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약 10년전, 아직 한류의 힘이 지금처럼 강하지 않던 시절.
멕시코에선 한국음식을 구하기가 힘들었고, 교민들은 일주일에 한번 미국을 넘어가서 장보는 방식으로 충당했다.
한두번이야 상관이 없지만, 1~2주에 한번 미국을 가야했던 한인교민들에게 간혹 걸리는 입국거부는 치명적이였다.
이때 나는 이민전문 변호사와 대신 상담해주고, 관광비자를 받게해줘서 이런 문제들을 몇번 해결해준적 있는데.
하필 당시 아빠의 직책은 기계장이셨고, 성도 서씨라서 서기계장이 서기장이 됐고
고민들은 날 '앞장서서 노동자를 돕는 서기장님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반미?
s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