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란 존재가 침공하였다. 사람들은 괴물들의 침공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갔다. 사람들은 점점 괴물이란 것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였다. 괴물이란 존재의 공격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국가는 계엄령을 발령하였다. 그때까지는 잘 참은 듯하였다. 우리들의 착각이었다. 괴물들의 침공으로 폐허가 되어가는 곳은 많아지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우리가 사는 마을은 큰 피해가 없었다. 가끔 한 무리의 소녀들이 마법을 사용하여 괴물들을 소멸시킨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그들을 직접적으로 목격했다는 사람들은 극소수였다. 생각해보면 괴물들이 침공하였을 때 괴물을 사냥하는 소녀들 대신 군인들이 출동하였다. 군인들을 믿었다. 군인들 역시 우리의 믿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기대에 다 할 수 없었다. 최전선으로 간 군인들은 최대한 저항하였다. 그들의 저항은 무의미하였다. 군인들은 하나둘씩 쓰러져 간 듯했다. 국기를 이불 삼아 덮어진 사람들을 실은 트럭들이 천천히 격전지에서 빠져나갔다. 불안한 느낌이 감돌았다. 빠져나오는 트럭의 반대편으로 장갑차와 빼곡하게 군인들을 실은 차량 들이 전선으로 향하였다. 여러 번 반복되었다. 여러 번 반복되어가니 우리는 점점 희망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만일 신이 있다면, 어쩌면 기적이란 것이 존재하면 일어나길 바랐다. 하루하루가 지쳐갔다. 그래도 우리는 잘 참았다. 하지만, 한 장의 우편이 날아올 때 참지 못하였다.
“동사무소에서 온 것 같다.”
우편을 열어보시던 어머니는 아무 말 못 하였다. 입영통지서였다. 괴물들의 침공으로 군인들이 죽고, 예비군이라는 집단들도 죽자 기어코 어린 학생들인 우리도 징집한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들고 있던 통지서를 떨어뜨렸다. 통지서를 들어 천천히 쳐다보았다. 가까운 군부대의 신병교육대로 모이라는 내용의 문서였다. 문득 아버지의 식탁 자리를 쳐다보았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자리에 앉아 입영통지서를 찬찬히,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은 듯하였다. 실감 나지 않았다. 아직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나이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마저 하던 식사를 속행하였다.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민간인으로 남은 시간이 168시간이 남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식사를 계속하던 어머니는 수저를 놓으셨다. 묵은내 나는 쌀과 김치, 괴물의 침공으로 바뀐 식사였다.
식사를 마치고 소파에 앉았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분명 머리에는 떠오르는 것이 많았지만, 구체적으로 생각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답답했다. 모든 것이 답답했다.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갔다. 밖은 평온했다. 십여 킬로미터 너머에 군인들이 괴물들과 싸움을 벌이고 있었지만, 너무나도 평온하였다. 거리를 걸어간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평소라면 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나눴을 것이다. 혹은 어린아이들이 공원의 놀이터에서 뛰어놀았다.
텅 빈 벤치에 앉아 주변을 앉아 먼 산을 쳐다본다. 산은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산은 알록달록 꽃으로 물들었다. 계절이 바뀌는지도 모르고 지낸 것이었다. 괴물들이 나타난 것이 어제 일 같았다. 분명 어제 일이 맞았다. 시간은 아니라고 말했다. 시간은 벌써 3개월이 지났다고 이야기했다. 시간이 거짓말을 하기 바랐다.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전투폭격기의 소리였다. 아마 괴물에 폭탄을 투하할 모양이었다. 그들의 공격이 효과적이길 바랐다. 어쩌면 괴물들이 우리 동네에 침공하지 못한 것을 보면 그들의 공격은 효과적이었는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저벅저벅 공원을 걸어간다.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꾀죄죄하였다. 그들은 낡은 담요를 걸친 채 앉아 있었다. 그들의 모습에는 공포가 보였다. 괴물의 침공을 피해 피난 온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에게 희망은 찾을 수 없었다. 그들 속으로 어떤 소녀가 왔다. 그녀는 겁을 먹은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아이들의 안전을 확인하는 소녀는, 어린아이에게 사탕을 건네주었다. 아이들은 안심하고 사탕을 받아먹었다.
“혹시 자원봉사자인가요?”
소녀는 날 쳐다보았다. 앳되 보이는 소녀는 아직 고등학생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 됬다.
“아, 네. 괴물들의 침공으로 아이들을 위로하는 것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어요.”
“혹시 단체에 소속되셨나요?”
