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상 남아있는 한국에 고려장 설화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이야기에 대한 기록은
1434년(세종 16) 11월 25일 에 반포된 것으로 알려진 삼강 행실도 라는 책에 쓰여진 원각의 이야기 입니다.
삼강 행실도 효자전에는 중국에서 내려오는 효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효자전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 원각의 이야기를 다룬 원각 경부 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이야기의 내용이 고려장 설화와 완전히 동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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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각의 할아버지가 늙고 병들었더니, 원 각의 아비가 원 각이를 시켜 들것에 지어 산에다가 던지라 하거늘, 원 각 이 마지못해서 던지고 올 적에 원 각이 그 들것을 가져오거늘, 아비가 이르되, “궂은 그릇을 무엇에 쓸 거냐?” 하니, 대답하되, “두었다가 나도 아비를 담을 겁니다.” 하거늘, 부끄러워하여 제 아비를 도로 모셔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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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절에 효자들의 이야기를 널리 퍼뜨렸는데 그중 하나가 민간에 퍼지면서 이야기가 변형된것이 고려장 설화인거죠
그럼 효를 강조하는 조선시대에 부모를 버리는 이야기가 왜 퍼졌냐구요? 이런 설화들은 다들 하나 같이 옛날에 이런 악습이있었는데 이런 악습이 이런 이유로 사라졌다 라는걸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런 악습이 사라진 이유를 통해서 다시 효를 강조합니다.
말이 좀 이상하겠지만 효를 강조했기에 효를 부정하는 악습이 사라진 이야기가 오랜 세월동안 퍼지고 그것이 생명력을 가지고 유지될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일제 시대에 퍼졌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이게 다시 활자로 기록된 시점이 일제 강점기 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종 삼강 행실도를 번역하면서 고려장의 원형이 되는 이야기가 삼강 행실도에 실려 있었기 때문에 현재는 삼강 행실도의 이야기가 민간으로 퍼지면서 변형된 것이 고려장 이야기로 보고 있습니다.
그럼 왜 고려장이 된거냐구요? 원래는 늙은 노인을 버린다 라는 뜻의 기로라고 부르던게 사람들에게 말로써 전해지는 도중에 고려로 변형된게 아닐까? 라고 추측할 뿐 우리도 알수 없습니다.
정리 하자면 고려장 설화의 원형이라 할수 있는 기로 설화는 1434년에 중국에서 수입되서 500년간 민간에 떠돌던 설화입니다.
이 설화는 효를 부정하던 사람이 효의 가치를 알게 되는 내용으로써 조선에서 오랜세월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기록된된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장 이야기 입니다.
출처 : 세종 한글 고전 삼강 행실도 원각 경부편 그외 등등의 한국 민속 문화 연구 서적들
그렇군 좋은 정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