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평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스토리는 좋은 마무리입니다.
선주 나부가 갑자기 급 장례식하여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캐릭터를 갑자기 보내버린 거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입니다.
특히 이번 페나코니 스토리는 과거와 현재.미래가 모두 이어진다는 특징을 가졌습니다.
힌트를 드리자면 전부 다 의심하는게 이번 스토리를 더 즐겁게 즐길 수 있을겁니다.
이번 스토리의 경우는 사오지 씨의 생각이 어느정도 드러난 스토리였는데
스포일러가 있으니 뒤로가기 눌러주십시오
스토리 안본 사람들은 당장 밀어
일단 이번 스토리는 질서와 화합의 갈등 더 나아가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대립과 니체가 주장했던 인간 말종과 위버멘쉬의 대립입니다.
일단 질서와 화합부터 설명하자면 본래 질서와 화합은 세계관상 독립되어있었습니다. 질서의 에나는 그 악명높은 번식의 타이츠론스 토벌전에 참여하여 돌맹이 에이언즈가 번식의 에이언즈 머리통에 돌망치를 내려쳐 보내버리는데 공헌했죠.
그러나 질서의 에나가 이끄는 질서의 길은 자유가 아닌 통제에서 비롯됩니다.
현실주의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질서의 에나가 사라진 과정도 질서의 통제로 인해 신도들이 자유를 찾아 다양한 사상을 포용하면서
그대로 힘이 약해졌고 더 넓은 범위로 포용하는 화합이 등장하면서 결국 질서는 화합에게 흡수되었습니다.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는 작중 어린 로빈과 어린 선데이의 대화에서도 잘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다친 새가 있다면 그 새를 치료하고 새둥지를 지어줘야하나? 아니면 새장에 가두고 잘 키우는 것이 옯은 걸까?"
여기서 이상주의는 다친 새를 치료하고 새둥지를 만들어주는 것이고, 현실주의는 새장에 가두고 잘 키우는겁니다.
하지만 이상주의는 그 뒤가 없습니다. 모두 괜찮을 것이라는 보장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현실주의는 안전한 시스템내에서 관리되지만 이는 곧 독재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개인의 자유의지가 말살된다는 점과 같습니다.
동물인 개로 설명하면 야생견은 포악하지만 맹수로써의 자질은 충분합니다. 반대로 집개는 맹수로써의 자질은 부족하지만 선하고 귀엽죠
어느쪽이 답인가에 대해서는 솔직히 이부분은 둘다 서로 충돌하는 개념이다보니 명확한 답이랄게 없습니다.
어쩔땐 이상주의가 필요하고, 또 어쩔땐 현실주의가 필요하죠
하지만 이런 상황 속 방향성을 내놓은 철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니체입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이 나아갈 수 있는 인간상으로 위버멘쉬와 인간 말종이라는 두 인간상을 정의했습니다.
니체는 인간이 위버멘쉬로 나아가기 위해선 3가지의 과정을 거칩니다.
낙타.사자.아이
니체는 낙타단계에선 순응할거 순응하면서 제몫을 다해 일을 열심하는 것이고 간단히 말해서 순응된 상태입니다.
그러다가 사자단계에선 순응된 자신이 "왜? 순응해야지?"에 대한 의문점을 던지며, 사자로 변하며 저항하며 자유를 되찾고자 싸우지만 사자는 무식하게 쌈박질만 할 줄 알뿐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사자는 결국 아이단계가 되어, 위버멘쉬로 거듭납니다.
아이는 매우 순수하고, 어리죠. 아이단계에 이르면 삷의 허무함을 잊어버리고 놀이로 인식하여, 삷을 자신만의 색깔로 입혀갑니다.
즉 아이단계부터 자주적이고 자율적이며 개인의 자유의지대로 살아가며 자신의 개성과 특징.정체성을 확립한다고 보면됩니다.
대신 위버멘쉬에서의 조건은 고통을 극복하는 것인데
이는 위버멘쉬가 아이단계에 들어서면서 느낀 고통마저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나가는 걸 의미합니다.
작중 로빈은 이러한 위버멘쉬의 조건에 충족합니다.
낙타에서 가족과 지냈지만 사자가 되어 외부 음악가로 생활하며 자선활동을 벌이다 전쟁에 반전운동으로 참여했다가
부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한 고통이 있으며, 그러한 고통을 앉은 체로 로빈은 은하 음악가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이미 그녀 스스로 고통을 이겨내고, 고향으로 돌아와 고향의 위기를 막아낸 모습은 위버멘쉬와 같죠.
또한 작중 스토리 밀고, 페나코니에 후일담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로빈은 또다시 고통을 겪지만 다시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반면 니체는 위버멘쉬 반대에 위치한 존재를 인간 말종(der letzte Mensch)라고 정의했고
니체는 니체의 저서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줄타기를 보러 온 군중들 앞에서 처음으로 위버멘쉬를 전파하려 설교한다. 그러나 위버멘쉬가 군중들에게 통하지 않자 창조하는 길을 저버리고 당장의 작은 쾌락에 안주하는 '인간 말종'을 얘기한다. 그러더니 군중들은 오히려 그 인간 말종을 달라면서 위버멘쉬는 차라투스트라나 가져가라며 비웃는다."
즉 니체가 정의한 인간 말종은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하지않고, 당장의 쾌락에 매몰되었고 스스로의 가치를 요청받기 원하면서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내고 정체성의 확립과 같은 일을 안하는 자를 모두 인간 말종으로 보았습니다.
더 쉽고 무식하게 이야기하자면 인간 말종은 꿈을 이루지 못하고 현실에 순응한 자 혹은 다른 직업을 한 사람이고
위버멘쉬는 끝까지 꿈을 이루어내면서 고통마저 받아들인 초인에 가까운 인간입니다.
선데이는 새장에 가두고 키우자는 의견이었고 이 과정에서 나온게 그 유명한 "주0요일제"입니다.
얼마나 이 언급이 유명했는지 아예 콘으로도 존재할정도로 선데이가 생각하는 이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스포지만 작중에는 이런 인간 말종처럼 꿈에서 깨어나길 거부하면서 상처 받기 거부하고 인간 취급을 받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니체는 고통마저 받아들이고 삷을 놀이로써 자신의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자를 초인 위버멘쉬라고 불렀지 상처 입기 싫어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을려고하고 그러면서 자신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지 않는 자를 인간 말종이라고 부릅니다.
선데이는 인간 말종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캐릭에 가깝습니다.
여튼 철학은 저도 복잡하니 여기까지 하고 다시 이야기를 하자면
이 이야기는 여러분들이 느끼게될 이야기입니다.
이상과 현실.여러분들이 위버멘쉬이거나? 인간 말종이거나?
무엇이든 모두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니체는 그저 방향성만 제시했을 뿐이고, 현실은 시시각각 변합니다.
무엇이 답인지는 여러분 개인에게 맡기겠습니다.
이상입니다.
긴글 봐줘셔 감사드립니다.
그럼 저는 놀러갑니다.
근데 선데이가 말하는건 수입 없는 주 0일제 느낌에 가까웠음요...
그치만 주0일제는 중대사항이다!
더 아이러니한건 선데이도 곰곰히 행적 따져보면 위버멘시에 가깝다는 사실이죠
그치만 주0일제는 중대사항이다!
데드풀!
근데 선데이가 말하는건 수입 없는 주 0일제 느낌에 가까웠음요...
더 아이러니한건 선데이도 곰곰히 행적 따져보면 위버멘시에 가깝다는 사실이죠
일리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