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가 함락되자 장수와 병사들은 다 창과 방패를 내던지고 성 내의 여러 창고로 달려가 경쟁적으로 보물을 취했다. 창고가 다 약탈되어 군용물품이 부족하게 되자 유비가 심히 우려했다. 유파가 말했다.
"이는 쉬운 일입니다. 다만 마땅히 직백전을 주조케 해, 여러 물가를 평정하고, 관리들에게 영을 내려 관시를 하게 하십시오"
유비가 이를 따르자 수개월 만에 관부의 부고가 충실해졌다
-영릉선현전
선주는 곧바로 관(關) 안으로 들어가 제장, 사졸들의 처자를 인질로 잡고(후략) -선주전
여몽이 성에 들어가 점령하고, 관우 및 장수와 병사들의 가족들을 다 잡았으나, 그들 모두를 위무(慰撫)하고, 군중에 영을 내려 민가에 들어가거나 약탈하는 바가 없게끔 약속하였다.
여몽 휘하의 병사 하나는 여남(汝南) 사람이었는데, 민가의 삿갓(笠) 하나를 가져다, 관의 갑옷(鎧)을 덮었다. 관의 갑옷이 비록 공적인 것이기는 하나, 여몽은 오히려 군령을 어겼으니, 같은 고향 사람이라고 법을 폐할 수 없다 하여, 마침내 눈물을 흘리며 참수했다. 이에 군중에 떨며 두려워해 길에서도 흘린 것을 줍지 않았다.
여몽은 아침저녁으로 친근하게 노인들의 안부를 묻고 위로하고, 부족한 것을 묻고, 병에 걸린 자에게는 의약을 주고, 춥고 배고픈 자에게는 옷과 양식을 내려주게 했다. 관우의 관부에는 재물이 저장되어 있었지만, 모두 봉하여 닫아놓고, 손권이 오길 기다렸다. 관우가 돌아오면서 길에서 여러 차례 사람을 시켜 여몽에게 보내 서로 묻게 했는데, 여몽은 번번이 그 사자를 후하게 대우하고, 성중을 두루 다니게 하며, 집집마다 묻게 하고, 혹은 손수 글월을 써서 신의를 보였다. 관우의 사람이 돌아오자, 사적으로 서로 참여하여 묻고는, 모두 자기 집에 무탈하다는 것을 알고, 평시보다 과하게 대우받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관우군대의 관리와 병사들은 싸울 마음이 없어졌다.
-여몽전
정사 유비는 그시대 평균 군벌정도고 인덕으로 칭송할거면
연의 유비를 칭송하거나 여몽을 칭송하는게 맞음
?? : 그치만 여몽은 관우 죽는데 일등공신이잖아
얻어맞고 패주한거라 뭐 딱히 그것까지 탓하는 사람은 없지?
?? : 그치만 여몽은 관우 죽는데 일등공신이잖아
???: 그치만 관우귀신이 여몽 죽는데 일등공신이라 서로서로 쌤쌤치면 되니까 좀 넘어가자
그런것보단 아무래도 백성 10만명 끌고 안버리고 간 것 아마 그런것때문에 인덕이미지가 쉽게 안 벗겨지는거라 생각해
막판에 결국 버리고 튀었잖아...?
루리웹-0503283258
얻어맞고 패주한거라 뭐 딱히 그것까지 탓하는 사람은 없지?
아니 묘사보면 거의 보자마자 튀었던데 막 성인 취급 받으니까 인지부조화 오는거지
묘사를 보면 자기 처자까지 섞여서 장비 조운 제갈량같은 주요 장수 부하들만 챙겨서 튄걸로 나옴 유비가 처자식을 자주 버리긴 했어도 백성들 인파에 섞여서 잃을 정도였다면 아마 생각보다 긴박한 상황이었을거야
이게 맞는데 요새는 정사랑 연의에서 좋은 점만 골라 갖고와서 팩트라고 우기는게 심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