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바하에서 주인공안 박웅재(이정재)는 분명 목사이면서 사이비 종교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탐욕과 물욕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진실된 신앙을 가진 이들을 나름 존중하며, 동시에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감을 품으면서도 신의 존재를 직접 보고자 노력하는 상반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나 아프가니스탄에서 봉사를 하러 갔다가 가족을 잃은 친구의 얘기를 하면서 "난 아직도 모르겠다...우리는 저 밑바닥에서 정말 개미들처럼 지지고 볶는데.. 도대체 우리의 하나님께선 어디서 뭘 하고 계시는지..."라는 믿음과 의심 속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사실 사바하 프리퀼 웹툰에서 나온 바에 따르면 이건 주인공 본인의 경험담이었다.
오히려 저런 경험을 하고도 신의 존재를 믿으려고 했던 멘탈이 대단했던 셈.
신을 위해서 일하던 내 가족을 지켜주지 않은 신은 정말로 있는걸까? 하지만 신이 없다면 그를 위해 죽은 내 가족은 뭐가 되는건가? 이런 모순적인 생각 때문에 신앙을 포기하지 못 하는거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 깊게 가졌던 신앙을 완전히는 포기하고 싶지 않은거지
아니 믿는 이유가 뭐냐고!!!!
여담이지만 밑에 작가의 다른 공포만화도 재미있었는데 하필 영화가ㅠ
총 맞고 살아나서.
0.0Mhz 2부는 소장하고 싶었는데, 다음웹툰은 구매해도 기간제더라고.
아니 믿는 이유가 뭐냐고!!!!
초전도국밥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 깊게 가졌던 신앙을 완전히는 포기하고 싶지 않은거지
초전도국밥
초전도국밥
총 맞고 살아나서.
이건 일제가 패망할 줄 몰랐다는 친일파의 변명이잖아!
인버전
사탄과 여호와의 저놈 망해도 여호화 믿는지 실험해보자.. 여기서 이야기 모티브를 따온거지
여담이지만 밑에 작가의 다른 공포만화도 재미있었는데 하필 영화가ㅠ
성1기사 호드릭
0.0Mhz 2부는 소장하고 싶었는데, 다음웹툰은 구매해도 기간제더라고.
https://youtu.be/cXLRhsJPBjA?si=mu1KGNbYQhT7g-jX 개인적으로 사바하는 이 장면도 인상깊더라고
신을 위해서 일하던 내 가족을 지켜주지 않은 신은 정말로 있는걸까? 하지만 신이 없다면 그를 위해 죽은 내 가족은 뭐가 되는건가? 이런 모순적인 생각 때문에 신앙을 포기하지 못 하는거 아닐까
실제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신앙 포기하거나 안티 되는 경우가 더 많음
신이 있다는자들을 찾아 그것이 사이비임을 밝히는게 나름 복수라고 생각했을지도.
악의 문제와 더불어 참 수없이 많은 종교인들이 되물어본 의문이지...
세상에 우연이라기엔 너무 잔혹한 이야기~ 같은 사례 이야기할 때 종교 안 믿는 사람들도 너도나도 '신이라도 있었으면'이란 식으로 이야기하고 그러는 거 보면, 아무 의미 없이 그렇게 될 뿐이란 거에 차라리 더한 무가치함을 느끼는 거 같음.
이 딜레마는 가족을 잃은 신앙인이 겪는 딜레마 중에 하나기도 함. 만약 정말 신이 없다면. 홀로 믿으면 신앙 생활을 접어버리면 그만임. 그런데 폭탄 테러로 죽은 내 가족은? 만약 신이 있다면 죽어서 난 내 가족의 얼굴을 볼테지만, 만약 신이 없다면 다시는 못 보게 된다는 두려움. 의외로 신을 믿었었던 자들이 가족을 잃고 나서 겪게 되는 딜레마임.
"어디 계시나이까? 우리를 잊으셨나이까? 어찌하여 당신의 얼굴을 가리시고 그렇게 울고만 계시나이까? 깨어나소서. 저희의 울음과 탄식을 들어주소서. 일어나소서. 당신의 인자함으로 우리를 악으로부터 구하시고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정말 혹시라도 기적이 일어나서 장재현 유니버스가 나온다면... 박신부가 주역이 되는게 어울릴거 같음. 다른 두 영화의 주인공들은 나름 해답이나 구원을 얻었다면 박신부는 아직도 현재진행중이니까.
영화 보면 말로는 친구 사연이라곤 하지만 '말하는 거 보니까 자기 사연 같은데' 생각 들게 함 연기 잘하더라
완전히 무신론적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그렇게 탓이라도 하고싶고, 이유라도 있으리라 믿는 게, 아무 가치도 없이 의미도 없이 그저 내던져진 존재가 인간이라고 생각 안 하려는 방어기제일지도 모르고, 그게 곧 인격신의 존재를 필요로해서 창시? 창작?하는, 종교 탄생의 이유가 될지도?
어떤 비극이 다가와 마음이 공허해질때 새로운 종교로 바꾸는거보다는 그 종교(의 모습)을 믿는게 심적 육적 물적으로 더 안정되고 교인들끼리 관계에서의 위로도 무시못하니까.. 증오에 의한 비극은 때론 그 종교를 바꾸기도하지만 원망으로 점철된다 하더라도 내면은 어쨋든 내가 의지하거나 의지했던 신에 대한 갈구일뿐이다.
생각해보면 불교는 삶을, 그것도 그저 인간으로서의 지금의 삶 뿐만 아니라 더 고차원적인 존재로 윤회하였고 더 좋은 차원? 계?에서 살아갈 때 조차도 고통이고 족쇄로 정의해서 윤회시스템 자체에서 초월해 벗어나야 진정한 평온이 온다를 주장하는 종교이고, 현생의 벌어지는 일들도 다 전생을 오래 반복해오며 누적한 업보의 결과다란 설정일텐데 '아이고 부처님~' 하면서 당면한 세속적 문제에 대해 의존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그런 거 보면 그냥 심적으로 의지할 의지처가 필요할 뿐인 게 종교적 동물인 인간의 근원 욕구나 본능 아닐까 싶음. 동물보다 약하고 보잘 것 없어서 동물을 숭배하던 시절에도 막연히 그러면 그 동물과 대등해진 느낌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긴다던지, 보호받고 있다는 막연한 안도감이 생긴다던지 그러던 거 처럼.
신을 믿는다기 보다 결국 삶의 고통의 끝에선 결국 신을 찾게 된다는 표현이 맞는거겠지 종교를 안믿고 불신하는 사람들도 갑작스런 절망의 상황에서 할수 있는게 기도 말곤 할게없으니까 그게 특정신을 지칭하진 않아도 맘속으로 제발 도와달라고 울부짖을수 밖에 없는게 인가인라서 그런거임 극중 이정재는 신에게 실망하고 돌아섰지만 맘 한켠에선 내가 모르는 큰뜻을 신이 가지고 있겠지라는 거짓(?)희망이라고 안고 살아야 살아갈수 있다고 생각한거니까
어른이 된다 해도 뭔가에 기대 의지하고 싶겠지 사람이 언제까지고 강할 순 없으니까. 설령 모순이라 해도 각박한 현실에서 어떻게든 정신을 유지하고 의미없는것에 의미가 있다 믿을 수밖에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