“아니요. 개인적으로 하는 것이에요.”
소녀는 환하게 웃음을 지어보았다. 하지만, 소녀에게서 슬픔이 느껴졌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슬픔이 느껴졌다.
“제 이름은 하은이에요. 고등학생 1학년이에요.”
“저는 준호에요. 고등학교 2학년인데, 다음 주에 입대해요.”
하은이라고 하는 소녀는 입대한다는 말에 아무 말 하지 못하였다.
“자진해서 가는 것인가요?”
“아니요. 통지서가 날아왔어요.”
소녀는 아무 말 하지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 소녀의 모습에서 아버지가 생각났다. 왜인지 모르겠다. 아무 이유 없이 아버지가 생각났다.
“자원봉사라는 것에 호기심이 생겼어요. 같이 도와도 괜찮을까요?”
“네.”
소녀는 환하게 웃어 보았다.
“먼저 어린아이들을 달래주세요. 어린아이들이 이 상황에서 제일 고통스러울 것이에요.”
“근데 여기서 어떤 것을 하세요?”
“어린아이들을 달래주고 가끔 정부의 사람들이 오면 그들을 도와줍니다. 이걸로 부모 잃은 아이들이 많아요. 그들을 도와주세요.”
소녀는 아이가 있는 곳으로 날 데리고 갔다. 아이들은 순수했다. 이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웃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이 상황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기도 하였다.
트럭 여려 대가 들어왔다. 하은이 말한 정부의 트럭으로 보였다. 트럭에서 사람들이 내렸다.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아마 배급품을 받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배급을 받는데 원활하게 해야 해요.”
하은은 트럭으로 뛰어갔다. 나 역시 그녀를 따라 트럭으로 뛰어갔다. 그녀를 따라 트럭으로 뛰어갔다. 하은은 익숙하다는 듯 트럭에 올라갔다. 그녀는 트럭에 있는 사람하고 무엇이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하은은 정부 직원하고 사람들을 통제하며 배급품을 보급했다. 사람들은 질서정연하게 유지하였다. 그들은 이런 상황일수록 싸우면 오히려 손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보급품은 부족하였다. 보급품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생겼다. 그들에겐 아무것도 아니란 듯한 모습이었다.
“일상인가요?”
“네.”
“다음 주 징집된다고 하였죠?”
“네? 아, 네.”
“정말로, 입대하실 건가요? 그것이 무의미한 것이라고 하여도?”
“무의미하다고 해도 명령인데 어쩔 수 있나요?”
하은은 날 쳐다보았다. 그녀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하은은 자신의 손목에 찬 묵주를 움켜쥐었다. 아마 신에게 기도하는 것 같았다. 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기적을 행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은은 아무 말 없이 웃음 지었다. 그녀는 신을 믿었다. 믿고 있는 신이 기적을 행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의 믿음을 옳을지도 몰랐다.
하은은 다시 피난민들 사이로 들어갔다. 그녀는 배급품들을 질서 정연하게 나눠주려는 모양이었다. 하은은 배급품을 다 배급하고는 트럭에 올라탔다. 그녀에게 이 일은 일상인 듯 하였다. 트럭은 곧 떠나기 시작했다.
공원을 둘러봤다.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 있었다. 그들은 배급받은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크래커와 통조림, 염장된 채소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맛있다는 듯 먹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전투식량으로 보이는 물건을 먹고 있었다. 아마 주변을 지키던 군인들에게서 받은 물건으로 보였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도 힘겨운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정부를 통해 음식을 내려주시는 자비를 내려주셨습니다. 주님의 자비가 없었다면 하루하루가 더 힘들었습니다. 우리에게 내려주신 음식을 통하여 강복하시어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 평안하고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길 바랍니다. 또한 하루가 멀다고 전사자들을 운반하는 트럭들이 지나갑니다. 하느님의 정의를 내려주시어 이제는 군인들이 죽지 않고 안전하고 무탈하게 집으로 귀환하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피난민 사이에서 들리는 기도문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느님에게 기대는 것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듯하였다. 어찌 보면 그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아직 피난 가지 않은 우리 역시 신에게 기적을 바랐다. 하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피난민 캠프를 벗어나 시가지로 향하였다. 괴물의 침공 속에서도 시가지는 평화로웠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모습이었다. 시내버스 한 대가 지나간다. 괴물과의 교전 지역으로 들어가는 버스였다. 그곳에는 사람이 갈 수 없는 모양인지, 중간에서 회차한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기사에게 항의하고 있었다. 왜 중간에서 회차하는지에 관한 내용인 듯하였다. 기사는 승객에게 내리라고 요구했다. 승객은 실랑이 끝에 버스에서 내렸다. 승객은 어딘가로 걷기 시작했다. 아마 괴물이 침공한 구역으로 걸어가려는 모양이었다.
