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7화 노예와 인간[奴才與人].
전개는 삼국지연의의 그것을 그대로 따라간다. 장비가 미리 준비시켜둔 함선을 끌고 손숙이 탄 배를 습격, 배를 바싹 붙어서 기슭 방향으로 강제로 몰고 간다. 후위에 위치한 강동(江東) 지원함선들은 어떻게든 따라붙으려 하지만 이미 얕은 수역 쪽에 진입해버린 상황. 장비는 손숙의 함선을 기슭 쪽에 위치한 대채(大寨)로 끌고갈 요량인 듯. 한편 돛대 위에서 황호가 신들린 화살 솜씨로 강동 암살자들이 조타륜으로 접근하는 족족 쏴 죽이는 터라 결국 손숙이 탄 함선은 조타수가 없는 채로 직진해버리고, 기슭에 부딪쳐 좌초되고 만다. 그리고 황호가 적들의 발을 묶고 있는 가운데 결국 장비의 침입을 허용하고 만다. 유비가 없는 상황에서는 자연히 최종 명령권자는 장비이기에, 그는 자연스레 부하들에게 명령을 하달한다.
>
장비 : 好傢夥 如此多關隘也能通過
대단해, 이 많은 요충지용 관문들을 통과할 수 있다니 말야.
商人確有點本事
상인(商人)께선 확실히 그쪽 분야에 일가견 있으시구만.
강동 암살자를 오연히 내려보며 말하는 장비. 주선(周善)은 그런 그를 올려보며 귀하의 존성대명은 얼마간 들어봤다고 한다.
주선(周善) : 不過 有一件事 老夫也很想知道
허나, 노부도 무척이나 알고 싶은 게 하나 있소만.
장비 : 單刀直入 俺很喜歡
단도직입적이시군, 마음에 들어.
俺作主 五百個 一個不活
처분을 정하겠다. 오백 명, 한 놈도 살아남지 못한다.
多出的留下
초과분은 남겨두고.
그리고 장비는 냉혹하게 이들의 생사를 결정한다. 502명에서 손숙, 아두를 제외한 나머지를 전부 몰살시키겠다는 것. 마치 유람하는 것마냥 하는 말에 오싹함마저 느껴진다. 이런 말에 주선 또한 대거리하기를
주선 : 五百多兩個 回鄉省親,
오백하고 둘은 귀성하여 부모님을 뵐 것이외다.
一個不少
한 사람도 모자람 없이.
강동 암살자 무리와 장비의 신경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 켠에선 요원화와 손숙의 해후가 이뤄진다. 부하들은 상관인 요원화에게 여자를 묶어야하지 않냐고 운을 떠보지만 요원화는 자신이 책임지고 맡을 것이라며 괜찮다고 한다. 그런 모습을 본 손숙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감히 ‘노예’의 입에서 作主(나서서 주관하다, [책임지고] 결정하다, ~가 하자는 대로 하다)라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장비 정도 되는 사람이여야 쓸 作主이란 말을 노예가 쓰고 있으니 웃음이 나오질 않고 배길 수가 있나.
요원화 : 一切由我作主
모든 건 내가 책임지고 처리하지.
손숙 : 하하하 你作主?
하하하, 네가 나서서 주도한다고?
從奴才口中說出 更是有趣...
노예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재밌네...
요원화 : 說得對 我只是個奴才
그 말이 맞아. 난 한낱 노예일뿐.
但妳何嘗不是
허나 당신이라고 다르겠나.
可笑的是 妳我皆同類
우스운 것은, 그대와 나 모두 같은 부류라는 것.
更是甘心爲奴的那一種
그것도 기꺼이 노예가 되기를 받아들인 쪽이지.
하지만 손숙의 비웃음을 요원화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였기에.
그리고 이 둘의 대화를 뒤로하며 먼저 나서는 장비. 부하들이 던지는 창을 받아들며 500명을 순살한다. 장비가 ‘노예’(암살자들)을 쓸어버리는 광경을 일견하며 손숙은 다시금 독백을 이어나간다.
나레이션 : 利與害掌控了人生,
이익과 손해에 따라 좌우되던 그런 인생인데,
大義重於一切,
대의(大義)는 그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早已忘了自己
자기 자신조차 일찍이 잊어버렸었다.
