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8/read/33556733
1618년 음력 7월 22일, 청하가 함락되었다. 청하를 지키고 있던 명나라의 주장 추저현과 부장 장패, 그들을 따르던 명나라 병사 8천명은
처절한 사투끝에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이 모두 전멸당했다.
누르하치는 청하를 파괴한 뒤 전리품들을 확보했고, 이후 남하하여 일도장과 감장성을 함락했다.
그 두 요새는 청하보다 훨씬 공략 난이도가 쉬웠고, 저항도 그리 강하지 않았기에 누르하치는 쉽사리 그 성들을 함락했다.
누르하치가 청하를 함락하고 두 요새를 함락할 때에 주위의 명군들은 누르하치의 군대를 피해 슬금슬금 물러날 뿐이었다.
그들이 물러난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들이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는 상대였고, 그로 인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오직 애양 참장 하세현의 군대만이 후금군에 역습을 가했고, 그들마저도 병력 열세로 인하여 포위당할것을 염려하여 곧장 퇴각했다.
누르하치는 이 사태를 보고 받고 훠르한에게 후방을 사수할 것을 명령한 뒤, 자신이 이번에 공격하고 빼앗은 명나라 영토의 곡식들을 모조리 수거하여 복귀했다.
설사 명나라 군대가 이 땅을 되찾더라도 자체 보급이 불가능하도록 한 것이었다.
대강의 초토화 작전이 끝난 뒤, 그제서야 누르하치는 훠르한을 철군시켰다. 명군은 그 동안 누르하치에게 뚜렷한 역습을 가하지 못했다.
이후 누르하치는 음력 8월 무렵 다시 한 번 명의 변경에 대해 약탈 작업을 수행했다. 임무를 받은 장수는 나린과 옌더이였다.
그러나 이들은 명군의 역습을 받아 격퇴된다. 누르하치는 임무에 실패한 두 장수를 처벌한 뒤, 명의 역습을 경계하여 자이퍈에 성을 구축하고
지속적으로 명 국경에 대해 압박을 가할 것을 지시했다.
한편 이 무렵 명나라는 후금에 대대적으로 역습을 가할 준비를 한다. 각지에서 병력들과 그 병력들을 지휘할 총병들을 소집하고
추가로 병사들을 훈련시켰다. 방어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아예 후금이란 세력 자체를 뿌리 뽑으려는 것이었다.
요동 경략으로 재부임한 양호는 직접 원정을 지휘하기 위해 요동으로 이동했으며, 동시에 예허와 조선에 "직접적인 동맹군 가담"을 재차 종용했다.
예허와 조선 모두 이 종용에 응했다.
예허의 경우 긴타이시와 부양구가 적극적으로 명의 요청에 응했고, 조선의 경우에도 광해군이 양호에게 "응하겠다"고 답장을 보내었다.
도원수 강홍립, 중군관 이계선, 부원수 김경서, 좌조방장 김응하, 우조방장 이일원등의 지휘관 구성으로 갖춰진 군대가 준비중이라는 답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