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적인 특징
솔직한 감상은 마치 호러영화같다고 말하고 싶다.
영화의 톤은 마치 공포영화같은 낮은 채도와 어두운 밝기를 내내 유지하며 이는 대낮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된다.
거기다가 한 술 더 떠 배경음악 또한 2시간 내내 매우 차갑고 낮은 브금만 흘러 나오며 이 어두운 배경음이 멈추는 순간은 인물들이 대화하는 순간 뿐이다.
하지만 인물들이 대화 중에는 이 어두운 배경음이 그리울 정도로 분위기가 더 가라앉는다.
모든 등장인물들은 폭발하기 직전의 분노를 가지고 있으며, 대화가 나오면 분노가 자주 폭발해대기 때문이다.
특히 박정희의 분노가 이 영화 전개와 갈등의 중심을 잡고 있는데
이 분위기 요소들이 합쳐지면서 공포영화인데 귀신은 없고 그 대신 그 포지션을 화가 치밀어 오른 박정희가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의 전화가 공포영화의 점프스케어처럼 사용되고 주인공인 김재규도 박정희의 전화에 놀라는 장면도 있으면 말 다했다.
극의 전개 또한 불필요하게 밖으로 새는 부분도 없을 뿐더러 인물간의 갈등, 반동 인물의 추적까지 매우 균형감있게 짜여져 있기에 쉴새없는 긴장감에도 시간가는 줄 모르게 집중을 유지시켜주는 굉장한 흡입력이 있다.
특히 이 몰입감을 유지시켜주는 가장 주요한 원동력은 배우들의 열연이다.
나한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내가 무서울 지경인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하는 중앙정보부 선배를 2인자로서 처단하는 주인공의 복잡한 심리부터
자기 세상인 줄 알고 월권과 폭언을 일삼으면서 권력을 위해 시민을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 악역에 대한 분노,
최후엔 스스로의 결정으로 대통령을 죽이고 정작 멘탈이 무너져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조차 정신을 못차리는 복잡한 심리를 사실적으로,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이병헌의 연기는 그 자체만으로 가치있고 재밌는 영화의 주요 요소이다.
공포에 의해 유지되는 시대에 공포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의 두려움과 광기가 관객에게 그대로 다가오는 점에서
영화는 굉장히 성공적인 짜임새와 완성도를 가졌다고 요약할 수 있다.
2. 외적인 특징
사실 소재상 정치색 논란이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
인터넷에선 영화에 맞춰 탕탕절, 재규어의 발터ㅂ같은 고인드립이 올라오기도 하고
반대 쪽에선 빨갱이 영화, 총선을 앞둔 프로파간다 영화니 불매해야 한다는 말도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의외로 이 영화는 정치적으로 모호한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원래 실존인물 김재규는 5.16 정변 당시 참여하지 않았다. 김재규는 5.16 당시엔 박정희와 얼굴정도만 튼 국방부의 총무과장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김재규가 5.16 정변 당시 박정희와 함께 군사를 일으킨 인물 중 하나로 등장한다.
역사왜곡이라면 역사왜곡이라 할 수 있겠지만 사실 이 부분은 영화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김재규는 작중에서 계속 "5.16 혁명을 왜 일으켰나? 애국 애민 민주주의를 위해 일으킨 것 아니냐"는 말을 강조한다.
반대점에 있는 악역은 권력자로부터 신임을 얻기 위해 월권을 하고, 시민들을 탱크로 밀어버려야 한다는 차지철과
강압적인 독재로 인해 미국과의 심각한 갈등이 있음에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든 권력을 놓지않기 위해 광적인 분노를 터트리는 박정희이다.
이 두 인물을 보며 김재규는 민주주의를 위해, 5.16 "혁명"의 정신을 위배한 혁명의 배신자로 칭하며 비난을 한다.
즉 이 영화는 5.16군사 "혁명"을 긍정하고 있으며
애국, 애민, 민주주의의 혁명 정신을 쫓고
초심을 잃고 권력에 타락한 유신독재 시기의 박정희를 비판하는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주인공인 김재규를 무작정 옹호하지 않는다.
김재규는 작중 중반까지 차지철에게 밀리고 있는 와중에도 박정희란 타락한 권력자를 위해 암살이라는 더러운 짓을 하며 남산 지하실에서 이뤄지는 고문을 당연하듯이 여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가 박정희에 대한 마음을 접는 계기 또한 박정희를 '도청'해 박정희가 자신에게 마음을 접을 걸 깨닫는 사건이다.
즉 김재규 또한 권력을 추종하는 인물이었을 뿐이나
권력에서 밀리게 되었기 때문에 민주주의자가 되었다는 것.
또한 영화의 직접적인 배경인 1979년 10월에 김재규와 차지철은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에 대한 시각차가 엄청난 갈등 요소 중 하나였는데
영화에선 일부러 '한마디의 언급조차 없애버렸다.'
친박근혜 정치인들이 보수의 주류인 현 시국에서 영화에 박근혜의 약점을 소재로 두면 현실에 직접적인 영향이 가기 때문에 영향력을 줄이고자 일부러 배제한 것이 아닐까 싶다.
3. 요약
총합해보면 잘만든 스릴러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보기 전에 마음을 좀 단단히 먹고 봐야하는 영화다.
내용, 분위기 부터 매우매우 심각할 뿐더러 근현대사의 지식이 없으면 흐름을 완전히 따라가기 힘들때가 있다.
특히 작중 인물들이 이름보다 박 부장, 김 부장 식으로 불려 가끔 누굴 말하는 거지하며 헷갈리기 쉬우며
아주 가끔 화가 치밀어 오른 등장인물의 딕션이 나빠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대사를 놓치는 상황이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중한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영화를 보거나, 호러영화를 보는 느낌을 원할 땐 매우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이며
미장센들은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허투루 사용되는 것이 없으며, 내용도 중간에 튀는 거도 없으며
영화 시작부터 시작된 긴장감을 2시간 내내 유지하면서도 관객이 집중력을 떨어뜨릴 만한 상황을 안 만드는 높은 완성도의 영화다.
그리고 의외로 박정희의 군사혁명을 긍정하고 유신독재를 비판하는 중도우파적 영화이며
이 때문에 5.16정변에 대한 1의 긍정도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이나, 유신독재시기도 사랑하는 극단주의자를 제외하면 취향 좀 타지만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