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헌터 조직의 입단 권유를 매몰차게 거절한 이후의 내용을 담은 글이야.
지금 그에겐 내일 민지 일행에게 사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바로 오늘 저녁식사를 만드는 것. 어제 인트루더의 침공으로 인해 마트가 무너졌으니, 당장은 집에 있는 걸로 저녁식사를 준비해야하기 때문이다.
세호가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기묘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자신의 눈이 잘못된 건 아닐까 하고 양손으로 눈을 비빈 뒤 다시 한 번 눈앞의 풍경을 주시했지만 결코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소녀였다. 어떤 소녀가 땅바닥에 엎드린 채 아파트 건물 입구의 구석구석을 뒤지고 있었다. 빛바랜 파카로 몸을 감싼 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든 말든 아파트 입구 탐색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사족으로, 세호는 그녀를 본 적이 있었다. 어제 인트루더가 침공했을 때 자신을 지켜주었던 칼잡이 소녀였다.
“저기 있잖아.......”
세호가 땅바닥을 뒤지는 소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을 걸자 소녀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투명한 눈빛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나 알겠어? 어제도 이 옷 입었는데.”
세호는 양손으로 자신이 입은 교복을 쓸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고, 그를 바라보던 소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세호는 곧바로 그녀의 행동을 지적했다. 달리 그녀를 나무랄 의도는 전무했지만 궁금할 뿐이었다. 어째서 소녀는 건물 구석구석을 뒤져야 했는지.
“동전.”
소녀가 짧고 굵게 대답하며 파카 주머니에서 먼지투성이 100원 짜리 동전을 꺼내보이자 세호는 어제 그녀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어제 떡볶이 사먹을 돈도 주워서 모은 것이었구나.
그녀의 모습에 안쓰러움을 느낀 세호는 주위의 시선이 느껴져 주위를 곁눈질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의 또래 정도 되는 학생 무리가 저만치서 자신과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지금 소녀의 모습은 비교적 눈에 띄는 모습이었고, 이 현장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세호는 건물 입구를 가리키며 물었다.
“일단 우리 집으로 들어가자.”
세호가 소녀의 손을 붙잡자 그녀는 아주 조금이지만 놀란 기색을 보이며 떼어내려고 했지만 자신의 손을 잡은 이 소년에게 적의나 악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손을 뿌리치지 않고 그를 따라갔고 소년의 집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온 세호는 근처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걸 느꼈다. 아주 오래되고 구리구리한 냄새를 말이다.
“이게 무슨 냄새....... 너였냐?”
그는 말을 하다 말고 소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소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감정한 눈빛으로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집안에서 풍겨오는 퀴퀴한 냄새의 정체는 소녀의 몸에서 나는 냄새였다!
“아, 안되겠다. 욕실 빌려줄 테니까 너 샤워부터 해.”
세호는 참을 수 없었는지 다급한 어조로 소녀에게 욕실을 가리켰고 소녀는 세호의 말을 이해한 것인지 그 자리에서 항상 입고 다니던 파카를 벗었다. 빛바랜 파카가 스르륵하고 바닥에 떨어졌을 땐 소녀의 반라의 몸이 드러났고, 오직 빛바래고 오래된 속옷만이 그녀의 가녀린 몸의 중요부위를 가리고 있었다. 세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황급히 눈을 돌렸다.
“어....... 어서 씻고 와. 다 씻으면 옷 가져다 줄 테니까 그거로 갈아입고.”
소녀는 자신의 맨몸을 보이는 것에 아무런 수치도 느끼지 못했는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속옷도 마저 벗은 뒤 욕실로 들어갔다. 계속 이곳저곳을 떠도느라 집다운 집에서 생활한 기억조차 없는 소녀였지만 샤워기를 사용하는 방법은 알고 있었는지 샤워기의 밸브를 올렸고, 이윽고 샤워기가 온수를 뿜어내 그녀의 온몸을 감싸 안았다.
“아.......”
온수의 포근한 감각 때문에 소녀의 입에서 기분 좋은 소리가 새어나왔다. 방금 전 동전을 줍던 자신의 손을 잡은 소년의 손도 이런 온기를 가지고 있었던 걸까. 소녀는 샤워기에 온몸을 맡긴 채 온몸을 씻기 시작했다.
한편 세호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거실 소파에 앉았다.
“심장 멎을 뻔했네, 진짜.......”
찰랑거리는 아름다운 은발과 선이 가늘고 아담한 체형, 그리고 오직 앞만을 응시하는 보석처럼 빛나는 황금빛 눈동자.
