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였으나 일부 미싱링크에 있어 개인 추측 포함됨
우리가 아는 가장 일반적인 (한국식) 탕수육.(볶먹 부먹 논란 패스. 일본식 스부타도 패스. 탕추리지, 꿔바로우, 고로육 등의 중국 본토의 유사요리들의 상세사도 패스. 그거 다 적으면 시간과 공간이 진짜로 모자름)
투명한 새콤달콤 소스를 고기튀김에 부어서 버무리는(+셰프에 따라 볶기도 하는. 산동화교들조차 집집마다 제각각이라 볶/부 원조 따지기가 뭐함), 한국식 중화요리의 가장 대표요리.
한국 탕수육의 뿌리는 크게 다음 3가지 요리로 강하게 추정된다.
산동 일대의 탕추리지, 동북의 꿔바로우, 그리고 광동 일대의 고로육
산동의 탕추리지(일부러 약간 거무튀튀한 사진 가지고 옴. 이것도 집집마다 붉고 검고 제각각이라 특정 하나로 정의가 불가)
가장 직접적인 유래는 역시 이름도 유사한 산동의 탕추리지. 당연하지만 한국 화교들의 뿌리는 대부분 산동이라 그 동네 음식이 굉장히 많이 들어왔고, 탕추리지도 당연히 유입되어 탕수육으로 정착(되었을 것으로 강력하게 추측되고 그게 자연스러움)
다만 한국 탕수육 특유의 새콤달콤(특히 화교집의 새콤이 강렬한) 투명한 소스는 동북의 꿔바로우 영향을 다소 받았을 것으로 추정(이건 개인 연구에 따른 추측임. 이 부분이 개인 추측이 강하게 반영되었다는 부분)
꿔바로우
탕추리지도 새콤달콤 소스 기반이긴 하나, 한국 화교 탕수육만큼 새콤 쪽에 치중되었다고 보기는 약간 무리가 있음. 그래서 새콤 쪽이 강한 동북의 꿔바로우 소스 영향을 약간 받지 않았나 추정(지리적으로도 연결되어 있었고, 분단 이전까지는 동북에서 한반도 남부지방까지 교류가 가능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투명 소스 탕수육은 그렇고,
7~80년대 들어 한국에 본격적으로 나타났다는 붉은 케챺소스 탕수육.
이건 아마 중화민국의 대륙 패퇴 후 광동 지방(광동지방은 대륙 내에서 공산화가 가장 늦었던 동네 중 한 곳)사람들이 대만으로 다수 이주했고, 그들 중 일부는 한국에 흘러들어왔을 것으로 추정(원인은 불명. 분명 공식적으로건 비공식적으로건 화교 차별이 있었던 나라임에도 왔다는 것은 아마 친인척 관 때문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들이 화교들이 한반도 남부에서 가장 잘 할 수 있고 사실상 가장 문이 넓었던 요식업에 뛰어들었을 것은 자명하고, 그들 손에서 아마 케챺 베이스의 광동식 고로육으로부터 한국 케챺탕수육의 원형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추정중
고로육(사실 정확히는 상당히 한국화된 고로육)
그런 전통 케챺탕수육들이 중노년층 입에 입을 타고 전해 내려오는 전설의 케챂탕수육일 가능성이 매우 높음.
왜냐하면 한국 케챺탕수육은 한 번 격동의 시기를 거치면서 퀄리티가 평균적으로 대폭 하락한 시기가 있었기 때문.
바로 IMF때 잠깐 성행했던 배달 저가 탕수육들 때문. 그들 상당수가 케챺베이스 소스를 선택했고, 그 탕수육들은 정성에 정성을 들이던 전통 케챺탕수육에 비해 질이 수직하락 하는 건 명약관화했던 일.
그로 인해 케챂탕수육에 대한 인식은 세대별로 극명하게 갈리는 경우가 많음.
이후 레몬소스니 간장소스니 하는 시대를 거쳐 부찍볶 논란까지 왔으니, 비록 외래종이긴 하나 이 어찌 한 나라의 특정 음식문화의 시작과 격변을 대표하는 사례 중 하나가 아니라 할 수 있으리오.
옛날에도 케챱이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