오로지 이익과 손해에 따라 그 값어치가 결정되던 ‘노예’의 인생. 이익이 나는 곳으로 움직이는 것이 노예의 본분이나, 그 모든 것에 앞선 하나의 이념이 있으니 그건 바로 대의(大義)였다. 주판을 튕기며 이익과 손해를 따지다가도, 대의 앞에서는 목숨을 내던지고 죽음을 자기가 돌아갈 집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바로 만인적(萬人敵) 앞에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오백의 암살자처럼 말이다.
나레이션 : 盡力地守住 不放棄
전력을 다해 지켜내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
那是對前人犧牲的致敬
이는 앞서 간 이들의 희생에 표하는 경의이니.
或許 命運就是如此...
어쩌면 운명이란 이러한 것일지도...
주인이/가문이/나라가 쌓아올린 것을 전력을 발휘해 지켜내고, 그 어떤 위험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은 앞선 노예들이 제 목숨을 희생해 이뤄낸 것이며, 뒤의 노예들 또한 대의에 목숨바친 열사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먼젓번 노예를 따르는 것이 경의에 다름 아니라 한다. 이렇게 앞선 노예들이 대대손손 번연하며 조금씩 쌓아 올리고 지켜내어 그 크기를 키워내는 것이 운명 아닐까.
그러니, 이 ‘노예’들은 대국(大局)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그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수세에 몰린 주선은 거리낌 없이 아두(阿斗)를 잡아 인질로 삼는다. 그것도 독(毒)이 발라진 칼을 들이대면서. 손숙이 나서려 하지만 요원화에게 제지당한다. 같은 암살자이기에 더 잘아는 것일까, 요원화는 어떤 것들은 대의 앞에선 아무런 값어치도 없다며 손숙을 말린다.
<독칼로 아두를 위협하는 주선을 보고 참다 못해 폭발하는 범 누님>
헌데 그 순간, 갑자기 난입한 범(虎子) 누님이 주선을 때려눕히고 아두(阿斗)를 채간다.
지난 화에서부터 범 누님은 계속 아두의 안위를 살폈다. 팔다리가 날아가는 전장을 어떻게든 ㅂㅈ 못하도록 막으려했다. 범 누님에게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자, 한 조각 인간성이었을 터다. 그렇게 어떻게든 억누르려 했던 인간성은, 독 묻은 칼로 아두를 겨누는 주선을 보며 기어코 튀어나온 것이다. 어린아이를 납치하는 것도, 어린아이에게 추악한 싸움을 하는 것도 참은 그녀였지만, 어른들이 독 묻은 칼로 아이를 도구처럼 쓰는 광경에는 결국 폭발하고 만 것.
<범 누님의 삶을 맞바꾼 인간성의 발로. 그리고 그런 인간성을 '아녀자의 인'이라 무시하는 주선>
범(虎子) 누님 : 周善 枉你爲人 你只是...
주선(周善), 널 사람이라 여겼는데 넌 그저...
주선 : 婦人之仁 死不足惜!
아녀자의(婦人)의 인(仁)은 죽어도 싸다!
헌데 이런 인간성의 발로가, 객관적으로 볼 때는 마치 생떼 부리는 모습으로 그려진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각설하고,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위급상황에서 범 누님의 객기는 주위의 화를 초래하는 게 당연하고, 주선은 그녀의 행위를 ‘주제파악도 못하고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대사를 망치는 짓거리婦人之仁’라 비하하며 독 묻은 칼로 그녀의 옆구리를 쑤신다.
그리고 그런 주선도 범(虎子) 누님에게 한눈팔다 장비에게 필살기 탐낭취물(探囊取物; 주머니 속 물건 꺼내기)에 당해 죽고 만다.
주선은 죽어가면서도 위에 독백에서 나온 守住와 不放棄를 연호하고, 나머지 암살자들도 그 말을 좇아 장비에게 무서움 없이 덤벼든다.
한편 범 누님은 구해낸 아두를 끌어안으며 이건 모두 전쟁놀이에 불과하다는 착한 거짓말을 한다.
범 누님 : 孩子 沒事的 大家在玩打仗
착하지요, 괜찮아요. 다들 병정놀이하고 있는 것뿐이랍니다.
這裡全都是好人 沒有壞人...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착한 사람들이고 나쁜 사람은 없어요..
快藏起來 不要讓他們發現
저 사람들이 찾지 못하게 빨리 몸을 숨기세요.
來了 來了...
아, 찾으러 왔네요, 왔어요.
很好玩 虎子嬸玩累了...想休息一下
정말 재밌는데, 범 아줌마는 피곤해서...좀 쉬어야겠네요.
