보고 앉아있는 좌석을 보고 말을 했다.
“아아, 저 아이들은 오구리 캡과 스페셜 위크야. 은은한 은색 긴 머리를 가진 아이가 오구리 캡...
그리고 흰색 브릿지가 인상적인 단발의 아이가 스페셜 위크지. 둘다 뛰어난 학생이란다. 그리고, 뛰어난 대식가이기도 하고.”
“정말 굉장해요...! 우리 학교에서도 많이 먹는 아이들은 있었지만, 저 두분 만큼 드시는 건 ㅂㅈ 못했거든요..! 그리고...”
“그리고...?”
“사실, 저도... 다른 아이들에게 많이 먹는다고 장난스럽게 놀림을 많이 당했거든요... 헤헤.”
그레이스는 멋쩍은 듯, 얼굴을 붉혔다.
“우마무스메는 다들 대식가라고 하니까, 특히 사람에 비해서는 말이야. 선생님의 식판을 보렴.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서 매우 적잖니. 그러니까, 너무 신경쓰지 마.”
“신경쓰지 않아요, 다들 저를 아껴준다는걸 아니까요. 그치만...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는 말을 마치고, 당근 스테이크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 나자, 그레이스는 정말로 만족스러운 듯,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방금 그레이스가 말한 스페셜 위크 같은 대식가 아이들이 만족스럽게 큰 식사를 했을 때 짓는것과 같은
그런 해맑은 표정이라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다른 곳을 둘러볼 때에도 이런 감동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다음으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학교 뒤편에 있는 경주 연습용 트랙이였다.
우리가 트랙으로 향하는 동안, 우리는 우마무스메 세 여신상과 속풀이 나무 기둥을 지나쳐갔다.
그레이스는 나와 발걸음을 옮기는 와중에 세 여신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마무스메 세 여신님...! 트레센 학원에도 이분들의 석상이 세워져있네요!”
“그레이스네 학교에도 이 석상이 있니?”
“네...!”
“그렇구나. 뭐, 아무리 장소가 변해도 공통적으로 있는 것은 있기 마련이니까.
나중에 가서, 한번 교환학생 생활을 무사히 마치게 해주세요... 하고 소원을 빌어보렴.
내가 비록 신앙심은 깊지 않은 사람이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잖니.”
“네, 꼭 그럴게요..!”
세 여신상을 지나쳐, 속풀이 나무 기둥을 지나는 와중에 그레이스가 신기한 듯 말했다.
“선생님, 저 나무 밑둥은 어떤 의미가 있어서 저곳에 있는건가요?”
“아아, 저거?”
나는 속풀이 나무 기둥을 바라본 후, 그레이스에게 시선을 옮겨서 말했다.
“다들 목청이 크니까, 허공에 대고 화나는 것에 대해서 소리를 지르면- 다른 아이들에게 실례일 수도 있잖니.”
“그렇구나...”
“물론, 나무에서 소리가 공명을 해서 바로 옆은 쩌렁쩌렁하게 들리긴 한다만은, 그래도 허공에 말하는 것 보다는 낫잖니.
아무쪼록, 그레이스는 교환학생이니까 머무르는동안 크게 어려움은 없겠지만 혹시나...
속상한 일이 있으면 꼭 저기서라도 속풀이하렴.
마음에 담아두기만 하면 마음이 병나거든. 트레센 학원에 재직중인 사람들은 모두 착하니까
그레이스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흉보지 않을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네..!”
우리가 학교 교정 뒤를 걸어 기숙사 곁을 지나 경주 연습용 트랙에 거의 다왔을 때, 시리우스 심볼리가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여, 이게 누구신가. 산 송장 트레이너 나으리 아니신가?”
“오늘도 팔팔한게 할 일이 거의 없나 보군, 시리우스.”
시리우스는 늘상 그래왔듯 내게 거칠게 인사를 보내왔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그래서, 이 아이는... 정보통을 듣자 하니, 얼마 후에 누군가가 교환 학생으로 온다고 했었는데 바로 그 아이인 것 같구만.
학교에서 코빼기도 본 적이 없으니 말이야.”
그레이스가 시리우스의 말투를 보고 약간 조마조마해진건지 내 뒤로 한걸음 걸어들어왔다. 나는 그레이스에게
“괜찮아, 이녀석은 말이 서툰 새침데기니까.” 라고 말을 했고, 시리우스는 “누가 새침데기라는거냐! 함부로 말하지 말라니까!” 라고 말을 했다.
잠시 후 시리우스는 헛기침을 하더니
“그래서...”
라고 운을 떼었다.
“교환학생이라도 담당자가 필요할텐데, 당신이 할 생각이야?”
