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타니아가 로마의 속주로 편입된 뒤, 그 곳에서 행해진 로마의 추가 원정과 지배에 의해 브리타니아의 여러 켈트 부족들은
로마에 고개를 숙이고 자치권을 얻게 된다.
이 지배는 초기에는 그럭저럭 잘 운영되었으나, 황제 네로의 대에 이르러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브리타니아 사령관 수에토니우스가 웨일스 원정에 나선 사이, 이케니의 왕 프리스타구스가 죽게 되었는데
그는 죽기 전 자신의 영토에 대한 지배권을 로마 황제와 자신의 아내 부디카에게 넘긴다고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브리타니아 행정관 카두스 데키아누스는 왕의 유언을 무시하고 오로지 로마 제국에만 이케니의 모든 것을 종속시키려 행한다.
이런 독단행동에 부디카는 반발했으나, 데키아누스는 부디카를 병사를 시켜 매질한 뒤 그녀의 두 딸 아이를 겁간케 한다.
이런 모독적이고 충격적인 사태에 이케니족의 로마에 대한 반발심리는 극에 달하게 된다.
그들은 곧 부디카를 여왕으로 추대.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킨다.
이 반란에는 이케니족만 들고 일어난 것이 아니라 몇 개의 다른 켈트부족들도 합류한다.
그리고 그들은 순식간에 수만명의 대군으로 불어났다. 이윽고 부디카의 군대는 카몰로두눔을 함락, 도시를 파괴하고 복수를 행한다.
9 군단이 반란군을 막기 위해 나섰으나 그들은 유격전을 시도하는 부디카의 반란군을 상대로 동일하게 대적하려다가 역으로 부디카에 의해 섬멸, 퇴각한다.
결국 웨일스 원정에 나서고 있던 수에토니우스가 14 군단과 20 군단 병력을 이끌고 다시 돌아왔다.
그는 청야전술로 론디니움(지금의 런던)과 베룰라미움(세인트올번스)를 버리고 후퇴, 황급히 예비군을 소집한 뒤
비전투인원을 포함하여 10만 이상으로 늘어난 부디카의 저항군을 상대로 와틀링 가도에서 일전을 겨루게 된다.
부디카는 이 전투 직전 "로마는 우리의 땅을 빼앗고 오염시켰다. 승리인가, 아니면 죽음인가? 나는 그것을 여왕으로서 숙고한다."는 논지의 연설을 했다고 전해진다.
와틀링 가도 전투에서 수에토니우스가 이끄는 1만~1만5000명의 로마군은 부디카가 이끄는 5만~10만(이에 대한 계산은 최대 20만까지도 늘어난다)
브리타니아 켈트 연합군을 상대로 '반란 진압'에 나섰다.
수에토니우스의 로마군은 전면으로부터 가해지는 적의 공세에 대해 밀집대형을 유지하는 동시에
자신들을 공략하느라 좁은 지역에 몰린 브리타니아 연합군 전면을 투창공격으로 무너뜨리고, 동시에 기병들을 이용해 적의 양극을 공략함으로서 승리했다.
부디카의 저항군은 훌륭한 사기와 용기에도 불구하고 당대 최강의 야전 능력과 장비 수준을 지닌 로마군을 넘어서지 못하고 패배한다.
그로서 로마 제국은 브리타니아에서 일어난 이케니의 반란을 찍어눌렀다.
부디카는 전투 후 겨우 몸을 피신했으나 이후 실의에 빠져 병사했거나, 아니면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ㅁ친 스토리 ㅅ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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