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출처 : 칼부림
누르하치는 1618년 음력 2월부터 본격적인 전쟁준비를 명령했지만, 그의 병사들과 백성들이 전쟁의 준비에 대해 실질적으로 인지한 것은 다음달인 음력 3월서부터였다. 그 때서부터 누르하치는 본격적으로 전쟁 준비에 관한 지시들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위장 명령', 즉슨 전쟁을 준비하는 행위를 지시하면서도 정보노출을 의식하여 다른 명목으로 명령을 내렸다면 음력 3월서부터 내려진 명령들은 확실하게 전쟁 준비와 관련한 명령이었고 그로 말미암아 후금의 지도층뿐만이 아니라 일반 병사들과 백성들까지도 이제 자신들의 목전 앞까지 전쟁이 다가왔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내부적으로는 전쟁에 대한 사실이 알려졌지만 외부에 대한 정보노출은 여전히 최소화되었다. 누르하치는 혹여 명나라측이 후금의 전쟁준비를 알 것을 경계하여 여전히 정보노출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위장전략을 사용했으며, 후금인들의 타국에 대한 접근을 최소화시켰다. 물론 모든 후금인들이 통제될 수는 없었으나 이러한 조치는 실효를 보여서, 명과 공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누르하치가 얼마 지나지 않아 거병을 할 것이라는 정보를 파악하고 있던 조선에 접근하는 후금인들의 수는 극단적으로 축소되었다. 이 탓에 조선에서도 후금의 전쟁에 관련한 움직임에 관하여, 후금이 서신을 보내온 이후로 확실히 파악치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음력 4월에 접어들어서는, 드디어 후금의 명에 대한 전쟁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몽골계 세력들 역시 누르하치의 전략에 어느 정도 호응키로 했으며, 특히 바유트의 경우에는 누르하치의 어푸가 된 다르한 바투루의 아들 엉거더르를 위시로 하여 누르하치의 군대에 직접적으로 협조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사할차/구왈차1계 역시도 누르하치의 원정 준비에 호응하게 되었는데, 마찬가지로 누르하치의 어푸가 된 사할리연이 누르하치의 군대에 직접적으로 종군하기로 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이것이 그들의 종주세력인 코르친의 의도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코르친과는 별개로 벌어진 일인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코르친이 누르하치의 계획에 협조치 않고 얼마간 후금과 거리를 둔 것을 보면 사할차의 사할리연이 누르하치에게 협조한 것은 아무래도 별개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 하다.2
음력 4월 초 무렵, 주변세력과의 외교협력체계가 완비되고 병사들 역시도 충분히 준비가 완료되자 누르하치는 버일러들과 암반들에게 전쟁에 관한 지시문을 직접적으로 내렸다. 그것은 전쟁의 개전 및 그 이후의 작전에 관한 것을 이르는 유시문으로서, 후금군의 전략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여기서 누르하치는 작전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버일러들과 암반들에게 이번의 전쟁에 있어서 적(명군)과 교전할 때에 무작정 밀어붙일 생각을 하지 말고 전략의 기민한 운용을 하라고 강조했다.
그는 야전에 있어서 적이 적다고 하더라도 무작정 덤비지 말고 우선적으로 유인전술을 시행할 것을 지시하거나, 적 부대와 적의 요새간의 거리를 미리 파악하여 적에 대한 공격지속시기를 결정하라거나, 적의 군대가 많다면 무작정 덤비지 말고 작전을 펼치는 다른 부대들과 합류하여 요격하라는 등의 훈시를 내렸다. 공성에 있어서도 공격하기 전에 요새의 수준을 충분히 면밀히 파악하고, 함락할 수 있다는 자신이 들 때에서야 공격을 하도록 하며 그런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차라리 공격치 말고 물러나라는 지시를 내렸다.3
요컨대 누르하치는 물량을 기반으로 한 소모전식 압박을 지양하고 아군의 피해를 줄이는 것에 중점을 둔 전략을 강조했다. 그러한 지시는 당시 후금의 국력에 기인한 바였다. 당시 후금은 요동조차 손에 넣지 못한, 요동 동쪽 만주 지역에 한정된 국가에 불과했고, 그렇기에 국력과 인구 모두 그리 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역의 패권을 장악할 만한 강력한 군사력이 그나마 누르하치가 명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결정케 하는 의사의 기반이 되었는데, 무리하게 전과를 얻고자 희생을 감수하고 밀어붙인다면 그 강력한 군사력에 손실이 발생하게 되고, 그로서 기반에 균열이 발생하여 향후 상황이 위태로워졌다. 누르하치는 노획품이나 전과를 조금 더 얻고자 그런 상황을 초래할 수 없었고, 그리하여 그러한 피해 감소에 중점을 둔 전략을 구성했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누르하치는 군령에 대한 바도 확고히 하였다. 그는 공성전을 할 때에 개인단위로 무작정 성에 진입하다가 피해를 늘리지 말 것을 확실히 하고, 지휘에 따라 함께 움직일 것을 강조했다. 또한 작전이 끝날 때까지 기(tu)에서 이탈하지 말 것 역시 지시하며, 이탈시 체포하여 심문을 진행하라고도 강조했다. 개인이 전략방침에서 벗어나서 세운 전공은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무조건적으로 상급자와 전략에 따를 것을 지시했다. 지시를 어기는 이는 처형될 것이라고도 포고했다.
그것은 전쟁에 있어 개인의 일탈을 방조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군율이 어그러지고 그리 된다면 군대가 자연스레 와해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내린 조치였다. 특히 명나라는 '가진 것이 많은' 적이었기 때문에 병사들 개인의 욕망이 더욱 커질 수 밖에 없고, 따라서 그들이 개인행동을 할 가능성도 더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누르하치는 출정 전에 군율을 가장 우선적으로 강조한 것이었다.
누르하치는 이미 건주를 통일하기 전부터도 군율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살극찰의 난 당시 반란을 일으킨 조오기야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병사들이 군율을 어기고 전리품을 탐하며 보여준 추태와 나이후와 바르타이라는 두 지휘관이 보여준 추태는 누르하치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4명나라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는 이전보다 더욱 군율유지가 중요했고, 그렇기에 누르하치는 극형을 언급하면서까지 병사들에게 군율의 유지를 강조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유시문의 포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후금은 명나라를 상대로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1. 이전의 글에서 언급했듯 이 시기 기록에 남은 사할차는 제야강의 사할차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구왈차를 지칭한다고 판단된다.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59320391
2. 엉거더르와 사할리연의 참전은 『만문노당』 무오년 음력 4월 14일, 『만주실록』 동년 동월에 기록되어 있다.
3. 『만문노당』 무오년 음력 4월
4. 『만주실록』 기축년 음력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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