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치료 후 회사 복귀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장문).
저는 일본생활 15년 차의 직장인입니다.
20대 후반에 건너와서 정신차리니 어느덧 40대 중년이 되어 있네요.
딱히 연예에 관심 없던 것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일을 겪다 보니 아직도 홀몸입니다.
이번이 처음 쓰는 글입니다만, 현재 제가 처한 상황에 대해 조언을 부탁드릴 수 있을까해서 글을 남깁니다.
쓰고나니 굉장한 장문이 되었습니다만 되도록 보기 편하시게끔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초기 일본생활
・직장이 정해진 상태에서 일본 생활을 시작했고 그 당시엔 순탄할 거라 예상
・하지만 첫 직장은 회사 사정으로 반년도 못 다니고 정리해고, 그 이후로 들어간 회사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했음
・많은 이직과 퇴직이 있었으나 그래도 어찌어찌 노력해서 면접을 치루며 주로 게임업계에서 취업생활을 이어감
2. 현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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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초기
・우연한 기회에 지인의 권유로 면접을 보고 합격
・출근해 보니 10여년 간 사회생활을 하면서 처음 겪어 보는 온갖 풍성한 복리후생이 반겨줌
・무엇보다 당시 서비스 하던 게임이 제법 잘나갔고, 얼마 안있어 신작들도 줄줄이 발표되는 걸 보며 내 인생에도 봄이 왔구나 라고 생각
・상명하복의 군대식 문화를 가진 한국 본사 위주로 모든일이 돌아감
・그로 인해 도쿄 사무실 내에서 불만도 발생했으나 회사 자체가 잘나가던 시기이고 복리후생도 좋으니 다들 참으며 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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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제법 좋았던 분위기 속에 도쿄 사무실의 대표(지사장)가 갑자기 퇴사
저 : 아니 별안간 퇴사를 하시다니 무슨 일이세요?
대표 : 용의 꼬리 보다는 뱀의 머리가 되고 싶군요
・그 다음 대표는 일본 현지 채용이 아닌 본사 출신, 머리는 좀 딱딱해도 직원들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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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에 보여지고 느껴진 것들
・한국 본사의 가장 큰 문제는, 군대식 문화나 권위주의가 아니라 최후의 최후까지 결정을 번복한다는 점이었음
・회사 이름을 건 대규모 오프라인 이벤트에서 조차, 이벤트 시작 직전까지 발표 내용이 확정되지 않음
・본사의 담당자들도 개고생이지만, 전세계 해외 지사들도 상당히 애를 먹음(본사가 준 내용을 번역/통역해야 되니까)
・그러면서 평소엔 해외 지사의 말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음
・다만, 아무래도 글로벌 원빌드가 코스트 삭감이 되니 심적으론 불만이 있었지만 머리로는 이해 하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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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트러블, 우울장애
・이후에도 대규모 이벤트 시즌이 오자, 원활한 준비를 위해 담당은 아니지만 스스로 다방면으로 도움의 손길을 뻗음
・처음엔 고마워 하던 이들이 어느샌가 당연한 듯이 일을 던지기 시작하고 문제가 생기면 뒤집어 씌우기까지 함
・이제껏 직장생활을 하며 이런일 쯤은 겪어보았으나 이번엔 뭔가 달랐는지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키기 시작
・출근할 생각만 하면 하늘이 빙빙돌고 구역질이 나더니, 나이 40먹도록 생각조차 안했던 극단적 선택을 상상
・이러다 사람 잡겠다 싶어 대표와 상의 후 몇개월 간 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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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 그리고 다시 찾아온 예상치 못한 손님
・복귀 후 팀을 옮겨 새로운 마음으로 업무를 시작
・그 와중에 2번째 대표가 퇴사하고 3번째 대표가 취임
・본사와 해외지사 할 거 없이 상부의 명령으로 잦은 부서이동이 발생하고 많은 이들이 퇴사
・퇴사자의 빈 자리를 메꿔주지 않고 남은 멤버들에게 짬을 때리니 이에 지친 이들이 이어서 퇴사하는 스파이럴 발생
・그리고 또다시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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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두암 3기 치료와 요양
・작년 말 3기 암 판정을 받고 다시 회사를 휴직, 올해 초에 이르기 까지 3번의 항암치료와 50여회의 방사선 치료를 실시
・중간중간 몇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3월에 무사히 치료 종료, 이후 10여가지 부작용과 싸우며 집에서 요양
・어느정도 걸을 수 있게 된 이후, 복귀와 관련한 협의를 위해 사측에 상담을 요청
・그러자 사측 총무 총괄 담당자가 한 말은...
①예상치로 정해뒀던 10월까지 복귀 안하면 퇴사처리 하겠다. 이는 사규에도 정해진 내용이다
②복귀를 하더라도 정상적인 업무를 보기 힘들거라 여겨지면 퇴사처리 하겠다. 이 또한 사규에 있다
③어차피 건강보험에서 지원하는 상병수당 지급 기간도 얼마 안남았을 텐데? 비빌 언덕이 있어야 쉴 수 있는거 아닌가?
④그리고 몸 아프다고 항암치료 모자 쓰고 지팡이 짚고 회사 오는 거 보기 안좋다, 회사 분위기 망친다
・위와 같은 말을 듣고 상당한 충격과 실망을 느꼈으나 그 자리에서 담당자 멱살을 잡지는 못하고 일단 한발 물러섬
・각종 정보를 검색해 보니 아무리 실제 사규가 그렇다 하더라도 엄연히 노동법이 있는 국가에서 저건 개소리 라는 걸 암
・이후 본인이 막나간걸 눈치챈 건지 사과는 안했지만 갑자기 저자세를 취하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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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이런저런 일이 또 있어서 결국 11월에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회복은 덜 되었지만 인두암의 부작용이란 게 몇달사이에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보니
생활비를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심히 걱정되는 점이 몇가지 있습니다.
>혼자 폭주하긴 했지만 회사의 총무 총괄이란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됨
회사 자체에 대한 실망
>치료 시작 전에 소속되었던 모바일 팀이 해체되어 어느 업무에 복귀될지 미정, 신작의 성공여부 또한 불투명
복귀 후 회사 생활에 대한 불안감
>미정이라 하지만 도쿄 지사가 점점 쪼그라 들다 보니 남은건 PC팀 뿐인데 이 팀 리더가 성격 안 좋기로 지사/본사 가릴 거 없이 유명
미처 예상치 못한 새로운 불안 요소 이자 가장 걱정되는 점
상기 요인 외에 부수적으로는
>암치료와 요양을 위해 쉬는 기간동안의 4대보험금을 회사가 대신 내줬기에 이를 갚아야 함
>만약 조금 더 쉬기로 해서 허락이 나더라도 충분히 치유되기 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의사도 모름
>그 사이에 회사 사정이 나아지란 법도 없음
>못 견디고 이직을 준비한다 해도 40대 중반의 암환자를 뽑아줄 기업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일단 복귀했는데 심적인 스트레스로 병세가 악화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현실적으로 일단 복귀해 보고 최대한 스트레스 안받게 일하면서 빚을 갚아가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으면 퇴직... 하는 방향으로 일단 잡아보았습니다.
사실 뭐가 제일 좋은 방법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암 투병 끝에 겨우 살아남아 조금씩 건강을 되찾기 시작했는데 다시 마주한 현실의 벽,
혹시 조언이 있으시다면 꼭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