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카가 알고보니까 류헤이에게 가족 등 가까운 이들을 잃은 피해자인거 어떰?
단, 완전히 억울한 피해자는 아니고, 다나카도 거칠게 살아오다가 원한을 사서 류헤이에게 의뢰가 들어온 거임. 문제는 다나카 본인을 처리해달라는게 아니라 다나카의 아내와 아이(예를 들면)를 처리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온거지.
류헤이는 피도 눈물도 없는 킬러답게 둘다 쓱싹해버리고 다나카는 뒤늦게 그 소식을 듣고 집으로 달려가지만, 그를 반기는 것은 피바다 속에 힘없이 누워 있는 창백한 아내와 아이의 시체 뿐.
그 시체를 보고 복수심에 미쳐버린 다나카가 류헤이를 쫓다가 바나나 껍질을 밟아서 머리에 충격 받은 다음 기억상실에 걸린거지. (이게 류헤이가 아가씨에게 거둬진 후 대충 반년-1년 정도 후 시점)
그렇게 대충 1년 정도 류헤이랑 다나카는 못말리는 아가씨의 집사로서 열심히 보좌를 하는데… 어느날 청소를 하다가 찬장 깊숙한 곳에서 류헤이의 권총을 발견한 다나카. 그리고 그 권총을 보고서는 기억이 갑작스레 돌아와 버리는 거임.
1년간 집사로서 살아오며 류헤이와 아가씨에 대한 호감이 적잖이 쌓였지만, 소중한 이를 잃은 것에 대한 복수심은 그 이상으로 엄청났기에 다나카는 이제라도 류헤이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어.
어떻게든 류헤이를 외딴 곳으로 불러낸 다나카는 집사복이 아닌 과거의 복장을 하고서 그를 맞아.
류헤이는 이 시간에 여기로 왜 불러냈냐며 묻지만, 다나카는 그 물음에 답하지 않고 다만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어.
“기억났어. 내가 누구인지.”
류헤이는 잘됐다며 반색하나, 다나카는 여전히 웃음기 없는 얼굴로 품속에 숨겨둔 류헤이의 권총을 꺼내들어.
“...그리고 네놈이 누구인지.”
총구는 조금씩 떨려오고 있고, 눈동자에도 망설임이 깃들어 있어. 하지만 다나카가 분명히 살의를 품고 총구를 겨누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류헤이가 적잖이 당황하지.
“...무슨 짓입니까, 다나카?”
“복수. 내 아내와 아이에 대한.”
다나카가 조용히 읊조린 그 한마디에 모든 전말을 깨닫는 류헤이. 그동안 자신이 수행한 의뢰 중 한 여자와 그 아이를 ‘처리’했던 건이 생각나버려.
현역 시절의 류헤이는 감정 없는 기계와도 같은 킬러여서 의뢰가 들어오면 아무 망설임 없이 처리해버렸어. 그 상대가 설령 아이여도 말이야. 그랬던 그였던 만큼, 언젠가 자신이 죽게 되더라도 조금의 무서움 없이 받아들이리라고 생각했어.
“....”
하지만 저지른 업보가 닥쳐와 목숨이 경각에 달한 지금, 그의 머릿속에 아가씨의 얼굴이 떠올라. 해맑게 웃던 그 미소가 떠올라. 밤 늦게까지 핸드폰을 하고, 자주 반찬 투정을 하고, 매일같이 속을 썩이던 아가씨가 말이야.
뒷골목에서 상처입은채 죽어가던 그를 거두어준, 무채색이던 그의 삶에 다채로운 빛깔을 선사해주고, 살아갈 이유를 준, 이제 와서는 살아갈 이유 그 자체가 된 아가씨가.
“다나카 씨.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3년, 3년만 기다려 주실 수 없으십니까? 아가씨께서 성년이 될 때까지만 이 비루한 목숨을 부지하게 해 주십시오.”
대뜸 무릎을 꿇고 간절히 비는 류헤이. 다나카의 총구가 한층 더 격렬히 떨리고, 다나카는 죽은 아내와 아이를 떠올리며 양손으로 권총을 강하게 감싸 필사적으로 마음을 진정시켜.
“이 뻔뻔한 자식! 네놈은 내 모든 것을 앗아갔으면서, 그따위 부탁을 해?!”
“네, 압니다! 제가 죽어 마땅한 놈이라는 것도, 당신이 나를 죽일 자격이 있다는 것도, 이런 부탁하는 것 자체가 뻔뻔하기 그지없다는 것도! 하지만, 제발! 제발 3년만 기다려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이제는 도게자까지 하는 류헤이. 다나카는 그 모습에 이성이 뚝 끊어지고 말지. 과거 자신이 가족을 잃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제까지 살아왔는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니까.
“아니, 네놈이 내게 그랬듯, 나도 네놈의 소중한 모든 것을 빼앗아주겠어. 네놈을 죽이고 나서는 그 망할 ‘아가씨’도 처리…”
다나카가 아가씨를 언급한 그순간, 다나카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류헤이. 눈을 한 번 깜빡하는 사이에 그의 지척까지 다가온 류헤이가 다나카의 목을 틀어쥐고 머리 위로 들어올리는거임. 비록 현역에서 물러난지 수 년이 지났어도, 류헤이는 탈인간급 피지컬을 가진 킬러였으니까.
다나카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총을 떨어뜨리고는 류헤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쳐. 하지만 류헤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 자세를 유지한 채 단호히 내뱉어.
“한 번이라도 더 그따위 망발을 내뱉었다가는 맨손으로 그 머리를 몸에서 떼어내 주지.”
류헤이는 그 한마디를 끝으로 순순히 다나카를 놓아줘. 꼼짝없이 죽을 것이라 생각했던 다나카는 당황하며 류헤이를 올려다보지.
“총이다. 지금 당장 끝내야겠다면 더 이상 목숨을 구걸하지 않겠어. 하지만 그 방아쇠로 거두는 목숨은 나의 것 하나로 끝내주길 바란다. 부탁한다.”
류헤이는 다나카에게 손수 권총을 쥐어주고, 총구를 자신의 이마에 가져다 댄 뒤 그렇게 말해. 다나카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방아쇠를 반쯤 당기다가, 짐승 같은 포효를 내지르며 총구를 바닥에 떨어뜨린 뒤 어둠 속으로 사라져.
그리고 다음날 아가씨가 류헤이한테 다나카 어디갔냐고 묻고, 류헤이는
“...다나카 상은… 조금 긴, 휴가를 떠났습니다. 아가씨.”
하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끝났으면 좋겠다.
클리셰 범벅이긴 하지만 그럭저럭 괜찮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