“아니.... 잘 모르겠어. 아마 다른 사람이 맡겠지. 알잖냐, 너랑 나는 직함을 제외하면 동류라는거.”
“그렇군. 뭐어, 내 알바는 아니지. 아무쪼록 너...”
시리우스가 그레이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름이 뭐지?”
그레이스는 잠시 긴장했다가 말했다.
“그레이스... 그레이스에요...!”
시리우스는 그레이스가 긴장하며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보고는
커다란 웃음을 터트리며
“긴장할 것 없어! 편하게 부르라구! 나는 시리우스 심볼리다.
저 하늘에서 제일로 밝게 빛나는 별의 제왕과도 같이 될 우마무스메지.
앞으로 잘 부탁할게! 학원에서 바보같은 녀석들이 꼬이거들랑 꼭 찾아와 달라구?”
라고 호탕하게 말했다.
그레이스는 더더욱 긴장한 나머지 고개를 끄덕였고 시리우스는 내게
“먼 타향에서 오신 손님을 잘 견학시켜주라구.”
라며 길을 걸어갔다.
긴장한 그레이스에게 나는 “괜찮니?” 하고 물었고 그레이스는 말없이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간의 정적이 흐르고, 그레이스가 좀 나아진 것을 본 나는 경주 연습용 트랙으로
우리 둘의 발걸음을 다시금 옮기기 시작했고
경주 연습용 트랙에 도착하자, 그레이스는 다시금 웅장함에 감탄했는지 육성으로
오오... 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내일이 개학이니까 다들 짐을 정비하러 기숙사에서 쉬고 있을테지만
예상했던 대로 단 한명의 우마무스메, 사일런스 스즈카가 우리 앞에서 달리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이번 회의는 끝났네, 그레이스의 담당 트레이너 제군. 이제 그만 하게.]
[아니... 루돌프, 단 한마디만...... 이야기 할수 있도록 해줘.... 이번으로... 모든 것을 끝내겠어.]
[우리 모두는... 다른 이의 행복을 바랍니다. 인간, 우마무스메... 그리고 동물에 이르기까지.
다른 사람의 행복과 꿈을 응원하는게... 우리 모두의 자연스러운 본성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과거의 실수와 잘못에 사로잡히고 온갖 규칙과 규범에 얽매일때에... 우리는 뒤로 물러서고 맙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학교에서 근무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들이 이 패치를 달고,
달림으로써 너희는 자유로워지리라는 패치를 달고 교문을 넘는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루카 복음서의 17장 20절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였습니다!
우리들의 행복은 우리들이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사회에서 우리를 장기말처럼 이끄는것도 아니요, 저기 있는 학생들의 손으로만 만들어나가는것도 아니요,
우리들 모두가 다같이 힘을 합심해서 만드는 것입니다!!!]
“저분은... 정말 달리기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다들 개학 전날이라 푹 쉬시거나 아니면 개학 준비로 바쁠텐데...!”
그레이스가 열심히 달리는 사일런스 스즈카를 보고 말했다.
“그렇단다. 정말 달리기 그 자체를 사랑하는 친구라고 해야할까,
남들이 늦잠꾸러기처럼 등교 시간에 맞추어서 일어날 때에도 스즈카는 몇시간 일찍 일어나서 몇바퀴 돌고 등교하는게 일상이거든.
물론, 스즈카의 트레이너분에 의하면 너무 무리해서 탈이라지만 말이야. 그레이스도 달리기를 좋아하니?”
“물론이에요! 저도 더트 트랙을 달리면 감정이 벅차올라서, 정말... 정말 말할수 없는 그런 기쁜 감정이 되거든요.
그치만... 사실, 우리나라에서 일본에 올 때 한가지 기대한 경주가 있었어요.”
“기대한 경주?”
나는 의아해했다. 아무리 각국의 우마무스메 풍습이 다를지라도 큰 틀은 바뀌지 않는다.
더트 트랙, 잔디 트랙, 그리고 거리에 맞는... 그런 트랙의 길이들이 있다.
“실은..... 일본에는 인간과 우마무스메가 한 쌍이 되어 이어 달리기를 하는 종목이 활성화가 잘 되어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
[선생님, 다리가.... 다리가...! 다들, 다들 저 때문에 쓰러졌어요...! 안돼, 나는.... 안돼..]
....
트레센 학원에서 인간-우마무스메 계주는 출전이 금지되어있다.
그리고 출전이 금지된 이유는 다름아닌 나 때문이다.
내가 미숙한 탓에 내가 담당한 우마무스메가 공도에서 큰 사고를 내서 쓰러졌다.
