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났다.
이번에도 변함없이 텅 빈 교실이다.
아무 생각 없이 천천히 일어나 교실 밖으로 나갔다.
복도를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늘 똑같은 풍경이었지만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들.
창 밖에 비쳐지는 모습은 끝없이 펼쳐진 검은 암흑이었다.
문득 지나가는 사람을 보았다.
내가 아는 사람일까? 아니면 아직 학교에 남아있는 교직원일까?
이 시간이면 학교 문이 잠겨있을테니 순찰도는 경비원일수도 있다.
아니, 애초에 지금이 몇시인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걷다보니 슬슬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아이들이 학교로 등교하기 시작한걸까.
희미하게 흐려져 왜곡되어있는 아이들의 얼굴들 중 내가 아는 얼굴은 없었다.
아니, 이미 오래전에 내가 알고있던 얼굴들은 전부 사라졌다.
시간이 흘러 전부 졸업하고 떠나갔겠지.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공허한 발걸음만이 들릴 뿐이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어떤것인지를 잊은지 너무나 오래 되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러간걸까.
현실을 받아들이고싶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학교에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짧은 시간이었을수도 있지만 시간 개념이 완전히 무너진 지금 상황에선 의미없는 계산이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내 곁에 있었다.
선생님들도 내 곁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혼자였다.
혼자서 눈에 띄지도, 만져지지도, 언급되지도 못한채로 학교를 끊임없이 떠돌고만 있었다.
완전히 잊혀진다는것이 이런것일까?
차라리 정말로 혼자가 되어버린다면 나을거 같았다.
하지만 내가 알던 사람들, 나와 함께했던 사람들 곁에 있는채로 한순간에 완전히 없어진 사람이 되어버린다는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끊임없이 소리치기도 했고 울면서 알아봐달라고 호소하기도 했고 더한짓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난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정말 고마워"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다.
왜 그런짓을 했던것일까.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더니 과연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것이 정말인지 알아보는것이 아니었는데.
한밤중에 혼자서 학교로 찾아오는것이 아니었는데.
거울, 식칼, 화장실, 한밤중.
흔한 괴담이자 학교전설이었다.
그냥 흔히 퍼져있는 무서운 이야기들 중 하나로 듣고 넘겼어야 했다.
난 그저 평범한 아이였다.
남들처럼 아침에 투정부리면서 일어나고 때로는 설렁설렁 때로는 허겁지겁 학교에 와서는
친구들과 함께 놀고 웃으며 공부하다가 학교 마치면 놀러가거나 집에 가서 노는 그럼 평범한 아이였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나에겐 소소한 취미가 있었다.
무서운 이야기들을 수집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글을 쓰는것이 취미인 아이들과 곧잘 어울리곤 했다.
그런 부류의 아이들은 그런 주제에 대해 아는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들 중에는 식칼과 거울의 전설이 있었다.
"밤중에 학교 화장실로 가서 식칼을 입에 물고 거울에 네 모습을 비추면...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대!"
"그 세상속에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잊혀져버린 사람들이라고 하더라고?"
새로운 세상. 잊혀진 사람들.
흔한 괴담 얘기였다.
그렇지만 당시 이면세계와 같은 중2병스러운 소재에 푹 빠져있던 나는 그 얘기에 혹했었다.
예전에 인형에 쌀과 머리카락을 넣고 하는 인형 술래잡기를 한적도 있잖아?
그거 다 가짜더만!
그렇게 생각하고 우습게 여기는것이 아니었는데...!
그리고 친구의 마지막 얘기를 장난스럽게 넘기고 나가는게 아니었는데.
"...그리고 그 세상속에 사는 사람이 의식을 행한 사람을 거울속에 잡아 넣고 빠져나올 수 있으니까 조심해야 한다더라고."
생각을 하며 끊임없다보니 어느새 주변을 걷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벌써 밤이 된것일까?
바깥 세상은 정말로 어떻게 된걸까?
내가 알던 사람들은 전부 어떻게 된걸까?
애초에 내가 바깥 세상에 존재하기는 했었을까?
여기서 나갈 수 있기는 한걸까?
내가 누군지도 잊어버린것 같아.
만약에 여기서 나갈수만 있다면...
하지만 그럴 일은 없겠지.
내가 있었을때의 모든것들이 전부 다 없던 일이 되어있을테니깐.
왠지 모르게 눈길이 가는 친근한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지금은 밤일텐데 왜 혼자서 복도를 돌아다니는거지?
그리고 그 아이의 양손에는 식칼과 손거울이 들려있다.
...좋았어.
"...아 진짜! 쟤가 장난쳐서 뒷부분을 마저 다 듣지 못했잖아! 그래서 그사람이 빠져나오면 어떻게 되는데?"
"그냥 이쪽 세상 사람으로 사는거지! 끌려간 사람은 거기 사람이 되어서 여기서 평생 잊혀지는거고."
"아 뭐야 그거~ 흔한 괴담이잖아! 쟤가 다 듣지 않고 나갈만했네."
"그건 그렇고 우리 둘만 남은 김에 그 이야기에 대한 더 무서운걸 알려줄까?"
"뭔데?"
"그 새로운 세상 사람 말이야... 거울에 자기 모습을 비춰서 볼 수 있다고 말했잖아?"
"응. 그런데?"
"거울에 자기 모습을 비추면 보이는게 뭘까?"
"저세상 사람?"
"아니, 보통 상식적으로 말야."
"아~ 그럼 내가 보이겠지."
"...바로 그거야."
"무슨 소리야?"
"그 말 그대로라고."
"음... 그렇다는건... 그 거울속에 비치는 새로운 세상속 사람의 정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