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아의 버일러 부잔타이는 겉으로는 누르하치와 결혼 동맹을 여러 차례 맺으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누르하치에게 대항하기 위해 사분오열 나뉘어져 있는 동해 여진을 계속해서 침략하고 심지어 조선의 변경까지 침략하며 세를 키웠다.
그러나 이런 폭압적인 약탈-정복전은 견디다 못한 동해 여진이 누르하치에게 먼저 손을 뻗게 만들었다.
동해 여진 와르카부 피오의 영주, 첨터허가 그 필두였다.
1607년 첨터허는 누르하치에게 부잔타이의 공격이 너무도 심해 도저히 버틸 수가 없으니, 건주에 귀부코자 한다고 하며 부디 자신들을 거둬달라고 직접 건의했다.
누르하치는 이에 크게 반색했다.
그들이 건주에 포섭된다면, 누르하치는 지금껏 겉으로는 굽신거리면서 뒤로는 자신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던 부잔타이에게 큰 압박을 줄 수 있었다.
누르하치는 자신의 장남, 훵 바투루(칭호, 뛰어난 용사) 추옝과 둘째 아들 다이샨, 동생 슈르하치를 대장으로 임명하여 군대를 통솔케 했다.
그 밑의 장군도 엄청난 라인업으로 구성했는데, 일등 대신 피옹돈과 양자 훠르간, 사위 양구리등이 그 밑에 줄줄이 딸려 배치되었다.
삼천명의 정예병들이 첨터허와 그 식솔, 백성들을 건주로 안전하게 호송하는 작전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이를 부잔타이가 두고 볼 리가 만무했다. 부잔타이로서는, 건주의 군대를 저지하지 못하면 자신의 영향력이 크게 실추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부잔타이는 추옝과 다이샨, 슈르하치의 군대를 막기 위해 그간 쌓아왔던 국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1만 대군을 편성,
장군 봌도에게 지휘권을 주어 출병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