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은데
사실 이순신에게 충무공의 시호가 내려진 건
바로 인터넷에서 허구헌날 욕먹다 못해 조선 왕 중 샌드백화가 되어버린 이 사람 때임.
정확히는 병자호란 이후 좀 지난 서기 1643년에 내려진 시호.
충무공 전사 후 45년 뒤에 내려진 시호인 거.
하도 까이다 보니 인조가 충무공 시호를 내린 걸 아예 인조의 유일한 업적이자 선행이라고까지 하는 반응도 많이 보긴 했지;;; 물론 뭐 그렇게 볼 순 없긴 하지만.
여담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인조 때에는 평안도 선천(고려시대의 통주)에 있던 그 양규와 김숙흥, 그리고 귀주 대첩이 있던 거란의 6차 침입 때 전사했다는 유백부(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양규와 함께 전사했다고 되어 있는데, 고려사에는 6차 침입 때 전사한 것으로 되어 있어서 기록이 충돌함)라는 인물을 모신 '삼충사'라는 사당이 있었다가 전란 와중에 없어졌던 것을 다시 세우기도 했었음.
그니까 인조의 문제는 칭찬이라도 예의삼아 해주려면 현미경으로 실록을 흩어야 하는게 문제란거 아니겠습니끄아.
사실 인조의 진짜 무서운(?) 능력은 조선의 전통적인 세계관에서 오랑캐라고 무시하던 여진족 왕초에게 대가리를 박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되려 인조 말엽의 왕권은 더 강한 편이었다는 권력 유지 능력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강빈옥사나 김자점을 방패막이 삼아서 권력유지하는 거 보면 신기할 따름이지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인조의 가장 큰 병크는 그 긴 집권기였습니다. 사악한자가 오래 산다는 말은 아마 맞는 말인가봐요.
뭐 제도사적인 부분으로만 보면 나름대로는 왕으로써 자기 할 일은 한 측면이 없진 않습니다 ㅎㅎ 특히 익히 잘 알려진 대동법의 토대가 잘 구축된 게 인조 때기도 해서요. 오히려 대동법에 대해서만 놓고 보면 광해군보다도 오히려 인조가 더 비교적 적극적으로 나오긴 했죠. (물론 인조의 집권 과정을 생각하면 정치적 의도가 드러나는 부분이 있지만요) 문제는 '토대'는 다졌지만 '액션'을 취하지는 않았다는 한계가 있지요 ㅋ
그걸 우린 생색내기 라고 부릅니다. ㅋ
나중에 약간의 업보가 돌아 오긴함. 말년에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송시열계한테 개무시당함…
그니까 인조의 문제는 칭찬이라도 예의삼아 해주려면 현미경으로 실록을 흩어야 하는게 문제란거 아니겠습니끄아.
뭐 제도사적인 부분으로만 보면 나름대로는 왕으로써 자기 할 일은 한 측면이 없진 않습니다 ㅎㅎ 특히 익히 잘 알려진 대동법의 토대가 잘 구축된 게 인조 때기도 해서요. 오히려 대동법에 대해서만 놓고 보면 광해군보다도 오히려 인조가 더 비교적 적극적으로 나오긴 했죠. (물론 인조의 집권 과정을 생각하면 정치적 의도가 드러나는 부분이 있지만요) 문제는 '토대'는 다졌지만 '액션'을 취하지는 않았다는 한계가 있지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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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우린 생색내기 라고 부릅니다. ㅋ
사실 인조의 진짜 무서운(?) 능력은 조선의 전통적인 세계관에서 오랑캐라고 무시하던 여진족 왕초에게 대가리를 박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되려 인조 말엽의 왕권은 더 강한 편이었다는 권력 유지 능력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강빈옥사나 김자점을 방패막이 삼아서 권력유지하는 거 보면 신기할 따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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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론적으로 인조의 가장 큰 병크는 그 긴 집권기였습니다. 사악한자가 오래 산다는 말은 아마 맞는 말인가봐요.
TERMI.D.OR
나중에 약간의 업보가 돌아 오긴함. 말년에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송시열계한테 개무시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