그들을 지나쳐 관공서에 들어간다. 관공서엔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 마을을 지키기 위해 징집된 사람들로 보였다. 그들의 수는 적어 보였다. 마치 최소한의 인원도 모이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들 사이에 많은 학생이 몰려 있었다. 공무원들이 그들을 정리하였다. 아마 입영통지서에 관한 민원이 대다수인 것 같았다. 그들 속으로 섞이었다.
“어린 학생들을 징집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중년의 여인이 소리쳤다. 여인의 손에는 입영통지서로 보이는 물건이 들려 있었다. 아마 자기 아들이 받은 입영통지서로 추정되었다. 소리 지르는 중년의 여인을 따라 공무원에게 하나둘씩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동사무소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아무 말 없이 그들을 쳐다봤다. 그들은 명령을 하달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명령을 받아 수행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항의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입영통지서를 발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공무원에게 다가갔다. 공무원은 말없이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공무원은 내 인기척에 날 쳐다보았다. 그녀는 이 일이 익숙하다는 듯, 사무적인 태도를 보였다. 나 역시 그녀에게 사무적으로 나왔다.
“입영통지서를 받았습니다. 저희는 아직 미성년자인데 잘못 보낸 것인가요?”
“아니요. 올바르게 보낸 것입니다.”
공무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열었다. 그의 말에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공무원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무원은 이 일이 익숙하다는 듯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제네바 협정 위반 아닌가요?”
업무를 보던 공무원은 잠시 멈추었다. 그녀는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는 눈치였다. 하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 그녀에게 아무런 말 하지 않았다.
“제네바 협약 위반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시상황입니다. 전시상황에 그런 것을 따질 겨를이 어딨나요?”
공무원에게 말을 한다고 해도 얻을 것은 없었다. 그녀 또한 마찬가지 일터다. 어찌 보면 지금 상황에서 제일 당혹감을 느끼는 건 그녀일 것이다. 그녀는 무감각해진 것 같았다.
무감각해진 그녀를 뒤로하고 동사무소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더 많은 인원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종이가 들려져 있었다. 공무원들과 의미 없는 실랑이를 벌이러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모습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 사이를 지나쳤다.
터벅터벅 길거리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거리는 아직 따뜻했다. 따뜻하다 못해 더운 공기가 올라왔다. 더운 공기는 주변을 질식시킬 것 같았다. 질식시킬 것 같은 공기는 사람들을 에워쌌다.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이런 일상이 익숙하다는 모습이었다.
길거리의 군인들이 실은 트럭이 이쪽으로 왔다. 군인들은 트럭에서 내렸다. 그들의 손에는 소총이 쥐어져 있었다. 그들은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아마 괴물의 공격에 대비하려는 모습이었다. 그들을 지나쳐 공원으로 간다. 아까 전 하은이라는 소녀를 만났던 곳이었다.
하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피난민들이 모닥불 밑에서 음식을 해 먹는 것만 보였다. 그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날 본채만 채 하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 그들은 본채만 채 하였다.
아까처럼 트럭이 한 대 들어왔다. 트럭에는 아까 전처럼 배급품이 몰려 있겠지, 생각했다. 아니었다. 이번에는 군인들이 있었다. 군인들이 피난민들 사이로 들어왔다. 피난민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들을 쳐다봤다. 군인들은 텐트 하나하나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을 집합시켰다. 집합시킨 곳으로 가보았다.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있었다. 피난민들의 건강상태를 확인하러 온 듯하였다. 어떤 이들은 들 것에 눞혀 어딘가로 향하였다.
“어디 아픈 곳 계신가요?”
흰색 가운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그의 모습을 보니 군의관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근처의 공립병원에서 근무하던 과장으로 보였다. 그는 내가 아프지 않다는 것을 느꼈는지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가버린 그와 마찬가지,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공원 밖을 향하였다.
공원 밖의 공기는 선선했다. 선선한 공기 속에 섞였다. 쉽게 섞이지는 않았다. 선선한 공기가 아니라 무거운 공기였다. 무거워 질식할 것 같았다.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으로 가는 길은 조용했다. 거의 통금시간이 다 되어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 역시 그들과 함께 발걸음을 재촉하며 바삐 움직였다.
“다녀왔습니다.”
