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회곽묘.
구덩이를 파고 거기에 나무로 격벽을 치고 숯을 깐뒤 석회를 부어 회격을 만드는 방식인데 석회가 건조되는 과정에서 수분이 마르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고열로 천연살균실이 완성됨.
그렇다보니 안에 시신이나 유물이 썩지 않고 자동으로 보존처리됨.
세조가 이 묘제를 택한 이후로 사대부와 왕실에서 이 회곽묘를 기본으로 했는데
앞서 이야기한대로 완벽하게 시신이 썩지 않고 보존되서
그래서 조선시대 묘는 파는 순간 거의 99퍼센트로 미라와 유물이 온전히 보전되서 나옴.
특히 1970년대 김덕령의 묘를 후손들이 열었을 때는 살아있는거 같았다고.
다만 시신의 보존개념이 희박하던 때라 사진 찍어둔다고 사진기 찾는 동안 산소와 접촉해 시신이 부패해 부득이하게 화장을 해버렸음.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세조가 굳이 회격묘를 택한 이유는 1. 기존의 석곽묘는 백성들이 너무 고달프다. 2. 시신이 빨리 썩어야하니 편리한 석회 쓰자. 였다는거.
1번은 이뤄졌으나 2번은 이뤄지지 못해서
아직도 세조의 시신은 썩지 않고 보존되어있을 거라고 함.
여담으로 세조 이후의 모든 임금은 이와같은 회격묘라서 무덤 발굴 시 모두 시신이 온전히 썩지 않고 보존되어있음
김덕령도 잘 보존 됬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