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게임의 내러티브와 롤 플레잉
내러티브, 간단히 얘기해서 이야기성 혹은 서사라고 불리는 것은 게임 매체에도 존재함. 게임이란 매체의 연구를 두고, 놀이의 측면에서 주로 연구하는 루돌로지 뿐만 아니라, 서사적 측면에서 연구하는 내러톨로지의 줄기가 있는 것으로 봐도 게임의 서사적 연구는 심도 깊음. 심지어 테트리스 같은 단순한 퍼즐 게임에도 내러티브가 존재한다고 연구하는 학자도 있음. 이에 대해 나도 학식이 부족해 전부 풀어내지는 못함.
이 글에서 강조하고 싶은 건 이런 게임의 내러티브는 롤 플레잉-역할놀이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임. 단순히 RPG 게임 뿐만 아니라, 경영 게임, 전략 게임, 육성 게임 등에도 롤 플레잉이 존재함. 게임을 소비할 때 게이머는 경영자가 되거나, 지휘관이 되거나, 아빠나 엄마 혹은 선생이 되지. 문명 시리즈에 감명 받고, 신들이 문명을 조종한다는 설정의 소설을 만든 베르나르의 소설이 유명하지. 이렇듯 게임 속에서 게이머는, 내러티브가 제공해주는 역할을 향유하게 되어 있음.
위에서 언급한 테트리스 또한 이러한 롤 플레잉 요소가 아주 조금이나마 존재하는데, 이 경우는 게이머가 향유하는 역할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추상적이라 명확히 언급할 수 없을 뿐임. 퍼즐 게임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게임 중에 가끔 퍼즐의 주요 요소나, 퍼즐을 바라보는 어떠한 시선에 몰입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음. 이때 그것들이 게이머가 향유하게 되는 역할이라고, 나는 생각함.
2. 역설사 게임의 롤 플레잉
과장해서 모든 게임에 롤 플레잉 요소가 있다면, 패러독스 인터랙티브, 이른바 역설사 게임 롤 플레잉 요소가 있다고 볼 수 있음. 근데 생각해보자. 역설사 게임에서 주인공이 몰입하는, 향유하는 역할은 뭘까. 문명처럼 '신'의 역할일까? 혹은 게임에서 제공하는 지도자 캐릭터? 신의 역할이라기엔 내러티브가 제공하는 역할의 기능이 너무 제한적임. 크킹 시리즈를 생각해보자. 뻑하면 암살 당해서 내 캐릭터가 죽고, 뻑하면 몽골군이 쳐들어와서 내 제국을 야금야금 쳐먹음. 새로운 곳을 개척할 수도 없고, 상대 국가를 핵무기 같은 걸로 일망타진할 수도 없음.
그렇다면 게임 속에서 제공되는 지도자 캐릭터가 게이머의 역할일까? 크킹 시리즈에서는 그런 경향이 강하긴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게임 속 지도자 캐릭터는 게이머가 현재 처한 '트레잇'의 모음일 뿐이지 게이머 자체의 역할은 아님. 애초에 크킹 시리즈의 모토 자체가 가문의 흥망성쇠라는 걸 고려해보면, 캐릭터는 역할이 아니라 가문의 주요 상태를 뜻하는 것임.
나아가 HoI 시리즈, 빅토리아 시리즈, 유로파 시리즈, 스텔라리스 등을 보면 지도자 캐릭터의 역할은 더 축소됨. 하지만 역설 사의 게임은 모두 공통점이 있음.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건의 발생과 내가 컨트롤 하는 '국가'의 흥망성쇠가 있다는 것. 즉 시간의 흐름이 있고, 사건이 있고, 흥망성쇠 같은 분기점이 있다는 것은, 역설 사 게임 또한 내러티브-이야기성을 가진다는 것임. 역설 사 게임은 전부 이런 공통점을 가지기 때문에, 이들 내러티브가 제공하는 역할 또한 똑같음.
