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낮에 쓴 외교사 이어서 써봅시다. 일단 귀여운
아!루 사장님부터 달리고.
지난 글에서는 서희의 담판으로 1차 여요전쟁을 끝냈죠.
1차 여요전쟁에서 고려는 요와 국교를 맺으면서 강동6주를 받고, 대신 송과 단교하겠다고 했죠.
그래서 고려는 송과 단교...
고려랑 송은 서로한테 굉장히 섭섭하긴 했지만, 공식적 외교관계가 단절되었을 뿐 비공식적으로는 계속 교류가 있었습니다.
요 입장에선 다시 말하면 수틀리면 고려와 송은 언제든지 다시 손을 잡고 요에 맞설 수 있다는 점이었죠
그러면 요가 고려한테 압박을 넣으면 되지 않냐고요?
고려는 구라치면 그만입니다.
아 만난적 없다고~ 그거 그냥 백성들이 사적으로 하는거라고~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요 입장에서는 답답해 미치겠죠.
송은 버티지, 여진은 귀찮게 굴지, 고려는 깡으로 굴지, 거기다 넘겨준 강동6주는 요에게 있어서 생각보다 아픈 곳이었습니다.
이게 고려가 원했던 이상적인 깡외교였습니다.
고려는 이를 통해서 중간에서 실리를 얻으려고 했던 거죠.
그러던 와중...고려 안에서 자그마한 찐빠가 터집니다. 나라 내외적으로 잘 굴려가던, 고려내 탑티어에 드는 군왕이었던 성종이 죽고 약속대로 전왕 경종의 장자인 목종에게 왕위를 물려줬는데...
목종의 정치에 대한 방종,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야심, 중앙정부에 대한 군부의 불만
이런 여러 요소가 겹치는 바람에 강조의 정변이 터지고 맙니다. 시험에는 잘 안나와요.
강조의 정변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른 글로 자세히 써보도록 하고, 일단 이런 상황으로 인해 목종과 천추태후는 실각 및 폐위, 김치양은 사망되고 맙니다.
순식간에 정권을 잡은 강조는 이전에 쫓겨난 종실인원 한 명을 데려오는데 족보상으로 태조의 8대손이 되는, 그야말로 중앙과는 머나먼 위치에 있던 왕족 대량원군.
현종을 강제로 즉위시킵니다.
이렇게 왕이 갈아치워지고 태후가 쫓겨나고 중신이 죽는 고려내의 혼란...
그리고 고려에게 입장상 황제국인 요...
요의 성종은 '고려의 강조가 멋대로 신하의 몸으로, 요의 황제가 책봉한 목종을 몰아냈으니 친히 군사를 일으켜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고려를 침공합니다.
이게 2차 여요전쟁이 되겠습니다.
사실 이건 명분일 뿐이었습니다.
현종은 즉위하자마자 요에 사절을 보내서 상황을 설명하고 책봉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사실 요가 인정만 해주면 고려와 요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으니까요.
그런데도 요는 현종을 끝까지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요의 침공은 강조의 정변이 일어나고 무려 1년 여가 지난 후였으니, 시기상으로도 명분과 어울리지 않는거죠.
거기다 이때 요가 동원한 병력은 40만이었습니다. 단순히 역도를 제압해주기 위해 40? 좀 아니거든요 이건.
즉 요의 목적은 고려-송의 완전한 단교, 강동6주의 탈환이 그 주 목적이라고 볼수 있겠습니다.
이번에는 서희처럼 말빨로 밀어낼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말빨이 아니면 뭐다?
요의 2차 침공은 우선 흥화진에서 발이 묶이고 맙니다.
교과서에는 한줄 나오지만, 최근에 고거전 드라마로 꽤 유명해진 사람들이죠. 양규와 김숙흥 부대에 의해서 요의 본군은 발이 묶이고 맙니다.
결국 요 성종은 흥화진의 함락은 포기, 뒤에 남겨두고 그 뒤의 강조의 본군이 오던 통주 방향으로 진격하는데...
기록에 따르면 강조가 보드게임 하다가 기습에 당했다고 하죠.
아무튼 여기서 요성종은 고려의 본군을 몰살시키는데 성공합니다.
이때 강조가 남긴 말은 드라마로도 나오는데, 일단 적어는 보고 갑시다.