나 때문에... 그 아이는 꿈을 접은 것이다, 나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다치고, 학생회와 운영위원회가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
뭐, 어차피 내가 그레이스를 담당하진 않을테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꿈을... 꺾어선 안되겠지.
“그렇구나.”
“선생님이랑 한 짝이 되어서 달린다면, 기쁠지도 모르겠는걸요..!”
“응? 나랑? 어.... 아니야, 아니야! 그냥...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이 있을테지...
그리고.... 어.... 그레이스 너는 교환학생이니 무리해서 레이스나 각종 활동에 나갈 필요 없어..!
그냥, 어.... 학풍을 좀... 느끼고 가면 어떻겠니?”
“음.... 그것도 좋겠지만, 아무래도.... 잘 모르겠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사실....
그런 비주류 종목은 활성화 되어있지 않거든요! 그래서... 혹시나 해서... 헤헤...”
어차피 루돌프나 에어 그루브가 들려줄 것이다. 출전 금지 사항에 대해서 말이다.
아니면, 어느 기숙사에 배치되느냐에 따라 키세키나 아마존이 들려주겠지. 괜히 내가 나서서 꿈을 꺾을 필요는 없다.
이런식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레이스 트랙의 밖에 서있는 우리들 옆으로 타마모 크로스와 타마모의 트레이너가 지나갔다.
“아아, 참말로! 트레이너 혼자 다 쳐묵어버릴끼가!!!!”
“그치만~ 내가 사준다니까 온갖 이유를 대면서 안먹뉸뎨이~하면서 튕긴거는 너잖아!”
“치만, 그치만!!”
“그러니까 나 혼자 먹어야지~”
타마모의 트레이너는 농을 던지며 장난스럽게 입을 크게 열어 자신이 들고있던 타코야끼를 입에 넣으려고 했다.
그에 타마모 크로스가 화가 났는지
“마, 그름 깨물어버릴 수밖에 읎제!!!”
하고 소리를 질렀다.
타마모 크로스의 트레이너는 어어?! 하면서
“야, 조심해! 그러다가 다 흘리겠잖아!!!” 하면서 냉큼 뛰어갔다.
타마모 크로스도 그 트레이너분을 폴짝거리면서 쫓아갔다.
나는... 저럴 일 없겠지? 아무래도...
“저 두분... 사이가 가까워 보이시네요...!”
“응, 뭐- 앵간해서는 우리 학교에서는 트레이너와 우마무스메 사제지간에서 깊은 유대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니까.”
“그렇구나...”
“여하튼, 그레이스. 아까 그... 인간-우마무스메 혼성 계주 말고...
그, 더트 트랙에도 자신이 있다고 했지? 더트용 연습 트랙도 우리 학교에 구비되어있단다.
윗선에 말해서 너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손을 써볼게.”
“정말이에요? 고맙습니다..!”
“아냐, 뭐, 우리 학교로 전학온 소중한 교환학생인걸. 이정도는 당연하지. 너가 처음으로 만난 교원이 나이기도 하고.
”그래도 담당자 분이 아니신데 이렇게까지 고생해주셔서...”
“아냐, 아냐. 그냥... 아무튼, 어느정도는 다 둘러봤는데 이제 남은건- 그레이스 너가 어떤 기숙사로 배치될건지가 문제겠네.”
“트레센 학원에는 기숙사가 여러개가 있나요?”
“응, 그렇단다. 히시 아마존이라는 친구가 반장을 맡고 있는 미호 기숙사...
그리고 후지 키세키라는 친구가 맡고있는 릿토 기숙사. 뭐, 자취를 하거나 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래도 그레이스 너에게 집세 부담을 지울순 없으니 학교에서 지원해줄게 틀림없단다.”
“어떤 기숙사에 가더라도.... 그곳에서 새로운 우마무스메분들을 만날 수 있겠네요...!”
“응, 그렇단다. 교원은 따로 직원전용 기숙사를 쓰거든.”
그레이스와 내가 여러 가지 잡담을 나누는 와중에, 내 핸드폰으로 심볼리 루돌프에게 전화가 왔다.
대체 무슨 일일까 하고 나는 그레이스에게 양해를 구하고서 전화를 받았다.
“여어, 루돌프. 무슨 일이야? 학기는 내일 시작인데.”
“안녕하신가, 제군. 목소리를 듣자하니 건강한 것 같아 다행이군. 컨디션에 이상은 없나?”
“컨디션? 아아, 뭐. 그렇지 뭐. 늘상 그래왔듯. 그런데 컨디션은 갑자기 왜? 올해에 담당하게 될 우마무스메에 대해 하루 일찍 물어보려고?”
“그렇다네. 자네... 우리 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오는 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응. 뭐, 어쩌다 보니 교문 앞에서 만나버려서 여기저기 구경시켜주는 중이지 뭐야.”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군. 자네.”
