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45117006
1618년 음력 6월서부터, 명나라는 꾸준히 대후금전선의 확대를 모색했다.
명나라는 더 이상 가만히 후금에 맞고만 있을 수 없었고, 따라서 후금을 정벌하기 위해 동맹국들을 끌어모았다.
그 결과 예허, 조선과 합의가 되어, 예허의 긴타이시, 부양구, 전 울아 한 부잔타이, 조선의 광해군이 모두 후금 정벌에 참여키로 했다.
이렇게 후금은 형세적으로 고립되었으나 누르하치는 상황에 개의치 않았다. 그는 명에 대한 침습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 역시도 국제적인 기류를 뚜렷히 읽고 있었기에, 침습에만 목을 메지 않고 방어 준비도 동시에 행했다.
시간은 흘러서 1618년 9월 말, 누르하치는 다시 명나라에 공세를 가했다. 이번 목표는 무순 북쪽 회안보였다.
포로 1천명을 얻은 누르하치는 끝까지 저항하던 300여명의 명나라 사람을 명과의 국경 인근에서 처형해버린 뒤
한 사람에게 서신을 쥐어주어 명으로 보냈다. 그 서신이란 이전 요동/광녕 순무 이유한이 보낸 사신들에게 했던 이야기와 같은 논지의 글이었다.
"자신과 회전으로 싸우던가, 아니면 자신의 명분을 인정하고 금과 은, 비단등의 보상을 주던가."
누르하치의 이런 선포문에 대해 명나라는 따로 반응치 않았다. 이미 누르하치를 토벌하기 위한 군대가 각지로부터 집결하고 있었고,
총사령관 경략 양호 역시 요동에 온지 오래였다.
예허와 조선 역시 이미 준비에 들어간 지 한참이었다.
명나라는 감히 천조에 반항한 대역무도 오랑캐 노추(奴酋)를 가만 놔둘 수 없었고, 조선은 재조지은과 대명천하를 무시할 수 없었다.
이제 세력이 너무도 줄어든 예허로서는 이번에 명과 함께 후금을 공격하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였다.
누르하치는 자신의 예상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자, 이전보다 더 큰 불안함을 느꼈다.
그는 팔기를 소집시켜 놓은 뒤 잠정적으로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그리고 명나라의 반응을 유도해보기 위해 자신이 포로로 잡아놓고 있던 명나라 사람들을 석방하여 돌려보내 보았다.
음력 11월의 일이었는데, 명에서는 거기에 대해 당장 반응치 않았다. 전쟁 준비에 바쁜 와중이었기에 당장 신경을 쓰진 않은 것인데, 덕분에 긴장감은 더더욱 고조되었다.
오직 대전쟁 직전의 음습한 불안함만이 요동에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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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는 하루에 2편, 평일에는 하루에 1편씩 쓰는중임. 일때문에 그 이상의 속도는 힘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