「거란군이 이미 들어와 강조를 결박한 후 담요로 싸서 운반해 갔고 이현운(李鉉雲)도 사로잡혔다. 거란 임금이 강조의 결박을 풀어 주며 묻기를, “너는 내 신하가 되겠느냐?”라고 하니 강조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고려 사람인데 어찌 너의 신하가 되겠느냐?”라고 하였다. 재차 물었으나 대답이 처음과 같았으며 또한 칼로 살을 발라내며 물어도 대답은 또한 처음과 같았다. 이현운에게 물으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두 눈은 이미 새로운 해와 달을 보았습니다. 일심으로 섬길 뿐 어찌 옛 산천을 기억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강조가 노하여 이현운을 발로 차며 말하기를, “너는 고려 사람으로 어찌 이와 같이 말하는가?”라고 하였다. 거란은 마침내 강조를 처형하였다.」
예...고거전 방영하는 동안 유게에서도 참 욕 많이 먹은 우리 새일월이...그립진 않습니다.
아무튼 고려의 본군을 밀어버린 요는 그대로 개경까지 진격하고, 현종은 나주로 피난가게 됩니다.
문제는 여기서 요가 굉장히 난처해진 겁니다.
수도는 먹었는데...왕은 도망갔고...쫓아가기에는 밥도없고...등 뒤에는 독한놈들이 노려보고 있고.
요 입장에서도 이 이상 들어오기에는 무리였던겁니다.
결국 요는 고려가 제의한 '현종의 친조'를 받아들이고 전쟁을 끝내려고는 했지만...
처음에 완전히 끝내고 오지 못한 흥화진에 남아있던 양규와 김숙흥 부대에게 유격전으로 뒤통수를 있는대로 후려맞으면서 돌아가게 됩니다.
이 부분도 고려사의 서술을 조금 따오겠습니다.
「얼마 뒤에 거란(契丹) 임금의 대군이 갑자기 진군해오자 양규(楊規)와 김숙흥(金叔興)이 종일 힘써 싸웠지만, 병사들이 죽고 화살도 다 떨어져 모두 진중에서 전사하였다. 거란군은 여러 장수들의 초격(鈔擊)을 받았고, 또 큰 비로 인하여 말과 낙타가 쇠잔해졌으며, 갑옷과 무기를 잃어버려 압록강(鴨綠江)을 건너 퇴각하였다. 정성(鄭成)이 그들을 추격하여 적군이 강을 반쯤 건널 때 후미에서 공격하니, 거란 군사들이 물에 빠져 죽은 자들이 심히 많았다. 항복했던 여러 성을 모두 수복하였다. 양규는 고립된 군사들[孤軍]과 한 달 동안 모두 일곱 번 싸워 죽인 적군이 매우 많았고, 포로가 되었던 30,000여 구(口)을 되찾았으며, 노획한 낙타·말·병장기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
그리고 이번 상황에 대해서 요는 굉장히 이를 갈게 되고...
고려는 분명 약속했습니다. 현종이 직접 친조하겠다고.
안갑니다.
갔다가 무슨 꼴이 날지 대강 짐작도 가는데 뭐하러 갑니까. 미쳤다고...
이렇게 1010년에 일어난 2차 여요전쟁은 끝나게 됩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 이건 휴전에 불과하다는걸 다들 알고 있었습니다.
고려 내에서도 이런 깡외교가 계속 이어질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송과 완전한 단교 역시 포기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요 내부에서도 언젠간 확실하게 고려를 밟아둬야된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는 계속 '아 친조 한대매!!' 고려는 '아 한다고~'를 몇 년간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1014년 고려는 당연히 요의 통수를 치고 송에게 다시 사신을 정식으로 파견하고, 고려와 요는 다시 한 판 승부를 낼 상황이 오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교과서에 꼭 나오는 전투입니다.
그 얘기는 나중에 다시 써보겠습니다.
배짱외교 ㅋㅋㅋㅋㅋㅋㅋ
3차 여요전쟁 전에 있던 호족 연합이나, 현종의 교통사고, 김씨 임파서블은 잊자..
어허 떽 드라마 떽 나는 어디까지나 고려사 고려사절요랑 박용운선생님 [고려시대사] 정리한걸로 쓰고있다구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