통금 시각을 30 여분 남기고 돌아온 집은 불이 꺼져 있었다. 전투폭격기의 폭격 소리와 바람을 가르는 소리 때문에 영 잠을 못 주무신다고 하시는 어머니는 간신히 잠에 빠진 모양이었다. 내 방에 들어갔다. 걸상과 노트북 한 대, 옷장이 전부인 방에선 안락함이 느껴져야 했다. 하지만 안락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함이 느껴졌다. 불편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아침햇살이 비추었다. 따뜻한 아침햇살이 내 방을 가득 메웠다. 아침햇살을 받으며 일어났다. 몸은 무거웠지만 잠이 오지 않아 피로가 가시지 않았다. 매일 같이 반복되었다. 커튼을 치고 돌아누웠다. 눈을 감아본다. 잠이 오지 않았다. 침대에 박차고 일어났다. 몸이 무거웠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거실로 나갔다.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는 아직 주무시는 듯하였다.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에는 식재료가 거의 없었다. 김치통이 보였다. 김치통을 꺼내 밥솥에서 밥을 펐다. 그래도 먹어야 살기에, 억지로 식사했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했다. 어머니는 일어나지 않으셨다. 어머니가 계신 방으로 들어갈까 했지만, 들어가지 않았다. 간신히 잠에 빠진 건지도 모르겠다. 잠든 어머니를 뒤로하고 소파에 앉았다. 소파에 누워 꺼져 있는 TV를 쳐다봤다. 검은색 화면만 눈에 들어왔다.
리모컨을 눌려 TV를 켰다. 뉴스가 흘러나왔다. 뉴스의 내용은 똑같았다. 괴물의 침공으로 사람들이 얼마 죽었고, 피난민들의 행렬이 나왔다. 평범하지 않은 평범한 일상이 흘러나왔다. TV를 껐다. 소파에 누웠다. 허공만 쳐다보았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많은 것들이 떠올렸다.
소파에서 일어나 발코니로 향하였다. 이제 일출이 시작되려는지, 조금은 밝아왔다. 발코니의 의자에 앉았다.
의자에서 잠시 멍하니 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전 7시가 조금 되지 않은 시각이었다. 옷을 입어 집 밖으로 나왔다.
밖은 아직 선선했다. 평소라면 공단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수송하는 통근버스들이 공단지역에 도착했을 시간이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거리에는 나 혼자 있었다. 거리를 걸어갔다. 가끔, 소총을 든 사람들이 거리를 다녔다. 그들은 주요 시설물로 향하고 있는 듯 하였다.
그들을 지나쳐 동사무소로 향하였다. 동사무소는 아직 문이 닫혀있었다. 하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동민 게시판을 쳐다봤다. 이번 주 배급품에 관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쌀과 김치, 그리고 약간의 채소가 전부였다. 저번 주도 같은 배급품이 같았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 전주까지.
동사무소에서 대로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사람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군복을 입고 총을 매고 있었다. 각자 맡은 경비구역으로 향하는지, 그들은 박자에 맞추어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 속을 지나쳤다.
피난민 캠프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하은이란 소녀를 찾기 위해 주변을 돌아봤다. 보이지 않았다. 캠프 속으로 들어갔다. 캠프에는 피난민들이 텐트 안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자고 있는 것 같았다.
“피난민인가요?”
어떤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은이겠지, 하고 돌아봤지만 하은이 아니었다. 중년의 여성이 어깨엔 아이스박스가 매여 있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노란색 조끼에는 붉은색 초승달 마크는 그녀가 누구인지 짐작하게 했다.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 정도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요.”
“이런 일이 생기면 나서는 게 저희 같은 사람이니까요.”
중년의 여성은 웃음 지어보았다. 나 역시 여인을 따라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혹시 하은이란 소녀를 아시나요?”
“하은이요? 아직 하은이 오는 시간이 아니에요. 곧 올꺼니 그때까지 기다리세요.”
여인은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여인의 말에 공원의 벤치에 앉았다. 근처 벤치에 갔다.
벤치에 앉아서 휴대 전화를 켰다. 통신이 되지 않아 인터넷은 되지 않았다. 이어셋을 꼽아 음악을 틀었다. 잠깐의 도피처가 생긴 것이었다. 도피처 속에서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벤치에 누워 잠깐의 잠을 청했다.
다시 일어났을 땐 오전 11시를 넘겼다.
벤치에서 일어나 피난민 캠프로 향하였다. 피난민들은 삼삼오오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신에게 기도를 하고 있었다. 성직자도 피난민들에게 간 모양이었다. 성직자들은 피난민들과 함께 신에게 기도하며 예배를 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들은 신에게 감사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신의 뜻에 순종하였다.