“응?”
“그 아이를 자네가 담당해줄 수 없겠나?”
“.........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비록 내가 이력이 한때 화려했었던 트레이너라고 하나
우리 학교에 전학 온 전학생이라는 중요한 우마무스메를
내가 맡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찬란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나는 명 우마무스메를 더 이상 배출하지 못하는
시대의 흐름에 밀려나버린 녀석이니까.
“....농담이지, 루돌프?”
“아니, 난 진심으로 말하고 싶네만.”
“그치만... 다른 사람들도 있잖아? 예를들어.. 그래, 어쩌면
우라라의 트레이너 씨는 어때?
항상 긍정적이고 밝은 미소로 모두를 대하니까, 어쩌면 우리 학교의 좋은 점을...”
내가 루돌프에게 당황하며 설명하자 그레이스가 무슨 일이 있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내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핸드폰에서 고개를 떼어 그레이스에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너무 걱정 말렴.”
하고 다시금 핸드폰에 귀를 가져다 데었다.
“난 처음부터 자네에게 말할 생각이었네. 일찍 말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군.
요새 학교 안팎으로 다양한 일들이 있어서 말이야.
비록 자네가 지금은 일선에서 뒤로 물러난 사람이긴 하나, 자네의 우마무스메에
대한 사랑만은 여전함을 난 알고 있네.”
.........
“물론 자네가 방황하고 자책하는 모습은 보았지,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 학교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써 그 아이를 인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네.”
“그럴...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루돌프는 숨을 깊게 내뱉은 다음 말을 했다.
“자네도 알지 않나, 나는 절대로 우마무스메를, 그리고 동료 교원을 괴롭히는 이들을 결코 내버려 두지 않아.
이사회에서 우리와 다른 트레이너들에게 자네를 이만 내보내라는 헛바람을 넣었을 때도 흘려버린것도 그 때문이고.
자네도 이미 이 사실은 짐작하고 있겠지?”
물론 그렇다. 아무리 교원 분들이, 그리고 학생회의 아이들과 야요이 이사장님이 친절한 사람이라고 해도
나처럼 실적이 없는 사람이 이사회의 눈총을 받지 않을 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학교는 공립학교가 아니라 사립학교이기 때문이고 또 이사회 사람들이 무조건 나쁜건 아니였다.
재정이라는 것은 언제나 냉정하게 봐야하는 법이니까. 내 월급이 톱스타 트레이너급으로 높은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그들 입장에서는 내가 어쩔수 없이 총알받이가 되어야 하는 실정일 것이다.
현실이란건 동화같은 이야기로만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그래. 알고 있어. 다만, 이 아이는 우리 학교의 손님이니까 더더욱 부담이 될 뿐이야. 내 자신의.... 낮은 자존감 때문도 있지만.”
“그러니까, 부탁하네. 물론... 자네에게도 거절할 권리는 있지. 우리도... 자네의 그 아픔을 모르는건 아니니까.”
“..... 일단... 생각 해 볼게.”
“그러도록 하지. 아, 그레이스가 곁에 있다고 했으니 말해야겠군. 그레이스는 릿토 기숙사로 배정되었다네. 후지 키세키가 사감으로 있는.”
“그렇군.”
“아무쪼록, 잘 대해주길 바라네. 혹여라도... 결정을 내리거나 하면 전화를 주게나.”
나는 루돌프의 전화를 끊고 하늘을 바라다보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레이스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걱정이 된건지 내게 말했다.
“저기... 선생님...! 그렇게 부담 가지시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응? 아,....응! 그치만 그래도 교환학생으로 온거잖니.”
“그나저나... 무슨...일 있으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지 않아보이셨어요... 물론.... 강제로 선생님께 말하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무슨 일이 있다면, 언제나 이야기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모두 살아있는 사람이니까요, 감정없는 기계가 아니라...!”
.......................
비슷한 말을 해준 우마무스메들의 옛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언제나 그 아이들에게 장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했지만
더 이상 내가 그럴 자격은 없는 것 같았다.
단지, 단지... 이 아이가 교환학생으로 왔다가 돌아가는 그날, 그 날까지만이다.
단지... 단지, 이 아이에게 꿈을 잃지 않도록,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된다.
그뿐이다.
“응.... 알았어! 나중에 트레이닝도 하고, 면담도 하면서 친해지면, 그때 꼭 이야기 해줄게.”
그레이스는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고, 작게 웃어보이면서 내게 새끼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럼, 약속이에요 선생님!”
나는 그레이스의 손가락을 쳐다보며 머뭇거리다가, 같이 새끼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응, 약속!”
어? 이거 맛있다
엌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