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제22대왕 무령왕의 능
무령왕릉은 지하에 숨겨진 묘였기 때문에 일제강점기때
일본놈들의 도굴도 없었고, 덕분에 보존상태도 훌륭했다
내부에선 그간 귀했던 많은 백제 유물들이 발견되어
국내 최고의 발굴작업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다
동시에 이 발굴작업은 최악의 발굴작업으로도 기록되게 되었다
1971년 7월6일,
공주 송산리 제6호 고분의 유입수를 막기위해 배수로 공사를 하던 중,
한 인부가 생각없이 휘두른 삽날에 웬 벽돌 하나가 걸렸다
새로운 고분이었다
그때까지는 당시 발견되었던 대부분의 국내 백제 고분은
이미 도굴된 상태로 발견되어 주인을 알 수 없었던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영동대장군 백제사마왕 寧東大將軍 百濟斯麻王
즉 무령왕임을 나타내는 지석과 함께 많은 유물이 발견되며
대한민국 고고학계가 뒤집어졌다
이튿날인 7월7일
문화재관리국은 서둘러 발굴단을 편성하여 파견하였다
하지만 이미 왕릉은 취재진들과 구경꾼, 주민들로
뒤엉킨 아수라장이었다
경찰은 기본적인 현장통제조차 하고 있지 않았다
당일 내린 소나기로 발굴은 잠시 중단되었고
7월 8일 작업을 재개
하지만 국내 발굴단의 실력은 당시로썬
한심한 수준으로, 발굴작업은 더디기만 했다
거기다가 취재진들이 발굴지까지 들어와
"당장 유물을 공개하라!"
말하며 발굴단을 폭행하거나
유물을 파손시키기도 하였다
취재진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도 몰려와
유물의 서울 이송을 반대하며 발굴단과
몸싸움을 벌였고,
경찰들도 현장을 통제하지 않는
총체적 난국인 상황이었다
"실측을 위해 무덤 안으로 발을 디뎠을 때 분노가 치밀었다.
바닥에 깔린 유물들을 아무렇게나 밟은 흔적들이 난무했고,
석수의 머리에 꼽혀있던 철제장식은 아예 떨어져 나가 있었다"
-조유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결국 몇 년은 족히 걸려야할, 신중했어야 할 발굴작업은
단 하루만에 날림으로 끝나고 말았다
얼마나 급했는지 발굴단원 중 한명은
자신의 발을 곡괭이로 찍어버리는 불상사도 발생할 정도였다
거기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시 김원룡 발굴단장과 김영배 공주박물관장이
유물을 들고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하러 갔다가,
대통령이 생각없이 유물을 접었다 폈다가 갖고 놀았던 것
당시 발굴단, 취재진, 정부, 주민들의
미숙한 역사의식과 시민의식이 빚어져 발생한
역대 최고이자 최악의 국내 발굴작업이었다
그 대통령이 누구인지는 알려줘도 될 것 같은데
한마디로 존나 미개해서 역대급 역사적 가치의 문화재를 날려먹었다는 이야기군
'다카기'
기레기... 기레기 네버 체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