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中, 홍 타이지)
누르하치가 1626년 음력 8월 11일 붕어한 뒤, 그의 뒤를 이어 아이신 구룬(후금)의 한(汗, han. 여진 계통 국가의 임금)이 된 것은 그의 여덟째 아들 홍타이지였다. 그것은 강력한 대권 후보중 하나였던 암바 버일러 다이샨이 본인의 아들 요토와 사할리연등의 설득에 따라 홍타이지를 지지함으로서, 후계구도의 균형이 깨지고 버일러들의 지지가 홍타이지에게로 쏠리며 이루어진 계승이었다.1
다이샨의 이러한 결정은 국익을 위한 본인의 희생 측면도 물론 존재했으나, 누르하치 말년 시기에 본인의 입지가 다소 손상된 상황에서 다른 버일러들의 지지를 받아 한에 오르더라도 정치적으로 힘든 싸움을 계속해 나가야 할 것이라는 판단의 측면도 존재했다. 즉, 구태여 한의 옥좌에 올라 상처를 입어가며 옥좌를 지키기 보다는 대버일러로 남아 상황을 지켜보는 방안을 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2
어쨌든, 홍타이지는 다이샨을 중심으로 한 아이신 구룬의 버일러들의 지지를 받아 아이신 구룬의 2대 한이 될 수 있었다.
일단 한에 즉위하긴 했지만, 즉위 초기 홍타이지의 입지는 그리 넓지 않았다. 누르하치 말기의 '버일러들과 한의 공동집정 정치체제'는 홍타이지 즉위 초기에도 그대로 유지되었으며, 그에 따라 홍타이지는 권력을 분산시켜 다른 대버일러들과 나눠가져야 했다. 그것은 홍타이지가 아이신 구룬의 임금일 지언정 버일러들을 무시한 채 독보적인 위치에서 권력을 휘두를 수는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대 한인 누르하치야 건국과정에서 본인의 입지를 확실하게 다졌고, 또 친족관계상'아마 한(아버지 한)'으로서 모든 버일러들보다 우위에 있으면서 강력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으나 홍타이지는 버일러에서 한으로서 선출된 것이었기에 그렇지 않았다.
위태로운 왕좌에 앉은 홍타이지는 본인의 권력을 강화하고, 한을 정점으로 한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확보하기 위해 여러 정치적 조치들을 취해야 했다. 그것은 본인의 야망과 '생존'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취해야 했던 조치들이었다.
홍타이지가 본인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진행한 조치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본인의 혈통적 정통성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즉슨 본인의 어머니인 여허나라 몽고저저의 위치를 실제보다 드높이고, 본인의 부한인 누르하치의 다른 부인들의 위치를 평가절하하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 홍타이지는 누르하치의 다른 부인들에 대해서 의도적인 평가절하를 하기 시작했다. 누르하치의 마지막 대푸진이자 본인의 배다른 형제인 아지거, 도르곤, 도도의 어머니인 울라나라 아바하이가 특히 집중적인 절하 대상이었다. 아바하이는 누르하치의 마지막 대푸진이라는 점에서 정통성이 상당했고, 그녀의 소생들 역시도 그에 따라 정통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홍타이지는 그녀에 대한 절하에 노력을 기울였다.3
자신의 생모를 제외한 누르하치의 다른 부인들에 대한 평가절하에 더불어서, 홍타이지는 자신의 모친을 직접적으로 띄우기 시작했다. 그녀의 찬양에 가장 요긴하게 쓰인 것은 역시 '실록' 이었다. 역사를 통해 본인의 어머니를 영원토록 '황후'로 남기려 한 것이었다.
1633년, 아이신 구룬시절 부터 편찬되기 시작한 태조실록은 1636년 11월 청나라가 개원한 지 몇개월이 지난 뒤에 마침내 문자부분이 완성되었다. 만주문자, 몽골문자, 한문으로 동시에 쓰여진 이 실록은 '태조승천광운성덕신공조기입덕인효무황제4 - 효자소헌순덕정순승천육성무황후5 실록' 이라는 공식 명칭을 가지게 되었다.
무려 황제와 황후의 묘호를 동시에 명칭에 포함하여, 누르하치와 몽고저저(홍타이지 모친)의 공동 실록으로 하려 한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홍타이지는 자신의 모친이야 말로 진정한 황후였고, 그 황후의 아들인 자신이야말로 아이신 구룬-나아가 다이칭 구룬(청나라)의 임금으로 어울림을 증명하려 했다.
홍타이지는 물론 실록의 내용도 신경썼다. 실록에 쓰여 있는 홍타이지의 모친에 관한 내용은 그야말로 찬양일색의 내용이었다. 외모가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던가 마음이 넓다던가 성품이 온화했다던가, 오만가지 미사여구가 몽고저저의 행적에 덧붙여졌다.
무황제실록은 객관성이 고황제실록보다 뛰어나 사료로서의 가치가 상당히 높은 실록이라고 평가받으나, 이 부분은 의심의 여지 없이 미화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홍타이지는 그렇게 본인의 어머니에 대한 기록을 미화함으로서 '역사적인 효도'를 함과 동시에 자신의 정통성을 강화했다. 이러한 혈통 강화 작업은 홍타이지가 자신의 권력을 완전히 공고히 한 뒤에도 계속되었다. 혈통의 강화는 지나쳐서 나쁠 것이 전혀 없었을 뿐더러, 그 역시도 한 명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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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각주
1.당시 누르하치의 뒤를 이어 후금의 한위를 계승할 수 있던 것은 4대 버일러로 통칭되는 다이샨, 아민, 망굴타이, 홍타이지였다. 이들 모두 계승권이 있었으나 사실 다이샨과 홍타이지의 대결로 좁혀질 수 있었다. 아민과 망굴타이는 세력적이나 인망적으로 불리한 형국이었다.
2.물론 앞서 언급했다시피 최종적으로는 국익을 위한 측면도 물론 존재했다.
3.그와는 별개로, 아바하이 소생의 왕자들, 즉슨 아지거, 도르곤, 도도등은 모두 홍타이지에 의해 후금과 청나라의 중심적 세력으로 성장했다.
4.태종문황제실록에는 태조승천광운성덕신공조기입극인효무황제라고 표기된다.
5.태종문황제실록에는 효자소헌순덕진순성천육성무황후, 효자소헌순덕정순성천육성무황후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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