신도, 캐릭터도 역할이 아니라면, 게이머가 가질 수 있는 역할은 이른바 거대서사, 큰 이야기라고 불리는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음.
3. 역사가 된다는 것은 실수 투성이가 되는 것.
스텔라리스를 제외하곤 모든 역설사 게임은 과거의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 이미 현대의 게이머가 교육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것들을 재현하는 것임. 사실 따지고 보면 스텔라리스의 요소들 또한 미래라는 내러티브로 포장하고 있을 뿐, 그 속의 내용은 기존의 역사가 보여줬던 것들을 재구성한 것임.
역사를 향유한다는 것, 역사라는 역할이 된다는 건 뭘 의미할까. 신이 되었다는 걸 의미할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우리는 역사라는 것이 위대하긴 하지만, 절대적이고 권능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음. 인간의 수많은 실수 자체가 역사니까.
그래서 역설 사 게임을 플레이할 때 게이머는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내가 역사가 된 이상 그런 실수를 안 하려고 함.
예를 들어 내 플레이 경험을 얘기하자면, 빅토리아 시리즈에서 단순히 게임을 승리로 이끈다고 한다면 법을 개정할 때 굳이 노동권 개정을 안 해도, 여성 참정권을 개정 안 해도, 보통 선거권을 개정 안 해도 열강이 되어 세계를 주름 잡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음. 하지만 나는 역사라는 역할에 깊이 몰입할 때 굳이 안 해도 되는 법률 개정을 시행하려고 노력하고 결국 혁명이 터지고 게임을 조져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음.
역설 사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것, 특히 역사라는 역할에 깊이 몰입해서 경험한다는 건, 역설적이게도, 내가 혹은 현재 내가 배운 역사라는 게 얼마나 실수 덩어리인지 알려주는 거울이 됨. 그 시대에 맞는 역사적 맥락과 그에 맞는 시스템이 있는 건데, 굳이 나는 현대 역사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내 역사관으로 역할에 충실하려 하니까 그 자체가 실수가 되는 것임.
결국 역설 사의 게임은 역사라는 역할을 제공하면서, 역사가 가진 실수 투성이들도 게이머에게 강요함. 이는 역사가 신이 아님을, 게이머가 향유하는 역할 또한 신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역사임을 재현하고 있음.
4. 그래서 뭐 어쩌라고
사실 하고 싶은 말은 이게 다임. 예전에 학부 시절에 게임 매체 관련해서 레포트를 쓴 적 있는데 그때 다 못 썼던 주제를 마무리 짓는다는 느낌으로 쓴 글임. 그런데 굳이 쓴 이유는 역설 사 게임이 제공하는 역할, 역사라는 역할이 매우 매력적이기 때문임.
어떠한 인물, 어떠한 단체를 주인공 삼아 풀어낸 내러티브 매체는 많음. 소설, 영화, 만화, 그외 등등. 게임도 그 중 하나지.
하지만 역사라는 역할을 이렇게 매끄럽게 풀어낼 수 있는 매체는 아마 게임 뿐이지 않을까 함.
물론 국가나 역사, 시대 정신 같은 거대 서사, 큰 이야기를 주인공처럼 이야기하는 다른 매체의 표현물들도 있음. 근데 그런 경우 대개 대중적이지 못하거나, 너무 전위적으로 이야기가 끌러가는 감이 있음. 예컨대 주제 사라마구의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같은 거. 이 경우 거대 서사를 강조하기 위해 특정 인물, 특정 지역의 고유 명사를 지워버려서 읽기 좀 껄끄러움. 주제 사라마구는 그나마 잘 읽히게 풀어 놓은 경우임에도.
하지만 게임이란 매체에서는 역사라는 역할을 내러티브로서 매우 깔끔하게 제공할 수 있음. 내러톨로지들이 좋아할 법한 말로 쓰자면 아마 시공간적 특성에서 다른 매체보다 자유롭기 때문인 거 같음.
이라는 결론이 허무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