방금 그녀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자니 어째서인지 화상이라도 입은 것 마냥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고 쓸데없이 가슴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그는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가로젓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가 입었던 파카와 속옷을 세탁기에 넣고 세제 2스푼을 뿌리고 세탁기를 작동시킨 뒤 옷장에서 자신의 티셔츠를 꺼내 욕실 문 앞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그리고 곧장 부엌으로 걸어가 냉동실에 있던 함박스테이크를 꺼냈다. 어제 저녁에 세호 남매가 편의점에서 산 것이었다. 세호는 가스레인지의 불을 켜 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른 뒤 함박스테이크 두 덩이를 올려놓았고, 뒤집개로 함박스테이크를 뒤집으며 구웠다. 스테이크의 양쪽 면이 모두 익자 그는 접시에 스테이크를 가지런히 담은 뒤 냉장고에서 계란과 대파를 꺼냈다. 이참에 오늘 저녁식사도 미리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세호는 식칼로 능숙하게 파를 잘게 썬 뒤 계란을 깨 커다란 대접에 담아 노른자를 풀었고, 거기다가 남은 밥과 약간의 소금을 넣고 주걱으로 골고루 버무렸다. 그리고 볶음용 팬에 식용유를 둘러 전원을 켜 식용유를 달군 뒤, 방금 썬 파를 볶음용 팬에 넣었다. 지글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파 조각들이 식용유와 함께 춤을 추며 파 특유의 향기를 풍기기 시작하자, 세호는 거기다가 달걀에 잘 버무린 밥을 투하해 볶기 시작했다. 그 때 은발머리 소녀가 샤워를 마쳤는지 욕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 씻었어? 그러면 수건으로 닦고 거기 있는 티셔츠 입어.”
세호가 소녀에게 말하자 욕실 앞에 둔 티셔츠 한 장만을 의지해 몸을 가린 소녀가 다가왔다. 말끔하게 씻겨나가 그녀의 하얀 피부가 티셔츠 사이로 드러나는 것을 보자 세호는 그녀의 묘한 색기에 또 한 번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돌렸다.
“바, 밥 다 됐으니까 어서 먹어.”
볶음밥이 완성되자 세호는 국자로 샛노란 계란과 함께 고슬고슬하게 볶아진 볶음밥을 퍼 접시에 수북하게 담아 함박스테이크, 김치, 그리고 수저와 함께 식탁에 앉아있는 소녀에게 가져다주었다. 수저를 받은 소녀는 킁킁거리며 황금빛으로 볶음밥의 냄새를 맡았다. 기름으로 볶은 고소한 향기와 파 특유의 향긋한 향기가 어우러져 그녀의 코를 찌르가 소녀는 수저로 허겁지겁 볶음밥을 퍼서 먹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고요하면서도 신비한 분위기하곤 정반대라 완전 깨는 모습이었지만 소녀는 그런 건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볶음밥과 함박스테이크를 먹어치우고 있었다. 볶음밥의 고소한 식감과 함박스테이크의 감칠맛이 함께 어우러지고 있었다.
소녀는 먹이를 기다리던 강아지 같은 기세로 볶음밥과 함박스테이크를 깨끗하게 먹어치운 뒤 세호가 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따끈한 기운이 뱃속을 꽉 채우고 온기가 온몸에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는지 그녀는 만족스러운 눈빛을 한 채 한숨을 쉬었다.
“너 엄청 잘 먹네......”
세탁이 끝난 소녀의 파카와 속옷을 건조기에 넣고 식탁으로 돌아온 세호는 감탄을 숨기질 못하고 있었다. 그는 소녀가 자기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을 보고 내심 기뻤다. 어딘가 기묘한 구석이 있었지만 이렇게 보면 평범하게 맛있는 걸 좋아하는 소녀 같아보였다.
「네가 만난 그 메타 능력자는 사실 며칠 전에 다른 지역에서 사람들을 공격한 혐의로 수배 중인 메타 능력자야.」
민지의 말이 세호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가자 잠깐이지만 세호의 움직임이 돌처럼 굳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세호는 지금 살인 미수죄로 쫓기는 범죄자를 눈앞에 두고 있는 셈이고 그녀를 집에 들인 세호 역시 위험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세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제 왜 말도 없이 가버렸었어?”
소녀가 세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망설이는 것인지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지만 세호의 얼굴엔 의심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은 것을 보고 그 무거운 입을 열었다.
“쫓기고 있었다.”
세호는 역시나 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쫓기고 있다는 사실이야 민지에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뭣 때문에 쫓기는데?”
“괴물과 싸우다가...”
세호는 그녀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괴물이라면 인트루더 얘기일 것이었다.
“그러면 아니라고 해도 되잖아.”
“아무도 믿어주지도, 들어주지도 않아.”
소녀의 어조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어째선지 세호의 눈에는 그녀가 가여워 보였다.
여기서 주인공이 후에 헌터들에게 포위된 히로인을 변호해 주는 게 맞겠지?
씻고 나왔는디 밥만 먹네?
티셔츠... 입었어
문단 띄어쓰기 좀 가독성
역시 이제 문단 띄어쓰기를 하는 게 나으려나?
개인적으로 쓰는 거면 나쁘지 않은듯 변호하냐 마느냐는 주변 상황이랑 주인공 성격, 말하고 싶은게 뭐냐에 따라 다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