“오늘도 오셨네요.”
앳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은이었다. 하은은 손에 물통을 들고 있었다. 물통에는 물이 담겨 있었다.
“피난민들에게 줄 물에요.”
하은은 오늘도 바빠 보였다. 휴학이 결정된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 뿐이었다.
“항상 이렇게 봉사활동을 하시나 보네요.”
“네. 그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이거뿐 이니까요.”
“도와드릴까요?”
“아, 네.”
하은이 들고 있던 물통을 넘겨받았다.
하은을 따라 한 텐트에 들어갔다. 한 노인이 있었다. 그녀는 아무 생각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하은은 그녀 옆에 앉았다.
“어르신. 간밤 잘 지내셨어요?”
“아무 일 없었어. 하은이도 있고, 옆에서 도와주는 자원봉사자들이 있어서 그렇게 큰 탈은 없었어.”
노인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은은 할머니의 안부에 웃음을 지었다. 할머니 역시 하은의 미소에 손주를 보는 듯 웃음을 지었다.
“여기 물이에요.”
“내가 몸이 성하다면 내가 직접 물을 떨 텐데, 항상 폐만 끼치는구려.”
“아니에요. 푹 쉬세요.”
할머니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가끔은 붉은 십자가 표식이나 붉은 초승달 표식이 달린 노란색 조끼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 돌아다녔다. 그들의 어깨에는 물통이나 아이스박스가 매여져 있었다.
공원의 시계탑을 쳐다보았다. 정오를 조금 넘겼다. 트럭들이 몰려들었다. 어제와 같은 배급 시간이 된 듯했다. 피난민들은 트럭을 향해 몰려갔다. 이번에는 정부에서 온 트럭이겠지, 했지만, 아니었다. 붉은 십자가 마크나 붉은 초승달 마크를 한 트럭이었다. 사람들은 배급품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배급품을 받으라고 하였다. 배급품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트럭으로 갔다. 하나둘 배급품을 받아 텐트로 향하였다.
“혹시 더 봉사활동을 하실 건가요?”
“사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두려우신가요?”
“아니요. 그냥 의미 없는 것 같아요.”
의미 없다는 말에 하은은 잠깐 멈칫했다. 그녀는 신을 믿었다. 그녀는 자신이 믿고 있는 신에게서 자신의 의미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반면 나는 아니었다. 믿고 있는 신이 없었다.
“준호씨도 신을 믿어 보시는 건 어떤가요? 사제로 사목활동을 하고 계시는 아버지께서 항상 말씀하시길,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항상 자비를 베풀어 준다고 했어요. 그리고 저희를 불쌍히 여기셔서 서로 다른 방법으로 기적을 행해준다고 했어요.”
“기적이라.”
하은의 말에 곱씹어봤다. 하지만, 웃음이 나왔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무 생각 없이 웃음이 나왔다.
“왜 웃으시는 건가요?”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왜 괴물을 없애는 기적을 행사하지 않는 것일까요?”
하은은 아무 말 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굳어갔다. 속으로는 무언가 말을 하라고 하였지만, 목에서는 아무 말 하지 못하였다.
“분명 하느님은 저희를 도와줄 것입니다.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은과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집으로 가는 길에 몸을 실었다. 거리에 사람들이 행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기력한 정부에 항의하고 있었다. 방패를 든 경찰들이 그들을 진압하려고 했다. 경찰들은 무기력했다. 시위하는 시민들이 그들을 두들겨 팬 것이었다. 살수차가 동원됐는지 그들을 향해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어리석어 보였다. 그들과 엮이면 좋을 것 같지 않았기에, 서둘려 집으로 향하였다.
집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어머니가 계신 방에 들어갔다.
“엄마 저 왔어요.”
평소라면 반갑게 맞이하였겠지만, 어머니는 처방받은 졸피뎀을 복용하시고 주무시는 듯하였다. 무의식적으로 탁자 위를 쳐다봤다.
탁자 위엔 졸피뎀이란 약물과 함께 와파린이란 약물이 올려져 있었다. 어머니는 그 두 약을 복용 하였다. 의미 없는 일상 속에서 어머니는 마지막 발악을 한 모양이었다.
지혜로운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처럼 어머니의 모습은 헛된 보였다. 헛되다 못해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방으로 들어갔다. 무거운 몸을 침대에 뉘었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분명히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잡념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저, 멍하니 누워 천장만 쳐다보았다.
처음으로 완성한 단편소설인데 어디다 올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