혹 아두가 눈 먼 칼날에 다칠까봐 온 몸으로 아이를 끌어안으며 죽는 범 누님. 요원화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손숙에게 다음의 말을 한다.
요원화 : 保護公子是身爲奴才的工作
공자를 보호하는 것은 노예된 자가 해야 하는 일.
但是 淑子,
허나, 숙이(淑子)여
讓妳自由,
그대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卻是我自己的任務!
내 스스로 맡은 임무라오!
就算抗了命 也要改變妳的命運
명령을 거스르는 한이 있더라도 그대의 운명을 바꾸고자 하니.
那是作爲人 最大的心願
이는 사람으로서 가장 큰 바람이었음을.
因妳 絶非我人生的過客!
그대는 내 인생에 있어 결코 지나가는 길손 따위가 아니기에!
아두를 지키는 것은 노예(범 누님)의 일이지만, 자신이 여기에 온 목적은 다름 아닌 손숙을 구하고, 그녀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라는 것. 왜냐? 자신에게 있어 손숙은 노예가 아니라 정(情)을 통한 사람이니까. 그 다짐을 확고히 해주는 장치로, 그의 첫째 부인이 묻은 무덤을 비춘다. 그 말을 들은 손숙은 울음을 터트린다. 요원화가 자신을 위하고 있음을 확인 받았기에. 그래서 그녀는 자신은 이미 옛적부터 그러한 사실을 알고있었다며, 당신의 그 말로도 충분하다고 대답한다.
요원화는 아두를 두고 일단 손숙을 구출하기로 한다. 손숙을 구하기 위한 배가 오고 있으니 선미 쪽으로 향하라는 요원화. 한편 모두에게 버림받은 아두를 배경으로 나레이션이 흐른다.
나레이션 : 其他的 也會過去
다른 이들 또한 지나가겠지.
人生總有不同的過客
사람의 삶이란 서로 다른 길손들을 지나치게 되어있으므로.
走了一個 來了一個
하나가 떠나고 나니, 다른 하나가 오는구나.
원래라면 아두를 보호할 임무를 맡은 것은 노예 요원화&손숙이었지만, 둘은 마지막 남은 인간성을 좇아 배 뒤편으로 향했다. 나레이션 말대로 그 대상이 가족이라 할지라도 사람의 삶에서는 지나쳐가기 마련이었다. 보모인 범 누님도 지나쳐갔고(過去에는 소실, 죽음의 의미도 포함됨), 요원화와 손숙도 지나쳐갔다. 과거의 노예가 갔으니, 새로운 노예가 와야 할 텐데 그는 누구일까?
<아두를 구해낸 황호. 그는 손숙을 부르는 淑淑를 叔叔로 착각한다>
아두 : 淑
숙아(淑) [아두는 손숙의 이름 淑을 연호하고 있다. 즉 손숙을 찾고 있음]
황호 : 原來在這...
여기 있었구나...
아두 : 淑淑
숙아..숙아(淑淑)
황호 : 可憐的孩子,
불쌍한 아이야,
황호 : 叔叔在 叔叔在
숙부 여깄어요, 숙부 여깄답니다. [황호는 淑를 叔로 알아들음.]
아두는 과거의 노예, 손숙을 찾지만 그녀에게 온 것은 새로운 노예 ‘황호’였다. 아두는 손숙의 이름 淑을 연호하며 그녀를 찾았지만[淑淑] 황호는 淑淑을 叔叔(숙부)로 잘못 알아듣고[아니면 일부러 오독하고] 자기가 숙부라고 하며 그녀를 달래는 것이다.
시점은 요원화에게 옮겨가, 탈출구쪽으로 도망친 둘. 허나 장비는 이미 500명을 모조리 죽이고 그들 앞까지 당도해 있었다. 장비는 요원화가 흑심을 품고 있음을 지적하며, 손숙은 인질로서 작용해야 한다고 한다. 요원화는 거절하며 그녀는 자신의 가족임을 선언하고 그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고 한다.
장비 : 但別忘了 她是人質!
그런데 잊지 말라고, 그녀는 인질이란 것을!
요원화 : 她...是我的家人!
그녀는...내 가족이오!
장비 : 單刀直入 俺很喜歡
단도직입적이군, 마음에 들어.
요원화 : 有件事 我也很想知道,
나도 무척이나 궁금한 게 있소.
요원화 : 那是你...
당신과
요원화 : 還是我 更厲害
나, 둘 중에 누가 더 강할까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